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225)

“그래? 다행이군... 우리 임무는 이걸로 성공했다고 봐도 된다. 오늘 밤엔 더 화끈한 맛을 보여주자. 하하하.”

김충선은 수하의 보고에 크게 웃으며 화답했다.

김충선과 특공여단은 후금 최강의 3만 철기를 무려 이틀 동안 꽁꽁 묶어놓았다.

그것도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말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성공이었다. 

국왕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했었는데... 

그 임무를 두 배나 초과달성했다.

결국 아민과 잉굴다이는 조선국왕을 사로잡지 못했고 최초 약속한 합류시간도 지킬 수 없었다.

1627년 정묘년 1월 14일 오전.

구성(龜城) 초입.

히이힝.

따각따각.

으드득.

아민은 조선군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밤새 이어진 산발적 야습으로 제1로군 그 누구도 편히 쉬지 못했다. 

심지어 행군 중 말 위에서 졸고 있는 병사들도 많았다. 

아민 자신도 피곤했다. 그래서 졸고 있는 병사들을 차마 질책할 수 없었다.

지난 1월 10일 압록강을 건넌 제1로군 3만 기병이, 오늘 1월 14일 다시 점고해보니 2만을 간신히 넘겼다. 불과 4일 동안, 1만에 가까운 병력이 꺾였다. 만약 적 대군을 맞아 크게 싸우기라도 했으면 위안이라도 되었을 텐데...

처음엔 하나 둘씩 척후병들이 희생되더니, 점차 수십 수백씩 부대 단위의 희생이 누적되었다. 어제는 제1로군의 후위를 담당하던 부대의 연락이 끊겼다. 아침 일찍 척후병을 보냈지만 그들이 살아남았을 거란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 손실은 뼈아팠다. 

하지만 아민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한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조선국왕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조선국왕의 토끼몰이는 나름 성공했다. 아민이 보낸 선발대는 조선국왕의 친위대를 구성으로 몰아넣었으니까. 

비록 아민의 후방이 조선군에게 끊겨 불안했지만, 기존 명령대로 잉굴다이의 제2로군과 합세해서 조선국왕을 사로잡으면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잉굴다이의 진격로로 함께 후퇴하면 되니까 말이다.

아민은 다시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척후병이 가져올 잉굴다이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같은 시각, 구성(龜城) 관아 인근 들판.

평안도 구성(龜城)은 전조인 고려에서는 귀주(龜州)로 불리던 곳이었다. 

구성은 압록강 남쪽, 청천강 북쪽의 외진 땅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삭주의 좁은 길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 청천강 하류 정주성에서 곧장 북쪽으로 올라오는 길, 청천강의 지류인 박천강 강변을 따라 영변에서 들어오는 길이 북남동(北南東) 세 방향으로 열려있었다.

구성은 그 3곳의 길을 제외하고는 산과 구릉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구성의 평야에는 박천강이 흘러 들어 비옥했다. 그 평야 가운데에 구성(龜城)의 낮은 성벽이 둘러쳐 있었다.

두두두.

히이힝.

지금 구성(龜城) 전역은 잉굴다이 제2로군의 위협에 숨죽이고 있었다. 

구성부사 이희건은 구성의 성루에 올라 잉굴다이 군의 대형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적어도 5천은 넘어 보이는 후금 철기의 말발굽 소리와 진동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적 기병들은 정예병이라는 것을 뽐내는 듯 질서정연하게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현재 구성의 병력과 무장은 구식 조총수 2천에 대완구 8문, 신형 야전대포 16문으로 성을 수비하는 데에는 아주 충분했다. 구성의 구식 조총수들은 비용문제로 인해 테르시오 중대로 전환배치된 부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조선 조총수 그대로였다. 따라서 그들의 자체 방어능력으로는 철갑으로 중무장한 후금 기병에게 감히 대적할 수 없었다.

구성 관아의 인근 국왕이 머무는 숙소에는 국왕의 친위대가 잉굴다이의 철기와 대치하고 있었다. 구성 관아에서 국왕이 머무는 숙소까지는 불과 7리(약3킬로미터) 남짓이었다. 이희건이 망원경을 들어 자세히 관찰하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어제 오후, 국왕의 친위대는 잉굴다이의 철기와 가볍게 충돌했다. 

최초 조우한 잉굴다이의 정찰대는 불과 1백여 기였다. 그래서 국왕의 친위대는 간단히 그들을 물리치고 예정된 곳에 진을 차릴 수 있었다. 그 후에 잉굴다이의 철기가 집결했고 몇 번 국왕의 친위대를 두들겼지만 곧 밤이 되어 물러갔다.

구성부사 이희건은 국왕의 친위대가 안전하게 야영지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만에 하나, 국왕의 친위대가 구성 평야에서 적에게 따라잡혔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었을테니까. 

이희건은 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유서까지 작성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옥쇄의 각오따윈 할 필요가 없었다.

이희건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제 날이 밝고 잉굴다이는 그 야영지를 떠나 구성 평야에 위협적으로 포진했다.

잉굴다이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그때였다.

저 멀리 거칠게 일어나는 먼지들... 이희건이 망원경을 들어 살펴보니, 그것은 아민의 철기임에 틀림없었다.

구성부사 이희건은 즉시 명령했다.

“영변의 본영에 신호연을 올려라! 포병중대는 사격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사격할 수 있도록 대비태세를 철저히 하라. 포병관측반은 친위대의 좌측을 엄호할 수 있게 착탄지역을 세밀하게 살펴야한다. 적 우군(右軍)의 압력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구성 관아로 접근하는 적들은 조총수들과 대완구로 응사한다. 어서 움직여라.”

그와 동시에 구성 관아 가장 높은 성루에선 세 개의 붉은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같은 시각, 구성(龜城) 평야 인근.

서아지의 편곤기병은 산자락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잠시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가졌다. 편곤기병의 임시야영지에는 김충선의 특공여단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수고했다. 지나온 협곡은 부사령관께서 보낸 후속부대가 완전히 틀어막았다. 뒤는 걱정할 것 없다. 부장은 편곤기병을 이끌고 적 후위를 괴롭혀라. 나는 구성의 산길 소로를 모두 막고 저격수를 배치할테니.”

“네 알겠습니다.”

서아지는 수하들에게 각종 인화물질과 장애물들을 챙기라 지시하고 임시야영지를 떠났다. 

김충선은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다 다시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적들에게 우리 사격실력을 보여줄 때다. 모두 준비해.”

“크흐흐... 한 명당 열 놈씩이면 됩니까요? 이거 너무 쉬운데...”

“나는 벌써 스무 놈을 보냈지. 넌 아직 아니고.”

“뭐 이놈이?”

“하하하. 우리는 특공여단이다. 이것도 못하면 되겠느냐? 이번 임무가 끝나면 각자 브랜디 한 상자씩 주겠다.”

“우와아!”

김충선의 폭탄(?)선언에 항왜병 특공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바삐 움직였고 곧 임시야영지를 떠났다. 

같은 시각, 구성(龜城) 친위대 야영지.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구릉은 가장 높은 곳이 삼십 여장(약 100미터)이었고 호리병처럼 좁은 평지를 둘러싸고 있있다. 그 구릉이 둘러싼 평지가 이번 순행 국왕의 숙소였고 야영지였다. 야영지의 출입구 넓이는 불과 40여장이었다. 

구릉의 안쪽은 완만한 경사였지만 구릉의 바깥쪽은 수십장 낭떠러지였다. 

다시 말해, 구릉의 입구를 틀어막으면 안에서 달리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야영지의 안쪽 평지에는 구성부사 이희건이 만들어 놓은 왕의 임시숙소가 있었다. 

그리고 야영지의 출입구에는 1장 높이의 단단한 옹벽이 설치되어 대항해시대의 작은 요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평지를 둘러싼 구릉 곳곳은 평평하게 잘 닦여져 있었고 그 위에 야전대포가 올려져 있었다. 약 10장 높이(약 30미터)에 올려진 야전대포들은 친위대의 기동력을 감안해서 1월 초에 미리 옮겨 두었다. 구릉과 평지에 고르게 배치된 48문의 야전대포는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구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붙잡히는 것이었다.

인조, 아니 능양군의 사례를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특공여단의 맹활약으로 큰 어려움 없이 구성에 도착했다.

구성에 도착하자마자 잉굴다이의 정찰대를 만났지만 100여기에 불과한 숫자라서 그리 어렵지 않게 격퇴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의 최종 결전지인 야영지에 안전하게 들어서고야 말았다.

친위대는 삼일에 걸친 아민의 추격을 뿌리치고 들어선 야영지에서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었다. 이 야영지에는 구성부사 이희건의 성의가 잔뜩 담겨 있었다. 친위대를 위한 다양한 물품들을 비롯해서 왕을 위한 임시숙소도 만족스러웠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철벽요새를 방불케하는 방어시설이었다.

여기엔 징비록에 나온 자연적 지형의 장점과 안전한 화력투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위적 요새정비가 합쳐졌다. 이제 아민과 잉굴다이의 곡소리만 남았다.

나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포병 지휘소가 있는 망루에 올라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폈다. 야영지의 전면에는 잉굴다이의 철기가 질서정연하게 공격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와 달리 아민의 철기도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망원경으로 얼핏 살펴보아도 2만, 아니 3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내 심장은 다시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구성 관아 방향에서 세 줄기 붉은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나는 씨익 웃으며 아민이 합류하기를 기다렸다.

그림 1 - 구성의 배치도

정묘호란 7 : 포위섬멸전

1627년 정묘년 1월 14일 오후.

구성(龜城) 친위대 야영지.

쾅쾅.

으아악.

탕탕.

쐐애액.

“좀 더 위로. 아니 더 위로. 그렇지. 그대로... 힘들면 그만해도 됩니다.”

나는 포병 지휘소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적들을 살피며 김자점에게 말했다.

“아니옵니다. 소신...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전하 곁을... 지키겠사옵니다.”

김자점은 방긋 웃으며 밝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지금까지 저 무거운 방패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들었으니...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김자점의 지극한 충심(?)에 감동했다. 

그는 이번 순행에 따라나서겠다고 간청했고, 난 그의 청을 받아주었다. 뭐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있나? 그도 이번 순행의 진정한 목적을 알았다면 절대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목적을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난 절대 김자점에게 방패를 들고 날 호위하란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자청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난 아무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양심(?)이란 것이 조금은 있다. 그래서 이번 전쟁과 순행의 호종공신 2등 말석에 김자점을 끼워주기로 결심했다.

이번 전투는 점차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전투의 첫 시작은 아민이 피곤한 군사들을 이끌고 잉굴다이와 합류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나는 즉시 아민으로 보이는 장수를 목표로 집중 포격을 명령했다. 48문의 야전대포는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비싼 포도탄은 역시 제 값을 톡톡히 했다. 

첫 일제포격에서 아민이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48문 야전대포의 일제 융단포격에, 얼핏 보아도 최소 수백 기병이 순간 소멸되고 말았다. 

난 손자병법에 나온 ‘이일대로(以逸待勞)’를 그대로 적용했다. 

우리 친위대는 지난밤부터 야영지에서 편히 쉬었다. 반면에 아민은 밤새 김충선의 특공여단에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이 극심한 피로에 지쳐 있음은 망원경으로도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아민과 잉굴다이가 병력을 합세하여 안심한 틈을 타서, 기습 포격을 명령했다.  

첫 기습포격으로 적의 기선을 제압한 나는, 대대적인 화력투사를 통해 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각인시켰다. 후금 기병이 조금이라도 밀집된 곳이 보이면, 어김없이 포병기수의 깃발이 높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부대는 집중적인 포격을 받았다. 밀집대형일 때에는 포격의 위협을 받았고, 산개해서 야영지에 접근하면 조총 집중사격의 먹잇감이 되었다. 

간혹 적 기병 일부가 옹벽 근처까지 무사히 접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옹벽, 간이 마방책, 화염병의 삼중 장벽을 소수의 기병으로 뚫을 순 없었다. 기병의 가공할 돌파력은 밀집대형으로 적을 충격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밀하고 신속한 포격으로 밀집대형이 불가능해지니 아민은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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