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225)

능양군을 비롯해 그 누구도 죽이지 않는 선한 인물인 척 하면서도, 대비를 포함한 종친 모두를 호주로 끌고 갔다. 그들의 가산을 전부 몰수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쯤 그들 모두는 태평양 바닷속 어딘가에 수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산림의 영수들도 함께 끌려갔다. 영수들이 없는 양반들은 우두머리 없는 늑대무리와 같았다. 나머지 양반들도 의회로 끌어들여 사분오열시켰다. 산림은 지리멸렬했고 조선의 모든 세력을 잃었다.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국왕의 술수는 치가 떨릴 정도로 비열하고 잔인했다.

조선의 모든 기득권 세력을 철저히 갈라버리고 굴복시켰다.

그런 국왕이 호주로 떠나기 전에 했던 행동들은 모두 ‘후금 정복’을 위한 사전준비였다.

조선의 기존 군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북방의 정예군을 새로이 편성해서 훈련시켰다. 

조선 부왕도 폐주시절 내금위장을 했던 인물이었다. 거기에 정충신은 어떤가? 폐주시절부터 후금과 명을 살피도록 명을 받아온 자였다. 지금 조선에는 정충신만큼 후금의 정세에 밝은 자가 없었다.

거기에 가도의 모문룡을 모조리 치우고, 요동한인을 후금에 돌려보냈다.

후금과 비밀리에 화의를 맺은 것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후금을 안심시키고, 그 빈틈을 노려 공격하고자 함일 것이다.

또한, 후금의 세력은 여러 여진족의 집합체였다. 그 중심에 건주여진이 있고, 해서여진과 야인여진이 함께였다. 몽골의 여러 부족들도 그들과 이합집산(離合集散)해 왔다. 

김자점의 눈에 후금의 약점은 너무도 명확했다.

넓은 영토에 너무나 적은 인구.

척박한 땅에 부족한 물산.

후금에 필요한 것은 많은 인구였고, 척박한 물산을 보완할 자유로운 교역이었다.

첫째, 후금에 필요한 인구는 조선의 북방에 거주하는 수십만의 여진족이 있었다.

둘째, 후금과 조선의 교역은 그 부가가치의 차이로 인해 후금에게는 갈수록 손해였다.

결론적으로, 국왕은 그동안 일부러 후금과의 전쟁을 유도해왔다.

후금에 필요한 함경도 여진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후금과의 교역에서 야료를 부려 그들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국왕은 겉으로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는 척 했지만, 속으론 반대였던 것이다.

김자점은 이 사실을 깨닫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국왕은 그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금쯤이면 후금의 홍타이지도 이를 깨달았을 것이다. 

홍타이지가 바보가 아닌 이상, 후금의 세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조선과 후금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김자점은 다시 골똘히 생각했다.

곧 국왕이 조선에 도착하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전(大戰)이 벌어지리라.

그리고 김자점이 그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될 것이다.

김자점은 그 결과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도 - 동북면 여진족 세력들.

조선의 간접적 지배 내지는 영향력 하에 있던 여진족 세력들로 두만강 남북을 넘나들며 농경, 수렵, 목축에 종사했습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는 누르하치에 의해 많은 수가 강제이주당해 후금의 팔기군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시고 보시면 됩니다.

전쟁의 명분

1626년 12월 중순 어느 날.

후금의 수도 심양, 홍타이지의 대전.

정홍기(正紅旗)의 기주 다이샨이 앞에 나서며 말했다.

“한께서 조선을 정벌하고자 하심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오나 대적(大敵)인 명을 앞에 두고서 이리 출전하시는 것은 심히 불안합니다.”

다이샨은 전대의 한 누르하치의 둘째 아들로 ‘암바 버이러’로 불렸지만 누르하치의 대통을 이어받지 못해 친왕에 머물러 있었다. 정홍기는 74개의 니루(1니루 장정300명)로 구성된 2만3천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비록 홍타이지의 직속 팔기군에는 다소 못 미치나 그에 버금가는 막강한 군세를 자랑했다.

현재 다이샨은 후금의 대표적 조선 화친론자였다.

과거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가 된 조선군 대장 강홍립이 후금의 한인 누르하치에게 예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누르하치가 조선군 포로들을 학살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다이샨의 만류로 강홍립 등은 목숨을 구했다. 다이샨은 대적(大敵)인 명을 앞둔 상황에서는 조선과의 화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그에 따라 조선에 우호적인 성향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다이샨은 홍타이지의 배다른 형이었다. 거기에 다이샨은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승계를 받은 것에 표면적으로나마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홍타이지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다이샨의 말에 홍타이지는 침음하며 대답했다.

“지난 영원성 전투의 패배 이후로 우리의 기세가 나날이 침체되고 있다. 후방의 위협을 없애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이샨은 홍타이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한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조선과 화친을 맺고 공수동맹을 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화포를 조금만 더 개량하면 명의 화포보다 더 멀리 나갈 것입니다. 강홍립 등 조선군 포로를 풀어주어 정식 국교를 맺고, 화포와 포병을 지원해달라고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때, 전대 한 누르하치의 동복 동생인 슈르하치의 둘째 아들 아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조선과의 화친은 너무 먼 일입니다. 그들은 지난 사르후 전투에서 명에 호응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전대 한께서는 너무나 관대하셨기에 조선에 그 책임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조선은 명에 사대하는 나라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기세에 눌려 얌전하지만 언제 명에 편승해 뒤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아민의 말을 듣고 다이샨이 반박했다.

“조선은 평야가 좁고 산지가 많습니다. 수도인 한양에 이르기 위해선 강을 4개나 건너야합니다. 조선군은 높은 산에 산성을 쌓고 버틸 것이 뻔한데, 공성장비를 가지고 가기엔 너무 버겁습니다. 또한 조선을 굴복시키는 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사이에 명이 공격하면 곤란해집니다. 조선은 이미 가도의 모문룡을 쫓아내고, 우리의 부빈(요동한인)을 돌려주어 우릴 공격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습니다. 거기에 사신을 교환하고 압록강에 정식 마시를 열지 않았습니까?”

대전에 모인 대다수가 다이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당장 명과의 전투도 힘에 부치는 마당에 조선까지 이에 합세하면 양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할 상황이 우려되었다. 전대 한인 누르하치도 명과 조선의 양면전쟁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는 누르하치가 조선에 사르후 전투의 책임을 묻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결국 대전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이샨의 주장이 그렇게 관철되는 듯 했다.

그때, 홍타이지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오도리가 조선에 귀부하려고 한다.”

홍타이지의 발언은 대전을 충격에 빠뜨렸다.

전대 한 누르하치는 자신을 오도리족의 선조인 동맹가첩목아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었다. 그 후에 지속적으로 오도리족을 후금의 팔기군에 편입시켜왔다. 그런데 그 오도리족이 조선에 귀부하려한다는 말은 후금의 세력이 외부세력의 영향을 받아 분열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다른 일족이면 모를까. 

건주여진 일족이며 누르하치가 그 후손이라고 주장하던 오도리족이었다. 

대전은 큰 충격에 빠져 말을 잃었다. 

그때 홍타이지가 다시 말했다.

“조선 함경도 내지(內地)에는 오도리를 비롯해 우리 일족들 수만이 거주하고 있다. 두만강 유역에는 십만이 넘게 거주하고 말이다. 그들을 우리의 세력에 편입시키지 못하면 우린 말라죽게 된다. 같은 일족들도 예하에 거느리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인가? 올해부터 조선이 오도리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조선인으로 주민등록을 했다. 지금 조선 함경도 내지와 두만강 일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만주는 척박하고, 물산이 박하다. 우리가 왜 관을 뚫고 중원으로 나가려고 했는지 생각해보라. 여기서 무너지면 관을 뚫기는커녕 우리가 조선에 먹힌다. 만주는 조선과 비할 수 없이 넓지만 인구는 훨씬 적다. 과거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고구려에 복속된 이래로 천년 넘게 지났고, 조선의 태조에게 머리를 조아리기까지 했었다. 중간에 금나라를 세우고 기세를 올렸지만 그뿐이었다. 만주에는 아직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으로 주장하는 자, 조선과의 인연을 중시하는 자들이 많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잘 알 것이다. 더는 이견을 받지 않겠다. 나는 결심했다.”

홍타이지의 말이 끝나자 대전은 격한 회오리가 불었다. 

다이샨을 비롯해 그 누구도 한마디 말을 못했다. 

홍타이지의 말대로 만주가 세력을 떨쳤던 때는 고구려, 발해, 금과 같이 그 저력을 하나로 합쳤을 때였다. 대전의 그 누구도 고구려와 발해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의 수천 년 역사는 고구려, 발해와 함께 달려왔던 것이다. 금나라를 세우면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이 합류했고, 그런 고구려와 발해의 피는 그들에게도 흘렀다. 

만약 조선이 더욱 힘을 키워 고구려와 발해의 뜻을 잇겠다고 천명한다면?

후금의 세력이 온전하리라 장담하기 어려웠다.

오도리를 시작으로 이합집산하게 된 만주는 다시 뿔뿔이 흩어질 것이 뻔했다.

그때, 홍타이지가 쐐기를 박았다.

“강물은 높고 낮은 산에서부터 여러 줄기로 흐르지만 결국 그 물줄기들이 합쳐져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그 바다가 큰 물, 작은 물을 가리더냐? 우리가 강물이 될지 바다가 될지는 이번 싸움에 달렸다. 조선이 먼저 우릴 건드렸다. 그들이 오도리를 품에 넣으려는 것은 그 전조다. 우리가 지리멸렬하기 전에 먼저 친다.”

홍타이지의 말이 끝나자 잉굴다이(용골대)가 앞으로 나서며 주위에 손짓을 했다.

잉굴다이는 그동안 조선과의 외교를 전담해온 자로 전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잉굴다이의 손짓을 본 대전 경호병들이 주위를 더욱 삼엄하게 경계했다. 

잉굴다이는 대전 밖을 다시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흠, 제가 말씀드릴 것은 국가의 기밀이니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셔야합니다. 정홍기주께서 걱정하시는 장기전은 우리에게도 재앙입니다. 허나 우리가 몰래 심어둔 밀정에게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조선 국왕이 내년 1월 중순 경 평안도 순행에 나선다고 합니다.”

잉굴다이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아민에게 눈짓을 했다. 

아민은 잉굴다이의 눈짓에 좌우를 둘러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 아민이 지난 몇 달간 철기 3만을 맹훈련시키고 있음을 잘 아실 겁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한양을 기습해서 왕을 사로잡으려고 했습니다. 3년 전 이괄의 난을 들어 아시겠지만 조선의 북방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제가 우리 부빈들을 잡아오려고 평안도 일대를 돌아다녀보니, 평안도 서북방은 모문룡과 부빈들의 난리 통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평안도 일대를 제대로 복구하려면 향후 몇 년으론 어림도 없을 겁니다. 평안도의 주민들은 텅 비었고, 그 방비도 엉성한 것이 조선군 포로들의 말과 일치했습니다. 그들의 방어는 의주성, 백마산성, 정주성, 안주성, 평양성 등 일부 산성과 강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산성은 기병으로 지나치고, 강은 얕은 여울목을 건너면 그만입니다. 만약 그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대적한다면 사르후 전투와 마찬가지로 각개격파하면 됩니다. 조선군은 보병이 대부분이어서 한양까지 우리 앞길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하물며, 조선 국왕이 평안도에 있다면 더욱 손쉽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압록강 하류와 중류를 두 갈래로 건너 공격하면 됩니다. 조선 국왕이 순행한다는 구성(龜城)은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 국왕을 사로잡아 굴복시키고 난 후에, 압록강 중류를 건너 유유히 빠져나오면 됩니다.”

아민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했다.

“시실, 이번 원정에서 조선 국왕을 사로잡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명분은 확고하니까요. 조선 국왕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고 대비(인목대비)와 친부(폐주 광해군)를 멀리 섬에 유폐했습니다. 바로 직전 왕인 능양군도 함께 말입니다. 잘하면 조선의 내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원정을 실패해서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조선은 내부 혼란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겁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니까요. 전전대 왕인 광해군도 폐모살제란 명분으로 왕에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불과 수천에 불과한 반란군에 사로잡혀서 쫓겨났습니다.”

아민은 말을 끝내고 홍타이지를 바라봤다. 

홍타이지는 만족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아민의 제1로군은 철기3만을 이끌고 압록강 하류를 넘는다. 아민의 후위는 의주와 백마산성을 노려 그들이 제1로군의 뒤를 끊지 못하게 한다. 제1로군은 해안가 평야를 따라 진군해 구성의 서쪽방면으로 공격해 들어간다. 잉굴다이의 제2로군은 압록강 중류를 건너 삭주로 향한다. 제2로군이 구성의 북쪽방면을 맡아 조선 국왕을 기습해서 사로잡아라. 길잡이는 조선군 포로를 쓰면 된다. 조선 국왕의 순행일정을 반드시 확인해라. 우리 군은 그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번 싸움은 온전히 시간싸움이다. 그대들을 믿는다.”

웅성웅성.

홍타이지의 말이 끝나자, 대전은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새로운 한인 홍타이지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후금의 기세는 다시 불타오를 것이 분명했다. 아민은 실패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전의 그 누구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실패가능성을 지적하지 않았다. 

명은 만리장성과 산해관의 굳건한 장벽 그리고 홍이포가 없다면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후금은 조선도 명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허약한 조선이 후금의 막강한 팔기군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사르후 전투에서 수십만의 명-조선 연합군은 각개격파로 참패했다. 후금의 기병은 조선의 조총부대를 완벽하게 격파한 경험도 있었다. 

명과 조선의 군대는 규모만 컸지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물며, 명이 빠진 조선만이 상대라면 더더욱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선원정 실패가능성 따위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후금이 두려운 것은 명과 조선의 교역금지와 연합공격이었다. 

명이 아직 잠잠할 때, 조선을 굴복시켜야 했다. 만약 조선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후금은 후방을 안정시키고 부족한 물산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를 바탕으로 다시 기세를 올려 지난 영원성 참패의 아픈 기억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조선의 화포기술을 빼앗아 활용하고 조선군 포수를 전방에 앞세우면 산해관을 보다 수월하게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조선은 탐스러운 과실이었다. 안그래도 입맛을 다시며 침을 삼키고 있었는데 조선이 먼저 공격의 명분을 줬다.

조선과의 화친을 주장하던 다이샨마저 홍타이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금 조정의 뜻은 결국 하나로 뭉쳤다.

곧 이어, 심양의 성문이 열리고 성문을 나선 척후병이 각지로 내달렸다.

지도 - 후금의 전쟁계획 : 주요 침공로는 압록강 하류의 제1로군, 압록강 중류->삭주의 제2로군입니다. 제1로군의 후위부대는 압록강 하류의 의주, 청천강 하류의 정주 등을 공략하거나 병력을 묶어둘 기만부대입니다. 총 3로군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북치는 소년

1626년 12월 말일, 한양 너벌섬.

둥둥두두둥.

빰빠라밤.

조선에 도착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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