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그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
"..."
수상을 포함한 내각 각료 전원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프리드리히 대왕이 감자를 보급할 때에 써먹었던 방법을 차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솔선수범(率先垂範)!
왕이 하지 않는데 국민이 따라한다?
그건 말이 안된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줘야 할 수 있다. 교육을 잘 받으면 출세할 수 있다는 경험이 국민들의 교육열풍을 만든 것이다. 골드러시도 마찬가지다. 나도 천연두를 앓지 않았으니 맞아야한다. 이걸로 국민들 모두를 강제로 천연두 예방접종, 종두법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천연두 치료법을 증명한다면 그것을 천연두 예방치료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세준과 제임스 제너의 이름을 영원히 그 치료제의 이름으로 알릴 것입니다. 또한, 그 천연두 예방치료제를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보급할 겁니다. 그것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왕인 저부터 솔선수범하겠습니다. 왕이 먼저 하지 않는데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습니까? 더 이상의 반대는 받지 않겠습니다. 김세준과 제임스 제너가 연구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게 철저하게 지원해주세요. 이상입니다."
내각 대회의장은 조용했다. 그 후엔 어떤 반대도 없었다.
이번 나의 결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조선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난 우두법에 대해 단 '1'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훌륭한 능력을 가진 김세준, 제임스 제너같은 의사들이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수한 능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를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어차피 세준군과 제너가 천연두 실험을 거쳐서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 지 검증을 한 다음에 예방접종을 할 것이다. 그러면 안전성에 대해선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난 어릴 때 마마를 앓았던 사람이다.
국민들의 안심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선의의 거짓말은 용납되지 않을까?
또한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도 아마 날 이해해줄 것이다.
"어머니, 누나! 나 집에 왔어."
"세준이 왔니? 어서 씻어라. 저녁 먹어야지."
"세연 누나는?"
"세연이는 오늘 이민국에 들렀다가 집엔 늦게 올거랬어."
"그럼 우리 먼저 먹어야겠네. 제임스는 저녁시간 맞춰서 올거야. 나 먼저 씻을게."
"그래라."
세준은 간단하게 씻고서 책상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세계 의학의 역사에 신기원을 장식할 엄청난 일.
과연 자신이 천연두의 치료에 성공할 수 있을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제임스 제너란 친구가 없었다면 너무나 어려웠을 일이었다. 국왕전하께서는 연구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약속하셨고, 성공하면 국왕전하 자신도 치료제를 맞겠다고 말씀하셨다.
세준은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키겠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천연두로부터 자유롭게 하겠다.'고 말이다.
드러나는 진실
최명길은 경악했다.
"아니, 당신이 어찌...?"
"그건 내가 할 말이오."
"으음..."
박승종, 이원익, 최명길은 한국의 서울에서 조우(遭遇 : 우연히 맞닥뜨리다)했다.
최명길이 납치된 처음은, 분노였다.
정신을 차리고 배에 탄 때는, 그냥 체념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금은, 경악했다.
앞으로는? 모르겠다.
최명길은 한국 서울에서 박승종, 이원익 등을 만났다. 최명길의 입장에선 뜻밖에 만난 조우였다. 하지만 한국 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모두 납치된 이상, 그것은 필연적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런 납치 사례는 박승종, 이원익만이 아니었다.
조선 북인(北人)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대거 납치됐다. 사실 북인들은 반정의 성공으로 어차피 모두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기에, 배를 타고 한국에 오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남인(南人)인 이원익은 선전관을 따라 나섰다가 강제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정보국과 이민국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지정된 숙소로 안내했다. 최명길은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서울 항구부터 서울 시내를 쭈욱 둘러보았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라고 했는데 그 크기가 한양보다 몇배는 커보였다.
서울의 큰 길은 질서정연하게 반듯하게 놓였고, 집은 이국적인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양과 달리 큰 길은 돌로 포장이 되어있었고, 마차가 달리는 길과 사람이 달리는 길이 구분되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관리인이라는 자가 방으로 안내했다.
최명길이 안내받은 방은 침대가 있는 공간과 책상이 있는 공간이 구분된 곳이었다. 도착한 날부터 3일간은 방에서 계속 잠만 잤다. 흔들리는 배에서의 생활은 몸에 무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3일간 쉬고 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박승종, 이원익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엇박자가 심했다. 서로 마음을 놓지 못했다. 서인과 북인의 사이는 원수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거기에 남인이 끼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북인 박승종과 남인 이원익은 말이 통했다.
이원익이 박승종에게 먼저 물었다.
"그래, 박대감께선 편히 쉬시었소?"
"지난 3일동안 잠만 잤소이다. 배에서는 통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잤소."
"..."
"내가 정보국 직원에게 듣기로는 반정이 성공했다고 하더이다. 내 사돈인 훈련대장 이흥립이 제대로 날 뒤통수쳤다고 말이오. 성공의 달콤한 열매를 드셔야할 분께서 여기 계시니 참 안타깝소."
"..."
박승종이 계속 말이 없던 최명길에게 비꼬는 듯 말하자 이원익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크흠, 박대감께서는 커피 한잔 드시겠소이까? 그저께 정보국 직원이 만들어준 커피라는 음료가 있습니다. 그거 아주 괜찮더이다. 첫 맛은 쓰지만 정신이 맑게 깨는 듯한 기분이오. 거기에 설탕이나 우유를 타서 드셔도 좋구요. 한잔 하십시다."
"흐음, 저도 커피는 마셔봤소. 그럽시다."
"크흐흠, 여보시오~ 정보국 직원!"
이원익이 헛기침을 하며 정보국 직원을 불렀다.
"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크흠, 거 우리가 그 커피란.."
"네! 커피 말씀이시군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설탕과 우유도 함께 가져다 드릴까요?"
"흠흠, 그러면 고맙겠소."
"네 곧 3잔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정보국 직원이 자리를 떠났다가 잠시 후에 커피, 설탕, 우유가 올려져있는 쟁반을 들고 왔다. 그는 탁자 위에 커피 등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돌아갔다. 박승종과 이원익은 입맛을 다시며 커피에 설탕을 넣고 저은 다음,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크... 이 커피의 맛은 참으로 신기하오. 쓴 맛이 도는데도 자꾸 찾게되고, 머리가 맑게 되는 효과가 있어 책을 볼때 좋겠소이다."
"마찬가지로 생각하오. 조선에도 커피가 있었다면 사대부들 누구나 다 즐겼을 것이오."
최명길은 단 한마디,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박승종과 이원익이 커피를 마시며 한참 대화하건 말건 말이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쉬던 차에 또 다른 정보국 직원이 와서 국왕을 알현하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직원을 따라나섰더니 입구에는 말 4마리가 끄는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마차에 올라 2각 정도 이동하니 돌로 만들어진 건물 앞에 도착했다.
정보국 직원은 그 건물을 국왕의 집무실이라고 말한 다음, 국왕에게 어떤 예를 보여야 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놀랍게도 국왕에게 절을 하지 않고 고개만 잠깐 숙이는 것으로 끝난다고 했다. 오늘 국왕 알현시간은 충분할 것이니 궁금한 것이 있다면 예의를 갖춰 여쭤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국왕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국왕의 접견실
최명길은 물론이고, 박승종과 이원익도 큰 충격에 빠졌다.
"어서들 오시오. 내가 한국의 왕이오."
"주상..."
"히익, 딸꾹... 읍.."
"으음..."
모두 눈을 부릅뜨고 국왕을 보고 있었다. 어떤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국왕을 쳐다보며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최명길은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억겁같은 시간이 흘렀다.
◆ ◆ ◆
조선 서해상, 어느 배의 선실.
박자흥은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물었다.
"송 중령! 정말 내 딸을 구할 수 있는거요?"
그에 반해 송 중령이라 불린 사람은 담담하게 답했다.
"글쎄요. 저는 정보국의 작전을 후방지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정보국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구출가능합니다. 참고 기다리세요."
박자흥은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 잡으며 다시 말했다.
"알겠소이다. 자꾸 물어봐서 미안하오."
송 중령이 다시 박자흥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웃어 주기까지 했다.
"하하하! 이해합니다. 대감의 가족들도 가산은 적몰되었으나 처형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관직은 내놓았지만 모두 무사하다고 하니 걱정마세요."
"고맙소. 그거 불행중 다행이오. 아버님께선 서울에 도착하셨겠지요?"
"물론입니다. 넉넉잡아 20일 남짓이면 한국 서울에 도착합니다. 이미 국왕전하를 알현하셨을 겁니다."
강화도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은밀한 곳에 정박된 함선의 선장실에서는, 함장 송중령과 전 경기감사 박자흥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한참을 이어졌고, 어느 새 늦은 밤이 되었다. 서해의 바다날씨는 무척이나 맑고 바람이 세찼다.
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것일까?
같은 시각, 강화도의 어느 땅 속.
깊고 어두운 갱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화등 몇개를 의지해 힘든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갱도를 따라 땅을 파고 있었다. 파낸 흙은 다시 갱도의 반대쪽으로 옮겨내고, 파낸 갱도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나무로 된 기둥을 세웠다.
퍽!퍽!퍽!
쓱!쓱!쓱!
"여기 기둥 세워!"
탁!탁!
"잠깐, 지금 갱도 길이가 732척(약240미터)이다. 앞으로 10척 남았어. 갱도 유지하고 위로 뚫을 장비 준비하자."
"알았어. 이제 밤이 되면 들킬 수 있으니 오늘은 종료하자. 작전일은 3일 후로 생각하면 되겠네. 이만 돌아가자."
"그래."
"..."
◆ ◆ ◆
왕궁 집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