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멍청했다.
스페인의 계산으로는, 네덜란드 사략선을 잡는데 부족한 해상전력을 한국에게서 빌리고, 빌린 한국 해군을 머슴처럼 부려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 다른 나라에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첫째, 한국이 스페인과 동맹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스페인의 해상패권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한다.
셋째, 스페인이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상패권을 한국에게 양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스페인 해군의 지휘 하에 한국 해군이 보조적으로 참가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북아메리카의 영유권을 요구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스페인의 일시적 동맹도 감수하려고 했었다. 비록 심부름하는 머슴노릇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은 한국의 북아메리카 영유권을 정식 승인하고, 한국의 독자적인 해상 검문검색을 승인한 것이었다.
이런 바보들이 있나?
최소한 스페인 해군장교들을 파견해서 우리 해군에 사사건건 참견이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스페인의 헛발질 덕분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둘째, 셋째를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해상패권은 누구에게 양보하거나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미친 듯이 웃었다.
스페인이 한국을 부려먹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유럽의 다른 나라에는 한국의 해상패권이 공고화될 것이었다. 스페인의 계산은 유럽의 전쟁을 금방 끝내고나서 한국을 응징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30년 전쟁은 그렇지 못했다.
앞으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인도양과 태평양은 한국의 해상패권에 종속될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한국에 맞서거나 순응할 것이다. 내 생각엔 순응하는 자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스페인은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이런 한국의 해상패권은 아마도 거대한 전쟁으로 그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30년 전쟁이 끝나는, 대략 20년쯤 후에 말이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수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흠, 미안합니다. 나는 스페인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영유권은 스페인의 정식 승인을 받았으니 유럽 각국에도 통보하도록 합시다. 우리 해군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상안전을 지키도록 명령하겠습니다. 이는 스페인의 요청이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역로를 보다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곧 해군사령관을 불러 함께 논의하겠습니다.”
“...”
“...”
웅성웅성.
회의가 끝난 후, 나는 대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내 발걸음은 경쾌했고 얼굴엔 웃음기가 돌았다.
같은 시각, 호주 근해.
쾅!쾅!쾅!
한국 해군의 훈련함에서는 연신 포성이 울렸다. 해군은 새로 개발된 대포의 실사격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기존 대포는 대포 하나당 포술장과 포수, 장전수, 대포 지지대를 유지하는 사람 등 4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 중 포수가 ‘심지가 달린 긴 장대’를 대포 화약구멍에 접촉시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장전하는 사람, 조준하는 사람, 포수가 각각 따로 있어 조준에서 포격까지 과정이 번거롭고, 실제 사격에서 정확히 맞추기도 힘들었다. 거기에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포격시 대포의 후퇴 반동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발화용 장대 끝을 대포 화약구멍에 정확히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대포의 포격이 일정하지 못했고, 그만큼 화력이 떨어졌었다.
그런데, 새로운 대포는 대포에 최신 수석식 격발장치를 장착했다.
이 수석식 격발장치 덕분에 조준하는 사람이 직접 줄을 당겨 격발장치를 작동시키게 되었다. 이를 통해 대포 하나를 담당하는 인원이 줄어들었고, 그냥 줄만 당기면 격발이 되었으므로 파도치는 해상에서도 간편하게 사격할 수 있었다.
신형 대포의 실사격 훈련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먼저 사격에 걸리는 시간이 4/5로 감소했다. 둘째, 대포1문당 인원이 기존보다 1명 줄었다. 셋째, 조준과 격발을 한 사람이 함으로써 포격의 편의성과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훈련함의 함장은 대단히 만족했다.
신형대포는 국왕전하께서 대포개량을 지시한 이후에 이룬 첫 쾌거였다.
앞으로 신형대포를 장착한 한국해군 전함들은 보다 강화된 화력으로 전세계 바다를 마음껏 항해할 것이었다.
훈련함은 기수를 돌려 서울항으로 향했다.
훈련함은 한국의 국기를 돛대 맨 위에 달고 거침없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그 훈련함의 뒤로는 호주 바다의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파심
랄랄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가 좋아하는 명배우 잭 니콜슨 주연의 ‘As Good As It Gets’.
이 영화는 내가 질리도록 봤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우울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내년이 곧 정묘년인데 만주 후금 문제를 도무지 안심할 수 없었다.
누르하치는 영원성 전투에서 패전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그리고 홍타이지가 그 뒤를 이어 즉위했다. 홍타이지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누르하치가 사망했고, 홍타이지가 즉위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선과의 화의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홍타이지의 말대로라면,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홍타이지는 조선과의 화친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조선 북방의 방벽 역할은 여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우린 후금과의 교역 및 선린외교에만 신경쓰면 되는 것이었다.
어쨌든, 조선과 후금의 외견상 사이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흐음...., 그저 내 노파심(老婆心)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이렇게 믿고 싶다.
둘째, 스페인에 대한 내 도발이 문제였다.
나는 감히 스페인에게 ‘북아메리카 영유권 승인’과 ‘태평양의 해상운송권’을 달라고 요구했었다. 나는 우리 외교사절이 스페인으로 출발한 다음부터,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스페인 국왕이라면, 당장 무적함대를 몰아 호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스페인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답을 줬다.
지난 주에는 홍타이지의 화친의사가 담긴 국서가 도착했고, 이번 주에는 스페인의 외교사절이 도착했다. 둘 다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렇다!
후금의 정묘호란과 스페인과의 분쟁은 그저 내 기우였을 뿐이다.
내년 초에 정묘호란은 아마 없을 것이며, 스페인과의 분쟁도 수십 년 후에나 있을 일이다.
설혹, 정묘호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었다.
내가 쓸 데 없는 걱정을 한 것이리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1626년 10월 초.
호주 서울, 왕립국가기념관.
요즘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도 낼 겸, 왕비와 함께 왕립국가기념관을 방문했다. 왕비 강씨는 강감찬 장군의 후손이라고 했다. 왕립국가기념관에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석판에 새겨져 전시되어 있었다. 강감찬 장군이 왕비의 직계 조상이니만큼 한번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자 이리 와보니 어떻소?”
왕비는 왕립국가기념관의 위용에 놀란 듯 했다.
서울 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왕립국가기념관은 왕궁보다 훨씬 컸고 화려했으며, 각종 볼거리가 많았다. 서울 시민들의 필수 관광코스기에 항상 북적거렸다. 하지만 오늘만은 한산했다. 내가 왕비와의 데이트를 위해 비우라고 했으니까.
“강감찬 장군님의 공적비는 어디에 있습니까? 몹시 궁금합니다.”
왕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상기되어 빨간 볼이 무척 귀여웠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왕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왕비는 깜짝 놀라 손을 감추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내게 이끌리고 말았다. 그렇게 일각 정도 걸었고, 강감찬 장군의 공적비 앞에 섰다.
강감찬 장군의 형상은 사람 크기로 부조되었고, 그 앞에 공적비가 있었다.
공적비에는 귀주대첩의 개요를 세밀하게 음각했다.
왕비는 그녀의 직계조상인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유심히 살폈다. 공적비를 살피는 그녀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역력했다.
나는 흐믓하게 웃으며 왕비에게 말했다.
“강감찬 장군께서는 귀주대첩으로 고려를 구하셨습니다. 그 위업은 영원불멸입니다. 우리 후손들은 그분의 업적을 대대로 기억할 것이니까요.”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턱을 치켜들며 우쭐대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왕비에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손목시계의 끈이 풀려 떨어졌다. 손목시계는 공적비의 모서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아마도 끈이 느슨해진 모양이었다. 바보같이 손목시계 끈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다니... 나는 자책하며 손목시계를 줏으려 했었다.
그때, 수행비서가 손목시계를 수습하려고 다가왔다. 나는 수행비서가 치우도록 잠시 자리를 비켰다. 부서진 손목시계를 모두 치우고 난 후에 다시 공적비 앞에 섰다. 왕비도 놀랐는지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손목을 어루만졌다.
내 손목은 괜찮았다. 그래도 왕비가 어루만져주니 기분은 좋았다. 몇년간 아끼던 손목시계였는데...이렇게 부서지다니...아까웠다.
그때, 공적비의 사이에 뭔가 반짝임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손목시계의 유리조각이 공적비의 어떤 글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그 글자는 '금(金)'이었다.
나는 마치 홀린 듯 그 유리조각을 빼내려했다. 그러다 유리조각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내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 피는 공적비에 새겨진 글자를 적셨다.
왕비는 물론이고 수행비서도 크게 놀랐다.
나는 그들이 소리치는 것도 듣지 못했다.
그저 그 글자와 공적비를 덮은 피만 홀린 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며칠 동안 몹시 앓았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온통 난리가 났었다.
거의 이틀 동안 내리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사흘째가 되어서 간신히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봤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죽을 먹고 정신을 차렸다.
왕비는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날 간호했다.
수상도 왕궁에서 밤을 지새웠다.
내가 쓰러진 동안, 수행비서와 경호원 등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손목시계 등 국왕의 소지품을 관리하는 사용인은 아직도 갇혀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모든 조사를 그만두라고 명령했다. 모두 칠칠치 못한 내 잘못이니 말이다.
내가 정신을 잃은 것은, 아마도 과중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거의 5개월간 후금과 스페인 문제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고민했었다.
그 여파가 이제야 온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