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포위됐다!
살고 싶은 자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살고 싶은 자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임진강을 방어하고 있던 이서는 혼란에 빠졌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항왜병들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역적 이괄을 막기 위해서는 임진강을 굳건하게 지켜야했다. 그래서 이귀는 하류, 수원부사 이흥립은 상류, 임진강의 요충지인 청석령에는 이서가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임진강 나루에도 파주목사 박효립이 민병대 수백을 이끌고 있었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항왜병들의 고함소리를 들은 이서는, 그의 부대가 이괄에게 포위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진지를 굳게 지키는 한편, 이괄군에게 포위되었다는 장계를 올렸다. 그러자 관군들은 이서를 구원하기 위해 청석령으로 집결했다.
하지만, 항왜병들이 이서의 진지를 고함 소리로 들쑤시고 있을 때, 이괄은 이미 좁은 산길로 이서의 군대를 우회했다. 그리고 임진강 근처에서 정박한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넜다. 이로써 한양까지 이괄의 앞을 막을 장애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는 한명련이 이괄에게 건의한 계책이었다.
이서의 장계를 받고 급히 출격한 관군은 이괄의 군대가 보이지 않자 주변을 다시 수색했다. 이괄에게 속은 것을 알고, 정충신은 나루터까지 이괄 군대를 추격했지만, 이미 이괄은 임진강을 건넌지 오래였다.
또 이괄을 놓치게 되자, 정충신은 발을 구르며 분노를 터뜨렸다.
임진강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역적 이괄의 한양입성을 막으려던 관군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제, 임진강을 건넌 이괄이 한양에 입성하는 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과연, 운명의 추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1624년 2월 10일 한양, 종로 거리.
"한양 사람들은 절대 동요하지 마시오, 새 임금이 즉위합니다!"
이괄의 기병 선발대는 한양 곳곳을 누비며 우렁차게 외쳤다.
왕의 어가가 떠나고, 도성 수비군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런 한양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 혼란의 와중에 이괄의 기병 선발대 30기가 무혈입성(無血入城)했다.
또한, 한양 곳곳에 방이 붙었다.
"한양 사람들은 각자 자기 생업에 충실하시오!"
"한양 사람들은 절대 동요하지 마시오, 새 임금이 즉위합니다!"
그 방의 내용은 이괄의 기병 선발대가 사방에서 외쳐댄 그대로였다.
한편, 같은 날에 이괄의 본대도 한양에 입성했다.
이로써 조선이 개국한 후, 최초로 반란군에 의해 도성이 함락됐다.
한양, 인정전(仁政殿).
1624년 2월 8일에 왕이 한양에서 파천했다. 그 이틀 후인, 2월 10일엔 이괄이 입성했다. 이괄은 이 날 자신에게 천명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천명대로 이루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아직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흥안군 이제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흥안군 이제'
새로운 왕이 즉위한 만큼,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나섰다.
이전 왕이 파천하면서 기자헌 외 37명이 몰살되는 등 명분없는 숙청때문에, 백성들의 민심은 몹시 사나웠다. 기자헌은 북인이었지만 폐모론에 반대하여 서인과도 가까웠다. 그런데 역적과 내통할지 모른다는 김류의 주장으로 몰살됐다.
이괄의 아우 이수는 이충길 등과 함께 급히 모은 수천명을 거느리고 합류했다. 사로잡힌 수원부사 이흥립도 회유했다. 이괄과 그의 군대는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한양에 멈춰섰다. 그들이 보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한양을 접수했다고는 하지만, 이괄과 그의 수하들은 무관이었을 뿐 탁월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을 적절하게 통치할 수 없었다. 게다가 문관은 대부분 도망치고 하급 문관만 남았기에 한양의 행정을 맡을 능력도 되지 못했다.
이괄과 측근장수들은 행정공백의 대안으로 북인들을 영입하고 창고를 풀어 백성들을 달래고자 했다. 그렇게 한양의 권력공백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자, 들끓던 민심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한 한양의 민심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하나는 이괄을 환영하는 측, 다른 하나는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 관망하자는 측이었다.
그렇게 눈코뜰새없이 바빴던 이괄의 하루가 지났다.
한양에 입성하고 정확히 만 하루가 지났을 때.
장만을 비롯해 정충신이 이끌고 있는 관군이 한양에 도착했다.
이제 그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도원수 장만의 막사.
"도원수 대감! 역적이 도성 안에 들어왔습니다. 주상 전하께서는 충청도로 파천하시고, 삼남의 근왕병은 모화관에 주둔했다 흩어졌습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장만과 여러 장수들은 칼을 잡고 엎드려 절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장만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쳐 외쳤다.
"주상 전하께오서 역적의 난으로 인해 마침내 파천하게 되었으니, 어찌 충성된 자로써 이를 구원하지 않으리오? 기필코 역적 이괄을 멸하고 도성을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분노하던 장만은 다시 말했다.
"지금 당장 계책으로는 2가지가 있다. 한양 백성들이 모두 역적을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하루 이틀 더 지체하면 한양 백성들이 역적의 무리에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양을 공격하는게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즉시 한양으로 진군해 적과 대적하는 것이 첫째 계책이다.
다음은 한양을 포위해 적의 보급로를 끊어 놓고 삼남의 근왕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함께 협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둘째 계책이다."
다시 말해,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의 선택이었다.
도원수 장만은 주위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을 아꼈다. 다른 장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함이었다. 그때 정충신이 장만 앞에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들이 힘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역적이 한양을 침범하고 주상 전하께오선 파천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하지만 형세가 이미 급합니다. 그냥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승패를 막론하고 한양에서 한번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군사를 주십시오! 제가 먼저 나아가 안현(주:현재 서울의 무악재를 말함)에 진을 치겠습니다."
도원수 장만은 정충신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장만은 갑자기 크게 웃으며 정충신의 요청을 수락했다.
1624년 2월 10일, 안령고개 정충신의 진지.
"너희 정예 20명은 즉시 한양의 이곳, 이곳, 이곳의 봉화대를 기습한 후에 점거한다. 적들은 한양에 입성한 후, 해이하게 지내고 있다. 기습에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즉시 출발한다."
"네 알겠습니다."
정충신은 날랜 군사 20명을 선발하여 한양 인근에 있는 봉화대 3곳을 기습토록 명령했다. 그 사이에 안현 고갯길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희건으로 하여금 조총수를 배치하도록 했다.
정충신은 이렇게 안현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해 한양을 압박했다.
관군이 안현을 먼저 점령하여 진을 세우면, 이괄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관군이 안현의 정상에 오르면 한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관군 입장에선 한양 견제를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위치는 없었다.
정충신은 한양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동안 이괄을 추격하며 쌓인 분을 설욕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정충신은 한양을 내려다보며 전의를 다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정충신은 확신했다.
이번 전투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그랬었다.
1624년 2월 10일 밤, 한양 성내.
흥안군 이제가 즉위한 후, 한양 성내는 점차 혼란이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괄의 1만여 병력으로는 한양 성내 치안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었다.
평상시 도성 궁궐에만 금군과 훈련도감군을 합쳐 6천명이 주둔했다. 거기에 별도의 도성 수비군만 5천에 달했다. 순라군이나 포도청은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2만에 가까운 군사들이 도성의 치안을 담당했던 것이기에 이괄의 1만여 병력은 한양의 치안만을 유지하기에도 몹시 부족했다.
또한, 이괄의 병력이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이 아닌 것도 문제였다. 도성 수비군과 순라군은 이괄의 군대가 오기 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삼도에서 올라온 근왕군도 모화관에 주둔했다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이괄의 군사들은 몹시 피곤했다. 영변에서 한양까지, 휴식 한번 없이 전투와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런 군사들에게는 처음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치안유지를 위해 순찰을 강요할 수 있는 장수는 없었다. 그들도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야했다. 그래야 다음 날에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이괄의 군사들은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1624년 2월 10일 밤, 한양 성내.
한양 성내 여러 곳에서는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에 지어진 듯, 아주 번듯한 기와집이었다. 한양 성내에 30칸이 넘는 기와집을 지으려면 무척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런데 그 비싼 집의 각 방에는 수많은 장정들이 눕거나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건장하고 젊은 사내들 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근왕군의 복장을 한 자들이 아닌가?
분명 삼남의 근왕군들은 모화관에 집결했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고향인 삼남을 향했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 삼남의 근왕군이 적어도 수백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지루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함부로 떠들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행동만 봐서는 군기가 바짝 든 정예병으로 보였다. 그들의 어깨와 등에는 파란색과 붉은색 실이 각각 둘러져 있었다.
그들에게도 밤은 찾아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도 하나둘 잠을 청했다. 그리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다음 날 아주 바쁜 일이라도 있어보였다.
한양 성내에, 그런 곳은 한군데가 아니었다.
1624년 2월 11일 아침, 한양 이괄의 막사.
이괄은 장만의 군대가 기습적으로 요충지 안현을 점령한 것을 보고 받고 크게 당황했다. 그는 무장이었기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달아난 왕을 붙잡지도 못한 상황에서, 한양에 오래 머물게 되면 자신에게 전적으로 불리했다.
만약 한양에 머물고 있는 동안, 관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포위한다면?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래서 이괄은 안현의 관군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정충신이 선봉에 있고, 장만은 후방에 있다! 우리가 일부 병력과 항왜병을 이끌고 창의문에서 연서로 삥 둘러 나가면, 북을 한 번 쳐서 관군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도원수가 잡히면 관군이 전의를 상실할 것이니, 단번에 승리할 수 있다!"
이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안현 고개 위의 관군은 이미 파악했습니다. 백성들을 몰아내어 성 위에 올라가 싸움을 구경하게 하고 온 힘을 다해 우리가 공격하면 저 오합지졸들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백성의 민심을 가라앉혀 우리에게 복종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한명련은 이괄의 말에 크게 웃으며 화답했다.
이괄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묘책이었다. 흔들리는 민심을 잡는 데에는 승리만한 것이 없었다. 이괄의 군사가 관군을 대파한다면? 민심의 향배는 그것만으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좋다! 적을 무찌른 후에 아침밥을 먹자!"
이괄은 물론이고 한명련, 그 수하장수들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이괄의 명에 따라 그 수하들은 한양 곳곳을 누비며 크게 소리쳤다.
"안령고개에서 역적 장만, 정충신을 쳐부술 것이다. 한양 백성들은 빠짐없이 성벽에 올라 구경하라!"
연이은 승전과 한양 점령으로 인해 이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괄의 명령대로, 아침밥을 먹기 전에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듯 자신만만하게 전투 준비를 했다.
한양 백성들은 아침밥을 먹다가 성벽 위로 줄줄이 올라갔다. 곧 돈의문에서 남산까지 성벽 위로 빽빽히 한양 백성들로 가득찼다. 이러한 싸움 구경은 한양 백성들에게 즐거운 볼거리였다. 일부 한양 백성들은 전투를 구경하면서 아예 놋그릇과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구기도 했다. 어떤 백성들은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와중에 이괄의 군대는 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