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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죽기 전에 전 간절히 기도했지요. 절 구해주는 사람에게 한 생을 바치겠다고. 대감마님을 만나 뵙고 소원이 이뤄진 거예요. 비록 서기(瑞氣 : 상서로운 기운으로 왕의 기운을 뜻함)는 없었지만요.’
그는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역모로 의심될 수 있는 그녀의 말에 기함했다. 그래서 소리쳤다.
‘아주 제멋대로군. 그 입 다물라. 누가 들을까 두렵구나.’
그때, 갑자기 후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흰자위만 드러냈다. 항상 그랬듯이 그녀 속의 신기(神氣)가 대신 말했다.
‘히히히. 대감마님께서는... 살아서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실 거예요. 그래도 하늘만은 답을 알고 있답니다. 바다는 그 뜻을 받들고요. 저는 오직 손으로 더듬어서 알아 볼 수 있지요.’
그리고 그녀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지막 말은 신기 대신 그녀가 대신했다.
‘저는 신을 대신해 대감마님을 지목한 것뿐입니다.’
후처는 그 말과 함께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김자점의 가슴에 맞닿아 있었다.
◆ ◆ ◆
짹짹.
뾰로롱.
어느 새 아침이었다.
김자점은 밤새 고심했고 다시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예언대로, 그는 정보국 조선지부장(신준묵)을 따라야했다. 하지만 그 방향만은 달랐다. 그는 사랑채 벽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국왕의 선택은 신준묵과 김희두였다. 그들은 각기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를 맡았다.
김자점의 눈은 조선의 동북면을 거쳐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북아메리카 서부에 멈춰 섰다.
이제 시작이었다.
같은 시각, 호주 서울.
호주에 강제로 끌려온 능양군, 송시열 등 왕실 종친과 유학자들은 ‘노동교화’란 이름의 요상한 강제교육을 빠짐없이 수료했다. 그들은 조선에서 성리학과 인격을 도야하는 고상(?)한 삶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그 반대였다.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국왕의 해괴한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새로 지급받은 땅에서 스스로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해야 했다.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할 재료와 농기구 등은 모두 지급되었지만, 그 일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렇게 반년에 걸친 눈물겹던 ‘노동교화’가 끝나고, 그들 모두 번듯한 집과 갈아먹을 땅이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국왕은 ‘노동교화’를 수료한 자들에게 매달 일정한 돈을 주었다. 그 돈은 조선에서 몰수한 재산을 그에 상응하는 연금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그 연금은 일정 기간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급한다고 했다. 그들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좀 살만해졌다고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국왕이 조선으로 떠나면서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 강제 외국어 교육이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의 여러 언어를 익힌 후, 그 언어들로 쓰인 다양한 서적들을 번역하게 했다. 천명 가까운 종친과 유학자들은 난데없이 부림을 당했다. 언어를 익히는 것도 힘에 겨운데 외국어로 된 서적들을 번역까지 하다니... 게다가 그 책들은 유학에서 멸시하던 사문(斯文)이었다. 그들은 사문을 다루게 한 국왕의 명령에 격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발은 곧 강제 진압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호위대장, 아니 악마 한고립이 있었다.
쓱쓱싹싹.
송시열은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의 눈은 단 한순간도 서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려는데..., 그 목소리는 익히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여어, 이거 참 부지런 하구려!”
“호위대장!”
송시열의 개인적 공간에 말도 없이 들어온 그는, 호위대장 한고립이었다. 한고립은 허락도 없이 서탁 앞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요. 당신은 내 손을 못 벗어난다니깐!”
한고립은 그 말과 함께 코를 벌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거 향기 좋네. 술은 나눠야 제 맛이라고, 한 잔 드리리까?”
송시열은 한마디 쏘아 붙이려다가 무슨 생각인지 한고립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술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술잔을 코 밑에 갖다 대고 킁킁 댔다.
“좋은 술이군요. 호위대장께선 취향 한번 고급이십니다.”
그 말과 함께 송시열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호위대장 한고립은 빙글거리며 송시열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당신 재주 한 번 좋구려.”
송시열은 금시초문인 양 시치미를 떼 듯 대답했다.
“호위대장께선 소생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
꿀꺽꿀꺽.
한고립은 술병을 꺾어 그대로 두어 모금을 연달아 마시더니 입가를 닦으며 다시 말했다.
“그대가 저지른 짓 말입니다. 그대의 스승 김장생을 비롯해서 송준길 등에게 외국어를 열심히 익히도록 설득했지? 사문(斯文)이라고 죽음으로써 반대하던 자들을 말이야. 아주 음, 훌륭해! 크하핫.”
짝짝.
호위대장 한고립은 말하다 말고 손뼉을 딱 두 번 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고루한 유자들이 그런 생각을 알아서 했을 리는 없고, 오직 한 사람. 그대 밖에 더 있겠소?”
“난 아닙니다.”
송시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고립은 집요하게 쏘아댔다.
“시침 떼도 소용없어.”
“다른 분들께서 내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의해왔던 적은 있었지만, 그 일은 온전히 그들이 결정해서 한 것입니다. 내가 나서서 설득한 적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송시열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커졌다.
“암시는 주셨겠지.”
한고립은 다시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송시열은 서탁을 물리며 소리쳤다.
“우리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자 한고립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대가 생사람을 잡는구려. 어디 내가 그대들 보고 무지몽매하다고 했단 말이오? 제길... 관둡시다. 그대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한잔 더 드리리까?”
송시열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고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수작입니까?”
“하하! 순수하게 한잔 하자는 거요. 곧 국왕폐하께서 돌아오실 것이고, 그대들은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 않소? 이번이 아니라면 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고. 자! 내 청을 들어주시오.”
“훗! 알겠습니다.”
송시열은 떫은 감 씹은 표정으로 술잔을 받아 마셨다. 그들은 술잔을 비우면서도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고립의 눈은 야비한 듯 빙글거렸고, 송시열은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마치 송시열은 도망자요, 한고립은 그를 추격하는 사냥꾼인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술잔을 다 비웠을 때였다.
송시열이 갑자기 물었다.
“국왕폐하께서 오시기 전에 모조리 죽일 겁니까?”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북풍한설이 몰아친 듯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 영겁과도 같았던 일수유가 지나고, 한고립이 깜짝 놀란 듯 튕기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묘한 눈길로 송시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국 자리를 피한 것은 한고립이었다.
“아 피곤하군. 난 이만 가보겠소. 열심히 공부 하시오.”
열흘 후 새벽녘.
아직 동쪽 하늘에 여명이 트기 전이었다.
끼룩끼룩!
철썩!
쏴아아!
기함 자유호의 흰 돛은 순풍을 받아 힘차게 펄럭였다.
이제야 저 멀리 뭍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함의 돛을 다시 확인했다. 이미 연락선을 통해 소식을 전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순간 인기척이 있어 옆을 바라보니 어느 새 그녀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간 고생해서인지 얼굴이 반쪽이었다. 서울을 떠날 땐 둘이었는데, 돌아올 땐 셋이었다.
그녀의 얼굴엔 피곤함과 반가움이 공존했다. 아쉽게도 서울항에 도착해서도 편히 쉬긴 어려울 것이다.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곧 수상을 비롯한,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은 어땠는지 알아볼 수 있겠지.
그때였다.
동쪽 하늘에 해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저 앞에 서울항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돌아왔다.
제2차 골드러시
내가 조선으로 떠나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왕위 계승과 관련된 분쟁이었다.
과거 ‘국왕이 서거하고 직계 후손이 없으면 수상이 차기 국왕으로 즉위한다.’는 내용의 제1호 칙령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칙령은 취소된 적이 없으므로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게, 꼭 생각대로 또는 원리원칙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호주 국민들은 노비출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대부 출신이지만 반대 붕당의 가짜역모고변 등으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난 양반들, 서얼출신으로 차별받던 자들, 거기에 중인과 양인, 노비 등 다양했다. 그들은 신분제, 경제적 이유, 새로운 삶 등 다양한 이유로 호주에 왔다. 게다가 요즘엔 호주에 귀화한 유럽인들도 많았다. 유럽인들도 종교적, 정치경제적 자유를 위해 호주에 귀화했다.
그들은 조선과 유럽의 구체제를 거부하고 호주에 왔다.
지금은 조선에서도 호주와 같은 변혁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호주 국민들이 조선의 과거 왕족들을 새로운 호주 국왕으로 쉽게 인정할까?
내 생각엔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친들이 왕위계승과 관련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마냥 경시할 순 없었다. 호주와 조선 국민들은 수천 년 간 왕정만을 경험했다. 그 오랜 관성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최소 조선에서만큼은 구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만약, 폐주를 위시한 종친들이 내 혈연을 이용해 조선의 구체제로 ‘왕정복고’를 시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치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이런 구체제로의 회귀시도를 막기 위해 한고립에게 밀명(密命)을 내렸었다.
내가 죽고 기함에 검은 돛이 걸린다면, 그들 모두를 치우라고 말이다.
그 외에 다른 자잘한 것들도 있었다.
결국 모든 원죄는 내게 있다.
며칠 전, 내가 귀국하자마자 종친과 사대부들이 들고 일어나 호위대장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들은 내각과 의회, 법원에 몰려들어 온갖 난리를 피웠다. 종친과 사대부들도 호주 국민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