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225)

셋째, 후금과의 교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를 살찌우고 그들의 정보를 획득한다.

그동안 후금과의 밀무역을 통해 말7천마리를 들여왔다. 앞으로도 말3만마리를 들여와서 육상운송은 물론이고 기병을 육성할 계획이었다. 후금도 조선과의 교역으로 말을 제공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후금은 한국에 속았을 뿐이다.

후금과의 밀무역으로 사들인 소, 돼지, 양도 수만 마리였다.

그것들은 조선의 백성들을 살찌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만큼 상대는 약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약점을 살펴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역이다. 그들이 부족한 것을 알고 싶은가? 그럼 그들이 사고 싶어하는 물건이 뭔지 확인하면 된다.

후금은 홍이포 등 화약무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명의 무기가 뭔지 말해주고 있다. 후금은 수시로 산해관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 홍이포에 몇번 혼쭐이 났다는 정보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후금은 지금 홍이포로 골치 꽤나 썩고 있다.

후금은 말을 팔면서 판매지와 수량을 통제한다.

그들은 그 말이 명과 조선의 기병에 쓰일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말과 같은 전략물자는 무역통제의 대상이다. 명도 조선에 수출하는 초석수량 및 물소뿔 등을 통제하지 않는가? 후금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후금의 정보는 다양했다.

우리 한국 외교부와 정보부가 지금도 열일하고 있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정묘호란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가도에 주둔한 명나라 모문룡의 군대였다. 광해군과 인조는 그들이 있어 후금을 견제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엔 조선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 거머리일 뿐이다. 그들은 3만의 주둔군에 필요한 수만석의 군량과 보급품을 매년 요구했고 심지어 강제로 가져가곤 했다.

사실, 후금이 지금 당장 쳐들어와도 힘들긴 하지만 방어하는 데에는 자신있었다. 만약, 후금과의 전쟁에서 가도의 명군이 큰 도움이라도 된다면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도의 명군은 도움은 커녕 엄청난 피해만 주고 있었다. 내가 알기에 실제 정묘호란 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젠 그들을 치워야 할 때였다.

우리 영토에 명군을 주둔시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들은 말로 잘 타일러서 갈 녀석들이 아니니까 뭔가 방법을 찾아야했다.

나는 고심했고,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거머리들 01 - 가도 모문룡의 만행

"이것이 가도 모문룡 총병이 보낸 축하 선물인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인정전에 모인 조정대신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명의 모문룡은 1622년 10월에 명군 총병 직을 얻었다. 총병 직을 얻게된 공은 후금의 후방을 공격해서 공을 세웠다고 명에 거짓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후금과 조선은 원치않은 충돌들이 있었다.  

내가 알던 역사지식과도 조금 달랐다. 모문룡의 거머리 짓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엄청난 양의 군량을 탈취했다. 수만석이 아니라 1년간 10만석을 털어갔다. 거기에 조선과 명의 교역에 끼어들었다. 매년 명에서 은자10만냥을 타서 쓰고, 조선에서 10만냥을 뺏어썼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조선에 인삼을 요구했고 조공무역에 끼어 이득을 취했다. 

단순한 이득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안도의 곳곳을 누비며 후금을 자극했다. 요동출신 한인들이 평안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그 한인들은 사르후 전투로 요동을 차지한 후금의 부빈(여진족의 노비 또는 노예를 뜻함)으로 전락했는데 가도의 명군을 믿고 가도와 조선으로 몰려왔다. 

후금의 입장에서는 그 한인들은 후금의 부빈이므로 곧 재산이었다. 이는 후금의 분노를 샀다. 조선 입장에서도 요동한인들이 평안도를 돌아다니며 구걸하거나 관아와 민가를 약탈하니 참기 어려웠다. 그 숫자는 무려 10만을 넘었다. 평안도의 조선백성들이 요동한인들을 피해 다른 지방으로 이주할 정도였으니 말을 다했다.

후금은 이미 모문룡을 축출하고 요동한인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했었다. 그렇기에 광해군은 후금의 침략을 우려하여 모문룡으로 하여금 가도로 이주할 것을 요구했다. 요동출신 한인들도 함께 말이다. 하지만 모문룡과 한인들은 꾸준히 후금과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고 싸움이 생기면 가도로 도망쳤다.

한마디로 모문룡과 요동한인 모두 후금과 조선의 싸움을 부추기는 얄미운 짓만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평안도의 양민들을 수시로 약탈하고 죽였다. 용천과 철산 일대에 둔전을 설치하고 지방관리까지 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걸 보니, 

나는 참을 수 있어도, 조선 백성들은 못 참는다. 

이대로 수십년이 지나면 평안도 이북은 조선 땅이 아니게 될 것이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모문룡이 나를 도발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한 것을 가도의 모문룡이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냈다.

그 선물은 나체의 여인을 상아에 조각해서 만든 '춘의(春意)'라는 누드 조각상이었다

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조정대신들은 격분했다. 그들의 성리학적 사고가 이런 누드 조각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처음엔 그 누드 조각상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며 조정대신들에게 담담히 물었다. 그런데 조정대신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가도의 모문룡에 대한 처분을 함께 생각하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준 천운이 아닌가!

나는 인정전 옥좌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기에 크게 소리내며 웃었다. 웃고 나니 배가 당길 정도로 아팠다. 옥좌에 앉아 모문룡의 선물이 맞냐고 담담히 묻던 나의 갑작스러운 웃음은, 조정 대신들에겐 분노의 광소(狂笑)로 들렸을 것이다. 조정 대신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했다.

처음 계획은 명과 후금 사이를 이용한 이간계를 써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모문룡은 상상 이상의 거머리였다. 

거머리는 숙주의 피를 빨아 몸을 불린다. 그걸 강제로 빼내면 숙주의 피부에 상처가 생긴다. 그래서 거머리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할 생각이었다. 적당하게 소금을 쳐서 말이다.

이젠 거머리를 불에 지져 죽이고,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단, 명에 사신을 보내서 모문룡의 악행을 알리는 것 정도는 해야할 것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명은 훌륭한 교역상대일 뿐만 아니라 후금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걸 위해서 당분간 자주독립국인 한국과 명의 조공국인 조선이란 이중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

나는 즉시 모문룡 제거를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우선 해외원정군 사령관과 김씨 아저씨를 불러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다음으론 조정 대신들과 모문룡의 악행을 자세하게 적은 국서를 명에 보냈다.

마지막으로, 후금에는 고심 끝에 밀서를 보냈다.

명은 육로가 단절된 조선을 가도의 명군으로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통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국서에는 그런 내용이 담겼다. 

명 조정도 조선의 의중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명이 조선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집주인을 나오게 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집 개를 때리면 주인은 나온다.

하물며, 그 주인이 만만하게 여기던 화수분, 아니 호구인 조선이라면.

그 주인은 광분할 것이 분명했다.

화르르!

타닥타닥!

으아악!

압록강 이남의 용천과 철산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다. 

수만의 조선군이 지붕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불사르고 그 지역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압록강 인근 북쪽의 봄은 아직도 몹시 추웠다. 그곳은 조선의 땅인데 조선군이 집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잡아들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경작한 것으로 보이는 봄작물까지 모두 불태웠다. 그들은 추워서 얼어죽거나 굶어서 죽을 것이 뻔했다. 조선군은 망연자실한 그들에게 어떤 자비도 없었다. 그들은 조선군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들 중에 운이 좋은 자들은 해안가에 살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작은 배를 타고 가도에 그 소식을 전했다. 비록 쌀 한톨도 나눠주지 않던 탐관오리인 그라도, 같은 명나라 사람일 뿐만 아니라 명나라 군대의 총병임엔 틀림없었으니까.

가도 모문룡의 막사.

쾅!

명의 총병 모문룡은 탁자를 치며 크게 소리쳤다.

"뭐라? 오랑캐 무리가 조선군복을 입고 활개친다니!"

모문룡은 조선군이 요동한인들을 잡아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모문룡의 입장에서 요동한인은 조선의 쌀과 은을 뜯어낼 미끼였다. 그래서 요동한인에게 줄 쌀을 요구해서 받고는 한톨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래서 요동한인들은 평안도 곳곳을 다니며 구걸하거나 약탈하고, 심하면 관아와 조선백성을 공격해서 죽였다. 최근엔 그 횡포를 피해 떠난 조선백성의 땅을 마음대로 경작했다. 조선이 항의를 하건 말건 모문룡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요동한인 무리가 가도에 와서는 조선군이 자신들의 집을 불태우고 어디론가 끌고간다고 보고했다. 모문룡은 즉시 격분했다. 그것은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위한 미끼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평상시였다면 당장 평안도에 상륙해서 잔혹한 학살을 벌였겠지만, 수군인 모문룡의 군대는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기병을 상대할 전력이 없었다. 그래서 후금과는 싸우는 시늉만 했지 실제론 거짓 승전보고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나마 배50척에 실린 화포는 쓸만했고, 서해에서는 가장 강한 수군이라 자부해왔다. 하지만 육지의 싸움은 별개였다. 불과 1년전만해도 후금 기병 40명에 꽁무니를 빼고 가도에 틀어박혔던 모문룡이었다. 

모문룡은 약한 자에겐 잔혹했고,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했다.

그래서 모문룡은 조선에 강력한 항의를 했고, 당장 사죄하지 않으면 조선을 병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조선의 관리가 와서 하는 말이 후금 오랑캐들이 조선군복을 입고 북방을 휩쓸고 다닌다고 했다.

모문룡은 잠시 침묵했다.

조선 관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르후 전투로 조선군이 괴멸됐고, 그 조선군 노획물을 사용하면 되니까 말이다. 거기에다가 명군이나 후금군 모두 위장전술을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군복을 입고 적진에 침입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거기에, 조선은 이괄의 난으로 북방군 2만명이 갈려나갔다고 들었다. 모문룡이 알고 있는 북방군은 많아도 3만 안쪽인데, 그 중 삼분지 이가 소멸되었다. 그가 아는 조선의 힘으로 1만에 달하는 기병은 없었다. 조선 북방군의 기병이 1천이 되지 않는데 갑자기 1만이라니? 

조선관리의 말이 일견 타당했다. 조선의 북방군은 완전히 괴멸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에 따라 후금의 기병이 마음대로 북방을 휩쓸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압록강의 좁은 물길을 기병이 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북방군이 건재할때도 후금의 기병은 수시로 압록강을 넘었다. 

그런데 북방군이 괴멸되었으니 대규모 침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조선군의 입장에서는 도하가 어려운 대동강과 평양성을 사수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었다. 그렇다고 모문룡 자신이 후금 기병을 치러 평안도에 상륙할 순 없었다. 

모문룡의 가도 주둔목적은 자신의 부귀영화지, 후금과의 전쟁이 아니었다. 가도에 주둔하면서 명과 조선에게 돈을 뜯어내고, 조선과 후금 사이에 전쟁을 조장하는 것이 그의 주둔목적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포함한다면, 명 조정이 원하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후금에 의해 육로가 차단된 조선이 후금에 붙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명과 조선은 해상으로만 사신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오합지졸의 해적과 다를 바 없는 모문룡의 군사로는 후금의 기병에 대적할 수 없었다. 명 조정이 요동한인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올 순 있겠지만, 그런 것이야 얼마든지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동안 수십차례나 거짓 전공보고를 통해 총병직까지 얻었다. 요동한인이 어떻게 되든 그와는 무관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모문룡은 조선관리에게 말했다.

"내가 당장 요동을 공격해서 여진 오랑캐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겠소. 조선을 위해 출병하는 것이니 그에 소요되는 군량과 은을 보내시오. 여진 오랑캐는 이 모문룡에게 처참하게 진멸될 것이오."

그렇게 말한 모문룡은 조선관리를 후하게 대접하고 출병준비 시늉을 했다.

내 생각은 또 빗나갔다.

도대체 이 시대의 위정자들은 국민 보기를 장기 졸로 보는 듯 했다.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온다는 격언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동한인들의 횡액을 이용해 크게 한탕 해먹으려고 하질 않는가?

모문룡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으니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를 둔 것이다. 그의 요량엔 후금과 조선의 해군이 아예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을 터였다. 이젠 그에게 불벼락을 선사할 차례였다. 가도에 상륙할 이유도 없다. 그저 그의 배를 모조리 침몰시키고 가둬놓으면 된다.

난 씁쓸하게 웃으며 조정 대신들에게 명령했다.

"참람하게도 요동에서 온 대국인 중에는 후금의 잔당이 섞여있다고 한다. 대국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서 철저히 구분해서 달리 처분한다. 다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옛말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수년간 공짜로 유리걸식을 했으니 그만한 댓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최근 탐광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평안도 지역엔 좋은 광산들이 있다고 한다. 그 광산을 개발하고 광산에 이르는 길을 닦게 하라. 그래도 남을 것이니 평안도의 길을 한국의 도로처럼 평탄하게 닦도록 하라."

명이 멸망한 이유는 다른 것이 없는 것 같다.

후금이 산해관을 넘어 진격하는데도, 명 백성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고 들었다. 그것은 명의 위정자가 후금의 정복자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명의 폭정에 민심은 이반되고 후금의 침략이 이자성의 난과 같은 혼란한 시기에 있었다. 모문룡도 이자성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만에 하나라도, 모문룡이 요동한인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조금이라도 난처했을 것이다. 나의 신념에 따라 모문룡을 제거하고 요동 한인들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결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요동한인들을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 수도 있었다. 모문룡은 그래도 죽었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모문룡을 제거해주는 것이 오히려 명에게는 커다란 복이 될 것이다. 아마도, 명의 멸망시계는 최소 몇년 뒤로 늦춰질 테니까!

조선의 북방, 평안도의 곳곳에서는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곳에서는 후금의 변발을 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돌을 나르고 있었다. 동시에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땅을 파고 평탄하게 고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후금의 여진족으로 보였다. 하나같이 변발을 했으니 여진족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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