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225)

"흐흐흐, 수고는 무슨 수고? 자네들이 고생이지. 이번에 농장의 추가건설을 허락받았다. 우리가 요청한 지역에 말이야. 팜유와 설탕공장도 추가증설해야겠어."

"준비는 다 됐습니다. 농장예정지에 실사팀이 가서 점검완료했습니다."

"자네들이야 원래 무역상단시절부터 잔뼈가 굵었으니 믿을만하지. 그럼 이번에도 대박터뜨리자구."

"하하하! 술탄의 허락을 받은 이상, 이미 대박 확정입니다."

"맞습니다. 여기서 얻은 팜유는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고급비누를 만들어서 잘 팔아먹고 있습니다. 사탕수수는 설탕을 만들어서 각지에 잘 팔고 있습니다. 특히, 설탕은 여기서 생산한 비용의 5배는 남겨먹습니다. 비누도 3배는 남습니다. 아체 술탄국 사업부의 영업이익이 매년 400%를 초과하는 실정입니다. 국왕전하께 잘 보고드려주십시오."

"크흐흐, 이를 말인가? 자네들과 내가 무역상단부터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가? 그건 걱정말고 현지 고용인들 월급 밀리지 말게. 그리고 우리나라 물건들을 꾸준히 광고해. 여기 지역유지들도 손목시계를 살 여유는 충분하잖아."

"물론입니다. 최근에는 향신료 대금도 우리나라 공산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득이 더 늘어납니다. 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게. 난 다음 주에 무굴, 그 다음엔 오스만도 가야하네."

"하하, 고생하십쇼."

외교부 김순돌은 무척 바빴다. 

김순돌의 역할은 한국의 무역에 정치적 외압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역 상대국의 술탄, 왕, 귀족들의 입맛에 맞는 한국 사치품들을 선물했다. 그 사치품들은 다시 한국의 이익으로 귀결되었는데, 그 사치품을 받은 술탄 등이 한국에 여러가지 이익을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그 사치품을 수출해서 무역대금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사치품들은 한국의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외국의 수요가 늘수록 한국의 생산도 증가하여 생산비용이 떨어졌다. 그만큼 초과이익이 발생하여 한국의 산업은 밤낮없이 불야성을 이뤘다.

김순돌의 생각에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은 인구부족이었다. 그것은 한국정부의 모두가 생각하는 약점이었다. 인구문제의 가장 편리한 해결방법은 노예를 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김순돌 자신도 노비였기에 결사반대였다. 국왕부터 국민까지 그 누구라도 반대였을 것이다. 국왕전하께서는 그 인구부족 문제를 외주로 해결했다. 그 결과, 한국내의 산업이 발전함은 물론이고 무역도 크게 발전했다.

이것이야말로 무역의 맛이 아닌가!

호주 서울, 내각 대회의실.

"아체 술탄국에서 기름야자와 사탕수수 농장의 증설에 합의했습니다. 늘어난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습니다. 농장의 구매대금은 시계탑을 건설해주는 것으로 완결했습니다."

"수고했네. 그럼 설탕 수요가 늘고 있는 명, 일본, 만주까지 수요대응은 충분한가?"

"현재 수요를 기준으로는 충분합니다만,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지라 차후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알겠네. 원재료 공장은 현지에 만들어도 되지만, 비누공장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은 본국에 만들어야하는 것을 잊지 말게. 그리고 국내수요에만 매달려선 안돼. 우리 인구는 적으니까 수요도 적어. 반드시 해외에 판매처를 발굴하고 수출에도 힘을 써야해. 그래야 국내수요와 해외수요를 합쳐서 우리나라의 산업이 대규모로 발전할 수 있어.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보건부장! 천연두 예방접종은 40%정도 완료했다고 했나?"

"네! 유아를 가장 우선으로 해서 20세 미만을 먼저 접종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예방접종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습니다만, 일부 발열이 심한 사람들이 있지만 소수이고 예방접종의 효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음, 알겠네. 가능한 빨리 접종을 마무리하도록 하게. 그리고 의사 김세준, 의사 제임스 제너의 동상 건립은 어찌 되었나?"

"크흠, 국왕전하께서 지시한 동상 건립에 대해 의회의 반발이 다소 있습니다. 국왕전하의 동상도 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게다가 제임스 제너는 영국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천연두를 극복해낸 그들의 공은 영원불멸이다. 우리가 중앙광장에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본따 왕립국가기념관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일세. 거기에는 국가에 공을 세운 위인들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함이다. 이는 양보할 수 없다. 제임스 제너도 위인임은 분명하고 우리 나라에 공을 세운 것도 확실하다. 외국인이라고 차별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가로 하여금 아름답고 위엄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추가로, 그들의 동상 제막식에는 내가 직접 참가할 것이고, 국민들도 함께 볼 수 있게 하라."

"..."

"..."

사실 요즘 너무 잘 나가고 있었다. 

해외무역은 계속 꿀을 빨고 있다. 

기본적인 무역은 물론이고 해외에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서 생산된 팜유, 설탕 등 원재료는 원재료 그 자체로 무역상품으로 팔리기도 한다. 하지만 원재료를 다시 가공해서 더 비싼 제품으로 팔리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팜유를 통해 비누를 대량생산하는 것 말이다. 팜유 생산에는 비용이 1이면, 팜유로 만든 비누의 생산비용은 3이다. 그리고 그 비누는 10의 가격으로 팔린다. 

국내에는 시계같은 정밀가공산업, 비누, 각종 사치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촉발할 증기기관은 아직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기반산업이 발전하고 있었다. 

하여간, 국내의 고부가가치 산업도 해외무역의 단맛을 잘 보고 있다. 국내의 수요는 적은 인구때문에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고급 보석시계를 이용해서 타국에 선물하고 이권을 얻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리고 그 시계는 세계에 널리 팔리고 있다.

지금의 발전속도도 눈부신데, 만약 증기기관이 발명되면 어떨까? 

아직 기반기술, 특히 금속으로 만들 증기기관 본체, 실린더와 실린더의 밀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청동은 철에 비해 희소성이 있는 비싼 재료라서 대포 등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느라 몹시 부족했기에, 철로 만들어 비용을 절감하고 싶었다. 어차피 철과 석탄은 호주땅에서 널려있었다. 

하지만 주철로 만든 통은 깨지기 일쑤고, 실린더 안쪽은 밀폐가 어려웠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다. 철강의 대량생산은 코크스가 없어서 아직 어렵다. 나무에서 숯을 만드는 것과 같이, 석탄에서 코크스를 만들 수 있을거라 언질은 줬었다. 자세한 방법은 나도 모르니 자연의 이치가 그렇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다. 

서울항에서 주요 창고까지는 나무궤도를 깔아 궤도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물론 증기기관이 없으니 말을 이용해서 화물을 나른다. 항구 부두마다 기중기를 달아서 배의 화물을 손쉽게 내리고, 그 화물을 궤도열차에 싣는다. 그리고 그 화물을 주요 창고까지 열차로 옮긴다. 궤도열차는 내 제안으로 만들어져서 물류의 혁신을 가져왔다. 요즘에는 나무궤도의 잦은 고장때문에 철로 만든 궤도를 연구중이다. 이제 증기기관만 발명하면 철도로 칭하고 말대신 증기기관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기 전에 기반시설을 갖추려고 노력중이다. 석탄의 사용도 점차 늘고 있다. 나무궤도는 누구나 쉽게 인정할 정도로 생활에 깊이 들어왔다. 얼마 전에는 나무궤도를 서울 시내에서 건설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현대의 도시철도같은 것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그 시작은 무역이었다. 그 작은 시작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고인 물은 썪기 마련이다. 

조선의 물은 수백년간 고여 있었다. 

이제 그 물이 흐르도록 해야한다. 

우리 국민들은 무역의 단맛을 확실히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역의 단맛을 계속 볼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는 이를 뒤로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위장잠입

한양, 비변사 안의 어느 내실.

"그래 자네는 잠시 휴가 중이었다는 거지?"

"네, 저는 대궐 안에서 직숙(直宿)하던 중이라 도승지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전관(宣傳官)인 자네는 그 기간동안 대궐을 떠나 자리에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난리통에 휴가였다니... 자네는 정말 운이 좋군!"

반정을 성공리에 끝내고 난 후, 김자점은 왕의 어명을 출납하고, 군무 처리를 맡던 무반 경관직에 해당하는 선전관들을 불러모았다. 도승지가 문관 중에서 요직인 것과 같이, 선전관도 서반(西班 : 무관을 뜻함) 승지(承旨)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래서 서반의 경관직이면서도 문신이 임명되기도 했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거사 당일 선전관 대부분은 대궐 안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 대궐에 있던 선전관들은 반정군과 싸우다 죽은 자가 많았다. 설령 거사 당일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선전관들도 심한 부상 등으로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김자점의 눈앞에 있는 말단 선전관이었다. 종구품의 가장 말단이라 그 선전관이 왕의 어명을 출납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간단히 시위로나 써먹던 자였다. 그러니 별로 주의할만한 이력도 없는 자임에 틀림없었다. 

김자점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마음을 정하곤 말을 이었다.

"자네는 영남의 김희두란 진사의 아들이구먼?"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얼자입니다. 광취무과에 입격한 후에 홍패(무과 합격증서)를 받았습니다."

"김진사가 그대를 꽤나 아꼈던 모양이군. 종9품이라지만, 관찰사의 천거를 받았으니 말이야. 그게 쉬운게 아닐텐데..."

"진사 어른께서 미욱한 제게 큰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조심하게. 내 앞으로도 살펴볼 것이야. 이만 돌아가서 일 보게."

"네 알겠습니다."

김자점은 문을 나서는 선전관의 등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거사 당일, 저 선전관과 시위 등 대궐에 근무하는 무관 23명이 휴가를 얻었거나 사직으로 자리를 비웠다. 훈련도감은 훈련대장 이흥립의 귀순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궐의 시위, 갑사, 선전관 등은 거의 전멸에 가깝게 죽었다. 그만큼 격렬하게 싸운 것이다. 

앞 전의 선전관을 포함한 23명을 빼면 거의 다 죽었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그 23명은 전부 서얼, 양인, 납속을 통해 면천한 천민 출신들이었다. 김자점 그가 엄격히 구분하더라도... 그들은 분명 북인이나 폐주와의 연관성은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기고 지나간다지 않는가? 그래서 시간을 들여 더욱 철저히 조사해봤지만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저 우연히 휴가가 겹쳤을 뿐이리라. 더 이상 의심할 건덕지가 없었기에 김자점은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궐의 하루는 또 저물어갔다.

한양 인근 어느 안가의 내실.

"그래 조사과정에선 별일 없었나?"

"물론입니다. 거사 당일에 휴가를 낸 이유와 부친, 추천해준 관찰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저야 훌륭하신 아버님 덕분에 별 문제없이 그대로 있게 됐습니다."

"크하핫! 하긴 내가 훌륭한 아버지긴 하지. 허나 아버지라 부르지말고, 진사어르신이라 부르게. 이 조선에선 반상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그걸 어찌..."

"푸흡, 크흠. 알겠습니다. 진사어르신...."

"그래 이번에 별시 무과 합격자는 어떤가?"

"이미 집계중인데 최종적으로 320인을 뽑는답니다. 저희 조직원 중에 최소 100인 이상 입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동안 그렇게 돈을 뿌렸는데 말이야. 참! 입격해서 홍패를 받아봤자 천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우리 동지들을 천거할 사람들도 작업은 해놨다. 그러니 홍패 받으면 순서대로 잘 마무리 짓도록. 특히, 대궐에 들어갈 동지들은 반드시 신경써라. 돈 아끼지말고."

"예이~ 진사어르신!"

"예끼! 아들놈이 애비를 놀리는구나. 크하핫!"

"장난은 지부장님께서 먼저 하신거 아닙니까?"

"크흐흐, 이거 내가 아들을 잘못 들였구만."

"하하하."

놀랍게도, 지금 대화하는 2인은 이민국 조선지부장 개노미, 김희두와 김자점과 대화하던 그 선전관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다.

한양, 훈련도감군의 병영.

"이런 개*끼들... 또 겨가 잔뜩 섞였군."

"군자(軍資 : 군량미 등)에서 주는 월봉(월급)도 매번 늦으면서 모래와 겨라니. 개*끼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붙어있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는군. 집에서 키우는 개한테도 이렇게는 안할거야."

"호위청(주 : 인조반정 당시 동원된 사병들을 중심으로 분속한 호위부대)만 사람이고 우리는 겨나 쳐먹으란거지. 월봉도 겨하고 모래 빼면 원래의 반도 안되겠어. 니미럴."

그때였다.

"너희들 뭘 그리 속닥거리는거야?"

"앗! 부장님 오셨습니까? 충!"

"충!"

"충!"

"오늘 지급된 월봉에 문제가 있는거 본 부장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너희들 집에 따로 쌀 섬 좀 보내놨다. 괜히 반발했다가 치도곤 당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훈련대장이야 우리와 달리 사대부가의 문관 아닌가? 우리들끼리라도 똘똘 뭉쳐야지. 아아 걱정들 말아. 내가 집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거야."

"흐흑, 부장님!"

"부장님의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크흐흑."

"어허!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누구도 아닌 내 사람들이야. 그래서 쌀 섬하고 소고기 좀 끊어서 보냈어. 그걸로 든든히 먹고 힘들 내게. 우리가 남인가?"

으헝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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