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225)

먼저, 조선의 외교방향과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그 후 한국이 조선에 대한 외교 및 정세를 어찌 적용하여 판단할지... 그 "외교군사 측면의 전략전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각에서 의논하고 국왕전하와 합의해서 의결한 '조선책략'의 결론에 따라 한국의 외교군사정책은 크게 바뀔 것이다. 

지금 한국과 조선은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선책략'에 관한 토론은 매우 거칠었다.

"이런 어리석은... 전쟁만이 능사가 아니오. 조선정벌론은 외교적 교섭이 있은 연후에야 검토할 수 있어요."

"절대 안됩니다. 조선은 명과 조공하고 일본이나 유구국을 제외하곤 외교가 없습니다. 저렇게 문을 닫아걸고 있는데 외교적 교섭이 되겠습니까? 우리 국민 다수가 노비출신이란 사실을 알면 당장 천한 것이라 욕할 것이오. 욕만하면 다행이고 문을 완전히 닫을 것이 분명하오. 게다가 출국한 노비들, 우리 국민들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것이오. 다시 노비로 쓰겠다고 말이지. 왜 이리 생각이 짧으신거요? 에잉!"

"뭐라고... 그렇다고 전쟁하잔 말이오?"

"지금 너무 말이 심합니다. 제발 듣는 사람 생각 좀 하고, 언성을 낮추시오."

"..."

가장 크게는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로 갈려서 논쟁했다. 

먼저 주화파는 외교적 해결을 우선하여 조선과 외교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했다. 

조선에 외교사절을 보내 한국의 존재를 알리고 잘 설득하자고 했다. 그렇게 외교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준다면 이민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 주화파는 너무 안이한 주장을 했다.

그 다음으로 주전파는 조공체계에 속한 조선을 외교협정으로 끌어오려면 명의 조공체계를 부수거나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켜야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전파는 명 또는 조선과의 전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주화파도 전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외교적 해결노력을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주전파는 그 안에서 또 파벌이 갈라졌다. 

첫째는 조선을 아예 한국에 복속시켜 직접통치하자는 정벌론을 주장하는 파벌이었다.  둘째로 조선정권은 그대로 두되 함포와 군사력으로 위협해 외교협정을 강제하자는 강제개항론자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정권을 무력으로 교체하고 외교협정을 하자는 정권교체개항론 등이다.

나는 수상으로써 각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주전파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여겼다. 나는 예전부터 사대부의 나라 조선이 변화하려면 외부의 강력한 압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수상관저 집무실.

나는 정보국장을 불러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먼저 물었다.

"음... 자네의 보고에 따르면 서인들이 반정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

정보부장은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서인들은 조선왕의 폐모살제, 삼정의 문란, 명의 재조지은 등을 이유로 세력결집에 나섰습니다. 김류, 김자점, 최명길, 이귀 등이 핵심인물입니다. 거기에 종친이 가세하여 때가 무르익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조선은 아직 사대부간의 세력다툼이 거셌다. 동서분당(주:동인과 서인의 결별) 이후 그 싸움은 피를 부르는 일이 잦았다. 정보부장의 말대로라면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때가 적기 아닌가? 내부의 분열이 극심할 터인데?"

정보부장은 잠시 고심하더니 답변했다.

"그게 그리 간단치 않을 것입니다. 내부의 분열이 극심하다고 하나, 그들에 대응되는 외부세력이 나타나면 그 분열이 봉합되어 결집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정이 일어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 기존 대북은 피로 씻길 것입니다. 그러면 사대부의 세력은 반토막이 납니다. 거기에 서인들 사이에 공을 두고 내분이 벌어질게 뻔합니다. 지금 서인은 반정을 위해 뭉쳤을 뿐이며 원래 남만도 못한 사이였습니다. 자신들의 적인 대북이 사라지면 서인끼리 이합집산할 것입니다. 그때는 반정으로 인해 세력이 반토막난 상태에서 내부의 분열까지 더해지니 우리가 개입할 가장 좋은 시점입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보부장의 보고에 따르면 이는 가장 논리적이고 타당한 분석이었다. 

다만, 그 시기의 예측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다.

"그런데 그 적당한 시점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 않나? 특히, 그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난색을 표하자 정보부장이 반문했다. 

"그 시기를 우리가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정보부장의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구?"

"그 시기를 우리의 정보공작으로 만들면 됩니다. 우리 정보부원들은 조선인이었습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시기예측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차피 반정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서인들과 그 세력하에 있는 군부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면 반정시기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정 이후에 개입할 것이니까 반정시점은 조용히 관찰만 하면 됩니다. 그 후에, 반정에 성공한 서인이 내부분열을 일으키면서 반란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부추기면 됩니다. 저는 사대부의 심리를 잘 압니다. 그들이 움직일 명분을 만들어준다면, 그리고 도와준다면, 그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켜 자중지란에 빠질 것입니다."

"..."

내부첩보를 이용한 분열작전이라...

나는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정보부 조선지부장을 소환해서 보고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본국으로 소환된 정보부 조선지부장은 나와 정보부장 앞에서 상세히 보고를 마쳤다. 

나의 질문도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는 국왕전하께 '조선책략'에 대한 정식보고를 드렸다. 

그런데 국왕전하께서는 보고서제목을 듣고 멈칫하셨다. 

그리고 나직하게 '조선책략'을 되뇌이시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국왕전하께서 왜 보고서 제목을 들으시고 놀라시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자 국왕전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내게 질문하셨다.

"수상! 이 '조선책략'이란 보고서 제목은 누가 정한거요?"

"정확한 것은 확인해 본 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정보부에서 그리 지은 것 같습니다."

내 답변에 국왕전하께서는 얼버무리며 말씀을 하셨다. 좀 이상했다.

"아..아니오. 확인까지는 필요없소이다. 앞으로 보고서 제목은 '대조선외교정책(對朝鮮外交政策)'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전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국왕전하께 고개를 숙여 인사드린 후, 자리를 떴다.

얼마 후, 내각회의.

"본 수상은 이것으로 일급비밀 '대조선외교정책(對朝鮮外交政策)' 안건이 정식으로 의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본 안건은 국왕전하의 승인을 받는대로 즉시 시행할 것이오. 각 부서는 보안에 유의해서 세부시행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하시오. 이상 오늘 각료회의는 종료합니다."

유럽 지식인의 유입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한 강당에서는 논문발표가 한창이었다. 

특이하게도 논문발표자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동양인이었다. 머리, 피부와 눈동자의 색을 제외하면 주위 누구와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영국식 옷을 입었고 영어와 라틴어도 유창했다. 만약 그의 외모를 보지 못한 사람이 그의 목소리만 들었다면, 교양있는 영국인으로 알았으리라. 그 동양인의 논문발표가 끝나자 강당의 모든 사람들은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로 화답했다. 그의 논문이 영국의 오랜 고민을 풀어주는 단초가 될 것이기에.

"세준! 자네의 논문은 흠잡을 데 없이 대단했어. 옥스퍼드의 교수요원으로 추천했는데 그걸 고사하다니! 옥스퍼드가 불쌍하군."

"하워드 남작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하하하! 과거의 나는 잊으라구. 그 누구도 괴혈병을 낫게 할 수 있단 생각을 못했으니. 치열한 논쟁은 대학의 본질이야."

"하하하. 하워드 남작님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논문발표부터 교수요원 추천까지 감사하기만 한걸요."

"알겠네. 그래도 서운하구먼. 괴혈병에 대한 경험적 추측은 있었지만 실증적인 증명이 없었어. 우리 영국인은 경험을 중시한다네. 그래서 괴혈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그에 대한 경험적 추측만 있을 뿐, 증명하기 곤란했지. 자네의 연구와 논문으로 우리는 괴혈병의 예방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걸세."

"제 연구와 논문은 한국의 해군, 무역회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제 노력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사례는 국왕전하의 공입니다. 국왕전하께서는 경험적으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괴혈병을 예방할 것이라 생각하셨고 그걸 실행하셨습니다. 또한 괴혈병이 장, 단거리 항해에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셔서 장거리 항해에 더 심혈을 기울이셨죠. 추가적으로 장기보존이 가능한 과일이나 채소 등을 다양하게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하신 것도 국왕전하십니다.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한국의 경험사례를 소개했을 뿐입니다."

"너무 겸손하군. 단순히 경험만이라면 우리도 만만치 않아. 그걸 체계화한 공도 대단하네. 이런 지식의 교류가 영국과 한국을 더 단단하게 이어줄거야."

"..."

세준은 4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했다. 

개노미, 아니 희두형님의 편지를 통해 어머니와 누나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이미 받았었다. 하지만 국가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영국에 유학생으로 온 이상, 개인의 용무보다는 국가를 위해 지식을 갈고 닦는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희두형님의 편지에는 어머니와 누나의 편지도 동봉되었기에 더욱 안심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 누나와 편지교환이 계속 이어졌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귀국에는 세준과 동행하는 영국인이 있었다. 

옥스퍼드에서 만난 친구인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의학과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다. 

세준이 괴혈병에 대한 논문을 준비한다고 말하자, 의학도로써 관심을 보이며 의기투합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세준의 괴혈병 논문성공에 제임스의 의학지식은 결정적인 성공요인이었다. 

제임스는 호주라는 새로운 대륙에 다양한 토종생물들이 산다는 것에 흥분했었다. 의학과 생물학에 관심이 큰 만큼, 새로운 동식물을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자 한국행에 나선 것이다.

"세준! 이번 항해가 한국 쾌속선이라니 좋군. 서울까지 100일 정도라구? 이건 기적이야, 기적."

"하하! 기대하라구. 물론 항해에 그리 큰 낭만은 없을거야. 하지만 우리 한국의 쾌속선만큼 빠르고 안전한 배는 없어. 괴혈병때문에라도 레몬과 라임에 익숙해져야 할거야. 유럽보단 심심할테니 친구들에게 미리 인사도 하고."

"걱정말라구. 내가 알아보니 이번 쾌속선에 영국인만 30명이 넘게 탑승해. 옥스퍼드와 캠브릿지에서 벼르고 있다더구만. 한국의 선박제조, 항해기술을 배우겠다고 말이야. 그동안 영국의 여러 기술을 다 배워갔으니 한국의 기술도 영국으로 가져가야한다구 말이지. 한국에서 심심할 겨를이 없을거 같은데?"

"그럼 다행이지. 난 왕립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추천받았어. 나와 함께 재밌게 연구해보자구. 친구!"

나는 왕립 서울대학교 제4회 졸업식에 참석했다.

대한무역주식회사의 내 주식 30%를 매각하고, 몇년 치 배당금을 풀어서 만든 대학이다. 왕립 해군사관학교는 군사연구 및 교육기관이고 왕립 서울대학교는 학문연구 및 교육기관이다. 학교가 하나만 있으면 경쟁이 부족할 것 같아 사립학교법도 제정했다. 주요 도시에 국립대학교를 만들고, 사립대학교도 만들도록 유도하는 취지였다. 왕립 서울대학교는 철저히 옥스퍼드와 캠브릿지를 벤치마킹했다. 왕궁은 개뿔? 왕립 서울대학교가 서울에서 가장 크고 멋진 건축물이다. 아직도 건축중인 건물이 많아 수십년은 더 걸려야 완공될 것이다.

내 왕궁은 2층짜리 하얀 대리석 건물에 방6개, 기타 사무실과 회의실, 접견실이 있는 단촐한 구조였다. 오히려 수상관저가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왕립 서울대학교는 도심에서 가깝고 교통여건이 좋은 곳에 크게 지었다. 교통여건이 좋다는 것은 주민 거주지에서 가깝고 길이 잘 닦여 접근이 쉽다는 것을 말한다. 서울은 행정입법사법이 집중된 정부행정업무구역, 상업구역, 기업업무구역, 공업구역, 거주구역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곳에 입지한 것이 왕립 서울대학교였다.

수상과 의원들은 '왕도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린다.'고 비판하며 왕립 서울대학교 설립을 반대했다. 백만평(현대식 50만평)의 넓은 땅에 비싼 대리석재 등을 이용해 유럽식 대학을 만든다는 것. 이는 엄청난 비용을 수반했다. 땅이야 거저니까 상관없었지만 건축비용, 고용인력에 대한 비용 등이 큰 재정부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인 내 재산 절반을 내놓자 비판이 사라졌다. 재정수요가 많은데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었다. 수상과 의원들도 대학교의 필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우격다짐으로 만들어진 왕립 서울대학교는...대박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상상을 초월하는군.'

나는 왕립 해군사관학교, 왕립 서울대학교의 개교기념식, 졸업식에 반드시 참가했다. 그냥 왕이라고 뽐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식인이 대접받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참석했다. 실제로 두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고 돈을 잘 벌어 사회에서 대접받았다. 지원자격에 제한이 없고 학비도 저렴했다. 누구든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잘되는 길이 보인다면 그대로 한다. 조선에서 과거를 보는 것이 그런 이유였다.

졸업식에는 각계의 인사들과 졸업생 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현대 기준으로 거의 오십만평쯤되는 학교가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멋진 학교건물 중에 백미는 도서관이었다. 지식의 보고는 뭐니뭐니해도 활자로 만들어진 책, 도서관아닌가? 그 도서관 앞 광장에서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졸업생 중 소수는 외국인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영국과 네덜란드였다. 우리가 영국과 네덜란드에 유학생을 대거 보냈었고, 지금도 매년 수백명씩 보내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한국의 조선기술과 항해기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러 왔다.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으니까 대학에서 배운다고 조선기술과 항해기술을 다 배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소에 취업해서 조선기술을 배우고, 무역회사나 해군에 들어가서 항해기술을 배우는게 빨랐다. 

하여간, 왕립 서울대학교는 소수일망정 외국유학생이 있었고, 점차 유럽의 유학생이 늘고 있었다. 그로인해 한국 사람들에게 유럽인은 '홍모귀'라는 식으로 불리울만큼 신기하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한국 사람들에게 유럽 백인은 보통사람으로 인식이 된 것이다. 

유럽의 지식과 문화가, 처음에는 나의 결단으로 강제적으로 이식된 이후부터, 이제는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민간차원에서까지 자발적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인과의 통혼, 유럽인의 귀화 등도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서울 시내 어디를 가거나 유럽식의 음식과 문화가 넘쳐흘렀다. 유럽인들도 영국식의 문화가 이식된 한국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유럽인 이주의 시작은 골드러시였지만 유럽 지식인의 유입은 왕립 서울대학교의 설립이었다.

"국내거주 유럽인이 벌써 3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채금열풍은 거의 잦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채금관련 이주민은 현재 1만명 이내로 점점 줄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기술이민은 장려시책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유학생도 가세했습니다. 외국인 등록법 시행에 따라 입국과 동시에 거주증을 교부하고 있는데 지난 주까지 2만9천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탁!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채금열풍, 이 골드러시가 한국의 산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이젠 사양길에 들어섰다. 골드러시로 인해 경기가 부양되고 법적 권리에 대한 의식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은 측면도 있었다. 

이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수요, 시장을 창출해야했다. 새로운 수요, 시장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발전이었다. 산업혁명은, 해군력과 함께, 영국을 부동의 세계패권국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직 우리의 기반기술이 부족했기에 증기기관이나 후장식 대포 등의 발명은 어려웠다. 내가 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간접적인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답답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에 맞는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왓슨을 통해 증기기관을 연구하며 그 기반기술도 함께 연구지원하고 있었고, 총과 대포 등 화기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플린트락까지는 개발하고 싶었다. 될지는 미지수지만. 내가 방향을 설정해주는 등 아이디어는 전달했으니 나머지는 천재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게 여겨졌다. 

그리고 결정했다.

"유럽인들도 우리 말을 배우고 우리 땅에서 법과 질서를 존중하며 정당한 세금을 내고 국가에 충성한다면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시오. 유럽은 종교박해가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되 이슬람은 타 종교를 지나치게 배척하니 성리학과 함께 금지합니다. 유럽 지식인의 이민을 받아들여 산업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오. 이민은 조선과 유럽인에 한합니다. 명과 일본은 우리와 문화가 달라 국론이 분열될 뿐입니다. 화교들이 동남아 여러나라에서 독점적인 경제세력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례를 잘 알고 계실겁니다. 대신, 유럽인의 이민자는 면밀히 관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받으세요. 은밀하게 심사하여 범죄자는 추방하고 첩자들은 감시해야 합니다." 

그동안 골드러시를 통해 유럽 이주민을 상업적 목적으로 거주권만 허용하던 것을 제한적 이민허용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과연 이것이 독배가 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지식인이고, 기술자들이었다. 유럽 유학생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제 유럽의 지식인과 기술자를 유인하는 기존의 당근책과 함께 이민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생각은 정리됐다.

'아! 이제 스페인 필리핀 총독한테서 테르시오 장교들이 올때가 된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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