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음 달에 오겠소."
만주 요동반도 남쪽 해안 근처에서는 명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상인이 후금의 관리와 막 거래를 마쳤다. 호사스러운 복장에 살이 찐 얼굴은 영락없는 상인의 모습이었다. 그 상인은 후금의 관리에게서 조선군의 무기와 갑옷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아마도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이 노획한 조선군의 무기와 갑옷일 것이 분명했다.
그 상인은 후금의 관리가 마차에 싣고 온 짐들을 해안에 내리고, 다시 작은 단정에 실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반복해서 작업한 끝에 모든 짐을 배에 올릴 수 있었다. 모든 짐을 배에 실은 상인은 곧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갔다. 상인은 잠시 요동반도를 바라보다가 배의 선실로 들어갔다.
"함장님 이제 좀 쉬겠습니다."
"고생했네. 이젠 대국어(주 : 중국어, 명나라말)가 입에 붙었구만. 한국어를 말해도 명나라 사람인거 같으니."
"흠흠, 이제 여진어도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후금과 거래하려면 대국어가 더 좋습니다. 그들도 물건을 어렵게 떼어온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도 그 대국인 복장은 익숙해지기 힘들군. 일단 쉬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깨우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물건은 조심히 옮겨야하니 한밤 중에 접선해야하네. 푹 쉬게."
"네 함장님! 수고하십시요."
명나라 상인으로 보이던 그 상인은 놀랍게도 한국인인 것 같았다. 함장도 같이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진정한 정체는 한국 외교부의 작전을 대행하는 대한무역주식회사 직원들이었다.
한국 정부는 사르후 전투 이후부터 여진족 후금의 말, 소, 양 등을 사들였다. 후금은 식량이 부족했고 한국 정부는 말과 소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 말과 소들은 조선의 모처로 흘러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후금이 조선군에게서 노획한 것들을 대량 구입해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후금 관리는 그 상인이 한국 무역주식회사 직원임을 꿈에도 몰랐다. 단지, 명나라의 후금교역금지를 어긴 밀무역상인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저녁 노을이 짙어지는 시간, 요동반도가 아스라이 보이는 서해바다 위에선 대한무역주식회사 배 3척이 바삐 움직여 먼 바다로 사라지고 있었다.
◆ ◆ ◆
한양 북촌, 어느 집의 사랑채.
"외직(外職 : 한양을 제외한 지방관직)은 이번에 검토한대로 합시다. 서얼들이 다소 많기는 하나, 그들도 공명첩으로 외양은 갖췄소. 게다가 그들이 이리 성의를 보이니 그 얼마나 갸륵하오. 한두해 정도 놔두다가 다시 성의를 보이는지 봅시다. 그때 바꿔도 될거요."
"물론입니다. 대감!"
"그런데 서얼들이 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니 의아하군."
"흐흐, 임진년의 전란통에 한몫 챙겼겠지요. 그것들이 원래 우리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이렇게라도 거두어들여야지요."
"맞아요 맞아. 그 천한 것들이 외직에 무관이라곤 하나 번듯하게 자리를 줬으니 불평은 못할 겁니다."
"하하하! 다음에도 성의를 보이면 그땐 좀 더 봐줍시다."
"이를 말이오? 그들이야 자신들보다 자식들이 대과를 볼 수 있을지가 문제일거요. 청요직이야 우리가 차지할테니 생색만 낼 수 있게 해주면 될거요."
"하하하! 이제 정리가 됐으니 좋은 곳으로 갑시다. 이번에 새로 생긴 기방이..."
한양 북촌의 어느 대갓집에서는 매관매직으로 의심되는 대화가 흘러나왔다. 어느 고관들이길래 관직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김자점을 비롯한 서인의 주요 당여들이었다.
서인은 폐주의 폭정을 참지못해 들고 일어난 자들이었다. 그리고 대북의 극심한 매관매직을 그 반정의 명분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도 서인의 김자점을 비롯한 당여들은 외직에 대해서 성의(?)라는 표현을 써가며 입에 올리는 것이 아닌가?
사정이 어쨌든 김자점을 필두로 한, 서인 당여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들의 발걸음 뒤로 한양의 밤거리는 점점 어두워졌다.
맨 앞에 서야할 이유
국왕이 친정(親征)에 나선다!
그 소문은 호주 전역을 강타했다.
수상은 물론이고, 의회도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서울 거리 곳곳에선 국왕의 친정에 대한 이야기로 분주했다. 조선과의 전쟁에 나서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국왕이 군대를 직접 이끌고 나가겠다니? 세간의 화제는 오직 국왕의 친정문제로 통일되었다.
그것은 수상과 내각, 의회와 법원에도 거대한 충격이었다.
한국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가였다. 그런 신생국가의 국왕인 나의 존재는 정말 대단했다. 과거 어떤 왕이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도 그런 비슷한 경우였다.
수상을 비롯한 내각은 연일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그리고 회의 끝에 국왕의 친정을 결사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수상을 앞세운 친정 반대세력들이 뭉쳤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수상의 반대가 두려웠다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또 쐐기를 박았다.
나는 의회에 나가서, '건국 이후 첫 해외원정을 국왕이 친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거기에 하나 더, 내가 죽게 된다면 수상을 차기 국왕으로 한다는 제1호 칙령을 발표했다.
한국은 헌법과 권리장전이 있고,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입헌군주제 법치국가다. 국왕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국왕에게는 직접 말로 내릴 수 있는 명령이란 뜻의 '칙령'을 내릴 수 있는 헌법 조항을 만들었다. 칙령은 국왕에게 부여된 일종의 비상대권(非常大權)을 말하는데, 그걸 이번에 써먹은 것이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자식도 없고, 자식이 있더라도 믿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수상이라면 한국의 건국이념에 따라 왕 노릇을 할만한 인재라고 판단됐다. 그래서 처음으로 칙령을 내렸다.
"나는 이번 조선원정에 직접 출전할 것이오. 장병들이 출전하는데 왕인 내가 가만 있을 수 있겠소? 만약 내가 죽는다면 수상을 국왕으로 하고, 새로운 수상은 새 국왕과 의회가 상의해서 선출하시오. 내 그대들을 믿고 가리다."
나는 밝게 웃으면서 내가 죽으면 제1호 칙령을 즉시 발표하고 수상이 즉위하도록 하는 제1호 칙령의 서면까지 작성하도록 수상에게 지시했다. 그냥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도 수상 등이 계속 반대했다. 나는 그렇게 격렬한 반대를 겪고나니 선조와 영조가 왜 그토록 잦은 양위파동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상을 비롯해서 각료, 의원들 전부 극렬하게 반대했다. 수상은 눈물을 흘리며 친정 자체를 불가하다고 말했다. 각료들과 의원들도 국왕이 친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친정을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내가 선조나 영조처럼 실제 양위할 뜻은 없지만 양위한다고 '뻥카'를 쳤던 것이라면?
이 상황이 얼마나 짜릿하고 기분좋을까 상상해봤다.
음..., 내 권력이 아직 죽지 않았구나! 아직 살아있어.
저 녀석은 얼굴 표정이 내 양위를 바라는 것 같군.
등등
뭐 이럴거 같다.
아마 광해군(?)도 선조의 잦은 양위파동때문에 흑화(黑化)한 것일 수도?
그렇게 맹렬한 반대의 폭풍이 지나가고, 모두 지친 표정이 되었을 때 였다. 나는 이제야 그들에게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나는 이미 왕립국가기념관 연설문에서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소. 이번 전쟁은 우리 한국이 '과연 오래도록 굳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거대한 내전이오. 우리 장병들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싸우러 가오. 그것도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으로 말이오. 그들은 자신을 노비로 옭가매어 노비의 멍에를 씌웠던 자들과 싸우러 가는 것이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우리가 조선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 확신하오. 하지만 그들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수상을 비롯한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출전하지 않는다면, 내가 왕궁에서 편히 앉아 노닥거리며 승전보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부모와 조국을 그리며 하나 둘 죽어가겠지. 그들도 모두 사람이오. 그리고 과거 조선의 백성이었지. 그들은 조선을 두려워할 것이 뻔하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도 자신을 지배했던 자에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가진다오. 그런 심겁(心怯 : 마음 속의 두려움)을 가진 자가 역사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잘들 아실거요. 나는 우리 장병들의 두려움을 날려버릴 가장 좋은 패요. 국왕이 그들의 맨 앞에 서서 함께 출전하는 것보다 저들의 사기를 올리고, 그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리란 확신을 하게 할 방법이 있소?"
그 누구도, 내 질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상을 바라봤다. 수상의 떨리는 어깨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떠나야했다. 그것도 반드시.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 나는 가야 하오. 그것도 그들의 맨 앞에 서서 가야하오. 첫번째는 장병들의 사기요. 두번째는 전쟁에서의 빠른 결단이요. 세번째는 조선의 만백성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함이요. 나는 그대들과 국민들에게 약속하겠소. 반드시 승전보를 들고 서울항으로 돌아오리다."
결국 수상을 비롯한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몇몇 심약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 날부터 서울 전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수상이 왕위에 욕심이 있다' 거나 '어떤 각료들이 수상을 옹립하려고 한다' 등의 유언비어들이었다. 물론 나는 모든 유언비어를 일축했다. 그리고 제1호 칙령을 정식으로 공포했다. 제1호 칙령이 관공서의 공고판과 신문 호외로 나온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부글거리던 여론은 곧 차분해졌다.
결론적으로 내 의도대로 국민여론이 흘러갔다.
바로 국왕의 친정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국민여론이었다. 솔직히, 장병들이 목숨걸고 싸우러 가는 와중에 왕이 놀고 있을 수 있나? 그것도 건국이념인, 우리의 대의를 표방한 거대한 내전이다. 조선을 완전히 합병하고 조선의 만백성을 자유롭게 하는 내전 말이다.
만약 내가 왕궁에서 노닥거리면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선에 처절하게 패전한다고 생각해봐라!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오히려 내가 전쟁터에서 콱 죽어버리는게 마음편할 것이다. 실제로 나라에도 유익하다.
어쨌든 나는 조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리라고 확신한다.
중간에 태풍이나 그런 불운이 겹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출항 일주일 전이다. 오늘 밤은 아주 길 것 같다.
쏴아아!
끼룩끼룩!
철썩철썩!
저 멀리 서울항이 보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정말 힘들었다. 그 일주일이야말로 내가 국왕으로 재위하는 중에 가장 힘들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수상을 비롯해서 심지어 왕궁 사용인들까지 나서서 극렬하게 반대했다. 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대신 사령부에서는 표정관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해외원정군 총사령관이 될 나 때문에 다른 지휘관들은 지휘부담이 크게 줄었다. 그리고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부분적인 전투에서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장병들의 전쟁에 대한 동요나 불안감은 아예 없다고 생각될 만큼 안정되었다. 지휘관들의 지휘부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장병들의 사기였다.
왕의 친정 덕분에 장병들의 사기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모든 장병들이 출항 전에 유서를 써서 가족들에게 남기도록 했다. 나도 제1호 칙령을 유서로 생각하며 남겼다. 또한 장병들이 유서를 쓰며 흘린 눈물을 봤다. 나는 전생에 고아였다. 그래서 생도시절 유서를 쓸때도 전혀 울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리움이 되었다. 그녀의 27년 짧은 인생을 걸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런 내가 전쟁터에 나간다고 했을때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내 눈에서 엄마에 대한 내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눈물이 그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나에게 눈물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고, 그 그리움의 세월이었다.
저 장병들의 눈물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물 하나하나엔 나와 똑같은 그리움의 세월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이제 하나였다.
그런 일정들을 모두 소화하고 기함에 오르고나니 정말 홀가분했다. 내가 탄 기함은 "자유호"였다. 그 이름대로 조선의 만백성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 기함에 오르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기도를 했다. 그 소원대로 이뤄달라고 말이다.
이번 해외원정단은 건국이래, 최초이자 최대규모 출전이다.
<해외원정단>
1. 지상군 7천명 - 육상전투임무
2. 해군 3천명, 3개 함대 70척 - 해상전투임무
3. 대한무역주식회사 1천5백명 함대 30여척 보급 및 전투지원임무
선발대는 20척의 함대로 유구국에 이미 도착했을 것이고, 내가 탑승한 본대는 지상군 7천명을 태우고 50척의 함대로 출발했다. 보급품은 유구국의 대한무역주식회사 선박들이 맡았다. 대항해시대 상선들도 기본적으로 전투가 가능했기에 총100척이 넘는 대함대가 내 지휘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해외원정단 본대, 50척의 대함대가 기함을 선두로 조선을 향했다.
해외원정단 함대는 위풍당당하게 태평양을 가르며 힘차게 달려나갔다. 나는 갑판의 상단에 서서 함대의 위용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 혼자선 이렇게 해낼 수 없었다. 오직 나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뭉쳐서 이뤄진 결과였다.
기함의 선원들은 이런 내 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얼굴색은 긴장감이 엿보였다. 아마도 첫 출전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맨 앞에 섰다.
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장에 나설 것이다.
심겁(心怯)?
위나라의 장군 등애의 한번 공격! 그 불의의 일격에 촉주 유선은 항복했다.
촉의 충의지사들은 촉주의 항복에 항전의지가 꺾였고 통한의 죽음을 맞았다.
차라리 촉주 유선이 자결이라도 했다면? 촉 충의지사의 원혼들은 최고의 위안을 얻었으리라.
촉주 유선의 아들 유심은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망국에 절망하여 자살했고 그 이름을 만대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