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25)

하지만, 그들의 주위에서 살펴보면 그들이 한어로 대화하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변발을 한 한인이었다. 그 요동 한인들은 최근 평안도 곳곳에서 체포되었고 조선군에 의해 강제노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을 감시하는 조선군들은 삼엄하게 감독했다. 북방의 조선군들은 인정사정없이 그들을 대했다. 그동안 요동한인들이 벌인 막장행태에 분노했었기 때문이다. 조선군들은 조선백성들이 힘에 겨워 할 수 없었던 공역에 요동한인을 동원했다.

십만이 넘는 요동한인들을 매섭게 부려대니, 평안도의 도로는 금방 정비됐다. 한양에서 의주까지 존재하던 사행로만이 아니었다. 평안도 곳곳의 광산에 이르는 길까지 평탄하게 만들어졌다. 주요 도로에는 마차가 쉽게 다닐 수 있게 돌로 포장했다. 

도로는 오히려 편했다. 광산에서 노동하는 요동한인들은 조선의 매운 맛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석탄을 캐는 탄광의 갱도를 뚫기 위한 작업에 열중했다. 거기서 캐낸 석탄을 쉽게 옮기기 위해선 도로도 정비해야했다. 

요동 한인들은 절망했다. 여진족 후금의 부빈을 피해 조선에 왔는데, 여진족보다 더 힘들게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가도의 총병 모문룡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요동 한인들은 견디기 힘든 중노동에 조선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요동한인들의 탈출 목적지는 요동이었다. 가도의 총병 모문룡이 요동에 새로 주둔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가도는 배를 타고 가야하지만 배가 없는데다 조선군의 감시가 심했기에 모두 탈출에 실패했다. 조선 남쪽은 더욱 감시가 심했다. 그나마 조선의 북쪽 경계는 조선군의 감시가 소홀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평안도의 도로공사와 탄광진입로 등의 공사가 거의 끝날 무렵부터는 조선군의 감시가 더욱 소홀해졌다. 요동한인들은 이 틈을 이용해 대거 탈출했고 요동으로 돌아갔다. 모두 여진족의 변발을 한 채로. 

요동의 어느 후금군 막사.

그 막사에서는 후금군의 고위 무관으로 보이는 자와 조선의 관리로 보이는 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그 중 조선의 관리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약조대로 부빈 1명당 소1마리, 부빈 2명당 말1마리요. 돼지는 4마리, 양은 6마리를 받겠소. 우리가 그동안 들인 비용에 비하면 거저요 거저."

후금의 무관은 이에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부빈들은 원래 우리 소유였소. 우리가 요구한지 몇년이 지나서야 보내줬고, 요동에서 포획한 것은 우리가 했소. 이건 과하니 좀 줄여주시오."

후금 무관의 말이 조선 관리는 도끼눈을 뜨고 화를 냈다.

"어허! 이게 말인지 막걸린지... 우리가 그대들을 위해 가도를 치워버린 것을 잊은 것이오? 우리가 들인 전비가 얼마인지 한번 불러봐야 하겠소이까? 우리 국왕전하께서는 그대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오랜 기간동안 특별한 인연이 있음을 강조하셨소. 그래서 그 우의를 위해 대국의 책임추궁을 무릎쓰고 배려한 것이오. 그런데...."

후금 무관은 조선 관리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끊었다.

"알겠소이다. 내가 잠시 실언을 했소. 약조한 대로 이행하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좀 더 주시오. 압록강 중류에 마시를 여는 때에 맞춰서 빠짐없이 드리겠소."

온 몸을 부들거리며 화낸 기색을 보이던 조선 관리는 후금 무관이 약조를 이행하겠다고 하자 급히 화색을 띄며 대답했다.

"크흠, 제가 너무 흥분했던 거 같소이다. 미안하오. 그럼 여기 이 서찰에 날인하시오. 귀국의 한(현재 누르하치)께는 정식으로 사절을 보낼 수 없어 안타깝소이다. 상호 우의를 위해 이런 교역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오."

후금 무관은 조선 관리가 내민 2부의 서찰에 각각 관인을 찍고 그 중 한부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말은 우리도 부족하니 주로 소, 돼지, 양으로 셈을 치를 것이오. 한께서도 귀국의 밀서를 받고 크게 기뻐하셨소. 나 다이샨을 보낸 것도 귀국을 크게 우대한 것이니 믿어도 될 것이오. 그럼 이만 가보시오."

조선 관리는 후금 무관 다이샨의 말에 크게 만족스러운 얼굴로 막사를 나섰다. 막사를 나선 그의 얼굴은 자세히 보니 최명길이었다. 최명길은 서둘러 후금의 막사를 떠나 요동 해안 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들이 도착한 해안에는 한국의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명길 일행이 승선한 다음, 배는 요동 해안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거머리들 02 : 처단

가도 주둔 모문룡의 막사.

모문룡은 파안대소했다. 

조선왕이 결국 굴복하고, 어디서 났는지 쌀 10만석과 은50만냥을 전비로 내겠다고 말했다. 대신 가도를 영구히 떠나 요동으로 가는 조건을 내세웠다. 모문룡은 즉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돈을 받고 나서 사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약속한 것이었다.

모문룡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이 약속한 쌀과 은이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수하들을 닥달해서 가도 해안을 엄중히 감시하도록 했다. 조선의 배가 쌀과 은을 싣고 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쾅!쾅!쾅!

펑!펑!

끼이익!

가도 앞바다는 전쟁터였다. 

조선의 배들이 홍모귀들의 배가 쏘는 대포를 맞고 있었다. 홍모귀의 배는 조선의 배보다 월등히 빨랐고 그걸 이용해 집요하게 추격하며 대포를 쏴댔다. 그 대포세례를 견디지 못한 조선의 배는 한척씩 계속 침몰했다.

모문룡이 그걸 보고 받고 확인하러 나갔을 때는 홍모귀들의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명의 강남지방에 홍모귀들이 출몰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먼 조선까지 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모문룡은 즉시 조선 조정에 사람을 보내 물었다. 쌀과 은을 빨리 보내라는 서신과 함께.

조선은 모문룡에게 의심과 분노의 답신을 보냈다.

조선은 분명 가도의 모문룡에게 약속한 쌀과 은을 보냈는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조선의 배를 공격해 모두 죽인 것이 아니냐는 서신이 온 것이다. 조선의 배를 공격한 것에 대한 사고조사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도 함께 요구했다.

조선은 이미 쌀과 은을 보냈기에 더 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가도를 떠나 요동으로 가거나 아예 산동으로 철군할 것을 요구했다. 모문룡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조선이 십여척의 배를 보낸 것은 맞다. 분명히 보았으니까. 게다가 가도의 해안에 밀려든 조선 배의 처참한 잔해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였다. 조선에는 홍모귀들이 타는 배가 없으니 조선의 자작극(?)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모문룡은 어차피 가도를 떠날 생각이 없었기에 계속 쌀과 은을 요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조선에 다시 서신을 보내 쌀과 은을 다시 보내지 않으면 요동으로 갈 수 없다고 버텼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가도에 접한 평안도의 해안에 커다란 싸움이 벌어졌다.

홍모귀들의 배가 연신 해안을 포격했다. 그 해안에서는 홍모귀들의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조선군을 도륙하고 있었다. 해안은 홍모귀들에게 점령됐고, 그들은 해안에 진지를 구축했다. 홍모귀들은 조선인들을 포로로 잡아 배에 강제로 태웠다.

모문룡은 수하들의 보고에 그 상황을 확인해봤다.

수하 중에 스페인의 군대를 봤던 자가 있었기에 그들이 스페인 군사로 판단됐다. 군함의 깃발도 스페인의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모문룡은 조선군이 죽건말건 상관없었기에 가도에 남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양이들의 가진 홍이포의 위력을 그도 잘 알기에 명군의 함선으로는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문룡은 스페인 인으로 보이는 홍모귀들이 그들이 쓸 노예가 필요해서 조선인을 끌고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충분한 노예를 잡고 돌아갈 것이니 맞서 싸울 이유가 없을 것이고, 설령 조선에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모문룡은, 조선의 조정에서 평안도를 점령한 홍모귀들을 쫓아내려고 크게 군사를 일으켜야하니, 명의 수군으로 홍모귀들의 수군을 공격해 도와달라는 조선의 간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모문룡은 그저 조선이 쌀과 은을 보내줄 것을 독촉하고, 그것을 기다렸다.

명나라 수도, 조정.

명의 조정은 황제가 목공예에 빠져 국사에 관심이 없어서, 황제없이 신하들만 모여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명의 병부를 맡은 상서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양이(洋夷)들이 조선의 북방을 점거하고, 조선인과 우리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가고 있다니!"

잠시 신음하던 그는 조선의 사신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조선은 그들을 몰아낼 힘이 없는거요?" 

조선의 사신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조선의 북방군은 역적 이괄의 난리통에 완전히 괴멸되었습니다. 우리 군사가 없으니 평안도 북쪽에는 여진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대국백성들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양이들의 군선이 쳐들어와 그나마 남은 군사들이 크게 꺾였습니다. 아예 가도 인근에 진을 차리고 우리 백성들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가도의 모문룡 총병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쌀과 은을 달라 조선의 왕에게 이런 서찰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국의 원군이 없다면 조선은 필시 망할 것입니다. 부디 대국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간청하옵니다. 흐흑..."

회의장 안은 침묵에 빠졌다. 잠시 고심하던 병부상서는 조선의 사신을 위로하고 사신관에서 쉬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회의를 속개했다. 

이번엔 예부상서가 말문을 열었다.

"조선이 위급한 상황인 것은 사실인 듯 하오. 이전 조선의 왕이 반정으로 물러난지 1년도 되지 않아 또 왕이 바뀌었소. 그런 반정이 잦으면 나라가 정상이 아닐거요. 거기에 이괄이란 자가 일으킨 반란으로 조선 북방은 아수라장이 된지 오래요. 조선이 말한대로 평양과 대동강을 굳게 지키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일일거요."

예부상서의 말에 병부상서가 말을 보탰다.

"음, 조선이 대동강 위쪽을 잃게되면 가도를 유지할 방도가 없소. 오랑캐들이 대동강까지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을테고, 평안도에서 가도를 공격하면 가도의 보급이 끊기니 역시 막을 수 없소."

병부상서의 말에 예부상서가 의문을 표했다.

"가도의 모 총병은 그동안 수십차례나 후금을 격파했다고 보고하지 않았소? 그런 모 총병이 오랑캐들의 침입을 방관하는 이유가 뭐요?"

예부상서의 말에 병부상서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말했다.

"가도의 모 총병이 그의 말대로 승승장구했는데, 단 한뼘의 요동 땅이라도 탈환한 적이 있소? 모 총병의 보고는 거짓일거요. 그저 후금의 뒤를 성가시게 하는 역할과 조선을 후금에 붙지 않게 경계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 거기에다가 조선이 군량을 대고 있으니 비용도 적게 들고 말이오."

예부상서는 병부상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선이 올린 보고에 따르면 가도의 모 총병이 한 일은 단 하나도 없소. 오히려 조선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을 뿐이오. 이러다간 조선이 자발적으로 후금에 붙지 않을까 염려가 되오. 가도를 지키기 어렵다면 아예 모 총병을 소환하고 가도를 비우는 것이 어떠시오. 우리도 힘든데 조선까지 지켜줄 의리는 없소. 지난 임진년에 도와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예부상서의 말에 회의실 안은 침통한 분위기가 흘렀다. 뭐니뭐니해도 조선은 명에 충성하는 제1의 제후국이었고, 후금의 배후를 위협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선이 그 힘이 다해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망국의 전조가 아닌가?

임진년의 왜란으로 조선의 실상을 보고온 장수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조선은 명이 걱정할만큼 국력을 키울 수 없는 나라였다. 다만, 명에 충성하고 후금의 위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니 해상로를 유지하면서 가도에 주둔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후금의 위협에 도움이 되긴 커녕, 명의 도움이 없이는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그런 조선이 후금의 배후위협이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적당히 손을 터는 것이 좋았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어느 새, 한 쪽으로 쏠렸다.

결국, 예부상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흠, 우리는 지난 임진년에 조선을 구원했소. 그만하면 우리의 도리는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오. 그동안 가도에 모 총병을 파견해서 조선을 힘껏 도왔소. 모 총병도 그간 고생했으니 소환합시다. 조선에는 적당한 재물을 내려 위로하고, 새로운 왕에게 선선히 고명을 내려줍시다. 조선은 앞으로 평양과 대동강을 지키느라 힘에 부칠 것이니 사신의 왕래도 어려울 것이오. 앞으로는 사신도 3년에 한번만 오도록 하는게 좋을거요. 그럼 병부상서께서는 동의하시오?"

병부상서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눈짓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예부상서를 바라보곤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말했다.

"가도의 모 총병을 소환하겠소. 조선 북방의 백성들은 구하기 어려우니 그대로 놔두고 오라 명하겠소. 이제 조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할거요. 우리가 요동을 수복해 육로가 열리지 않는한 말이오."

회의실은 이 같이 결정하고 사후 절차의 진행에 착수했다.

조선의 사신은 명 조정의 결정에 반발해 대궐에 난입해 소란을 피웠다. 조선 사신은 울고불며 옷이 찟어지도록 난동을 부리며 병부상서와 에부상서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조선의 사신은 대궐에서 쫓겨나 사신관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조선 사신은 힘없이 귀국길에 나섰다.

예부상서는 방금 돌려보낸 조선 사신 최명길을 떠올리며 크게 자책했다. 나름 신경써서 황제의 이름으로 은10만냥을 내려주며 조선의 난리를 복구하는 데 쓰도록 하사했다. 그럼에도 미안했다. 그토록 울고불며 난동을 피우면서도 조선을 위해 충성하는 그 높은 의기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예부상서는 다시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최명길 같은 충신이 조선에 있는 한, 조선이 그리 쉽게 망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됐다. 최명길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릴 각오로 대궐에 난입했었다. 범궐은 그 누구라도 참형에 처해질 중죄였다. 하지만 예부상서는 최명길을 비호했다. 그의 충절은 조선이 망하더라도 길이 남을 것이다.

예부상서는 다시 조선과 최명길을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고난의 시절만이 남았을 것이다. 조선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이 북쪽 후금으로 막혀 섬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조선의 물산은 박하다. 명과의 조공으로 그나마 유지되는 나라였다. 이제 명과의 조공이 3년에 한번으로 줄어들면, 조선은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다. 

조선의 운명은 조선이 스스로 결정해야한다.

명의 운명은 명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듯 말이다.

예부상서는 이내 상념을 그치고 다시 일에 빠져들었다.

가도 주둔 모문룡의 막사.

쾅!

모문룡은 탁자를 내려치며 분노했다.

조정에서는 가도 주둔군이 산동으로 귀환하도록 명령했다. 평안도가 후금에게 넘어간 것은 기정사실인 듯 했다. 게다가 홍모귀들의 배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후금과 홍모귀들이 연신 노예들을 실어나르는 듯 했다. 

평안도가 후금에게 떨어지면, 가도의 안전은 절대 보장할 수 없었다. 조선의 보급은 이미 끊겼다. 조선의 코가 석자인데 가도까지 지원할 리가 없었으니까. 모문룡이 요구한 쌀과 은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하긴 원래 지원하던 군량도 지원이 끊겼는데 그것이 올 리가 없지 않은가.

모문룡은 혀를 차며 아쉬움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젠 가도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갈 시점이었다.

조선에 남을 이유인 요동한인도 없고, 평안도는 쑥대밭이 되었다. 바로 건너편에 홍모귀 스페인의 노예선이 들락거리는 것만 봐도 뻔했다.

결국,

모문룡은 수하들에게 가도를 떠나 산동으로 향할 것을 명했다.

서해상 어느 곳.

끼룩끼룩!

쏴아아! 

철썩철썩!

서해 바다 한가운데에는 처참한 해전의 잔해만이 부유물로 떠다녔다. 

족히 수십척은 될법한 배가 침몰한 것 같았다. 사방에 부서진 배의 잔해가 널렸고,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 그 잔해 위에는 무심하게도 새들만이 혹시 끼룩끼룩 먹을 게 있을까 날아들었다. 

서해바다를 거침없이 가르며 이동하는 대선단이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의 깃발을 내걸고 남서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50척에 달하는 그 배들은 좌우현에 각각 12문, 도합 24문에 달하는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현 위치에서 남서쪽은 조선의 강화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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