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강렬하게...
대의(大義)
서울 광장 주위에서는 호외를 파는 소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따끈따끈한 호외요! 호외! 오늘 오전 왕립국가기념관 광장에서 국왕전하 연설문입니다. 호외요!"
소년들이 키만큼 쌓아놓고 팔던 호외는 불티나게 팔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팔렸다. 서울 광장의 곳곳에서는 호외를 보고 있는 사람, 호외를 함께 보려고 기웃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의 여러 신문사들은 한 주에 1번 신문을 발행했다. 그래서 돌발적인 사건사고, 재해, 중요한 축구경기결과, 중요정책발표 등 세간의 관심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소식을 재빨리 전달하기 위해서 '긴급 호외'를 제작한 후, 거리에서 판매했다. 서울 시민들은 그것을 간략하게 '호외'라고 불렀다.
최근 의회에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국왕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본토를 떠나 조선으로 파병될 해외원정단 환송(歡送)식이 왕립국가기념관 광장에서 열렸던 것이다. 거기에는 국왕을 비롯해서 수상, 각료, 의원들과 일반 국민들이 장병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자 모였다.
국왕인 우진은 환송식장에서 국민들에게 연설을 했는데, 신문사들이 그 내용을 정기적을 발행되는 신문이 아닌 호외로 만들어 판매한 것이었다. 그 호외에는 간단한 삽화들이 그려져있었다.
삽화에는 국왕이 연설단에 서서 연설하는 모습, 국왕 뒤에 수상을 비롯한 내빈들, 그 뒤에 왕립국가기념관의 웅장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또 다른 삽화에는 파병되는 해외원정단 장병들이 그려져 있었다. 삽화는 대충 휘갈겨 그린 듯한 그림체였다. 어딘가 좀 *맛으로 보이긴 했다. 그는 과연 삽화가로 제대로 성공할런지 의문이다.
어쨌든 그 호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신문 긴급호외 제18호> 서기1623년 11월 11일 자
제목 : "국왕전하께서 왕립국가기념관 광장에서 연설하시다!"
-연설문 전문 게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의 노비였던 우리 국민들은 이 호주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태어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에 기초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나라가, 이러한 정신과 신념으로 태어나고 우리 모두가 헌신하는 이 나라가, ‘과연 오래도록 굳건할 수 있는가’ 하는 절체절명의 시험대인 거대한 내전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이 광장에 온 것은, 자신의 삶을 바쳐 바로 그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터를 향해 나아갈 우리 장병들의 무운을 기원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가 여기 이 광장에 온 것은, 자신의 삶을 바쳐 바로 그 나라를 구하고자 전쟁터를 향해 나아갈 우리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 국민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 광장을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봉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기원과 이 헌정은 지극히 마땅하며 지극히 옳습니다.
우리 장병들이 나아가 싸울 대상은 단언하건데, 우리 국민이 아닙니다.
우리 장병들이 나아가 맞서 싸워야할 적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려는 모든 것들입니다.
우리 장병들이 지켜야할 대상은 우리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 생명과 재산입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수상을 비롯한 각료들에게 말하였듯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장병 모두가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뿐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우리의 정책이,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하겠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자유와 평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겁니다. 조선에서 극악무도한 폭정에 핍박받고, 가난함에 굶주리며,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싸울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지고 있는 신분의 멍에를 풀어 자유롭게 할 겁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어떤 공포가 닥쳐와도, 아무리 갈 길이 멀고 험해도, 우리는 나아가 싸우고 또 싸워서 승리할 겁니다. 오직 승리 하나 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그 위대한 사명, 즉 이 고귀한 자들이 그들의 신명을 다 바쳐 헌신하려는 대의를 위하여 더욱 크게 그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해야 합니다.
우리 장병들의 숭고한 헌신, 그 희생은 우리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그러한 정부를 가진 나라가 결코 소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을 위해 바쳐진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그대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그대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합니다.
-연설문 끝-
<삽화 : 리말련, 기자 : 나선동>
역시 선전선동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천하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대의(大義)를 부르짖던 사람에게 권력을 주었다. 하지만 대의를 통해 권력을 쥔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그 결과까지 좋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성공한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삼국지에서 장각은 '창천이사 황천당립'을 부르짖으며 일어섰다. 그 결과는 뻔하다. 민중의 호응을 얻어 봉기했으나 그 민중의 바램을 충족시켜줄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망했다. 이와 반대로, 명나라 주원장은 한족왕조의 기치를 내걸고 일어났고 원나라를 밀어내서 황제가 되었다. '멸몽흥한'의 간단한 대의는 그를 황제로 만들어줬다. 주원장이 몽골 원나라를 북으로 밀어내는 성과를 보여준 덕분에 황제가 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실제 역사에서 대의가 무척 중요하지만 그 대의를 현실화할 능력이 더욱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그렇게 일어났다. 고려의 어지러운 폭정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는데, 무리한 요동원정을 감행하는 것을 이유로 '위화도회군'을 한 것이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통해 국민들의 결정적 민심을 얻었다. 전쟁을 피하고 민생에 힘써야한다는 민심을 따른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왜구를 물리치는 공으로 어느 정도 민심은 있었다. 하지만 위화도회군 이전엔 그저그런 군벌에 불과했다.
나는 조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대의를 오늘 연설문을 통해 천명했다.
지금쯤, 조선에서도 온갖 소문들이 떠돌고 있을 거다.
내가 생각한 대로라면, 분명히 먹힌다.
그리고 그 소문에 해당하는 조선 만백성들의 희망들은 내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조선의 민심을 얻고자 한다.
이 연설문은 거의 일주일 밤새도록 낑낑대며 힘들게 썼다. 온전히 스스로 쓴 것은 아니다. 내가 영어를 공부하면서 즐겨보던 명언들 중에 링컨, 처칠의 어록을 거의 그대로 각색해서 썼다. 역사적 위인들의 명언을 훔쳐쓰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나는 왕궁에 배달된 호외를 꼼꼼히 읽어보며, 다시금 결의를 굳게 다졌다.
삽화가 이름이 왠지 좀 익숙하고 그림체가 이상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탁!
최명길은 손에 들었던 호외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가능하지 못할 이유가 뭐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소이다."
이원익은 최명길이 내려놓은 호외를 들고,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리곤 최명길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박승종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듯 턱짓을 했다. 이원익의 신호에 화답하듯 박승종이 말을 받았다.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도 비슷하지 않소? 조선 백성들에게 폐모살제니 명의 재조지은이니 하는 것들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오. 사대부 중에서도 서인들이 내세운 명분에 동의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잘먹고 잘산다는 것, 호환마마를 없게 해준다는 것, 신분철폐를 해준다는 것은 바로 피부에 와닿는 것이오. 어느 왕이 그렇게 해준 적이 있소?"
박승종은 최명길에게 쏘아 붙이듯 말하고는 탁자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커피향을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그런 박승종의 뒤를 이어 이원익이 달래듯 말했다.
"이보게 최대감!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봤네. 이미 본 것을 못 믿겠다니?"
최명길은 이원익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무겁게 말했다.
"그래, 나도 봤소이다. 하지만 그의 대의를 위해 수많은 피가 흐를 것이오. 그는 폐주의 복수를 할 것이며 폐주가 다시 왕이 될 것 아니겠소?"
최명길의 침울한 표정을 보곤 이원익이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박대감과 내가 국왕전하를 따로 뵈었을 때, 분명히 확인했소. 폐주와 폐세자는 다시 왕이 될 수 없다고. 폐주가 생부라 한들 상왕이나 기타 어떤 특전도 없다고 했소. 조선의 만백성은 지금 왕부터 모두가 한국 국민이라고 했으니 함부로 해치지 않을 것이오. 헌법에 연좌제는 없고, 사대부들의 재산도 불법적인 것이 아니면 보장한다고 했어요. 대신 신분제를 철폐하는 것은 양보가 없구요."
이원익은 차를 한잔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최대감! 우리가 출사한 이유가 무엇이오? 바로 입신양명(立身揚名)이오. 나는 임진년의 왜란에서 조선이 망할 것으로 생각했소. 그때 관서지방으로 근왕군을 모집하러 단기필마로 갔소. 관서지방에서 다스렸던 백성들 중에 군사를 모집하러 말이오. 그때 백성들은 그 목숨을 바쳐 조선을 구했소이다. 그런데 그 댓가는 뭐요? 나는 그 백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오. 입신양명은 그저 왕에 충성하고 높은 벼슬을 얻는 게 아니라 생각하오. 조선의 백성들이 잘먹고 잘살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입신양명이라 생각하오."
이원익이 말을 마치자 최명길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승종과 이원익은 그런 최명길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영겁과도 같은 일수유가 지났다. 갑자기 눈을 뜬 최명길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하지만 조선땅에서 그의 약조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면, 그를 따르리다."
최명길의 말에 이원익과 박승종은 반색을 했다.
"최대감! 이제 내일부터 수상관저로 출근합시다. 박대감과 둘이서만 하니 영 심심했소. 우리가 조선을 새롭게 바꿉시다. 사대부들을 잘 설득해서, 새로운 조선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이상향임을 깨닫게 해줍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에 죄짓지 않는 일이며, 진정한 입신양명이오."
"최대감! 나도 환영하오. 나는 폐주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인이오. 오직 속죄하는 마음으로 일하리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그것은 민심에 따라 조선을 살기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오. 이 박승종이 최대감께 감사히 절하리다."
박승종은 그 말을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었났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최명길에게 큰 절을 했다. 최명길은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박승종의 손을 잡았다. 이원익도 함께 일어나 최명길과 박승종의 손을 맞잡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오늘을 기념해서 술한잔 하러 갑시다!"
"나는 대찬성이오. 최대감도 같이 갑시다!"
"크흠, ...알았소."
그렇게 상점을 나서는 세 사람의 뒤로는 서울의 맑고 따스한 바람이 휘몰아 불었다.
물밑 작업 1
툭탁툭탁!
깡깡깡!
"조심해! 이제 올린다."
"어이 순돌이! 이리 와서 터가 평평한지 확인해봐."
조선의 경기수영이 위치한 강화도 옆 교동도에는, 수개월 전부터 요란스런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기수영이 위치한 교동도는 한강 수로를 방어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경기수영의 전력 자체는 삼남 수군에 비할 수 없이 초라했지만 좁은 수역을 지킨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있었다.
그런 경기수영이 바라보이는 곳에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경기수영 인접한 곳에서 땅을 굳게 다지고 커다란 창고를 지었다. 그 창고들의 숫자는 정미 십만석이라도 저장할 수 있을만큼 많았다. 대체 어느 만석꾼이라도 이사를 온 것인가?
"허허, 경기수사 영감께서 이리 허락해 주시니 이 은혜 백골난망이외다."
"하하하, 경기제일의 부자이신 박진사 어른께서 이 교동도에서 큰 일을 하신다는데 제가 도와드려야지요. 더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내 경기수사 영감을 뵙고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소이다. 요새 좀도둑들이 꼬이는 데다가 육로 운송이 어려운터라 이리 되었습니다. 경기수영의 범같은 장정들이 이 창고를 지켜주고, 창고의 물목들을 한강 물길을 통해 나르면 이것이 일석이좁니다. 자자 한잔 더 받으시오."
경기수사는 박진사의 술잔을 받아 들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경기수사는 단숨에 술잔을 들이킨 후, 탐욕스런 눈빛으로 박진사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자 박진사는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봐라! 그것을 안으로 들여라."
"예, 바로 들이겠습니다."
박진사의 말에 문이 열리고 제법 큰 상자를 노비 2명이 들고 들어왔다. 그 상자가 바닥에 내려지는 소리는 묵직하게 들렸다. 노비 2명은 박진사에게 머리를 숙이고 바로 나갔다.
"약소한 선물입니다. 영감께서 큰 일을 하시는데 보탬이 될 겁니다. 제가 김자점 대감께도 이미 언질을 했습니다. 내년에는 원하시는 대로 될 겁니다. 베게를 높이하고 기다리시지요."
경기수사는 박진사의 말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크게 절을 올렸다. 조정의 지체 높은 무관이 일개 부자에게 절을 올리다니? 박진사는 경기수사의 절을 말리지도 않고 허허 웃었다.
"경기수사 영감의 결단으로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요. 창고가 끝날 무렵에는 배를 댈 수 있게 작업을 시작할거요. 좀 요란하더라도 이해하시오. 자자 어서 앉으시오. 오늘 밤은 맘껏 드십시다."
경기수사는 감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술잔을 받았다.
그 술자리는 밤새 이어졌고, 경기수사는 군관들의 부축을 받아 수영으로 돌아갔다.
"그래 접안시설 공사는 언제쯤 끝날 예정이지?"
"최소 5척이 동시에 하선 및 하역작업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달가량 예상합니다."
"시간이 얼추 맞겠군. 경기수영을 장악하면 최소 15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으니 목표달성에는 이상없겠어. 지금 부산을 포함해서 각 수영마다 작업이 거의 완료됐어. 경기수영이 민감한 위치라서 오래 걸렸으니 지부장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겠지. 그래도 마음 놓지말고 움직이게."
"물론입니다."
박진사의 정체는 이민국 조선지부의 경기도 담당자였다. 양반가의 얼자로 태어나 고생하다가 공명첩을 산 후에 진사가 되었다. 그를 지원해서 진사로 만든 것이 개노미였다.
박진사는 경기도 인근 수륙교통의 요지를 전부 선점했다. 한강에서는 양화나루부터 광나루를 넘어 내륙 깊숙이 창고와 접안시설을 갖췄다. 강화도와 교동도에는 강화나루는 물론이고 경기수영 바로 옆에다가 창고와 접안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했다.
박진사의 말대로라면 이민국 조선지부는 조선의 해안 전역에 해상운송을 위한 창고와 시설들을 모두 건설한 것이었다.
"이제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경기수영과 강화감영을 장악하고 운송로를 확보해야한다. 나머지는 그 분께서 맡으셨으니 우리가 해야할 일만 잘하면 된다. 수영과 감영의 부장과 군관들이 우리 사람들이야. 그들이 신호하면 곧 바로 접응해서 장악한다. 수영과 감영의 군사들이 불안하지 않게 하고 물자를 충분히 풀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박진사는 그 이후로 몇 가지를 더 지시하고 자리를 떴다. 박진사는 부두에 대어진 단정을 타고 경기수영을 지나 한강 수역에 진입했다. 그런 박진사의 등 뒤로는 교동도와 강화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오후의 밝은 해가 눈이 부셨다.
같은 시각, 한양 경상 행수의 사랑채.
"이번에 저희에게 납품할 물목은 장부에 적힌 대로입니다."
"알겠소이다. 약조는 다시 확인하지 않겠소."
"이미 승인된 사항입니다. 그 날이 오면 조선의 해금령은 완전히 철폐됩니다. 해외무역도 자유롭게 인정됩니다. 경상은 물론이고 모든 조선의 상단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