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225)

이중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전군 돌격!"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괄의 '전군 돌격'이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역적 이괄의 군대가 단 한시도 기다리지 않고 마탄 여울목을 건너 돌격했다.

이중로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고 말이다.

챙!

"전군 돌격!"

와아아!

탕!탕!탕!

쉭!쉭!쉭!

이괄은 항왜병들이 강을 건너 돌격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척후를 통해 이중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탄 여울목에 매목하고 있는 병력도 충분히 예측했다. 정석대로라면, 예성강을 우회해서 도하하거나 적을 기만전술로 속여 흔드는 식으로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는 정충신 등이 매섭게 추격하고 있었다. 만일 예성강 마탄 여울목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삼면에서 포위될 것이 확실했다. 포위 뒤에는 불문가지다. 군대는 붕괴되어 몰살될 것이다. 그의 천명도 이대로 끝나리라.

그래서 속전속결로 결정했다.

적인 이중로는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자는 이괄이 정석대로 움직일 것이라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 뻔했다. 그런 이중로의 맹점을 고려해서 기습에 나섰다. 그렇기에 이괄이 아끼는 항왜병을 선두로 기습적으로 도하한 다음, 그들을 돌파하도록 명령했다.

와아아!

탕!탕!

으아악!

챙!챙!

이괄의 항왜병은 이중로 관군의 정면을 급습했다. 관군은 조총과 활을 쏘아댔지만 악귀처럼 달려드는 항왜병에게 겁을 먹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조총과 화포까지 발사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중로의 유일한 희망은 정충신이 화포소리를 듣고 늦지 않게 달려와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중로의 희망은 헛된 꿈이었다.

이괄의 군대는 항왜병의 돌격을 뒤따라 전군이 일제히 강을 건너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강 건너편 이중로의 앞 지점에 교두보를 세웠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격렬하게 공격했다.

이에 놀란 이확과 이인경의 군대가 패주했으며, 이괄의 기세에 눌려 도망쳤다. 아군이 도망치는 것을 본 다른 관군들도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었고, 이괄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중로가 절대로 해선 안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이괄의 군대는 관군과 지근 거리에 접근하게 되었고, 마침내 백병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백병전에서 관군은 이괄 군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중앙의 이중로 군대는 전열이 무너졌으며, 이괄은 이중로 군대를 역포위하기 시작했다.

이중로의 관군은 예성강이란 장벽을 두고 각각의 군대가 좌익, 이중로의 중군, 우익으로 선형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앙의 이중로군이 무너지면서 이괄의 선봉에 역포위된 것이었다.

이괄은 강을 건너 교두보를 확보한 이후, 이중로 본대를 돌파하고 점점 좌익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좌익은 예성강이었기에 밀리면 죽는 상황이었다. 이중로 군대는 훈련과 장비면에서 모두 열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들은 열심히 싸웠다.

이중로는 직접 조총을 들고 7명의 이괄군 군관들을 저격하여 사살하였다. 그러나 이괄의 군대는 지근 거리까지 접근했으며, 이중로는 칼을 뽑아 이괄의 군대와 백병전을 벌였다. 이중로는 점점 예성강으로 밀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이괄의 군대는 역포위를 통해 이중로를 예성강 바로 앞까지  완전히 밀어붙히고 말았다. 이중로의 군대는 강으로 밀렸고 자칫 잘못하면 익사할 판이었다. 

앞에는 이괄의 군대가 창칼을 들고 진군하고, 뒤에는 깊은 수심의 강이 있었다.

마탄 여울목은 이괄의 군대가 점거해서 지키고 있었기에 다른 퇴로는 없었다.

이중로는 자신의 운이 끝났다 생각하여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또한, 이중로의 병사들도 이괄군의 학살을 면치 못했다.

이괄군의 역포위 속에서 이중로의 부하들은 대부분 강에 빠져 익사하거나 이괄군의 창칼에 맞아 사망했다. 

전투가 끝나고 보니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괄의 측근들이 전과를 세어보니 2천이 넘는 시체가 확인됐다.

엄청난 대승이었다.

이괄의 군대는 대승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정충신의 군대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중로가 쏜 화포 소리를 들은 정충신은 행군속도를 최대로 올렸다. 그래서 마탄 여울목에 겨우 도착했는데...

"아뿔사! 늦었구나."

정충신은 깊이 탄식했다.

정충신의 눈에 보인 맞은 편은, 이괄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정충신은 이중로의 군대가 패배했음을 확인했기에 강을 건널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 있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정충신은 곧 화포와 활을 쏘기 시작했다. 이괄도 관군에서 노획한 화포로 응사했다.

그렇게, 지루한 화포 사격이 계속되던 때였다.

이괄이 측근 장수에게 명령했다.

"이중로를 비롯해서 관군 장수들의 목을 베어라! 그걸 저들에게 가져다줘라."

"네 알겠습니다."

쓱!

탁!

머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사망에서 들렸다. 이괄의 군관 하나가 그걸 들고 정충신의 진에 가져다주었다. 이괄은 정충신 군대의 사기가 떨어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충신은 남이흥을 바라보며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허허! 남장군, 내가 이 장수들과 안면이 있는데 모두 처음보는 얼굴들입니다. 틀림없이 이름없는 군졸의 머리입니다. 적이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려고 이런 가짜를 가져왔습니다. 참 용렬한 짓이군요. 역적 이괄의 무운도 이제 다 끝났나 봅니다."

남이흥도 정충신의 의도를 알았기에 함께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충신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이중로 군대가 괴멸되면서 병력도 열세였다. 그래서는 도저히 강을 건너 공격할 수 없었다.

결국 정충신은 역적 이괄의 군대가 예성강을 건너 한양을 향하고 있다는 장계를 급히 조정에 보냈다. 황주전투에 이어 마탄 여울목 전투까지 관군은 모두 참패한 것이다. 정충신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괄보다 뒤쳐진 상황에서 그를 추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정충신의 흔들리는 마음과 달리, 예성강 깊은 물은 변함없이 도도하게 흘렀다.  

저녁 늦은 시각, 한양 인정전(仁政殿).

대전은 격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역적 이괄의 군대가 예성강을 건넜다는 장계가 도착한 다음, 즉시 왕의 파천이 거론되었다. 왕은 우선 충청도 공주로 들어가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 후에는 전라도 전주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조정은 그런 와중에도 훈련도감 소속 정예병 1천5백을 선발해 북으로 보냈다. 

조정 대신들도 가족들을 피난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정이 이런 상황이니 한양 북쪽을 방비하는 도성 수비군도 우왕좌왕했다. 수시로 소요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도성의 질서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훈련도감을 책임지고 있는 훈련대장이 가족들과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식에 왕은 말을 잃었고, 조정 대신들은 어쩔 줄 몰랐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왕이 훈련도감의 부장을 훈련대장으로 삼았다. 새로운 훈련대장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파천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다음 날, 왕의 어가는 도성을 떠나 남쪽을 향했다.

금군과 훈련도감군이 묵묵히 왕의 어가를 호위했다. 

아아! 

임진년에 선조가 의주로 파천한 이후, 불과 32년만에 또 다시 왕이 파천했다. 

백성들은 격한 분노에 휩싸여 창경궁에 불을 질렀다. 

한양 곳곳에선 폭동이 발생했고, 도성 수비군도 이를 막지못해 급히 도망쳤다.

이제 한양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누가 과연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까?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끼룩끼룩!

철썩!철썩!

쏴아아!

조선 반도를 감싼 삼면의 바다.

그 중 서해에서는 새로운 물결이 힘차게 넘실거렸다.

수많은 거선(巨船)들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고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 거선들은 경기수영이 있는 교동도에 정박하곤, 끝없이 사람과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그 끝이 없을 것 같은 일도 어느 새 끝난 듯 했다.

경기수영의 접안시설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 기함(旗艦)이 보입니다!"

그 목소릴 들은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떤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

하지만 단 하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미지의 것에 대한 희망이 넘실거렸다.

마치 저 대양의 거센 파도처럼 말이다.

결국,

그가 돌아왔다!

지도1 - 이괄의 진격로

지도2 - 마탄 전투의 시작

지도3 - 마탄전투의 종결

이괄의 난 6 : 한양함락, 단 하룻밤의 꿈

임진강 북쪽, 청석령 인근.

와아아!

와아아!

너희는 포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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