소설리스트

97화 (97/225)

솔직히 한고립은 너무 고지식했다. ‘적당히’란 단어를 몰랐다.

그는 종친과 사대부를 감금하고 강제로 외국어를 교육했다. 그리고 외국서적의 번역도 강제했다. 그 과정에서 종친과 사대부들의 반항이 있을 때마다 강력한 ‘물리치료’가 동원됐다. 그 물리치료에 기본군사훈련, 유격훈련 등은 일상이었다. 심지어 능양군은 한고립의 가혹한 언어폭행에 몸져눕기도 했었다. 

한고립은 스스로 몸을 결박하고 복죄(伏罪)했다.

그냥 국왕의 명령이었다고 말하면 간단한 것인데... 그는 이 모든 것이 국왕인 나의 오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고, 그 오점을 스스로 뒤집어쓰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그의 뒤에 숨어 선한 국왕인 척,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까짓 오점이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얼마 전, 내가 호주 원주민들을 모두 뉴기니 섬으로 강제이주 시킨 것만으로, 향후 수백 수천 년간 욕먹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고 별일 있을까? 

그렇다고 호주 국민인 종친과 사대부들의 청원을 마냥 무시할 순 없으니... 

“이번 일은 다소 과한 점이 있었으나 내 명령으로 비롯되었다. 유감이지만 더 이상의 청원은 받지 않겠다. 대신 호위대장 한고립은 호위대장에서 물러나 당분간 근신하라. 곧 다시 부를 것이니 심신을 닦으며 다음 일에 성심을 다하라.”

나는 유감을 표명한 후에, 그들의 모든 청원을 일축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건을 통해 적당한 인재들을 찾은 듯 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유럽의 언어를 익힌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특히 송시열은 더욱 그랬다. 

그들도 호주에서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조선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그들이었다. 

그들에겐 명과 조선이야말로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도 호주를 보고 놀랍게 변했다.

나는 그들에게 또 다른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엔 호주에서 죽을 때까지 가둬두려고 했었지만 말이다. 그뿐인가? 내가 혹시 죽는다면 그들 모두를 치워버릴 계획까지 세웠었다. 사실 내 생각은 너무 잔혹했다. 조선과 호주를 위해서라고 변명한다고 해도, 내가 그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깊이 반성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들을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보내주기로...

물론 적당한 동행자를 붙여서 말이다.

그 동행자론 한고립이 적당할 것 같았다.

얼마 후, 내각 대회의실.

수상과 각료들은 간단한 다과를 즐기면서 회의 중이었다.

“하늘이 보우하사 국왕폐하께서 정당한 적자를 얻으셨습니다. 이는 한국과 조선 양국의 신민에게 홍복입니다. 따라서 기존 제1호 칙령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합니다.”

법무부장의 발언에 수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본 수상은 이 경사에 발맞춰 더 이상의 논란을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왕위 계승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왕위 계승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국왕폐하의 직계여야 하고, 둘째 남성 우선이며, 셋째 성리학과 특정 종교에 무조건 신종(信從)하는 계승 후보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특히 세 번째는 국왕폐하께서 이미 천명하신 사항입니다. 또한 계승 순위에 대한 것은 국왕폐하의 생전에 법률로 명문화하되, 국왕의 유고로 인해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내각과 의회에서 논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수상의 말이 끝나자 각료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후로 잠시 갑론을박이 이어졌으나 크게 다른 의견은 없었다. 큰 경사가 있어서 그런지, 각료회의 중임에도 서로 덕담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외교부장이 화제를 전환했다.

“다들 지난 후금과의 전쟁 결과보고서를 확인하셨으니 구체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설명드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따라서 주요 골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조선의 대외관계가 크게 안정되었기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에 대한 후속대책은 후금, 명, 유구국, 일본으로 나뉘어 진행될 겁니다. 일단 가장 우려했던 명은 내외부의 경제문제 때문에 잠잠합니다. 반대로 유구국은 우리에게 조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일본의 견제를 요청했습니다. 일본은 기존 외교관계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줄 것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유럽의 전쟁 때문에 은이 돌지 않아 문제입니다. 그나마 일본의 이와미에서 대규모로 은이 채굴되긴 합니다만... 스페인의 은은 채굴되는 족족 그들의 전쟁비용으로 소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스페인의 은이 명에 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은이 돌지 않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명이고, 일본은 은을 더 비싸게 팔아먹어 이전보다 더 큰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유구국은 교역규모가 워낙 작아 별 볼일 없습니다.”

외교부장은 탁자의 차를 들어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명나라가 무역에서 타격을 받건 말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와 무역의 규모가 늘어감에 따라 금과 은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무역뿐만 아니라 유럽, 명, 일본, 아메리카의 금과 은 가격 차이를 통해 추가적인 이득을 얻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금과 은의 태환비율에 대해 보다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체적인 금과 은의 보유량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현실화 될 겁니다.”

외교부장은 잠시 고개를 돌려 수상과 눈을 마주치고 다시 말했다.

“그런 이유로 국왕폐하께서는 북아메리카 서해안 지역의 채금(採金)행위를 전면 허용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지난 수년 간 해군탐사선이 탐광사(探鑛士)들을 동원해 구석구석 탐사한 결과, 서해안의 여러 강에서 사금(砂金)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금광도 여러 곳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북아메리카에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저희가 퍼뜨린 겁니다. 국왕폐하께서는 조선을 떠나기 전에 ‘조선-북아메리카 서해안 정기여객선 노선’을 확정하셨고, ‘북아메리카 정착지 건설계획’도 승인하셨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서부지역 방위는 조선해군이 맡기로 했습니다. 조선해군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을 견제하고 태평양 해상로를 통제하게 될 겁니다.”

수상은 외교부장의 발언이 끝나자 이를 보충했다.

“이번 채금열풍은 단순히 금과 은의 확보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종적인 목적은 북아메리카 서부 영토의 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겐 과거 채금열풍을 이겨낸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채금열풍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입니다. 제2차 채금열풍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서 우리가 원하는 목표달성에 문제가 없도록 모두 힘을 보탭시다.”

웅성웅성.

수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최근 조선 내각의 보고에 따르면 조선의 인구증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기존 인구계획은 조선과 호주의 영토, 농업생산성 등의 비율에 따라 전체 인구를 3 : 7로 배분하는 것이었소. 하지만 북아메리카의 서부지역을 확인해보니 여러 면에서 호주보다 입지조건이 좋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기존 인구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채금열풍은 조선의 인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국왕폐하께서는 호주로의 이주보다는 북아메리카 이주에 보다 다양한 특혜를 주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는 정책적으로 호주보단 북아메리카로의 이주를 장려하고자 함입니다.”

수상의 말이 끝나자 상무부장이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럼 과거 무차별로 개발권을 부여해준 것과 유럽인에게도 차별없이 채금(採金)을 가능하게 풀어줬던 정책도 그대로 유지합니까?” 

수상은 상무장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물론입니다. 지난 채금열풍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알아서 정착촌을 만들고, 길을 닦을 텐데 괜히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거점항구 네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주요 정착지에 도시계획을 제공하고 관공서를 마련하면 됩니다. 하하하.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거기에 외교부장이 맞장구쳤다.

“크하핫! 옳습니다. 국왕폐하의 말씀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대신 그들이 너무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대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전처럼 큰 혼란이 없도록 말입니다. 우리에겐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짝짝짝.

하하하.

외교부장의 말에 모두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각의 북아메리카 이주 및  채금 허가 공고문이 호주 전역의 관공서에 나붙었다. 동시에 조선에서도 동일한 공고가 조선 전역에 널리 퍼졌다.

이로써, 제2차 채금열풍이 시작됐다.

그 선두엔 김자점이 있었다.

같은 시각, 북아메리카 서해안 어느 곳.

쿵쿵.

딱딱딱.

쓰윽쓰윽.

두 개의 강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강 하구의 만(灣)은 길쭉한 천연의 방벽으로 둘러쳐 있었다. 만은 길쭉한 방벽의 가운데 좁은 해협(海峽)을 통해 태평양으로 연결되었다. 안쪽의 만은 그 천연의 방벽 덕분에 무척 평온했다. 

거친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라면 어떤 폭풍이나 해일이 몰아치더라도 안전할 것 같은, 이런 만이야말로 천연의 양항(良港 : 좋은 항구)일 것이라 말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만 안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좁은 해협의 양쪽 언덕에는 나무로 만든 목조 등대가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해협 안쪽의 적당한 평지에는 거대한 선착장과 목조 요새가 자리했다. 그 목조 요새의 바로 앞 선착장에는 6척의 전함들이 위풍당당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또한 만의 안쪽에는 상선으로 보이는 배 여러 척이 연이어 화물을 내리고 있었다. 

이 곳의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다.

북아메리카 대이주시대

북아메리카의 서부해안.

훗날 사람들에게 황금주(黃金州) 또는 황금해안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 곳에서 황금이 발견되어서만이 아니라 자연환경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현대에 와서야 알려진, 북태평양에서 내려오는 한류로 인해 연중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것. 즉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습도가 늘 낮아 상쾌하면서도 햇살이 밝게 빛나는...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환경이 펼쳐진 곳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북아메리카의 서해안을 따라 수만리가 넘게 계속 된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 간,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을 돌아본 해군탐사단은 이에 대한 탐사보고서를 잘 정리해서 국왕에게 보고했다. 국왕 이하 수상, 조선의 수상까지 모두 이 탐사보고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절묘한 시점에, 북아메리카 서부의 채금행위 전면허용 정책이 발표되었다. 거기에 한국과 조선 국민의 북아메리카 이주(移住)도 함께 허용되었다. 그에 따라 부산의 정기여객선 선착장에서는 북아메리카로 이주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그 결과가 제2차 골드러시, 북아메리카 대(大) 이주시대(移住時代)의 서막이었다.

조선 한양, 인정전(仁政殿).

조선 내각의 대회의실은 피곤에 찌든 각료들의 한숨소리로 가득했다.

수상 이원익은 각료들을 둘러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각은 지난 한달 간,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 바쁜 업무를 소화했다. 오죽하면 외교부장 최명길, 상무부장 김육 같은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겠는가? 

대회의실의 긴 회의용 탁자엔 커피 잔이 널려 있었다. 각료들은 잠시라도 피로를 가시게 하려고, 비싼 커피를 물처럼 마셨다. 이원익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짝짝짝!

이원익이 갑자기 박수를 치자 각료들이 퀭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회의준비에 착수했다. 수상의 박수가 곧 회의를 속개한다는 신호인 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이원익은 안쓰러운 마음을 다잡고 각료회의의 속개를 명했다.

“얼마 전 주민등록 현황보고를 올린 바와 같이, 현재 조선의 전체 인구는 조선 자체의 생산성만으로는 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식량자급률이 너무 낮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이유들을 대라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저는 호주와 북아메리카 이주정책에 적극 찬성합니다.”

상무부장 김육은 찬성의견이었다.

“저도 찬성입니다. 다들 호주에 다녀오신 경험이 있으니까요. 다만 북아메리카 서부의 땅은 호주의 크기에 비해 작지 않고, 조선에 비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조선 국민 대다수를 이주시키는 겁니다. 상무부장께서 말씀하시려다 만 것을 제가 잘 알고 있는데... 조선의 대부분 생산성은 호주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의 생산성이 호주보다 나을 수 있단 보고서가 있어요. 이게 뭘 뜻하는 지 다들 이해하실 겁니다.”

김육에 이어 외교부장 최명길도 찬성의견이었다.

“글쎄요. 저도 찬성이긴 한데... 설마 이 조선을 공지(空地 : 빈 땅)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허! 그건 아니지요. 국왕폐하께서 명하신 내용을 보면 명확합니다. 이주에 대한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주에 대한 장려를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구요. 저는 이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북아메리카를 온전히 지배하려면 그만한 인구가 있어야 합니다. 기존 계획의 변경이 필요한 셈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최근 주민등록 현황을 보면 조선의 인구가 1천1백만이 넘습니다. 주민등록이란 것은 항상 변하는 것인데, 작년에 비해 인구의 증가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커지고 있어요. 마마(천연두)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위생관념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질병도 크게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이 많은 인구를 더 좋은 땅에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아예 조선 조정을 북아메리카로 옮기는 것도 검토해봐야 합니다. 물론 국왕폐하께서도 이를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내각의 각료들은 북아메리카 이주계획에 기본적으로 찬성이었다. 그리고 일부 각론(各論) 등 이견을 제시하곤 했다. 그렇게 내각회의의 최종결론이 도출되는 듯 했다.

그때 국방부장 정충신이 화제를 전환했다.

“북아메리카 이주계획은 이미 결정된 것 아닙니까? 그에 대한 세부사항들은 차차 논의하기로 하면 됩니다. 더 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제가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어 문제제기 하고자 합니다. 무관인 제가 보기에, 북아메리카의 서부는 스페인(주: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거기에 북아메리카 거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비를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정충신은 잠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다시 말했다.

“얼마 전, 부왕전하께서 소관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왕전하께선 호주의 개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아메리카의 세력은 중부와 남부 아메리카를 석권한 스페인, 북아메리카의 서부를 가진 우리, 북아메리카의 거주민들, 북아메리카 동부의 유럽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스페인의 세력권을 제외한 북아메리카의 세력권은 누군가가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아메리카의 완전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많은 이주민을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 최소 조선군의 정예부대 절반을 함께 보내서 북아메리카의 군사적 우위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재산, 국민이 있는 곳에 우리 군대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우리 국민들이 북아메리카에 이주한 이후에,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조선군이 북아메리카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하구요.”

국방부장 정충신의 말이 끝나자 내각 대회의실은 침묵에 빠졌다.

정충신의 말은 북아메리카의 확고한 우위세력이 없는 만큼, 선제적인 대량이주와 함께 군사력의 선제적 대량투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국왕의 기존 계획보다 더 급진적인 것이었다. 

지금 내각은 정충신의 이런 급진적 주장에 섣불리 동의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때 수상 이원익이 나섰다. 그리고 에둘러 새로운 논란을 차단했다.

“국방부장의 제안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를 정리해서 부왕전하와 국왕폐하께 상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회의를 마칩시다.”

그날 저녁, 한양 북촌 김자점의 사랑채.

김자점은 함경도 온성의 여진족 우두머리 김추성을 맞이해 담소하고 있었다. 김추성은 오도리의 번호  우두머리 중 하나였다. 그는 최근 조선에 완전히 귀화해서 일족을 이끌고 한양으로 올라왔다. 김자점의 은밀한 밀서를 받은 이후에 말이다.

잠시 덕담을 나누고 난 후, 김자점이 먼저 물었다.

“그래 자네 준비상황은 어떤가?”

김추성은 김자점의 질문에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은공께서 명하신대로 온성 부근의 일족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재산정리도 얼추 끝났습니다. 다음 정기연락선을 타도록 하겠습니다.”

김자점은 답변에 만족한 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 좋아! 북아메리카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야. 함경도의 척박한 땅과는 비교가 되질 않지. 내가 자네를 불러들인 것은 오도리를 내 자식처럼 아끼기 때문이다. 참! 이 모든 것은 국왕폐하의 성덕임을 절대 잊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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