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푹 쉬려고 했다.
1626년 10월 말.
호주 서울, 제10회 한국박람회장.
그 사건이 있고 나서 3주를 내리 쉬고 나니, 몸도 마음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주 상쾌했다.
나는 박람회 시상식에 참석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이번엔 아주 재미있는 출품작들이 많았다.
땡땡!
“오! 이것이 와인병이란 말이지?”
나는 와인병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것은 영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 만든 와인병이었다. 기존의 유리 와인병은 두께가 얇고, 가벼우면서, 바닥은 정사각형이었다. 그 기존의 유리 와인병은 대단한 사치품이었다.
유리병을 만들기 위해선 높은 온도의 화로가 필요했는데, 나무 땔감의 화력으로는 충분하지 못했기에 생산성이 매우 낮았다. 그래서 유리병 자체가 희소했고 비쌌다. 하지만 영국출신 유리장인이 화로의 땔감을 석탄으로 교체하면서 새로운 유리병이 탄생했다.
우선, 기존 와인병에 비해 더 단단하고 두꺼웠다. 거기에 몸통은 길고 둥근 모양이었으며, 끝으로 가늘어지는 형태였기 때문에 입구를 막기 위한 줄이 달려 있었다. 한마디로 현대 와인병의 시조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현대의 ‘로얄살루트’라는 양주병하고 아주 똑같이 생겼다.
하여간, 기존의 와인병보다 만들기 쉬우면서도 보다 고급스러워보였다.
이 와인병은 이번 박람회 우수상을 받기로 내정되었다.
나는 ‘로얄살루트’의 맛을 떠올리며 잠시 입맛을 다셨다.
박람회 수상작들을 살펴보려면 아직도 멀었다.
난 박람회 조직위원장과 함께 다시 자리를 이동했다.
그 다음은 화장품이었다.
“국왕전하! 이번 출품작은 귀부인들에게 인기만점인 화장품입니다. 얼굴에 꾸준히 바르면 피부가 하얗게 됩니다. 거기에 얼굴 주름이 펴져서 피부가 젊어 보입니다.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장품을 살펴봤다. 여자들이 하얗고 탱탱한 피부를 좋아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누구나 젊음을 오래 유지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나도 왕비한테 하나 사줄까 고민하는 찰나...
불현 듯 과거의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물었다.
“이 화장품 주재료가 뭔가?”
박람회 조직위원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 화장품을 출품한 참가자를 찾았다. 그 참가자는 프랑스인이었다. 귀화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 프랑스인이 대답했다.
“국왕전하께서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제가 출품한 화장품으로 말씀드리면 최고급 재료만을 엄선해서 만들었습니다. 장미향유를 기본으로 해서 비싼 수은을 섞었습니다. 거기에 올리브를 갈아서...”
나는 참가자인 프랑스인의 말에 일순 머리가 멍해졌다.
화장품의 재료에는 수은이 들어있었다. 비싼 재료긴 하지만 인체에 계속 접촉되어 쌓이면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유해물질이었다. 한마디로 독성 유해물질이었다.
그 수은이 대항해시대에서는 최고급 화장품 원료로 쓰이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여자들이 수은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있을 것이다.
하얀 피부, 탱탱한 피부를 위해서...
그러고 보니 한의학에서도 수은을 명약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과거 불로불사의 명약에 수은이 포함되었다더니, 현재진행형이었다.
이걸 어찌 해결해야할까?
당장 수은화장품을 몰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른 말없이 그 자리를 떴다.
다음은 또 술이었다.
“국왕전하! 이번 수상작은 폴란드 상인이 출품한 아주 진한 증류주입니다. 자칫 불이라도 댕겼다간 확 타오릅니다. 물에 희석시켜 먹어야 하며, 아무리 추운 북극지방에서도 얼지 않는답니다. 무색, 무미, 무향이 특징인데....”
흐흐흐.
이번엔 보드카였다.
역시 술인가?
이번 박람회는 와인병, 보드카, 새로운 와인, 브랜디(주 : 과일주를 증류하여 만든 술. 포도주를 증류한 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술도 브랜디라 부름.), 술잔 등 다양한 술 관련 상품들이 출품됐다.
나는 오랜만에 보드카를 맛보기위해 아주 조금 따라 마셨다.
‘훅!’하는 느낌과 동시에 식도와 위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마 알콜도수가 90도에 가까울 것 같았다. 진짜 활활 타는 느낌이었다.
이 보드카는 선원들한테 인기라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배까지 홀랑 타버릴 수 있다. 아무래도 보드카 관련해서 선상화재에 주의하라고 말해놔야겠다.
잠깐!
보드카는 전투 의료용으로 좋고, 북방의 추운 날씨엔 몸을 녹이는 데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확 타오른다는 것을 이용하면...
거기에 유리병이라...
우리 국민들의 전통놀이가 아마.....
그 유구한 전통이 현대에도 그.....
그래!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듯 했다.
그림 1 - 와인병 : 석탄을 이용해 화력이 올라가면서, 유리병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계획전쟁
사람이 급하면 단순해지는 법이다.
원래 똥 마려운 놈이 먼저 움직이기 마련이다.
출정을 결심하고 나니, 가슴을 짓누르던 심병(心病)이 말끔히 사라졌다.
세상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수상과 내각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해군사령관을 비롯한 군부는 반신반의했다.
왕비는 눈물을 흘리며 말렸다.
모두 나의 결정을 미덥지 않게 여겼다.
그렇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내 결정은 의심 내지 비난 받아 마땅했다.
현재 조선과 후금의 사이는 아주 원만했다.
첫째, 조선의 외교정책은 과거 친명배금이 아니었다.
둘째, 후금의 눈엣가시였던 가도 모문룡을 처리했다.
셋째, 후금이 요구했던 요동한인(후금의 부빈-노예)을 돌려줬다.
넷째, 압록강 중류에 정식 마시를 열어 후금과의 교역을 재개했다.
다섯째, 후금과 정식 외교사절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처럼, 명의 조공관계를 인정하되 후금과 조선은 상호교린을 이어가고 있었다. 최근 누루하치의 사망에 대한 외교사절 교환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국왕이 친정을 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내가 수상이라면 국왕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흔들림 없이 출정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출정준비에 앞서 긴급명령서를 조선에 보냈다.
조선부왕을 수신인으로 하는 긴급명령서는 20일 안에 도착할 것이다.
후금의 기병이 압록강을 도하하려면, 강이 얼어붙는 겨울이 최적기다. 그때까지 도착하려면 보름 안에 준비해야했다. 11월 중순에는 출발해야 12월 중순에 도착한다. 조선 부왕과 정충신이 긴급명령서대로 미리 준비하고 있겠지만, 해외원정단도 준비해야할 것들이 많았다.
해외원정단은 호주에서도, 조선에서도 무척 바쁠 것이다.
나는 조선 부왕에게 보낸 긴급명령서에 ‘총력전(總力戰)’임을 명시했다.
조선 부왕, 아니 김씨 아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구상한 작전은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생각한 작전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나는 또 다른 일로 오랜 시간을 고심하다가 호위대장을 불렀다.
왕궁에는 친위대와 호위대를 두고 있었는데 친위대는 친정에 동행하고 호위대는 잔류할 것이었다. 호위대장은 역모에 연루되어 관노비가 된 무관집안 얼자였다. 부모가 역모에 연루되기 전에는 금군의 시위로 복무했었다. 그는 조선을 탈출해 한국 군대에 입대한 후로, 무예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똑똑!
“호위대장 한고립입니다.”
“들어오게.”
나는 집무실로 걸어들어오는 호위대장을 바라보며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과연 그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결단해야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했다.
“제1호 칙령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없다면..., 그에 반하는 것들을 모조리 치워야하는데, 내가 기댈 것은 그대 뿐이다. ............... 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기함에 흰 돛을,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 것이다. 그대로 행하라.”
호위대장 한고립은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일어나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노비 낙인을 인두로 지지던 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아파서 운 게 아니라 기뻐서 울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겁니다. 비로소 사람으로 말입니다. 호위대장 한고립! 신명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한고립이 고개를 숙인 집무실 바닥엔 그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의 눈물을 보며 착잡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간신히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에겐 미안하다. 나를 원망해라.”
내가 폐부를 쥐어짜낸 듯 간신히 내뱉은 말에 호위대장 한고립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엔 감출 수 없는 눈물 자국이 있었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고립은 우는 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물러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허락한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간신히 말했다. 잠시 후, 집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닫혔다.
1626년 11월 16일.
쏴아아!
철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