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225)

작년의 서인반정에는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기에 조용히 있어도 아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괄의 반란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 자체만으로 반란에 가담하는 것으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다. 

부임지인 안주에 가만히 있어도 반란이 진압된 후에는 이괄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국문이 있을 것이다. 그 국문은 역적모의와 반란가담여부의 진실을 알기보다는 의심가는 자를 때려죽이기 위함일 것이다. 

안주의 군사를 이끌고 움직여도 문제였다. 조정에서 자신과 이괄의 친분을 의심하는 만큼, 절대로 군대를 움직이라는 명령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 명령없이 군대를 이끌고 부임지를 떠났다는 것은 죽음 뿐이었다. 결국 혼자서 백의종군하거나 자결해야했다.

그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억겁같은 일수유가 지나고, 정충신은 벌떡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살 길은 도원수 장만에게 백의종군하는 길 뿐이라 생각됐다. 안주는 인근 수령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면 족할 것이라 생각했고, 즉시 안주를 떠나 도원수 장만이 주둔한 평양을 향해 단기필마로 달렸다.

안주목사 정충신! 

그는 달리는 말 위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과거를 떠올렸다.

천민출신으로 임진왜란을 거쳐 천신만고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 결심했다. 

이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영변, 부원수 이괄의 막사.

"부원수 대감! 어찌 이러시는게요? 급한 군사회의가 있다더니 거짓인거요?"

"이건 아니외다. 제발 풀어주시오. 내 입 꾹닫고 숨만 쉬고 있으리다. 제발..."

"하하하. 소관은 평소 부원수 대감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

"..."

영변 인근의 고을 수령들은 부원수 이괄이 보낸 '긴급 군사회의'에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단칼에 처치한 후, 반란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몇몇은 이괄에게 투항했고, 투항하지 않은 자는 감금되었다.

그때 이괄과 그의 측근장수들이 주목한 인물이 막사로 들어왔다.

구성순변사(龜城巡邊使) 한명련(韓明璉)

그는 폐주 때 순변사를 역임했고, 반정 후에는 구성순변사(龜城巡邊使)로 보임되어 근무 중이었다. 임진왜란 때부터 역전의 명장으로 전략과 지휘자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무고로 처벌을 받게 되어 금부도사에 의해 한양으로 압송 중이었다. 

이괄은 자신이 아끼던 항왜병을 보내 한명련을 구출하도록 했고, 항왜병은 그 명에 따라 금부도사를 죽이고 한명련을 구출해내고 말았다. 이런 한명련의 등장에 이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한명련은 벽력같이 분노의 일성을 토했다.

"내 억울히 잡혀갔는데, 그냥 죽든 반역해서 죽든 똑같은 죽음이오!"

이괄과 측근장수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또한, 이괄은 한명련의 손을 잡으며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한명련에게 막사의 상석에 앉도록 했다. 한명련은 이에 감사함을 표하곤 다시 말했다.

"부원수 대감께서 큰 일을 이루시려거든 즉시 한양으로 달리셔야하오. 아직 우리의 거병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니, 발빠른 자를 가려뽑아 전투를 피하고 출기불의(出其不意)로 왕을 붙잡아야하오. 그것만이 살 길이오."

한명련은 독기가 서린 눈빛으로 이괄은 물론 측근장수들을 돌아봤다. 이괄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삼남에서 가려뽑은 장정들을 최고의 정예병으로 훈련시켰소. 공성(攻城)은 아예 훈련도 하지 않았지. 쓸데없는 전투를 피하고 한양으로 향하겠소이다. 걱정마시오."

이괄은 한명련과 측근장수는 물론이고, 모든 군관들에게 술과 고기를 나눠주며 호궤했다. 그것으로 그들은 잠시나마 반란의 성패에 대한 불안함을 잊고 싶었다. 아직 반란의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 성공가능성도 높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이괄에게 포로가 되었던 영변 인근의 수령 남두방이 은밀하게 탈출했다. 

남두방은 탈출 즉시 남으로 달렸다.

평양성 도원수 장만의 막사.

그 안에서는 장만의 고성이 터졌다.

"네 어찌 내 명령도 없이 주둔지를 이탈하였는가? 마땅히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안주목사 정충신은 촌음을 아껴 단기필마로 달렸고, 방금 평양성에 도착했다. 도착함과 즉시, 도원수 장만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주둔지를 이탈했음을 고했다. 장만은 정충신을 꾸짓으며 참형을 운운했다. 그에 정충신이 애걸했다.

"도원수 대감!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적의 계획은 빨리 한양으로 진군하려는 것이기에, 차라리 외딴 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보다는 평양에 와서 도원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생각하였나이다! 안주는 인근 고을 수령에게 인계하였습니다. 역적 이괄이 공성(攻城)으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원수 장만은 침묵했다.

불과 한시진 전에 평안병사 남이흥에게서 이괄의 반란을 보고받았었다. 남이흥은 영변 인근의 수령이었던 남두방이 탈출하여 고변한 내용을 즉시 보고했던 것이다. 

장만은 크게 놀라 평안도는 물론이고 북방 전역의 군사를 소집했다. 북방 전역의 군사는 3만에 이르렀으나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북방군에서는 이괄의 1만3천명이 가장 많았고, 평양성 도원수 장만 예하에 5천이 두번재로 많았다.

도원수 장만의 명령은 곧바로 북방 각지로 퍼졌으나, 거리와 시간상 그들의 신속한 합류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때 안주목사인 정충신이 단기필마로 달려왔으니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장만은 정충신이 이괄과 친분이 있으므로 역적 이괄에게 가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홀로 평양성에 와서 목을 내밀고 있으니 그를 의심하긴 어려웠다. 잠시 후, 결심을 굳힌 장만은 정충신을 막하에 배속하고 지시를 내렸다.

"안주목사 정충신은 나를 도와 역적 이괄을 잡는다. 안주성에는 정예 100명을 따로 보내서 방비를 굳건히 하겠다."

"흐흑, 도원수 대감! 감사합니다.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렇게 정충신이 장만에게 울며 절하는 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며 전령이 도착했다. 그 전령의 보고는 도원수 장만의 막사를 충격에 빠뜨렸다.

"도원수 대감! 역적의 무리가 청천강을 건너 개천에 진입했나이다!" 

정충신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과연 이괄은 안주를 치는 것이 아닌, 안주를 우회하려던 것이었다. 청천강을 건너 안주를 우회한다면 머지 않아 평양이었다. 도원수 장만이 그나마 안심하고 있던 이유가 사라졌다. 

역적 이괄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천강과 안주, 대동강과 평양, 황주, 예성강, 개성, 임진강을 차례로 지나야했다. 그곳에는 각기 방어병력이 있었고, 그 성(城)과 방어군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병력을 집결시키면 충분히 방비가 되는 것이었다.

(주:지도1, 2 참고바람)

그런데 그런 방비의 한 축이 무너졌다. 이괄의 군대가 평양까지 우회해서 내려간다면, 그 아래는 방어병력이 부족했다. 장만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탁자를 잡고 신음했다. 그리고 명령했다.

"여봐라! 즉시 사방으로 군사를 풀어 이괄의 위치를 확인해라. 다시 북방 모든 고을에 전령을 보내서 이괄이 남하한다는 사실을 알려라. 그리고 이괄의 뒤를 추격하라고 명한다. 우리도 시간이 없다. 즉시 출병준비에 돌입한다. 한양에도 자세한 사항을 보고한다."

"예 알겠습니다!"

푸하하핫!

인정전(仁政殿) 안에서 뜻하지 않은 앙천대소(仰天大笑)가 터져나왔다.

왕이 국정을 살피는 대궐, 그 엄중한 곳에서 감히 웃다니.

하지만 인정전 안의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건 당연했다. 그가 왕이었으니까.

왕은 크게 웃다가 숨이 차서 꺽꺽거리며 눈물까지 흘렸다. 아무도 웃지 않고, 아무도 울지 않는데 그만 웃고 울었다. 그런 왕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할 수 있었다. 

"그래, 다시 말해보라."

왕의 말에 도승지가 앞으로 나섰다.

"역적 이괄이 금부도사 고덕상과 선전관을 참하였습니다. 또한, 항왜병으로 하여금 다른 금부도사가 압송하던 한명련을 빼내었습니다. 그 후에 참람되게도 '천명(天命)'을 운운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역적의 격문(檄文)을 받은 평안도 수령들과 역적 이괄의 거병을 확인한 도원수 장만이 급히 보고했사옵니다."

보고를 마친 도승지는 왕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왕은 다시 도승지를 재촉하는 눈짓을 했다. 그러자 도승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역적 이괄은 역적 한명련과 합세하였고, 안주목사 정충신과 절친합니다. 그들에게 격문을 보냈고 합세하자고 회유했습니다. 허나 정충신은 안주를 홀로 떠나 도원수의 막하에서 죄를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역적 이괄은 한양으로 남하하고 있으며 그 길에 있는 고을들을 약탈하여 보급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변대도호부 관아를 점령했고, 영변행궁에 들어가 무기 등을 탈취했습니다. 나머지는 장계에 올린 그대로입니다."

탁!

왕은 장계를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도원수 장만에게 역적 이괄을 막으라 전하라. 삼남의 근왕군을 속히 모집하여 올리라 이르고, 훈련도감의 정병을 가려뽑아 도원수에게 보내라. 영의정을 도체찰사로 삼는다. 성심을 다해 역적을 멸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왕은 고개를 숙인 조정대신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특히, 김류를 비롯해서 이귀 등 서인 당여들의 모습이 불쾌했다. 이처럼 노골적인 역모고변을 견딜 자가 누가 있으랴. 왕은 공신이었던 이괄이 그러리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현실을 부인할 순 없었다. 왕은 굳은 얼굴로 소매를 치며 자리를 떴다.

인정전을 가득 채웠던 조정대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히힝!

저벅저벅!

투르륵!

청천강을 건넌 이괄의 군대는 선봉, 중군, 후군의 3개 제대로 나뉘어 진격하고 있었다. 청천강을 지키는 주요 방어지인 안주를 우회했기에 제대로 전투 한번 하지 않았다. 이괄의 군대는 산 속의 작은 길을 골라 남하했다. 

이괄의 입장에서는 신속하게 한양으로 진격해서 왕을 사로잡아야 했다. 안주성, 평양성을 취하려고 공격할 시간이 아까웠다. 게다가 이괄의 군대는 공성장비가 없고, 공성훈련도 하지 않았다. 

이괄은 영변에 주둔한 이래, 의주 및 안주 등의 주요 방어지를 지원할 목적으로 기동훈련에 매진해왔다. 그 기동력으로 산길을 뚫고 근처 관아들을 기습했다. 거기에서 군량과 무기를 보급했다. 이렇게 행군해서 평양도 우회할 작정이었다. 

안주목사 정충신은 아까운 인재였다.

이괄은 그와 친분이 있었기에 가장 먼저 격문을 보내서 회유했다. 그런데 정충신은 그를 거부하고 평양의 도원수 장만에게 갔다. 정충신의 군사적 재능을 잘 알고 있던 이괄은 떨떠름했다. 정충신도 서인들의 무고를 당한 사람이라 그에게 합류하리라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괄은 정충신의 능력을 잘 알았다. 그래서 아까웠던 것이다.

혹시 정충신이 안주에 남아 성을 지킬 것이라 기대했었다. 괜히 반란에 가세한다고 의심받을까봐서라도 그렇게 안주에 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충신은 평양을 선택한 것이다. 안주만 우회하면 정충신처럼 능력있는 무장을 만날 일이 없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깨졌다.

"다른 장수는 내 상대가 안된다. 다만 정충신 이 사람은 결코 가벼이 보지 말라."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면서 측근 장수들에게도 정충신을 경계하도록 말했었다.

이괄은 내심 혀를 차며 군사들의 행군을 독려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듯 마음을 다잡았다.

'나에겐 천명이 있다. 그것 뿐이다.'

이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지도1 - 북방의 강과 주요 방어지역

지도2 - 북방의 주요 군사배치상황

이괄의 난 3 : 암중모색

한밤의 교동도, 경기수영 관아.

"박진사! 대체 왜 이러시는게요? 이거 말로 합시다. 말로..."

경기수사는 관아 한 가운데에, 팔과 다리가 묶인 채 의자에 앉혀져 있었다. 관아의 위에는 박진사가 수군장수의 복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경기수사의 관아는 박진사와 그 수하들이 전부 장악했다. 경기수사 예하의 부하들도 거기에 동조한 자가 대부분이었다.

"어허! 박진사. 이건 역모요! 하늘이 무섭지 않소? 나를 풀어준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너희들도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날 풀고 내 뒤에 서라. 그렇지 않으면...."

딱!

퍽!

으으윽!

"거 말 많네. 네 놈이 군자에서 빼돌린 게 얼마냐? 군관은 말할 것도 없고 격군들도 월봉을 받아본지 오래 전이다. 당장 물고를 내지 않는 것도 고맙게 여겨. 시끄러우니까 재갈 물리고 가둬놔라. 물만 주는거 잊지말고."

"네 알겠습니다!"

수하들의 우렁찬 대답과 함께 경기수사와 그의 심복들은 감영 깊은 곳에 감금되었다. 박진사는 물론이고 그 수하들도 조선 수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누가 기존 경기수영의 군사이고 박진사의 수하인지 알 수 없었다.

"자자! 이제 우리 할 일을 한다. 강화감영도 이미 우리한테 들어왔다. 시기가 엄중한 만큼, 우리에게 철저하게 심복한 자가 아니면 전부 감금하라. 여기는 섬이니 나루터를 위주로 감시하고 물길을 엄중히 관리한다. 곧 국왕전하께서 오실 것이다. 1등공신은 우리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하하핫! 그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흐흐흐, 이번에 제 아들 놈이 해군장교로 출병했답니다. 거기에 국왕전하께서 친정하시는데 두려울게 뭡니까?"

"맞습니다. 경기수영의 군사들에게 밀린 월봉에 쌀섬을 추가로 줬더니 모두 충성하겠다고 합니다. 교동도와 강화도는 관군과 백성들에게 쌀과 물자를 넉넉히 풀었습니다."

"강화도 양반이란 작자들은 저희가 전부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왕이 강화도로 파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고생할 일도 없을테니까요."

"하하!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데?"

"아아, 그런가? 크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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