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25)

거기에는 겸사복장과 별장이 호위하고 있었고, 금군2백도 함께였다. 왕의 어가를 호종하는 대신들도 모두 건넜다. 이제 금군8백과 도감군 1천5백이 건너갈 차례였다. 그런데 타고 건너갈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 단 한척도.

마지막 배가 떠난지 벌써 한시진이 지났다. 한시진이면 한강 북단 양화나루에 서너번은 왕복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척도 돌아오지 않았다. 금군은 모두 발을 굴렀다. 그런데 도감군은 무사태평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금위장은 급한 마음에 미처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였다.

다시 배가 돌아오고 있었다. 배가 도착하자 내금위장은 사공들을 죽일 듯 쳐다봤다. 하지만 사공들은 건너편에서 자기들을 잡고 있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내금위장도 급히 배를 타고 가야하기에 일단 참았다. 나중에 물고를 내리라 다짐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금위장의 금군8백과 도감군1천5백은 한강을 건넜다.

양화나루 맞은 편, 한강 남단. 

포승에 묶인 내금위장은 부들부들 떨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익..., 역적놈들. 네놈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내금위장의 주위엔 금군들도 함께 억류되어 있었다. 내금위장은 한강 맞은 편에 도착하자마자 왕의 어가가 있다는 언덕 쪽으로 갔다. 한강 건너편은 물론이고 남단 나루에 내렸어도 그 언덕때문에 왕의 어가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 언덕 뒤쪽으로 갔었다. 

그런데 그 곳은 함정이었다. 금군은 모두 포승줄에 묶여있었다. 도감군은 물론이고 족히 1만은 되어보이는 근왕군이 칼을 꺼꾸로 잡은 것이었다. 제대로 저항은 커녕,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잡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포위한 자들이 10배는 되는 병력이니 싸워도 소용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금위장은 물론이고, 겸사복장과 별장도 묶여있었다. 거기에는 훈련대장이 비릿하게 웃으며 앉아있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말이다. 

"그 역적은 당신이지. 우린 그 역적을 잡으려고 온 사람들이야."

훈련대장은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네 이놈! 널 훈련대장으로 후하게 대우해준 주상전하의 은덕을 배반하느냐?"

내금위장의 그 말에 훈련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을 굳히곤 사납게 말했다.

"내가 그런 용렬한 인간을 단 한시도 왕으로 여긴줄 아느냐? 당장 목을 쳐도 부족한데 국왕전하의 높은 뜻을 존경하기에 참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닥치고 있어. 그럼 아무도 죽지 않아."

"으윽, 역시 서출 놈들이로구나! 네 이놈..."

퍽!

으윽!

털썩!

"쯧쯧, 꼭 매를 벌어요. 매를. 너무 세게 치진 않았지?"

훈련대장은 내금위장을 내려친 군관을 보며 물었다. 그 군관은 머리를 긁으며 머쓱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서출이란 말에 힘이 과했나 봅니다. 죽진 않을 겁니다."

훈련대장은 쓰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추 끝난 것 같았다. 훈련도감군은 모두 충성을 맹세했고, 겸사복과 금군은 모두 제압했다. 왕의 어가는 인근 안가에 감금했고 조정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감시할 병력은 정말 충분했다. 그대로 한양을 병탄할 수도 있었지만 조선지부장의 작전대로 수행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전투가 있었다면 최소 1천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게다가 한양 북쪽 도원수 장만의 군대가 있으니 더욱 문제였다. 도원수 장만 휘하의 군대는 2만이 넘었다. 이괄이 빠르게 진격했기에 1만정도만 예성강 쪽에 있는 것이지, 수일 내로 한양에 2만 넘게 모일 것이 분명했다. 

왕을 사로잡지 못하고, 그들과 전투를 벌인다면? 

훈련대장은 그 생각에 모골이 송연했다. 아마도 동지들의 희생이 1만단위가 넘지 않았을까? 

훈련대장은 이런 작전을 구상한 국왕전하와 조선지부장에게 감탄했다. 어부지리도 이런 어부지리가 없었다.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삼조가 넘을 것이다.

훈련대장은 아까 봤던 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제 사대부들의 가짜 왕은 잡았다.

진짜 우리들의 왕이 곧 온다.

이괄의 난 9 : 혼란 수습

1624년 2월 9일, 경기도 외곽 행주산성.

어떤 노인이 장년과 청년의 두 사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노인은 두터운 양털 겉옷을 입고, 머리엔 소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썼다. 장년의 사내는 조선군 장수인 듯 갑옷차림이었고, 청년은 장수를 따르는 군관으로 보였다. 

그 노인이 추운 날씨가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흘흘, 이제 늙어 죽을 일만 남았누. 내가 소싯적엔..."

노인의 말이 들리자마자 장년의 사내가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급히 말을 끊었다.

"크헐헐, 아버님! 저기 보십시요. 흩어진 병사들 모은 것만 수천입니다. 군량도 부족한데 언제까지 있어야 합니까?"

노인은 말을 못해 아쉬워하는 듯, 혀를 차고 대답했다.

"쯧, 어차피 수삼일이면 끝날텐데 걱정이 많누? 어제도 배로 오지 않았누. 개노미가 딴건 몰라도 계산은 확실하니 믿어도 될 것인데..."

장년의 사내가 노인에게 아버님이라 불렀다. 그 노인은 돌쇠할아버지였다. 

그렇다면 장년의 사내는 그의 아들이고, 청년은 손자일 것이 분명했다. 

장년의 사내는 어려서부터 노인에게 무예를 사사했다. 그래서 착호갑사를 통해 무관으로 발을 디뎠다. 그 후에도 작으나마 공을 세워 정식 품계를 받은지 10년이 넘었다. 그의 아들도 군관이었다.

장년의 사내는 경기도의 서쪽인 고양에서 군호직을 맡고 있었다. 그 군호의 주둔지는 행주산성이고 맡은 군사는 3백이었다. 그런데 행주산성에 보이는 군사들의 숫자는 3백을 아득히 넘어 1천5백은 되어보였다.

"크흠, 밥이야 먹이겠지만 이괄의 수하로 있던 자들이니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흘흘, 저들도 삼남에서 보낸 번상병 아니누? 이윤서를 따라 투항한 녀석들, 중간에 도망간 녀석들이니 별 문제가 없을 거다. 개노미가 아직도 모으고 있어. 저 녀석들도 죄다 집에 가고 싶을텐데 뭔 걱정이누?"

지금 행주산성에 모인 군사들은 이괄의 군대에서 투항했거나 탈영한 자들을 모은 것이었다. 이괄의 반란은 명분이 부족했기에 탈영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오솔길을 통해 남으로 도망치다가 개노미의 조직망에 의해 행주산성과 황해도, 경기의 여러 거점에 모여들었다.

개노미는 그들에게 안전한 귀향을 약속했다. 그들이 관군에 잡히면 관군이 되어 병력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개노미는 관군과 이괄군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전에 잠입시킨 군관들을 활용했다. 이괄이 거병하지마자 이윤서 등이 투항했다. 그 중에서 개노미가 투입한 군관들이 이윤서를 쓰러뜨리고 탈출했다. 그 외에도 다른 군관들도 수시로 군사들을 이끌고 탈영했다. 그 숫자만 5천이 넘는다고 했다.

개노미의 작전은 크게 성공했다. 이괄의 군세를 깎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관군에 편입되는 것도 막았다. 그냥 고이 데리고 있다가, 고향에 보내주겠다고 하니 모두 대환영이었다. 반란을 일으켜도 죽고, 관군에 편입해도 죽을텐데 말이다.

"크흠, 알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믿어야지요. 저는 따로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하시는 일이니 성공하시겠지만 저는 욕심없습니다."

"흘흘, 내 말 잘 들으면 떡이 생길거다. 곧 끝날테니 기다려 봐라. 내 소싯적엔..."

행주산성은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군사들이 북적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초조함과 동시에 곧 고향에 돌아가리라는 기대가 엿보였다.

1624년 2월 9일 같은 시각, 정보국 조선지부.

"삼남 전역과 경기에 선전관을 보내 병력 소집을 금지했습니다. 삼남에서 올라온 근왕군 병력은 전부 우리 인원입니다. 이민국에서 지역을 꽉 잡고 있으니 수원의 경기감사만 빼고 전부 장악한 셈입니다. 뒤쪽의 위협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경기감사의 병력은 모두 임진강 쪽에 나가 있습니다."

정보국 조선지부장은 부하의 보고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솔직히 너무 잘 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걱정했던 것이 멍청했다고 생각될 만큼. 

처음, 이괄의 성격을 파악하고, 서인(西人)들이 이괄을 역모로 몰아 죽이려는 것을 안 이후에, 이괄의 난을 부추긴 것은 그였다. 하지만 이괄이 임진강까지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못했다. 잘 해봐야 예성강에서 관군의 포위망에 갇혀 전멸할 것이라 판단했었다. 

그런데 국왕께선 이괄이 한양에 입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작전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뿐인가? 이괄이 한양에 근접하면 조선왕이 파천할 것이니 거기서 조선왕을 사로잡으라는 작전을 계획하라고 지시하셨다.

조선지부장의 생각에는 관군과 이괄군이 예성강 부근에 몰려있을 때, 한양을 단숨에 점령할 것을 계획해야 한다고 보고했었다. 그런데 국왕전하께서는 이괄이 한양에 입성할 수 있으리라 보고 계획을 마련하라고 하신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어이가 없었다. 

국왕전하께서 이괄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신 듯 했다. 그래서 다각도로 검토하고 이괄의 북방군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국왕전하의 말씀이 옳았다.

이괄은 북방군의 훈련을 오직 기동전에 맞게 훈련시키고 있었다. 공성장비도 없고, 공성훈련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이괄이 안주성, 평양성 등에서 공성에 시간을 빼앗길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다급하게 작전 모두를 재검토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이괄은 지금쯤 한양 북쪽에 도달했고, 우린 조선왕을 사로잡았다. 조선왕을 사로잡고부턴 일사천리였다. 조선왕은 정보국 조선지부 인근의 안가에 붙잡혀있다. 조선왕의 어명은 정보국 조선지부에서 통제하고 있었다. 지금도 경기도를 포함한 삼남 지역 모두에 내릴 어명작업을 하고 있다. 선전관도 우리 인원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이제 이괄이 한양에 입성한 이후가 문제였다.

만약 이괄이 한강을 넘어 조선왕을 잡으러 간다면 일이 좀 복잡해진다. 

이괄이 한양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쉽게 끝날 것이다. 

과연 어찌될 것인가?

그 결과는 이제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리라.  

정보국 조선지부장의 생각은 곧 멈췄다. 생각을 이어가기엔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을 붙잡은 이상, 이미 조선은 한국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부하들의 보고는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1624년 2월 9일, 이민국 조선지부.

"삼남 지역의 주요 항구는 모두 장악했습니다. 부두 근처로 모아둔 식량과 필요물품들을 조선 전역의 목적지로 언제든지 운송가능합니다. 각지의 조창은 모두 폐쇄하고 수량확인중입니다.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까지도 조세면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

이민국 조선지부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하루 종일 각종 보고는 물론이고, 현황파악 등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개노미는 저녁무렵에나 간신히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어제, 2월 8일에 조선왕이 사로잡혔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선왕이 한양을 떠난 직후부터 한양의 곳곳을 장악했다. 파천에 호종하지 않는 조정의 문관들을 모두 잡았다. 그리고 대궐의 궁인들도 이민국의 보호아래에 집결시켰다. 가장 중요한 근왕군은 한양 각지에 "트로이의 목마"처럼 잠입시켜놨다.

"트로이의 목마"는 국왕전하께서 수천년전 서양 트로이전쟁의 고사를 말씀해주시면서 작전명으로 지정하셨다. 작전계획 제1005호는 조선왕을 한강에서 잡고, 한양 내부에 우리 병력을 "트로이의 목마"처럼 심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조선 조정은 어리석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고 불과 14일만에 근왕군 1만이 모화관에 집결한다는게 말이 되나? 임진년에도 근왕군 모인 시기가 한달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빨리 모인 것이면, 뭔가 의심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런 의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노미는 혹시라도 조정의 의심을 사서, 근왕군이 한양에 진입하지 못할 것을 대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기우였던 것이다. 결국 우리 노비들 중에 군대를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근왕군 1만을 모아서 한양 곳곳에 잘 풀어놨다. 

오늘 들어온 보고대로라면, 이괄이 임진강을 넘어서 2월 10일에는 한양에 입성할 것이 분명했다. 이괄이 과연 한양에 남을지, 아니면 한강을 넘을것인지 의문이긴 하다. 어떤 결과에도 대응은 가능하니까 상관없지만, 가급적이면 이괄이 한양에 남기를 원했다. 그래야 관군과 이괄군 모두의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까.

개노미의 하루는 전쟁같았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개노미는 다시 일에 빠졌다.

1624년 2월 9일, 한강 남쪽의 정보국 어느 안가.

그 안가의 내실.

이원익은 잠시 숨을 돌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옆을 보니 박승종과 최명길도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넓은 내실 안에는 10여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조선 각지로 내려갈 어명이 작성되고 있었고, 각지에서 올라온 장계들도 확인하고 있었다.

이원익은 2월 8일 어제 저녁에 조선왕, 아니 능양군과 조정대신들을 만났다. 

만난 자리에서 옥새를 받고 어명의 출납에 관련된 문관들을 골라 데려왔다. 서인들이 극렬하게 반항할 줄 알았지만, 체념했는지 어려움없이 해냈다. 다만, 일부 서인들이 최명길을 노려보며 욕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원익, 박승종, 최명길의 얼굴을 본 도승지 등은 바로 체념한 듯 했다. 그래서 지금 한 자리에서 어명을 작성하고 장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도승지와 승지들에게도 커피를 마시게 해줬다. 처음엔 잘 못 마시더니, 이젠 설탕까지 타서 잘 마셨다.

이원익은 만족했다.

국왕은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다. 이원익은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의 헌법과 권리장전을 열심히 연구했다. 거기에는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형벌은 법에 의해서 집행되었다.

이번에 폐위될 능양군도 목숨은 지킬 것이고, 서인들도 그럴 것이다. 물론 과하게 죄를 지은 사람들은 처벌을 받겠지만, 가족이 노비가 된다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으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국왕이 약속한 2년간의 모든 조세와 공물의 면제도 좋았다. 차후에 조선의 경제대동맥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신뢰할 만 했다. 신분제와 노비제의 철폐도 조선이 감당할 수 있게, 노비들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아주 훌륭했다. 

조선에서 스스로 노비가 되는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였다. 

그런 것을 해결해준다면 누가 노비가 되겠는가? 

이제 한양에 입성하면 가족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일에 빠져 살아야했다. 조선을 완전히 개화시키는 것! 

그것이 남은 일생의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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