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의 군대가 황주 들판에 들어섰습니다. 저희도 사흘 거리로 따라잡았습니다. 정충신에게는 진을 치고 대기토록 명했습니다."
장만은 전령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충신은 그의 명령에 따라 황주 들판에 진입했고, 그곳에 진을 칠 것이다. 이미 박영서, 유효걸, 장돈 등에게 정충신의 뒤를 받치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유효걸은 정예기병을, 장돈은 조총병 1천을, 선봉장으로는 무예가 뛰어난 박영서를 수천병사와 함께 보냈다. 정충신에게도 군사를 더해주어 5천에 달했다. 이괄의 군세가 1만 정도이니 병력 자체는 비슷했다.
오히려 이윤서 등의 투항으로 이괄의 군세가 지속적으로 흩어지고 있는만큼, 한번 전투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될 것이 분명했다. 예상대로라면 내일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장만의 본대는 그 승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결과는 뻔했다.
그래서, 도원수 장만은 힘주어 명했다.
"역적 이괄을 황주 들판에서 진멸한다. 정충신에게 군령을 전하라!"
장만의 명령에 전령은 고개를 숙이며 막사를 떠났다.
막사 안의 장수들도 승리를 확신했다.
군심이 어지러운 군대는 흩어진다. 제대로된 명분도 없이, 천명을 받았다고 해서 거병을 하다니? 이괄이 미친 것은 분명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아무리 무고를 당했다한들, 그 가능성을 제대로 봐야했다.
장만은 속으로 단언했다.
이제 단 한번의 전투로 역적 이괄의 목은 떨어질 것이라고.
1624년 2월 4일, 황주 들판.
황주전투의 날이 밝았다.
정충신은 좌익에 유효걸의 정예기병을, 우익에는 장돈의 조총병을 배치하였다. 우익에 있는 장돈의 조총병 옆에는 조시준의 돌격기병 2백을 매복해 놓았다. 조총병의 엄호 뿐만 아니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좌익과 우익의 가운데에는 선봉에 박영서를, 그 뒤에 본대를 두었다. 그 본대는 정충신이 맡았다.
좌익의 정예기병은 이괄의 우익이 중군을 돕지 못하도록 기만할 것이고, 우익의 조총병은 이괄의 좌익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익의 조총병은 조시준의 돌격기병을 통해 엄호하면 된다. 그렇게 좌우익이 자기 할 일을 하는 동안, 선봉 박영서와 정충신의 본대가 이괄의 본대를 돌파하는 것이다.
선봉 박영서가 이괄의 본대를 돌파하면 정충신의 본대가 전과를 확대하며 포위섬멸하는 작전이었다. 이괄의 군세는 이윤서 등이 투항했을 때처럼 곧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정충신이 이끄는 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이괄의 부하장수인 허전, 송립이 1천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들이 투항하는 동안에도 이괄의 군대는 아무 것도 못했다.
정충신이 예상했던 대로 일은 쉽게 풀려가는 듯 했다.
그래서 정충신이 이끄는 관군들은 경계심이 풀렸고,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허전, 송립의 1천여 군사들이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관군의 앞에 이괄의 군대가 정면으로 짓쳐들었다.
투항한 군사들에 의해 관군의 경계가 느슨해졌는데, 갑작스럽게 이괄의 군대가 기습했다. 허전, 송립의 1천여 군사가 앞을 가리고 있어 관군의 전방이 부산한 상태였기에 이괄의 군대가 접근하는 것도 잘 보이지 않았었다.
정충신의 관군은 대경실색했다.
이괄의 제일 선봉은 항왜병이었다.
항왜병들이 일제히 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박영서의 선봉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항왜병의 갑작스런 돌격으로 인해 선봉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고, 군대는 우와좌왕하며 그 전열에 틈새가 생겼다.
그때, 이괄은 전군에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허전, 송립의 군사 1천도 이괄의 본대에 합류해 함께 들이닥쳤다.
정충신은 좌익과 우익의 견제를 통해 선봉과 중군이 전력을 집중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래서 이괄이 전군을 그대로 진격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관군은 혼란에 빠졌고, 이괄군의 기세에 완전히 눌렸다.
예상치 못한 이괄군의 일제공격에 선봉군 박영서는 그대로 전열이 와해되어 패주했으며, 유효걸의 정예 기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장돈 휘하의 조총병 1천은 이괄군을 향해 계속 조총을 발사했으나, 이괄군은 두려워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이에 장돈의 군대가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전열이 완전 붕괴됐다. 이를 보다 못한 정충신은 결국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박영서의 선봉군과 유효걸의 정예기병은 이괄군에게 점차 포위당했으며, 후퇴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선봉장인 박영서는 자신의 칼로 이괄군을 하나씩 베어넘겼다. 그러나 곧 힘이 다하자 이괄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너는 부원수가 되어 변방을 방어하는 직책을 맡아 임금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받았거늘, 무엇이 부족하여 반역할 생각을 하였느냐!"
그러나 이괄은 아무 말이 없었고, 이괄의 수하들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 박영서의 목을 베었다. 박영서는 손으로 목을 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선봉군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죽자 무기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좌익의 기병대장 유효걸은 자신의 하인과 함께 몽둥이를 들고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달아날 틈이 보이자 유효걸은 그 틈을 타서 도망쳤으며, 하인은 목이 잘려 죽고 말았다.
그 와중에 정충신과 장돈의 부대는 돌격기병의 엄호를 받으며 간신히 후퇴했다. 좌익의 기병부대와 선봉군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고 붕괴되었으니 대패도 이런 대패가 없을 정도였다. 정충신은 이 하룻밤 사이에 2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정충신은 밤새도록 도주하고서야 간신히 잔존 병력을 추스를 수 있었다.
1624년 2월 6일
털썩!
도원수 장만은 믿을 수 없었다.
정충신의 패전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군대를 물렸다. 정충신의 패전에 따라 잔존 병력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이괄에게 각개격파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군의 재정비였다.
장만은 우선 황주 후방으로 후퇴하여 흩어진 병력을 재정비했다. 정충신의 잔여병력도 곧 합류했다. 재정비 과정에서 2천이 넘는 병력이 손실된 것을 파악하고, 황주전투의 패전을 조정에 알렸다. 여기에 황주에서의 참패는 도원수인 자신의 책임이고, 정충신은 잘못이 없으니 용서해달라는 보고도 덧붙였다.
도원수인 그가 보기에 정충신을 제외한 장수들은 그 재주가 미흡했다. 정충신의 능력만큼은 의심할 수 없었기에 다시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패전의 멍에는 자신만 지기를 원했다.
장만은 정충신에게 다시 이괄을 추격하라고 명령했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예성강과 임진강 방어선, 딱 2개만 남았다. 예성강 방어선에는 이중로가 3천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거기에 황해감사 임서가 1천8백 군사를 몰아 진격하고 있었다. 거기에 정충신의 5천 군사가 이괄의 뒤를 쫓고 있었다.
도원수 장만의 생각대로라면, 이괄은 예성강을 돌파해야했다.
이괄의 뒤에는 정충신이 추격하고 있었으며, 앞에는 예성강과 이중로가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측면에는 황해감사 임서가 추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괄은 삼면에서 관군에 포위당한 형세였다.
지금쯤 한양 조정에서는 황주전투의 패전소식이 도착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이상 밀려선 안된다.
장만은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같은 시각, 한양 인정전(仁政殿).
왕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우리에겐 정예병이 있거늘, 어찌 역적의 무리가 이 강토를 마음대로 유린하게 냅두는 것인가!"
대전에 모인 조정 대신들도 패전의 충격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정충신이 황주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에 조야(朝野:조정과 민간)가 경악했다. 이로 인해 대신들 일부는 몰래 가족들을 피난시켰으며, 한양의 민심은 흉흉했다. 대사헌 이귀는 자신이 직접 임진강을 방어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왕이 보기엔 모두 미덥지 않았다.
그래서 고성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동안 조정 대신들은 계속 듣기 좋은 말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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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삼남의 근왕군이 차질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전하! 도원수 장만의 군세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하! 역적 이괄의 군대가 부하장수들의 투항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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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의 듣기좋은 말대로라면, 역적 이괄의 목은 벌써 떨어졌어야했다.
그런데, 오늘 정충신의 처참한 패전 소식이 들리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과 조정 대신은 소리없이 탄식했다.
그리고 격론끝에, 다시 정충신을 믿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날, 한양의 밤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1624년 2월 7일, 늦은 저녁.
이괄의 군대는 예성강 상류의 북쪽에 당도했다.
이괄의 눈에는 예성강 넘어 남쪽에 이중로의 군대가 보였다.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뒤에는 정충신이 추격하고 있었으며, 앞에는 예성강과 이중로가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측면에는 황해감사 임서가 추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괄은 삼면에서 관군에 포위당한 형세였다.
아무리 황주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올랐다고 한들, 삼면에서 포위된 상태로 전투를 하면 질 것이 뻔했다. 관군의 의도도 삼면포위일 것이다. 예성강의 좁은 여울목을 막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후면과 측면을 몰아 포위한다면? 이괄의 군대는 도주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괄은 빠른 기습공격을 통해 이중로의 군대를 분쇄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지금.
챙!
이괄은 칼을 뽑어 예성강 맞은 편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전군 돌격!"
와아아!
탕!탕!탕!
쉭!쉭!쉭!
지도1 - 황주전투의 주변지리
지도2 - 황주전투 배치도
지도3 - 이괄의 이동, 예성강 방어 및 삼면 포위
이괄의 난 5 : 마탄전투와 왕의 귀환
예성강 마탄 여울목, 남쪽 방어선.
황해도방어사 이중로는 침중한 표정으로 예성강 너머 북쪽을 바라봤다. 전령의 말에 따르면 역적 이괄의 군대는 불과 몇시진 후면 예성강 건너편에 도착할 것이다. 그에 대비해서 3천의 병력을 끌고 왔다.
하지만, 급하게 동원한 그의 군대는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오합지졸이었다. 도원수 장만은 그걸 감안해서 안전하리라 생각되는 후방에 이중로의 군사를 배치한 것이었다. 역적 이괄의 군대는 대동강을 건너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괄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었다.
"영감! 역적 이괄이 이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마탄 여울목의 얕은 물을 건너 척후병이 뛰어오며 말했다. 이괄의 군대가 불과 한두시진 거리에 있다고 말이다. 이중로는 탄식했다. 그의 군대는 훈련상태도 형편없고, 이확, 이인경 등 잡다한 군사들이 뭉쳤기에 지휘체계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합지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성강이라는 천혜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탄 여울목은 수심이 얕기에 사람이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이 매우 협소하였고 그에 따라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막을 치기에 유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어선에 조총과 화포를 배치했으며, 시간끌기에 최선을 다하기로 사전 계획했다. 이괄의 뒤에는 정충신 등의 정병들이 추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중로가 마탄 여울목의 방어선을 굳게 지키는 동안 협공한다면 대승을 이룰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오합지졸의 군사로 이괄의 군사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이중로는 다시 생각했다.
이괄은 반정 2등공신, 자신은 반정 3등공신이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았던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최근 역모고변이 잦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예와 의로써 잘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때 였다.
예성강 너머에서, 이괄의 군대가 나타난 것이.
황해도방어사 이중로는 역적 이괄의 군대를 끝까지 막아내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수하들에게 계획대로 수비에 전념할 것을 명령했다. 이중로의 눈에 강 건너편의 이괄이 보였다. 아마도 예성강 마탄 여울목의 형세를 살펴보려는 듯 했다.
이중로의 눈에 이괄의 고심은 깊어 보였다.
장수치고 강을 함부로 건너 공격하는 것의 위험성을 모르는 자는 없다. 이괄은 나름 뛰어난 장수였기에 그것을 잘 알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기만전술을 쓸 것이 분명했다. 그 기만전술을 통해 마탄 여울목을 우회하거나 방어선의 혼돈을 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