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龜城)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있었던 고려시대 귀주(龜州)였다. 구성 안으로 적군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든든한 백만대군을 좌우에 두고 삼면에서 포위공격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후금의 주력군인 기병들이 구성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지형’과 ‘시간’이라는 괴물들에게 압박받게 될 것이다. 압록강부터 구성에 이르는 구간에 길게 늘어진 대형은 그 자체로 취약하니 말이다. 후금은 이번 작전에서 사르후의 교훈을 되새겼어야 했다. 명이 사르후에서 무너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어리석은 전력의 분산이었고, 후금은 그걸 시간차로 각개격파했다.
홍타이지는 사르후의 기적을 다시 되살리고자 하는 듯 했다.
그들의 막강한 기병, 그 기동력이라면 가능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현대전의 핵심역량 중 하나인 기동력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기동력이 공세종말점에 다다른 순간... 과연 어찌 될까?
조선 국왕이라는 먹음직한 미끼가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선 포기하기 어려웠다.
단기간의 결전, 그 결전의 완벽한 승리로 얻은 짜릿한 결과.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이것을 꿈꿨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울까?
이번 전쟁에서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하여간 내가 엄청난 군사적 재능을 가진 천재가 아닌 한,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여 훌륭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군사적 천재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했다. 지금 조선에도 서애 류성룡, 충무공 이순신 같은 훌륭한 인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국방부장과 부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정충신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전란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물들이 능력을 드러낼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위인들은 평상시에도 어느 정도 눈에 띄는 법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같은 경우, 꼭 해전만이 아니라 육상에서도 그 군사적 능력의 탁월함을 나타낸 분이었다. 정충신도 노비부터 시작해서 장군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아닌가! 또한 구성부사 이희건도 인물은 인물이었다. 이괄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안현전투는 이희건의 일제사격이 가장 중요했다고 봐도 되었다.
안현전투는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유리한 지형과 숙련된 조총수들이 완벽한 승리를 견인해냈다. 그 와중에서 정충신과 이희건의 탁월한 지휘가 돋보였다.
나는 조선의 이런 저력을 믿는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을 믿고 친위대와 함께 사지(死地)로 간다.
구성(龜城)이 누구의 사지(死地)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저 내가 정한 시간, 내가 정한 장소에서 힘껏 싸울 뿐이다.
...
그때였다.
“국왕전하! 후금 선봉이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서북 전역에 후금 척후병들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같은 시각, 압록강 이북 인근.
후금의 대군은 시시각각 남진하고 있었다.
주공(主攻)인 제1로군과 후군(後軍)이 후금의 한인 홍타이지의 지휘아래 압록강 이북에 집결했다. 제1로군은 선봉으로 6천의 기병, 중군으로 2만4천의 기병이 포진했다. 거기에 후군 7만 보기(步騎)가 제1로군을 뒤따르고 있었다.
부공(副攻)인 제2로군은 잉굴다이(용골대)의 지휘를 받아 압록강 중류를 건너 삭주로 진군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심양에서 중간지점까지 제1로군과 함께 남진하다가 따로 갈라져 나왔고, 총 6천의 기병이 배정되었다.
제1로군의 중군에는 강홍립이 길잡이로 나서 제1로군 지휘관 아민과 함께 했다. 아민은 강홍립에게 얻은 기존 정보와 척후병들이 가져온 정보를 비교했다. 강홍립이 알고 있던 기본 정보와 척후병의 정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난 후, 아민은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쥐새끼 같은 놈들! 사내다운 놈들은 하나도 없군.”
강홍립은 함께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그리고 화답했다.
“하하하. 제가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압록강 이남엔 의주와 백마산성이 기각지세로 압록강을 지키고 있으나 병력이 충분치 못하고 기병이 없어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아래로는 청천강 이북에 정주성만 홀로 외롭습니다. 후군의 일부를 갈라 배치하면 따로 공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안의 군량이 떨어지면 자연히 흩어질 겁니다.”
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는 줄을 잘 섰군. 좋은 선택이야. 그대의 활약을 기대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강홍립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막사를 나섰다.
제1로군 선봉의 일부는 이미 압록강을 건너 질풍처럼 남하하고 있었다. 서북지역엔 후금의 척후가 그들의 길을 밝혔다. 아민의 선봉은 아무런 방해없이 서북지역을 유린했다. 척후와 선봉의 보고에 따르면 너무도 순탄했다. 조선군은 산성에 틀어박혀 봉화만 올려댔다. 척후병들이 아주 가까이 접근해도 성벽 뒤에 숨어 화살만 날릴 뿐이었다. 척후병들은 안심하고 쏘다녔다. 강홍립의 보고대로라면 의주성과 백마산성에는 삼천여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혹시 압록강을 도하할 때 요격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아민에게 아쉬웠던 것은 단 하나.
가도의 모문룡이 치워지고, 그가 요동한인들을 끌고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북지역이 황폐화된 그대로였던 것이다. 서북지역이 황폐하고 주민들이 없는 만큼, 주민을 약탈해서 군량을 보충하려던 기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군량의 현지조달은 물론이고 전쟁 후에 약탈도 해야 했는데, 그게 어그러진 것이다.
그래도 서북의 무방비함과 황폐함을 통해 얻은 중요한 정보가 추가되었다.
가도의 모문룡을 몰아내고 서북지역을 조선이 온전히 되찾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서북지역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조선 조정의 능력을 보면 이번 전쟁도 뻔한 결과가 예상되었다. 한께서는 조선의 물산이 후금을 좀먹고 있다고 경계하고 계셨지만, 너무 과하게 걱정하셨던 것이 분명했다.
아민 그가 잠시 가졌던, 혹시나 모를 경계심마저 완전히 누그러졌다.
제1로군이 서북 깊숙이 진격했을 때, 혹시라도 뒤를 차단당할 염려가 사라진 것이었다. 조선군의 경계는 느슨했고, 그 병력은 한양 인근에 집중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청천강 이남의 요충지에 분산되어 있을 테니까 후금 기병의 앞을 막지도 뒤를 차단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조선 국왕을 사로잡고 서북 땅을 내놓으라고 해야겠다.’
아민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선 국왕을 잡기 위한 선봉대는 이미 압록강을 건너 조선국왕의 순행대열을 토끼몰이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잠시 미적거렸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막사를 나선 아민의 눈에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이 보였다.
같은 시각, 정주성 관아.
정주성 관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순한 항왜 출신 장수인 김충선이 같은 항왜병 부장 서아지(徐牙之)와 함께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부장 서아지는 이괄의 난에서도 그 뛰어난 무예로 맹활약했던 자였다. 그러나 이괄의 난이 실패하고 숭례문 앞에서 생포된 이후에 김충선의 특공여단에 배속되었다. 항왜병 대부분은 이괄의 명령에 복종한 죄로 약간의 수형생활을 한 후, 특공여단 군복무를 조건으로 용서받았다.
“우리 목표는 그들을 맞아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편곤 기병 1천을 이끌고 나가서 그들의 주의를 끌고, 만약 싸우게 되면 짐짓 패한 척 어지럽게 물러나라. 가급적 접전을 피하고 시간을 끈다. 집결지는 이곳이다. 정보가 생명이니만큼 수시로 감제고지의 신호를 확인하라. 망원경과 시계, 신호책은 우리의 구명줄이야. 명심해라.”
“네!”
서아지는 짧게 대답하고 관아를 나섰다.
김충선은 서아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괄의 난에 항왜병 수백 명이 참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었다. 이괄의 난이 종식되면 항왜병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런데 조정에 불려간 김충선에게는 뜻하지 않은 명령이 내려졌다.
새로운 국왕은 반란의 주모자를 제외한 모든 군사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는 항왜병들을 살려준 국왕의 은혜에 크게 감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왕은 김충선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두고 온 가족들을 수소문해서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가족들을 상봉하게 해주었다. 이에 김충선은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 김충선이 조선에 잔류한 항왜병들을 모두 모아 훈련시킨 것은 당연했다.
김충선은 곧 출전해야 했다. 정주성은 김양언의 복수군에 맡기고 말이다. 김양언은 수하들과 함께 수성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김양언의 복수군은 한 달 넘게 이어진 대완구(大碗口) 포격훈련, 투척훈련 등으로 수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듯 했다. 그들의 우렁찬 함성소리는 정주성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흡족한 눈빛으로 김양언의 복수군을 바라보며 성루에 올랐다.
성루에 올라 바라본 먼 바다에는 해군 대함대가 정박 중이었다. 그 대함대는 한국과 조선의 연합함대였다. 김충선은 더욱 흡족한 눈으로 연합함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연합함대를 바라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김충선은 함박 웃으며 생각했다.
후금의 군세가 남북으로 길어진 만큼, 그 취약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들의 주력 기병이 구성에서 갇히는 순간, 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말이다.
저 연합함대는 그 마지막을 장식할 결전무기였다.
이처럼 쉬운 전쟁이 또 있을까?
단 하나의 가능성만 배제하면 말이다.
그림 1 - 편곤기병
그림 2 - 대완구 - 대완구의 포탄은 밀집된 대형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습니다.
정묘호란 4 : 후방차단
1627년 정묘년 1월 12일.
휘릭.
퍽.
히이힝.
털썩.
서아지는 편곤기병을 이끌고 의주대로 유격전에 전념했다.
그의 주된 임무는 후금 선봉의 시선을 끌어 국왕 친위대에 대한 압박을 감소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 와중에 후금의 척후병들을 처단하는 것은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적 선봉 일부는 이미 정주성과 안주성으로의 퇴로를 위협하고 있었다.
편곤기병대는 각 소대 50여기씩 갈라져 후금 척후병을 사냥했다. 후금 척후병의 정확한 위치는 감제고지에 배치된 신호수들이 수시로 알려줬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척후병의 손실이 커질수록 후금의 진격은 조금씩 늦춰질 것이다.
서아지는 척후병의 시신을 치우고 전투흔적이 정리되자 부대의 이동을 명령했다. 방금 전 보고에 따르면 적 본대가 의주대로 북쪽 1시간 거리에서 남하하고 있었다. 서아지의 편곤기병은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발각된 후에 도망치듯 다음 집결지로 이동해야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소리 높여 외쳤다.
“모두 서둘러라! 북쪽 대기장소로 이동해서 잠시 쉬었다가 다음 작전에 돌입한다. 최종집결지에 가면 조금씩이라도 화주(火酒)를 주마.”
“네!”
편곤기병은 눈에 띄게 밝은 얼굴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같은 시각, 의주성.
펑펑.
화르르.
탕탕.
으악.
“퇴각하라!”
둥둥둥.
의기양양하게 의주성 공략에 나선 후금군은 성벽 가까이 제대로 접근하지도 못하고 금방 퇴각했다. 성벽 400보 앞에 전개한 병력이 공성장비를 갖추고 돌격하기도 전에 대완구의 사격에 초토화가 되었다. 거기에 간신히 힘을 들여 돌진한 일부 병력도 조총과 화살에 크게 손실을 봤다.
후금군의 대장은 후퇴를 명령하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나중을 기약했다.
의주부사는 의주성의 가장 높은 성루에 서서 후금군의 후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주 부사 이완은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였다.
이완은 재작년 의주 부사로 부임하자마자 의주성 보강공사에 착수했다. 기존의 낮은 성벽은 유럽에서 들여온 건축기술을 활용해서 보다 높였고, 이중성벽으로 한 겹 더해서 보강했다. 성의 내측 성벽에는 포가(砲架)에 올린 대완구, 신형화포들을 배치했다. 성의 외측 성벽에는 조총수와 궁수가 안심하고 전투할 수 있도록 엄폐물을 보강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후금 보병은 감히 성벽 근처로 접근할 수 없었다.
적군이 접근할수록 고조되던 의주시민의 두려움은 이번 전투로 많이 가라앉았다. 매서운 대완구 포격에 혼쭐이 난 후금군은 포격 사거리 밖으로 황급히 물러나 진을 치고 있었다.
이완은 내측 성루 가장 높은 곳에서 망원경을 들어 적진을 살폈다. 적진은 압록강 이남에 정방형의 진지를 차렸다. 의주성을 지나쳐 끝없이 남쪽으로 진군한 병력이 족히 5만은 되어 보였다. 그들은 의주성과 백마산성 공략에도 2만이 넘는 병력을 남겼다.
적 본진 우측, 별도의 병영에는 약 2천의 기병이 기각지세로 배치되어 있어 성을 나가 반격하기도 곤란했다. 의주성의 병력은 보병과 포병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기동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이완의 불같은 성격상 성내에 가만히 참고만 있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때가 되기 전에는 적을 잡아두란 군령이 있었기에 적당한 시기를 기다려야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은 있었다. 적진의 위치는 신형대포의 사정거리 이내에 있었던 것이다.
이완은 비릿하게 웃으며 어둠이 깔리기만을 기다렸다.
쾅쾅.
쉬익.
쿠당탕.
으아악.
24문의 신형 야전대포는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포병관측반이 보고한 대로, 적 밀집진지 위치를 동시에 포격했다. 야전포병은 포술장, 포수, 장전수 등 6명이 1조로 구성됐다. 24문의 야전대포는 1개의 포병중대로 구성되었고, 포병지휘부 예하에 포병관측반이 포함되었다.
포병중대는 포병관측반의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밤새 포격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