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역사대로라면, 북아메리카 서부는 아직 시간이 많았다. 동부는 영국 등 유럽의 식민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미미했다. 그곳은 차차 해결하도록 하고, 먼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북아메리카 서부를 차지해야했다.
북아메리카 서부는 나의 해군력이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선의 국민들을 이주시키기도 쉬웠고, 새로운 골드러시를 일으키면 될 것이었다. 호주에서도 의도적으로 골드러시를 일으키지 않았었나!
북아메리카 중부는 차차 탐사대를 보내 확장하면 된다. 동부는 그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대신, 북아메리카의 인구는 우리가 가장 많아야 한다. 북아메리카에 인구를 늘리려면, 국민이 먹을 식량은 물론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산업을 유치해야한다.
원 역사에서 캘리포니아는, 19세기 중반 골드러시로 홍역을 앓았었다.
그걸 17세기에 한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조선의 국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보단 황금으로 유혹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그 와중에 일부 희생이 있겠지만, 그것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주한 그들이 부담할 선택의 댓가일 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도 있다.
어디선가 들은 출처를 모르는 말이지만 참으로 옳게 들린다.
제2차 골드러시!
북아메리카의 채금열풍은 곧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북아메리카가 답이다.
만주의 격변
1626년 5월 어느 날.
후금의 수도 심양, 누르하치의 대전.
"짐은 25세부터 병을 일으켜, 정벌한 이래 싸워서 이기지 못한 적이 없으며, 공격하여 극복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어찌, 이 영원 한 성을 끝내 떨어뜨리지 못하는가.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후금의 누르하치는 크게 탄식했다.
국력에 있어서 비교가 될 수 없는 명과 후금. 그동안 후금은 기적처럼 명을 상대로 승리해왔었다. 사르후 전투는 그 기적 중에 으뜸이었다. 사루후 전투의 승리로 후금은 만주를 일통했다.
하지만 만주를 일통했다고 해서 명을 능가할 국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은 냉엄했던 것이다. 명이 오랜 암군의 통치로 어려움에 빠진 것이지, 그 인구와 국력은 후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후금은 명백히 세력상으로 명나라에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우세했고, 기세 면에서는 훨씬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대 제국 명과 변방의 소국 후금 간의 싸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장기전이 벌어지면 절대적으로 열세인 것은 후금이었고 명은 산해관을 단단히 지키기만 해도 되었다. 이런 후금에게는 초기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수시로 싸움을 걸고 그 싸움에서 승리해왔다.
그런데, 영원성 전투의 치명적인 패배는 이 기세를 순식간에 꺾어버리고 전황을 교착상태로 몰고 갔다. 장기적으로는 국력 상 절대우위인 명이 유리해진 것이다.
이에 누르하치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누르하치는 패전의 결과를 두고 오랜시간 고심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불러 귓말로 지시했다.
잠시 후, 심양의 성문이 열리고 몇몇 일행이 남쪽을 향해 급히 말을 달렸다.
조선 한양 이른 아침, 인정전(仁政殿) 대회의실.
수상 이원익은 외교부장 최명길과 이야기를 나누며 대회의실에 들어왔다.
인정전 대회의실에는 조선의 내각 각료들이 수상을 기다리며 모여있었다. 각료들의 긴급소집이 새벽에 있었고, 각료들은 급히 대회의실 소집에 응했던 것이다. 이원익과 최명길이 각자의 자리에 앉자마자, 긴급각료회의가 시작됐다.
이원익이 제일 먼저 발언했다.
"지금부터 외교부장께서 후금의 긴급외교현안을 보고할 것이오. 외교부장은 시작하시오!"
"크흠, 외교부장 최명길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지금 나눠드릴 보고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회의실에는 몇몇 직원들이 최명길이 언급한 보고서를 들고 다니며 배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보고서의 배포가 끝나자 최명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눠드린 보고서는 긴급외교현안보고가 끝난 후에 보셔도 됩니다. 크흠, 그럼 현안보를 시작하겠습니다. 3달 전 후금의 '한'인 누르하치의 군대가 명의 영원성을 공격하다가 참패했습니다. 명에서 들어온 정보와 교차검증한 결과와 일치합니다. 그럼 후금의 밀사가 어제 저녁에 한양에 도착해서 요청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명길은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잠시 목을 축이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죄송합니다. 그럼 후금의 요청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조선과의 상호 화의를 영구히 지속하기 원했습니다. 둘째, 화포와 화약 등 군수물자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셋째, 곡물 등 교역량을 늘려달라는 것 등입니다. 이에 대한 댓가는 땅으로 치르겠다고 합니다. 6진의 북쪽으로 바다에 접한 곳으로 말입니다. 이상입니다!"
최명길이 긴급현안보고의 발제를 마치자 부수상 박승종이 질문했다.
"우리 쪽에서 은밀히 홍이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소? 명이 가진 '홍이포'란 화포의 사정거리가 최고 10여리(약4킬로미터 이상), 유효사거리는 3리(약700미터)에 달하니 공성을 위해 함부로 접근하면 큰 코 다칠거라고 말이오."
박승종의 질문에 최명길이 대답했다.
"부수상님의 말씀대로 이미 그 내용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우리 말을 믿지 않은 것이겠지요. 이번 전투는 자업자득입니다."
그때, 국회부의장 겸 국방부장인 정충신이 손을 들어 발언기회를 얻고 말했다.
"그동안 국왕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북방정책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번 전투로 후금의 기세가 크게 꺾였으나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후금은 우리의 북쪽 방벽입니다. 명과 국경을 맞대는 것은 좋을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국방부의 입장은 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
"..."
웅성웅성.
대회의실은 정충신의 발언 이후부터 여러 각료들의 논의가 곳곳에서 부산스럽게 진행됐다. 각료들은 각자 궁금한 사항을 최명길에게 질의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논의가 정리되었다고 판단되자 이원익이 나섰다.
"자자, 이제 긴급현안보고를 마칠 시간이 되었소. 영원성 전투는 후금이 참패했고, 후금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소. 국방부장의 말대로 기존 계획과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오. 조선의 삼면은 압도적인 해군력이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고, 일본은 무역을 통해 큰 변화가 없음을 이미 확인했소. 우리 정책은 주변의 안정이니, 명이 후금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좋을 것이 없소. 후금을 지원합시다!"
"동의합니다!"
"옳습니다!"
"..."
"..."
수상인 이원익의 말이 끝나자 각료들의 찬성 발언이 이어졌다. 이원익은 흡족하게 웃으며 한가지 더 말했다.
"이번 긴급현안보고는 부왕전하는 물론이고 국왕전하께도 보고될 것이오. 각 부서별로 후금의 지원에 대한 계획을 신속하게 수립, 보고하시오. 크흠, 그리고 곧 의회를 통과할 신분제 철폐에 대비해 만전을 다하시오. 경장의 시행이 이제 본 궤도에 올랐으니 우리 조선은 10년 안에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오."
짝짝짝!
이원익의 말에 각료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회의를 끝냈다.
같은 날 오전, 조선의 부왕(副王)궁 집무실.
조선의 부왕은 매주 한번만 수상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내정은 수상 이원익을 중심으로 한 내각이 책임지고, 의회가 그것을 뒷받침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원익을 중심으로 한 내각은 부수상 박승종, 외무부장 최명길, 국방부장 정충신 등 각료들이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특히, 경국대전을 아예 폐기한 수준의 경장이 진행되면서 더욱 그랬다. 그나마 한국의 업무사례를 참고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조정관리들이 한국과 조선을 오가며 행정연수를 받은 것도 훌륭했다. 그를 통해서 경장의 내용이 쉽게 이해되었으니까.
조선 부왕도 그들이 바쁜 것을 알기에 보고에 들이는 시간도 아끼길 바랬다. 수상을 중심으로 열심히 일하는 조정관리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부왕에 오르면서 약속한 것을 지키고 싶었다. 내정은 수상과 의회에, 사법은 법원에, 국방은 부왕이 맡는 것으로 약속했었다.
조선 부왕은 정충신을 국방부장으로 삼아 연일 정예병을 육성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로 조선의 북방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조선 부왕은 정충신의 탁월한 능력에 대단히 만족했다. 정충신의 주도 하에 북방 정예병 3만이 완전히 편성됐고 해군과의 합동훈련도 마무리됐다.
조선의 삼면이 바다이기에, 해상패권을 장악한 지금에 있어서는 압록강과 두만강만 지키면 됐다. 해군을 이용한 해상 운송이 완비되어 병력파견과 보급이 수월해지면서 작전수행이 보다 간편해졌다. 그만큼 북방은 보다 안전해졌다.
조선의 군제도 한국의 군제를 그대로 따랐다. 사관학교도 설립해서 유능한 장교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특히 해군의 확충에 사활을 걸었다. 해군은 유사시에 지상군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통합교육을 받았다.
지금 북방 정예병 3만이 그 결과였다. 조선은 지상군 3만과 해군 2만, 총5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군2만은 서해안 가도에서부터 동해안 6진까지 해안을 지키고 해상교통로를 통제했다. 거기에 유구국, 사할린, 일본과의 무역로를 장악했다. 해군력의 융통성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바다와 연결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작전이 가능했다. 그로 인해서 조선군 5만은 그 작전의 전개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조선군의 기존 장수들은 모두 사관학교에서 한국식 군사교육을 받았다. 나이와 경력을 막론하고 사관학교의 강도높은 군사교육을 이수해야만 정식 군계급을 부여했다. 한국식 군계급에 익숙해지자, 기존 장수들은 모두 만족했다.
조선군은 점차 조총수와 화포를 중심으로 군제를 완전히 전환했다. 아직 기존 궁기병과 궁수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보조전력일 뿐이었다. 인도에서 들여오는 엄청난 초석으로 화약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군복도 양모를 이용해 따뜻하고 가벼운데다가 멋지게 만들어 보급되었다. 모두 월급을 받는 상비군이라 사기도 높았다.
조선 부왕은 이제 누구와 맞붙어도 자신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엔 평소 보기힘든 미소가 깃들었다.
그때, 수상이 다른 각료들과 함께 들어왔다.
"부왕 전하! 수상입니다."
"크흠, 어서 들어오세요."
조선 부왕은 미소띈 얼굴을 지우고 수상을 반겼다. 수상 이원익, 부수상 박승종, 외교부장 최명길, 국방부장 정충신이 함께 들어왔다.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부왕의 비서가 차를 내왔다. 비서는 탁자에 차를 내려놓고 집무실을 떠났다.
수상은 비서가 문을 나서자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흠흠, 부왕전하! 아침 일찍 후금의 영원성 패전에 대해 내각의 대책보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가 지난 2월에 명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영원성에서 대규모 전투가 있었고 후금이 참패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명의 허세가 아닐까 의구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후금의 밀사가 와서 그 정보가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은 탁자의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크흠, 후금은 지난 3개월간 자신들의 패전을 일절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영원성 전투의 패전이 진실인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명의 허세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후금의 누르하치가 보낸 3가지 요청을 보면 확실합니다. 후금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래서 내각은 후금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조선 부왕은 수상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상께서 잘 알아서 하셨겠지요. 이 못난 사람은 수상과 내각을 믿습니다. 후금은 지금 무너져선 안됩니다. 내각이 노력해 주세요."
이원익은 부왕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박승종에게 눈짓했다. 박승종은 이원익의 눈짓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왕전하! 이번 후금의 지원을 위해서 외교부장을 심양에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의 지원의사를 명확히 전하고자 합니다. 거기에 화포와 화약의 지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포와 화약은 임진년에 쓰이던 구식 무기들입니다. 홍이포에 비하면 부족하나, 그들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을 것입니다. 어차피 녹여버릴 것이라면 팔아도 괜찮을 겁니다."
조선 부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정충신은 부왕의 시선에 바로 대답했다.
"부수상의 보고대로 입니다. 구식 무기들은 우리가 사용할 일이 없고, 적이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가 능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가격을 받고 판다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약도 오래된 것을 먼저 파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선 부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조선 부왕은 만족스러운 보고일 때에는 아무 말이 없었고, 불만족스러우면 꼭 눈짓을 하곤 했었다. 그 모습에 수상이 말을 이었다.
"부왕전하! 그럼 후금의 대사는 내각의 의결대로 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신분제 완전폐지에 대한 입법이 의회를 통과할 겁니다. 그럼 양전사업과 주민등록사업이 이미 끝났으니, 입법이 됨과 동시에 순차적으로 토지배분을 시작하겠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조선 국민들을 호주와 기타 지역으로 적절하게 이주시키도록 잘 짜여 있습니다. 실수가 없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조선 부왕은 수상을 묵묵히 바라보다 한마디만 했다.
"고맙소!"
조선 부왕은 그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이원익과 일행 모두는 조선 부왕의 축객령에 몸을 돌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조선 부왕은 말이 적고, 호불호가 명확했다.
이원익은 부왕의 집무실을 나서 수상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원익과 그 일행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만큼 조선의 미래도 밝아보였다.
1626년 6월 어느 날.
호주 서울, 왕궁 내실.
나는 딱딱한 의자를 마다하고 오스만에서 들여온 융단 위에 되는 대로 앉았다.
왕비는 넓직하고 편한 의자에 앉아 한글책을 읽고 있었다. 나를 보고 일어나려던 왕비는 내가 융단 위에 철퍼덕 앉자 잠시 머뭇거렸다. 왕비는 아직도 내가 어려운건가? 그렇게 생각하곤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격식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편한 곳에 마음대로 앉아요. 왕궁은 편안해야 합니다."
왕비 강씨는 여전했다. 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없이 얼굴이 빠알갛게 익었다. 그렇다고 성격이 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 꼭 고양이 같았다. 지금도 옆에서 고양이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느릿느릿 두어바퀴 맴을 돌듯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사이?'
내가 말을 너무 쉽게 했나? 내가 했던 말을 되뇌이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입 밖에 내면 안되는 웃음이었다. 아쉬워서 찾아온 것은 나였다.
왕비는 풋익은 과일같은 청순함을 지닌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등불을 등진 모습이란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청순함과 고혹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쉬이 설명하지 못하겠다. 아니 설명할 틈을 찾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