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25)

◉구성전투의 후금군 : 총병력 2만5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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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아민의 철기가 지축을 울리며 돌진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비록 어부지리였다고는 하지만, 중원을 접수한 세계적인 정복국가의 주력 군대였다. 그 청나라, 아니 후금 철기가 나를 향해 돌격했다.

나는 친위대원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지켜보는 척 노력했다. 김자점은 거의 우는 표정으로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러나 한 달 넘게 동고동락하며 매섭게 훈련시킨 친위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제 자리를 굳게 지켰다.

그들의 눈에 혹시라도 내가 동요한 것이 보인다면, 나는 그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졸렬한 인간이 되고 만다. 내가 그들에게 생명을 걸고 전열에 서라고 명령한 이상, 나도 그들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전쟁의 불문율이었다.

사기는 대단한 그 무언가가 아니다.

단순히 비가 와서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다. 위화도 회군의 이유 중에 우천으로 인한 활의 문제도 있지 않았는가. 보통 보급이 부족하면 ‘항상’이라고 할 만큼 사기가 떨어진다. 지휘관의 도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정말 다양한 이유로 군대의 사기는 떨어지고 그로 인해 전투에서 패배한다. 

이는 유구한 전쟁의 역사에서 숱하게 증명되었던 것들이다. 사기는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지만 그 사기를 뒷받침할 그 사소(?)한 것들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었다. 

다시 예를 들어보면, 삼국지에서 나오는 숱한 전투들, 특히 관도대전을 보자. 조조는 원소의 군량저장고 오소를 기습해 원소군의 보급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에 원소군의 사기는 극도로 침체되었고, 결국 참패해서 조조에게 패권을 넘겨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내가 즐겨 읽었던 초한지와 삼국지에서는 군량을 끊는다는 말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보급은 사기의 핵심요소 중 하나였다.

각설하고, 

나의 친위대는 천신만고 끝에 최종 목적지인 구성 친위대 야영지에 도착했다. 후금 선봉의 추격을 김충선 특공여단의 도움으로 따돌리며 말이다. 그 와중에 왕의 6두 마차까지 길에 내버리고 온갖 추태를 일부러 보여주며 달아났다. 중간에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왕인 나를 믿고 따라주었다. 

친위대원들에게는 왕이 그들과 함께한다는 사실, 친위대의 무기와 식량 등 보급이 충분하다는 사실, 근처에 원군이 도착해있고 함께 적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훌륭한 작전이 마련되었다는 사실 등이 사기의 원천이었다.

거기에 외적의 침입에 대한 애국심, 강인한 훈련을 통한 단체정신이 그들의 심신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었다. 이처럼 친위대원들의 드높은 사기, 애국심, 강철같은 단체정신 등은, 그들이 굳게 전열을 갖추고 있는 모습으로 명백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이번 전투는 우리의 승리라는 것을...

아민의 이 돌격으로 나는 포위망을 완성시킬 시간을 벌었다.

단 한 시간,

나의 친위대가 이번 전투의 ‘모루’가 되어야 하는 시간이... 

둥두두둥둥.

빰빠바밤빰.

전열을 맞춰 무표정하게 서있는 친위대원들 사이로 군악대의 경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국왕 근처 군악대의 한쪽 구석엔 소년병 이대길이 긴장된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목과 어깨에 둘러맨 북을 두 개의 북채로 신명나게 두드렸다. 행진곡의 가장 쉬운 부분은 소년병 이대길이 맡았다. 

군악대의 선임병은 소년병 이대길을 곁눈으로 지켜보곤 했다. 새해 들어 겨우 16살이 된 소년병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무척 따뜻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선임병은 국왕의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 없이 북소리로, 그 명령을 알려야하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전장의 명령은 깃발, 수신호, 육성 구령, 북소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됐다. 그 중에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명료하게 전달되는 것은 단연 북소리였다. 특히, 조총과 포격의 소리가 전장을 짓누르는 때엔 더욱 그랬다. 그래서 군악대 선임병은 항상 국왕과 친위대장의 가까운 곳에 위치했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아민의 철기가 포격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다. 

그리고 포병관측반의 깃발신호가 보였다. 

친위대장은 즉시 포격을 명령했다.

선임병이 만들어낸 북소리가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군악대의 행진곡이 일순 멈췄고, 친위대의 전열은 사격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포병기수의 깃발이 높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쾅쾅.

피융.

으악.

아민의 철기는 이전과 달리 군대의 돌격속도를 줄이거나 진로를 변경하지 않았다. 직진으로 정직하게, 최고속력으로 돌진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성난 황소가 날카로운 뿔을 앞세워 달려드는 듯 했다. 그들은 포격에 쓰러져가는 주위 동료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금 철기의 돌격은 전술적으로 매우 훌륭했다. 

밀집대형의 불리함을 뼛속 깊이 아로새긴 탓에 수천의 철기들이 기존에 비해 아주 느슨한, 그리고 듬성듬성한 배치로 열을 지어 질주했다. 그들이 포격 사거리 밖에서 친위대의 정면에 도달하는 데에는 불과 3~4분의 시간이 소요될 뿐이었다. 빠른 속도와 돌격대형의 유지... 아민과 잉굴다이는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하지만 친위포병은 후금 철기의 돌격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이 방열을 하고 사격을 실시하자 후금 철기의 돌격속도는 점차 둔화되었다. 후금 철기의 주요 무장은 창과 활이었다. 친위포병은 후금군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사불란하고 정교한 포격을 이어갔다. 

몇 분 전, 후금 진영.

“전군 돌격!”

아민은 철기의 선두에 서서 목이 터져라 크게 소리쳤다. 

아민의 명령에 후금군의 전고(戰鼓)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돌격을 뜻하는 깃발이 거세게 나부꼈다. 잉굴다이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담긴 눈으로 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민을 노려보길 잠시, 잉굴다이는 자신의 뒤에 선 궁기병들에게 손을 들었다. 그의 수신호를 받은 수하장수는 수백의 궁기병을 이끌고 철기 돌격대형의 뒤를 따랐다.

잉굴다이는 아민의 무모한 돌격에 혀를 찼다. 

그는 아민과 함께 옥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민의 선봉은 조선군에게 괴멸될 것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만약의 반전을 기대하고 비장의 수를 준비했다. 그것만으로 전투를 승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그것이 성공한다면 조선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보다 쉽게 퇴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잉굴다이의 뒤에서는 소수의 병력들이 퇴각을 위해 바쁘게 진채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민은 잉굴다이를 겁쟁이라고 거세게 비난하고는 진채의 뒷정리나 맡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쉬고는 아민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에는 중요한 서류와 지도들이 있기에 직접 정리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잠시 후, 그가 아민의 막사에 들어선 순간... 

그때였다.

퍽.

딱.

윽.

털썩.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잉굴다이의 뒤통수를 단곤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마자 한윤은 그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의식을 잃었지만 숨은 제대로 쉬는 것을 확인한 한윤이 박난영과 조선출신 군관들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옷을 갈아입히게. 어허 조심해... 이 자가 우리 구명줄이야.”

박난영의 뒤에는 후금군 여러 명이 피를 흘리며 죽은 듯 널브러져 있었다. 한윤과 함께 막사 안의 모두를 미리 정리했던 것이다. 박난영과 함께 서있던 조선출신 군관 두 명이 잉굴다이의 옷을 갈아입히려 분주히 움직였다. 순식간에 잉굴다이의 복장은 조선군관들이 입던 옷으로 바뀌었다.

“흐흐흐, 국왕은 이제... 우리의 충심을 달리 의심할 수 없을 것이오. 아니야... 우리야말로 대공을 세운 것이지.”

박난영도 한윤을 바라보며 화답했다. 한윤은 박난영 등에게 다시 말했다.

“강홍립이란 자가 역적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여진 오랑캐들의 길잡이를 했겠습니까? 이 한윤은 잠시 시의에 따라 고절(孤節)한 뜻을 숨겼을 뿐, 국왕전하와 조선을 향한 일편단심은 단 한순간도 퇴색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자 막사의 서신들과 지도를 챙겨 어서 뜹시다.”

“알겠습니다. 강홍립은 만고의 역신이니 국왕전하께 속히 고해야 합니다. 저도 한팔 거들겠습니다. 한 장군님이야말로 만고의 충신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어서 움직입시다.”

한윤은 박난영의 아부에 크게 웃으며 행동을 재촉했다. 

잠시 후, 그들은 막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후금군의 그 누구도 그들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친위대 야영지 앞.

후금 철기의 돌격속도는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숱하게 훈련하지 않았다면 나를 포함한 친위대원 모두가 그에 압도당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와 친위대원 모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령과 함께 선형으로 서서 사격을 준비했다.

300보, 250보..., 후금 철기는 빠르게 친위대의 전열 앞으로 돌진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친위대원들은 적군의 질풍같은 돌격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친위포병만이 친위대의 우측면과 좌측면의 사각지대를 엄호하며 연신 적 돌격대형에 집중포격을 가했다. 우측면의 친위기병중대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대기했다.

드디어 100보, 2천5백발의 총탄이 동시에 발사됐다.

탕탕탕.

풀썩.

히이힝.

으악.

그리고 40보, 다시 2천5백발의 총탄이 동시에 발사됐다.

탕탕탕.

풀썩.

히이힝.

으악.

“전군 보병방진으로!”

둥둥둥.

친위대원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령과 함께 신속하게 보병방진으로 진형을 바꿨다.

그들의 앞에는 두 번의 일제사격으로 만들어진 참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열보병의 조총이 뿜어낸 총탄의 화망에 걸린 후금 철기는 가장 먼저 최선두가 무너지고 스스로 장애물이 되었다. 순식간에 후금 병사와 말의 시체가 쌓임으로서 돌격의 효과는 반감되었다. 

선두 철기가 괴멸되자 후미를 따르던 자들 대부분은 장애물과 조총 일제사격을 피해 말머리를 뒤로 돌려 산개했고 일부는 산발적인 기병돌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산발적인 기병돌격은 돌파력과 속력 면에서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친위대의 보병방진은 기병돌격을 연이어 분쇄하며 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렇게 두 번의 전열보병 일제사격으로 생긴 장애물 때문에 후금 철기의 전면적인 돌격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친위대의 보병방진이 산발적인 기병돌격을 분쇄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후금 철기의 전면적인 재돌격이 없다면 승리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위대의 보병방진들은 각각 일정 거리를 두고 기각지세를 이뤘다. 

조총수들은 방진 안에서 기계적으로 쇠꼬챙이를 총구에 쑤셔 넣어 재장전을 마치고 적을 기다렸다. 몇몇 보병방진들은 포병중대를 둘러싸고 방어하는 데에 투입되었다. 각 보병방진은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포병중대는 보병방진의 보호 아래에서 포병관측반의 지시에 따라 포격을 계속했다. 후금군은 기병대열을 재정비하려고 노력했지만, 포병중대의 정밀포격과 포도탄의 위력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모든 상황은 순조로웠다. 

나는 한층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흑색화약의 흰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래서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아 저 멀리 후금군의 전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년병 이대길이 군악대원 하나를 부축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 군악대원이 불의의 공격에 부상당한 듯 보였다. 나는 소년병의 기특한 모습에 함박 웃었다. 

그때, 흑색화약의 흰 연기가 거의 가셨고, 날카로운 기세가 갑자기 쇄도했다. 

쐐애액. 

쉭쉭쉭.

으아악.

히이힝.

돌연 수백발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친위대 방진으로 날아들었다. 

나와 친위대 모두 순간 당황했다. 

우리는 흑색화약의 자욱한 흰 연기 때문에 수백기의 후금 궁기병이 몰래 접근하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접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집중포격은 물론이고 조총 일제사격을 했을 것이다.

불시에 기습적으로 날아든 수백 발의 화살에 다수의 친위대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내 옆에 방패를 들고 껌딱지 붙었던 김자점도 갑자기 날아든 화살에 맞았는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내 주위에 섰던 수하들도 뜻밖의 화살공격에 당황했다. 친위대원 몇몇이 급히 방패를 들고 내 주위에 촘촘하게 인의 장막을 쳤다. 

“전하! 신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덩치 큰 친위대원 넷이 방패의 방어장막 안에서 내 몸을 둘러싸며 가뒀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내 몸을 잡아 내리며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완전히 가렸다. 또 하나는 내 모자에 박힌 화살을 빼내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화살 한발이 모자에 박혀 있었다니. 아마 경황이 없어 모자에 화살이 박힌 줄도 몰랐던 것이리라. 나는 십년감수하고 다시 전방을 살피며 친위대에 사격 명령을 내렸다.

후금 궁기병의 기습은 나와 친위대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의 보병방진은 탄탄했다. 일제사격으로 만들어진 흑색화약의 연기가 점차 사라지고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자 다시 야전대포의 일제포격이 시작됐다. 후금군의 산발적인 기병돌격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자 다시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친위대원들 몇몇이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친위대 의무병들은 부상당한 친위대원들을 찾아 응급치료에 전념했다. 그 중에는 김자점도 있었다. 김자점의 온 몸에는 얼핏 보아도 화살 여러 대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의무병들이 김자점의 옷을 찢자마자 화살대를 부러뜨리고 급히 의료용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불로 소독한 의료용 칼로 김자점의 피부를 찢고 화살촉을 빼냈다. 김자점은 의식을 잃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잠시 김자점을 향했던 시선을 돌려 전장의 상황을 세밀하게 살폈다.

저 앞의 후금 기병 대열은 철저히 분열되어 그 돌파력을 잃었고, 곳곳에 쌓인 시체들이 장애물이 되어 그 기동력도 잃었다. 구성평야 곳곳에 즐비한 시신들은 모두 후금 기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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