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225)

앞으로도 조선에 올 일이 자주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주야말로 내가 처음 일어나 나라를 세운 곳이었다. 그 땅에서 우리 조선출신 백성들이 피땀흘려 일하고 있었다. 조선도 중요하지만, 호주가 더 중요했다.

지난 1년 반동안, 호주에 이주한 국민만 20만이 넘었다. 계획대로라면, 향후 30년동안 조선인구의 6할을 이주시킬 것이다. 그렇게 호주 전역을 완전히 한국의 지배하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호주 전역을 다닐 증기열차도 완성되지 않을까?

현재, 한국과 조선은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왕은 나 하나다. 

한국와 조선 모두 하나의 왕이라는 인적결합에 의해 통일됐다.

이는 아주 느슨한 형태다. 

왕의 존립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아주 약한 연결고리'가 있는 결합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  

이야말로, 내가 해야할 진정한 왕의 책무다

한국과 조선이, 진정한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말이다.

오늘은 경장이 시행될 역사적인 날이다.

하루 정도는 편히 쉬어도 되겠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돌아오는 길

1626년 1월 어느 날, 서해 가도 앞 바다.

내가 조선에 온 지 만 2년, 국혼을 마친지도 3개월이 지났다.

조선과의 '내전'을 위해 출병한 해외원정군이 순차적으로 귀환, 개선한 것도 오래 전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어느 정도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있었기에 귀환 길에 올랐다. 나를 포함한 이번 귀환은 해외원정군으로서도 마지막 귀환선단이었다. 이 마지막 귀환 선단에는 총 10척의 함대에 3천8백명이 승선했다.

귀환선단에는 나를 포함한 해외원정군 마지막 파병인원 2백여명, 함대 승조원 2천여명, 나머지 1천6백여명이었다. 나머지는...유배라고 해야할까? 그런 사람들이었다.

폐모살제의 원인이 되었던 대비와 정명공주 부부, 능양군을 포함한 왕실 종친이라 불리던 사람들 전부, 서인 등 성리학자 중 담론을 주도할 만한 자들을 전원 빠짐없이 초청했다. 왕의 이름으로 초청한 것이기에 거부하면 죽음 뿐이란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송시열은 불과 19살이었지만 포함됐다. 기존 성리학자 중에 이름있는 스승의 제자라는 사람들을 모조리 초청해서 모았더니 2백명 안쪽이었다. 그 가족들도 함께 초청했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조선에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대비는 온갖 악다구니를 하며 저항했지만, 나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정명공주와 홍씨 성을 가진 부마도 함께였다. 능양군은 아무런 말없이, 정말 순순히 따라왔다. 이괄의 난으로 단 하루 왕노릇했던 흥안군 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대견스럽게도, 자발(?)적으로 모든 재산과 노비들을 국가에 헌납했다. 나는 그 높은 뜻을 기려 종친 모두를 호주로 초청했다. 그들 모두는 호주의 넓은 땅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종친이라고 해서 놀고 먹으며 사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양반 사대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고.

그 눈물겹고 자발(?)적인 재산 헌납은 능양군이 주도했다.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 한 것이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관대한 사람이므로 그의 소원을 들어줬다.

능양군이 나서지 않았어도 전부 했을 일이지만, 내가 나서지 않고 해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겉으로 보기엔 자발적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이씨 종친들의 무위도식은 영원히 끝났다. 청년 송시열도 유학경전이 아닌 삽(?)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기본적인 머리는 있을테니 다른 방도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이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

그들이 조선의 북단에서 남단까지 눈에 담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지금, 북방 가도 앞 바다까지 왔다.

가도 앞 겨울바다는 몹시 거칠고 추웠다.

국왕의 거대한 기함도 이리 흔들리는데, 옛 사람들의 작은 배로 항해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했을까? 그리 옛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바람이 찹니다. 옥체를 생각하시어 선실로 들어가시지요?"

추운 바닷바람 때문인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나와 혼인한 정식 부인, 왕비 강씨였다.

본관은 금천(衿川)이며 조정관리인 강석기(姜碩期)의 둘째 딸이었다. 그 유명한 강감찬 장군의 후손이라고 했다. 1611년생이니 만16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나는 따뜻하게 입어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이리 오세요. 같이 구경합시다."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내리깔았다. 

그리곤 내게 살금살금 다가왔는데,

그녀의 빠알갛게 잘 익은 홍시처럼 붉은 볼에, 또 살짝 내리깐 눈은 앙큼했다. 

몇달동안 지내보니, 절대 양순한 성격은 아니었다.

나는 살짝 그녀의 손을 잡아 끌며 내 앞으로 등을 기대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양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그렇게 내가 뒤에서 끌어안는 자세가 되자, 그녀의 귓볼까지 빨갛게 익어버렸다. 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래 이번엔 무서운 바다괴물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거요?"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줄 듯 겁을 주자, 그 큰 눈을 놀란 듯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눈꼬리를 올리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괴력난신은 논하지 말란'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풍부한 얼굴표정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나는 잠시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듯, 주위를 살펴보며 듣는 자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말했다.

"괴력난신은 있습니다. 저기 큰 바다로 나가면 귀신고래라는 것이 있고, 그 귀신고래가 나를 이 곳에 끌고 왔습니다. 그 고래는 이 배만큼이나 클 거요! 이~~~~만큼!"

나는 양 손을 있는 힘껏 크게 벌리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그 우스꽝스런 얼굴표정에 그녀는 '까르르'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그녀의 소녀다운 모습에 나도 흐믓하게 웃었다.

나는 선실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워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첫 항해가 힘겨운 것인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빠졌다. 낮게 코를 고는 것이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불을 잘 정돈해서 올려준 다음,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리고 내 머리에 팔베개를 하고 생각했다.

나는 국왕의 체통을 버리고 김씨 아저씨한테 부탁했다.

사실 아저씨하고 할아버지한테는 체통따윈 없었다.

그냥 아저씨고, 그냥 할아버지다.

"부왕(副王)은 아저씨가 아니면 안돼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김씨 아저씨는 부왕(副王)자리를 한사코 거부했다.

"흘흘, 너도 한 자리할만큼 일 열심히 하지 않았누?"

돌쇠할아버지도 웃으며 권했다. 나는 그 기회에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도 말씀하시잖아요? 아저씬 폼잡으면서 가만 있으면 된다니까요! 수상과 의장이 대부분 다 할거니까 신경쓸 일도 없어요. 이번에 결혼하셨는데 번듯한 자리라도 있어야 할거 아닙니까?"

나의 말에 아저씨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화가 나서가 아니라 웃지 않으려고 참느라 일그러진 거였다. 아저씨는 결국 졌다. 아저씬 그만 웃어버렸다.

"푸흡...., 알았다. 대신 정보국 조선지부장과 정충신은 남겨둬야한다."

아저씨는 짦게 말하곤 굳게 입을 닫았다.

"흘흘, 김가가 결혼하더니 사람이 다 됐누? 내가 소싯적엔..."

나는 잽싸게 말을 이었다.

"부왕비(副王妃)께는 제가 멋진 선물을 드린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아저씨 말대로 할테니 잘 부탁드릴께요. 아시겠죠?"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뜻을 표했다.

이것으로 조선을 책임질 인선이 끝났다.

사실상 수상인 이원익이 모든 내정을 책임지고 수행할 것이고, 의회가 수상과 내각을 뒷받침할 것이다. 내각에는 박승종, 최명길, 김육부터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서 열일하고 있었다. 

정보국 조선지부장은 아직 음지에서 할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권유에도 그대로 남았다. 대신 부왕의 정보업무를 보좌하는 것을 추가로 맡았다. 

군부는 부왕을 사령관, 정충신을 부사령관에 임명했다. 

정충신은 의원 자리를 겸직하면서 부사령관 직무를 수행했다. 작년에는 반년간 호주시찰단을 겸해서 해군사관학교 교육도 받았다. 정충신으로서는 해군과의 연합작전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선은 삼면이 바다인 만큼, 강력한 해군이 있는 한 전선이 고정된다. 

따라서, 현재는 북방의 압록강과 두만강 전선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 

나와 아저씨, 정충신은 머리를 맞대고, 유사시 후금의 공격에 대비한 작전에 골몰했었다. 해군력의 월등한 격차가 있기에 일본은 그리 걱정할 일이 없었고,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후금과는 기본적으로 화친한다. 

하지만, 만약의 공격에는 상시 대비해야한다.

그리고 조선의 국력이, 내가 생각한 정상궤도에 오르면 다시 생각한다.

이것을 골자로 대(對)후금 전쟁대비계획을 수립했다. 

지금은 후금과 사이가 좋지만, 언제 나빠질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저씨와 정충신에게 신신당부했다.

또한, 나는 아저씨의 결혼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접수한 대궐엔, 환관과 궁녀를 비롯한 궁인들이 수천명이 넘었다. 그들의 생활은 대궐을 떠나는 것과 동시에 끝장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천의 궁인들이 왕실가족을 위해 일했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척 답답했다.

호주에서 데려온 조선 궁인출신 사용인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곤란했을 것이다. 그 사용인들이 진두지휘해서 나를 불편하지 않게 했다. 그 중에 김씨 아저씨의 그녀가 있었다. 

김씨 아저씨의 첫사랑은 우리 엄마가 분명했다.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돌쇠할아버지도, 나도 알았으니까.

그녀는 우리 엄마를 몹시 닮았다.

그런데, 김씨 아저씨의 그녀는 궁녀였다.

조선에서 일반인이 궁녀를 넘본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 

궁녀는 모두 왕의 것이니까.

나는 김씨 아저씨의 훤히 보이는 속앓이를 보고 말았다.

내가 딴 건 몰라도 사람보는 눈치는 빨랐다. 그것도 딴 사람이 아닌 김씨 아저씨였다.

몰래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그 궁녀는 성격도 온순할 뿐만 아니라 주위 평판도 좋았다. 역관을 하는 중인 출신 부모를 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입궁했다고 했다. 

돌쇠할아버지도 그 궁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함께 정보를 공유했고, 그 궁녀를 다각도로 검토했다. 김씨 아저씨의 배필로 괜찮은지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와 돌쇠할아버지는 찬성이었다.

그래서 그 궁녀를 불러 출궁시키고, 김씨 아저씨의 수행비서로 임명했다. 

둘 사이를 딱 붙여놔야 뭔가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1년 동안 함께 지냈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아저씨는 엄마와의 사례처럼, 그 궁녀와 거의 말없이 지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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