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225)

스코틀랜드에서 내려온 찰스 1세의 스튜어트 왕조는 태생적으로 워낙 힘이 약했기에 이런 한국의 지원이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찰스 1세에게는 한국이야말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의회를 영원히 닫아버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비록 한국의 재정지원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찰스 1세는 언젠가 태어날 자신의 딸을 한국 국왕에게 시집보내며 그 빚을 탕감 받을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수를 내야겠지만 그것은 아주 나중 일이었다. 한국 국왕은 단 한 번도 빚 독촉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국 특사는 윈저성에 들어오자마자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말했다.

“... 따라서 그동안 지원해드린 원금 일부, 은화 100만 파운드를 반환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그때, 찰스 1세의 귀에는 은화 100만 파운드 외의 그 어떤 말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두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북아메리카의 형세(지도 추가)

찰스 1세는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즈를 급히 소환했다.

조지 빌리어즈는 선대 제임스 1세는 물론이고 찰스 1세도 총애하는 신하였다. 그 총애는, 조지 빌리어즈의 기획으로 시행된 1625년 스페인 카디스 항구 기습공격 실패의 책임을 의회를 해산하면서까지 무마해 줄 정도였다. 

1625년 스페인 카디스 항구 기습공격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해군 전함 100여척과 1만명이 동원된 대규모 작전이었다. 하지만 총지휘관인 로버트 세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7천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찰스 1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알토란같은 전비 25만 파운드가 그 즉시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 결과, 카디스 기습공격의 참패를 이유로 조지 빌리어즈는 1626년 의회의 탄핵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찰스 1세는 조지 빌리어즈의 목을 매달기는커녕 의회를 해산하면서까지 총신 조지 빌리어즈를 보호했는데, 그 진정한 이유는 그가 정치공작 뿐만 아니라 왕실재정을 마련하는데 아주 능수능란했기 때문이었다. 

“뭐?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니... 그리고 오히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찰스 1세는 의아한 표정으로 조지 빌리어즈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조지 빌리어즈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매만지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제가 확인해 본 결과, 한국은 유럽에 상관개설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우니 상관개설이 어렵고, 런던을 그 차선책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은 북아메리카의 담배를 욕심내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독점권을 부여한 회사에만 담배거래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담배의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부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은근한 눈빛으로 찰스 1세를 바라보았다. 찰스 1세는 답답한 듯 다음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한국의 두 가지 희망사항은 그들이 런던 버지니아 회사(아래 작가 주 확인)에 일정 지분을 투자할 수 있게 해주면 완전하게 해결됩니다.”

[작가 주 :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1606년 4월 10일에 제임스 1세가 칙령을 내려 허가한 영국의 합자회사이자 칙허 회사. 북미의 개발특허장을 부여함. 최초 담배재배로 큰돈을 벌었음. 그러나 담배재배로 인한 지력의 약화를 초래했기에 원주민의 농업이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 원주민과의 토지분쟁 등으로 담배 재배가 어려워지자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음. 결국 제임스1세는 1624년 런던 버지니아 회사에 대한 특허장을 취소하고 버지니아를 왕령 식민지로 만듬.]

찰스 1세는 잠시 생각하다 어이없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지금 장난하나!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고,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나오는 담배는 이제 얼마 되지 않아 별 이득이 없을 텐데?”

조지 빌리어즈는 왕의 분노어린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제가 몰래 알아본 바로는, 상관개설과 담배유통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한국 국왕의 진정한 의도는 왕위 계승권 문제입니다.”

쾅.

찰스 1세는 커다란 몽둥이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끼며 급히 물었다.

“더... 더 자세히 말해 보게.”

“한국 국왕에게는 선왕이 생존해 있습니다. 그는 폐위된 후 한적한 곳에 유폐되어 엄중히 감시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왕은 선왕의 사생아입니다. 선왕의 적자는... 런던에 있습니다.”

조지 빌리어즈의 대답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한국 국왕의 이복형제 부부가 런던에 와서 여행기나 쓴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었는데... 그 이상한 일들은 정당한 왕인 선왕이 강제로 유폐되고 그의 적자가 런던에 쫓겨났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한국 국왕은 사생아인 만큼, 그 어떤 나라에서도 당연히 왕위계승권이 없었을 것이다. 사생아가 왕위에 오른 다는 것은 반역을 제외하곤 없었다. 조지 빌리어즈는 찰스 1세의 얼굴색이 의문에서 확신으로 변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정당한 계승권을 가진 왕족 모두가 서울 인근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그들을 처리해 준다면...(후략)”

한참 동안 이어진 그들의 대화는 찰스 1세의 다음 명령과 함께 끝났다.

“한국에 런던 버지니아 회사 일부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특권을 주도록 한다. 그리고 제임스타운 북쪽에서 누벨프랑스(현대 뉴욕 북쪽 캐나다 지역) 접경 지역까지 그들에게 넘긴다. 앞으로 20년간 그들의 관세는 판매액의 10%로 하고 그 지역의 생산품은 런던 버지니아 회사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제한한다. 이 내용으로 정식교섭을 진행하고 그 가격은 기존 부채의 완전한 탕감이야. 나머지 문제는 특사를 파견해서 비밀리에 협상하고 별도로 두둑한 대가를 줘야한다고 전하게. 만에 하나 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크하하핫!”

현재 북아메리카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과 스페인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정글과도 같았다. 

플로리다부터 서인도 제도를 포함한 중남아메리카는 스페인의 우세가 너무나 확고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이북의 북아메리카는 중남아메리카와는 그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하여간 북아메리카는 16세기 중반부터 최북단의 누벨프랑스(뉴프랑스)에서 중부 버지니아(영국 제임스타운 등)까지 유럽 여러 나라들이 식민지 개척 중이었다. 그러나 무려 100년에 가까운 식민지 개척 역사임에도 유럽의 네덜란드 독립전쟁 등 복잡한 정세로 인해 소수의 개척민들이 작은 개척마을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영국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떠난 신교도들이 주된 이주민이었고 그들은 담배, 모피 등을 생업수단으로 삼아 본국과 거래했다.

찰스 1세의 이번 결정으로 제임스타운(버지니아)과 누벨프랑스 사이의 북아메리카 해안지대는 한국에게 할양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실제 그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중립지대였고, 간혹 네덜란드의 식민지 무역선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분쟁의 요소가 다분한 지역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 그 지역은 그 누구도 영국의 식민지로 인정하지 않는 주인 없는 땅이었다. 

찰스 1세는 세 나라의 분쟁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포장해서 한국에 팔아먹으려는 속셈으로, 영국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위협 때문에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 주인 없는 땅을 한국에 넘겨주어 완충지역으로 삼아 버지니아의 안정을 꾀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세력, 혹은 잔인한 인디언에 모두 희생된다고 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 희생(?)에는 한국와 영국 모두의 상호 이익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런던에서는 음모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런던공사관.

한국 런던공사관은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바로 옆에 세워진 몰락한 귀족의 저택에 자리했다. 한국은 오래 전 그 저택을 구입해 런던공사의 관저로 사용해왔다. 그 곳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런던 버지니아 회사가 위치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의회 건물이 나타났다. 전 주인의 부유함을 보여주는 듯 저택은 안팎으로 화려했다. 

그리고 오늘, 그 저택은 무슨 일 때문인지 밤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개노미, 아니 영국특사 김희두와 그의 아내 김세연은 런던공사(영국 주재 외교관 총 책임자)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래 친분이 있었는지 서로 격의 없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래서인지 북아메리카 현황에 대한 설명도 격식을 따지지 않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런던공사는 그동안 조선 한양에서 활약했던 정보부 조선지부장이었다. 그는 후금과의 전쟁이 끝나고 국왕 우진의 밀명(密命)을 받아 최근 영국 런던공사에 취임했다. 또한 런던공사에 취임하면서 국왕으로부터 새로운 성명(姓名)을 받았다. 

과거 정보부 조선지부장은 조선의 신분제도와 사대부를 극도로 증오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준 성명을 거부했고 그에 따라 직책명만을 고집해 왔었다. 

그러나 조선이 변하고, 모친의 신원이 회복되자 그 얼어붙었던 마음이 차츰 녹았다. 그때 천민에서 속량되어 양인이 되었지만 따로 성(姓)이 없던 모친의 성을 국왕 우진이 새로이 내렸다. 그러자 기쁜 마음으로 모친의 새 성을 받아들이고 모친의 성을 자신의 본(本)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왕 우진에게 이름까지 받았다.

전 정보국 조선지부장이자 새 런던공사의 성명은 ‘신준묵’이었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영국특사로 파견된 김희두 부부를 맞아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가 파악한 북아메리카 상황은 아주 복잡하네. 그 시작은 아주 간단했어. 영국이 스페인처럼 아메리카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 그건 금과 은이었어. 하지만 영국은 스페인처럼 식민지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하게 했지. 그 중에 존 호킨스나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자들이 유명했어.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들을 적극 지원해서 나름 성과가 있었지. 그래도 영국의 진정한 목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이었네. 그 식민지 건설로 스페인을 능가하는 엄청난 금은보화를 얻겠다는 것이었지. 그러나 몇 차례 실패하고 나서 시들해졌어. 로어노크란 잃어버린 식민지에서 크게 실패한 다음 영국 왕실에서 자금 지원을 중단해버렸지.”

신준묵은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1600년 초에 런던과 폴리머스에 버지니아 회사가 설립됐어. 그 둘의 회사 이름은 똑같았지. 1606년에 선왕 제임스 1세가 두 개의 버지니아 회사에게 각각 북아메리카에서 식민지를 건설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특허장을 줬어. 그 대신 두 회사는 금은보화같은 광산을 발견하면 광산세 20%를 국왕에게 납부하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 결과 1607년에 버지니아 제임스 강에 선발대가 도착했고 제임스타운을 건설했어. 그 후로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존 스미스란 자에 의해 간신히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해. 존 스미스는 버지니아에 금은보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원주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담배재배에 주목했어. 버지니아에서는 담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그렇게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존 스미스 덕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게 계속 될 줄 알았어. 하지만 1622년 북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전쟁으로 제임스타운이 크게 당했고 이후 담배사업은 끝난 거나 다름없이 되었네. 원주민들이 결국 내륙으로 밀려났다고 해. 그래서 제임스 1세는 1624년에 특허장을 회수하고 버지니아를 왕령 식민지로 선포했고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는 지금 파산직전이야.”

신준묵은 잠시 일어나 북아메리카 연안지대의 지도를 펼쳐보이며 다시 말했다.

“폴리머스 버지니아 회사와 런던 버지니아 회사의 임대영역을 잘 살펴보게. 이 긴 해안지대가 영국이 주장하는 왕령 식민지야. 폴리머스 버지니아 회사는 식민지 건설에 아예 실패했어. 런던 버지니아 회사가 임대한 지역이 버지니아고 남쪽이네. 폴리머스 버지니아 회사가 임대한 지역이 북쪽이야. 더 북쪽은 누벨프랑스(퀘벡)라고 프랑스가 주장하는 식민지고. 사실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북쪽부터 누벨프랑스 접경지역까지는 아예 주인이 없어. 영국이 그곳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야. 네덜란드도 호시탐탐 노리는 지역이니 조심해야해.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신준묵의 설명이 끝나자 개노미가 입을 열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버지니아 영국인에 대한 정보는 어떤가?”

개노미의 질문에 신준묵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여기 책자로 정리해놨으니 한번 보게. 존 스미스, 존 롤프의 보고서를 확인하면 될거야. 특히 존 롤프가 포카혼타스(주:실존인물)란 원주민 처녀와 결혼한 다음, 제임스타운이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과정이 잘 기록되어 있어. 그걸 참고하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거야. 그래. 사실 이거야말로 자네 특기 아닌가? 물론 인종이 다르지만 말이야. 원주민의 언어는 따로 통역할 사람들을 구해놨어.”

신준묵은 말을 끝내고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말했다.

“참! 그리고 런던 버지니아 회사의 주식을 반드시 구입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겠네. 1624년에 버지니아는 이미 왕령 식민지가 되었지만 런던 버지니아 회사가 기존에 실시한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첫 번째는 1618년에 시행된 인두권 제도(Headright System)로 회사 주식을 소유한 사람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1인당 50에이커의 땅을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1619년 시행된 식민지 의회(General Assembly)야. 식민지 의회는 식민지 통치, 법률 발의, 제도도입과정에서 성년 남성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거야. 이걸 반드시 염두에 두게나. 프랑스, 네덜란드, 원주민도 골치 아픈데 영국까지 적으로 돌릴 순 없으니까. 현재 그들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으니 적당한 이익을 주면 어렵지 않게 회유할 수 있네. 런던 버지니아 회사를 장악한다면 북아메리카 영국인들의 목줄을 쥐는 셈이야. 참고하게나.” 

“알았어. 이거 고맙군. 꼭 기억하지. 하하하.”

개노미는 탁자에 놓인 북아메리카 지도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특사 개노미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즈의 외교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림 1 - 영국이 주장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북쪽이 폴리머스 버지니아 회사의 관할지역 / 남쪽이 런던 버지니아 관할지역

김자점과 송시열

1627년 8월 어느 날.

한양 북촌, 김자점의 집 내당.

김자점은 작년 겨울부터 올해 여름까지 정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국왕의 서북순행을 호종하면서 적의 암전에 맞아 사경을 헤매기도 했었다. 또한 치료가 끝나고도 국왕의 지근거리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국왕이 호주로 떠났다.

이제 김자점 또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시간이 필요했다.

누가 먼저 상대의 몸을 덮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자점의 마지막 속옷을 발가벗긴 것은 그의 후처였다. 남자와 여자의 몸이 하나가 되었을 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역사가 완성되는 법이다. 후처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김자점의 후처는 사대부가의 여자였던 전처와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그녀는 능양군의 반정이 성공하자마자 처형된 이이첨의 노비였다. 그리고 천하절색이었다. 김자점은 평소 이이첨의 집에 드나들며 눈독을 들였었다. 만에 하나 반정의 거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는 이이첨의 첩이 되었을 운명이었다. 원래 그녀의 어미는 평양에서 유명한 무녀(巫女)였는데 이이첨에게 곧 죽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비참하게 죽었다. 

이이첨은 무녀를 죽이고도 그 딸을 첩으로 삼으려 했었다. 이는 천인공노할 일이었다. 물론 김자점도 그녀의 미모를 탐낸 것은 이이첨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김자점의 미래에 상서로운 기운이 보인다고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래서 반정 후, 김자점은 그녀를 첩으로 삼았고 얼마 전 전처가 죽은 후에는 정식 처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달콤했다. 후처의 신기(神氣)는 정말 불가사의했다. 그녀는 이괄의 난을 예언했고, 능양군의 몰락을 점쳤다. 그리고 새로운 왕이 조선을 집어 삼킬 것이라 말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고 이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흐윽!”

“하아아!”

두 사람의 입에서는 거칠고 부드러운 숨결이 신음소리와 함께 엇갈려 흘러나왔다. 이제 40이 다된 김자점은 젊은 후처와의 정사에 크게 만족했다. 더운 여름날임에도 지극히 만족스럽고 평온했다. 그가 후처의 내실에 들어간 지 벌써 일주일 째였다.

김자점은 후처의 육체 위에 몸을 실은 채,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그는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서 노를 젓는 노련한 뱃사공처럼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정사를 치르면서 계속 속삭였다. 마치 원앙처럼...

그때 김자점의 몸이 멈췄고, 그녀가 몸을 뒤집어 그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출렁이며 정사의 흐름을 이어갔다. 또한 다시 속도를 냈다. 더 이상의 인내는 필요없다 여기고 김자점의 긴장을 풀어줄 생각인 듯 했다. 그녀는 김자점의 마지막까지 단번에 밀어붙여 끝을 냈다.

“허억!”

격한 몸놀림이 없었는데도, 그의 온몸이 완전히 풀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평화롭고도 기분 좋은 정사였다. 끝나고도 그녀는 김자점의 위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김자점은 잠시간 여운을 즐기고 난 후 사랑채로 향했다. 

그날 저녁, 김자점의 사랑채 내실.

김자점은 홀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의 뒷배나 다름없었던 정보국 조선지부장(신준묵)은 영국 런던공사로 영전했고, 현지에 부임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게다가 국왕도 이젠 조선에 없었다. 비록 자신을 백안시하는 조선부왕이 남았지만,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조선부왕은 김자점과 그 당여들이 의회에서 작당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까.

현재 조선의회는 김자점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조선의회 의장 자리엔 전혀 관심 없었다. 그저 조선의회 부의장과 정당 당수자리에 전념했다. 

그는 정말 잘 나가고 있었다. 하는 일마다 대박이 터지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봤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능양군과 함께 한 서인반정이 성공했을 땐,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나 역심이 생긴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김자점은 고심했다. 이 미치도록 허무한 심정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서인반정의 성공 당시와 비교해서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서인반정에서 김자점의 공은 1등 공신임이 명확했다. 대북의 영수였던 이이첨은 물론이고 폐주(광해군)의 상궁 김개시 등 모든 적정(敵情)을 세밀히 살펴 반정의 성공에 절대적 공을 세웠다. 그런 김자점의 공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없었다.

그 당시의 희열은... 그래 바로 그거였다! 

김자점은 그렇게 깨달았다.

순간 그의 얼굴엔 화광이 일렁였고, 눈 속에선 불꽃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후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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