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수집
왓슨은 한국 최초의 유럽계 귀화인이다.
왓슨, 맷슨, 톰슨. 영국 사략선의 아일랜드인 3명이 무역상단을 따라나선 후에, 맷슨과 톰슨은 다시 아일랜드로 떠났다. 사실 왓슨도 아일랜드로 떠났다가 골드러시 때문에 가족을 끌고 왔다. 이 3명이 아일랜드로 떠난 후에는 잠시 괘씸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펌프를 이용해 이들이 유럽에서 돈 좀 만졌기 때문이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유럽 배에도 펌프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유럽에서 떵떵거리며 살지 왜 한국에 왔을까? 왓슨 말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내 뒤통수는? 쯧쯧. 그걸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일했던 정이 있어서 귀화를 허락했다.
왓슨은 여기에서도 펌프로 돈을 벌고 있다. 왓슨이 개량한 선박용 펌프는 내가 만들었던 것보다 성능이 탁월했다. 아일랜드 3인방이 내 뒤통수를 친 것을 알게 된 것도 왓슨이 만든 개량펌프때문이다. 우리 배에도 이제는 왓슨이 개량한 펌프를 쓰고 있다. 양수능력이 무려 3배나 향상했는데 안쓰면 바보다. 왓슨은 서울 인근에 펌프공장을 차리고 돈을 벌고 있다. 왓슨의 펌프는 농업에서도 대박을 쳤다. 우리 호주의 땅은 대찬정분지가 널려 있다. 사암으로 흘러들어간 물이 구멍만 뚫으면 알아서 올라왔다. 이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다. 왓슨도 이걸 노린 것 같다. 이런 기술자를 우대해줘야 또 다른 발명가들이 나올거다.
왓슨의 펌프는 배, 농장은 물론이고 이제 광산에서도 필수품이 되었다. 채광을 하다보면 땅 속의 수맥을 건드려서 갱도가 잠기거나 광부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광산업자들은 펌프가 필요했다. 왓슨의 개량펌프는 잘 팔렸다. 광산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이용해서 펌프를 돌렸다. 미래에서 알았던 호주의 장점을 이용해서 나는 목축업을 크게 일으켰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수십배의 양, 소, 말이 있다. 염소도 이제는 수십만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육류소비가 아주 쉽다.
나는 조선의 농업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생각이 없었다. 호주의 땅이 조선과는 달랐다. 인천처럼 벼농사가 유리한 지역이 있긴 했지만 그 일부를 전부에 적용할 순 없었다. 정답을 알고 있는데 그럴 수야 있나? 물론 나중에는 정답이 아닐 수 있겠지만. 난 고기가 좋다. 그걸 위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농부들을 대거 초청해서 엄청난 은을 뿌렸다. 그 결과, 곡물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고 육류소비는 소와 양으로 나뉜다. 유제품인 치즈와 버터도 충분하다. 빵을 만들기는 가정에서 힘들기에 독일식 빵공장을 도입했다. 마을마다 빵을 굽고 사서 먹게 했다. 빵공장 덕분에 화폐경제는 더 빨리 자리잡았다. 밀가루 제분소도 그렇고.
내가 서양빠는 아니지만,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하지 않을까?
"전하. 부르셨나이까?"
귀화한 이후에 처음 봤는데 살이 많이 올랐다. 귀화신청할때는 비쩍 말랐었는데 이젠 사장님 포스가 절로 나온다. 한국말도 아주 잘한다. 가끔 존댓말에서 실수가 있지만 말이다. 얼굴만 아일랜드다.
"요즘 사업은 어떤가? 가족들은 서울에서 학교 잘 다니고 있나?"
우리나라는 국민교육이라서 귀화한 왓슨의 가족 모두는 국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개국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나이 상관없이 의무교육이다. 왓슨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예 전하. 이제 저는 물론이고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그래야지. 부족한건 없나? 말해보게.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왓슨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괜히 말했다가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고민하는. 왓슨은 결심했는지 말을 꺼냈다.
"광산채굴을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가 만든 왓슨양수기는 채광을 도와주는 장치입니다. 요즘 영국에는 채광용 기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저도 그걸 만들고 싶습니다."
채광용 기계? 그게 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지금도 말을 이용해서 잘 하고 있는것이다. 국민1인당 말1.3마리는 될텐데. 현대로 따지면 1인당 자동차 1대이상 수준이다. 그래서 왓슨에게 물었다.
"기계를 만들고 싶으면 만들게. 누가 방해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방해하거나 금지된 것이 아니니 누구든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를 함께 만들 사람이 필요하고, 보다 강한 철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제작장비들도 구해와야 합니다. 막대한 비용이 들기에 전하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국가에 큰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
아! 이거 증기기관인가? 내가 무식해서 못알아들었다. 그래도 한번 더 확인해봐야겠다. 제대로.
내가 왓슨을 부른 것은 유럽 이주자의 동태를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외국인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쇼킹한 제안을 하다니. 유럽 이주자 문제는 일단 접자. 이게 더 중요한 일이니까. 산업혁명이 조선, 아니지 우리 한국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표정관리, 표정관리.
"크흠. 그래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나? 가급적 자세히 이야기해보게나."
"유럽의 광산은 얕은 곳은 다 채광해서 없습니다. 그래서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광석을 캡니다. 깊을 수록 수맥도 있고 해서 양수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광석을 끌어올리거나 옮기는 등의 일에도 사람으로는 너무 많은 힘이 들기 때문에 그걸 대신할 기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기계를 만들려면 아까 말씀드린대로 기술자, 좋은 재료, 막대한 자본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힘듭니다. 유럽에서도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귀족들이 그 필요에 따라 기계를 발명하려고 합니다. 그 기계는 물의 힘을 이용합니다. 거기에 전하께서 만드신 양수기의 원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증기기관이 맞다. 확실해. 이런 것은 국가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도록 하는게 맞을거다. 그리고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들에게 경제적 보상도 해줘야지. 왓슨도 만들고는 싶은데 기술자나 기반이 되는 철, 장비들이 없어서 날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 결심했다.
"알겠네. 자세한 요구사항을 상무부와 상의해서 보고하도록 하게. 기술자들의 편의는 잘 봐주고, 강철이든 장비든 자금지원을 충분히 해주겠네. 기계발명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할테니 기술자는 외국의 기술자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기술자를 함께 키우도록 하게나. 마지막으로 기계를 발명한다음 특허권은 발명자 뿐만 아니라 국가도 함께 가지는 것으로 하지."
"전하. 알겠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증기기관 발명은 아마 오래 걸릴거 같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부가적인 기술발전이 더 중요할 거 같다. 이럴때 내가 기계공학과를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본다. 아니지 아니다. 그나마 조선공학과 공부했고, 쌩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서 범선을 직접 만들어본 덕분에 이 자리에 와있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더니만. 쩝.
오늘은 이걸로 끝내고 쉬는거다.
"수상께서는 내각에 정보부를 신설할 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세요. 정보부는 국내정보와 해외정보로 부서를 나누고, 해외정보는 유럽, 인도와 동남아, 명, 일본, 유구국, 만주, 조선을 중심으로 가장 적합한 담당자를 선발하시오. 세부 사항은 수상께 일임하겠소."
사르후 전투의 결과에 대한 내각의 평가회의가 끝난 후, 난 정보부 개설을 결심했다. 무역의 핵심은 정보다. 내가 가진 미래의 지식 덕분에 여기까지 온거다. 그걸 잊고 있었다. 우리나라 한국, 호주의 안전은 앞으로 100년이상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유럽의 패권은 아직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이 계속 싸우고 있다.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깨버리긴 했는데 그뿐이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던가? 아직 스페인의 부유함은 영국이 못따라간다.
유럽은 아직 괜찮다. 그런데 동아시아 정세가 심상치않다. 내가 아는 바로는 사르후전투로 누르하치는 만주의 패권을 잡았다. 실제 지금도 그렇게 되었다. 명에게서 왕으로 봉해졌다. 이제 중요한 건 조선이다. 일본이나 유구국은 앞으로 수백년간 별 변화가 없을거다. 유구국은 사쓰마번에 계속 조공을 바칠 것이고, 일본은 에도막부가 적당한 쇄국정책을 이어가겠지. 곧 일본에 기독교관련 난리가 날 타이밍인거 같긴하다. 예전에 동아시아 역사공부 좀 했어야했다.
그래 조선.
내가 알기로 조선은 이제 광해군이 명과 누르하치를 왔다갔다 고민할 것이다. 명은 늙어서 죽기 직전의 이빨빠진 호랑이다. 만주족이 결정적으로 명을 멸망시키는 데는 명 내부의 반란도 한 몫했지만, 조선과의 정묘-병자호란에서 기사회생을 했다고 했었다. 그걸 알아봐야겠다.
그러고보니 정묘호란부터는 광해군이 아닌 인조다. 인조반정이 언제더라?
일단 지금 왕은 광해군이고 정묘호란은 인조다. 인조반정은 정묘호란 전이니까 정보부를 갈궈서 반드시 미리 대비해야지. 내가 조선에 대해 내 나라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이 터잡았던 곳이다. 왕과 사대부들은 솔직히 꼴보기 싫고 그거 쌤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에 있는 양인들과 노비들은 그 무슨 개고생인가. 정묘호란부터 여진족에게 끌려간 수십만의 노예들은 양반보다 양인과 노비들이겠지. 양반들은 죄다 돈주고 조선으로 와서 또 엣헴했을거다.
참! 인조반정 후에는 곧 이괄의 난이란거 잘 안다.
한양에서부터 잘 기억하고 있거든.
이괄 이 새*는 참교육이다. 흐흐흐
해군교리
안들려, 안들린다구.
의회에서 내 결혼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아저씨들 할 일이 없나보다. 수상은 그 결의안을 들고 와서 나를 압박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한다고 말이다.
어이쿠! 왕도 떠밀려서 했는데 결혼까지 떠밀려서 하냐? 누구 좋으라구. 눈을 감고 경청하는 척하길 20분. 오후에 있을 전군 지휘관 연석회의를 이유로 수상을 떼어냈다.
수상을 비롯해서 의원들은 내 진정한 의도를 모를거다.
지금까지는 나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왕인 내가 없는 한국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미국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영국인들은 왕을 모셨던 사람들이라 조지 워싱턴을 왕으로 추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었다.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썰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 당시 조지 워싱턴이 자기 세력으로 밀어붙였다면 왕이 되었거나 최소한 종신대통령은 할 수 있었을거다. 미국독립전쟁은 보스턴 차사건으로 유명한 세금, 차별대우 등에 대한 식민지 시민의 투쟁에서 촉발되었다.
우리 한국국민들도 조선에서 가지고 있었던 노비근성을 빨리 털어버려야한다. 그래서 난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교육은 다른 거 없다. 일단 문맹을 벗어나고, 최소한의 사회 상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국민 각자의 권리와 의무, 자유와 평등 등 사회, 국가의 구성.....을 알려준다. 거기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준다.
노비근성, 노예근성, 누군가 해주겠지 등등 조선에서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를 모르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이 한세대를 지나 두세대 이상 넘어가면 국민들도 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릴 것이다.
그래서 천부인권설, 사회계약설 등을 그 누구보다 먼저 베낀거다.
아니 훔친거다.
내가 훔친 것들은 정말 많다.
한글 교과서는 무역회사 시절에 훔쳐서 만들었고, 산수도 마찬가지다. 아라비아 숫자와 주7일 요일제, 서양식 연도표기, 공휴일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영국제도를 너무 베낀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걸 내 권위로 일축했다. 강제적으로 시행한 것이 많았다. 그나마 처음에 이렇게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놔두었으면 어려웠을거다. 조선의 구습은 강제적으로 타파되었다. 대부분 말이다.
요즘 국민들은 빵과 우유, 소고기와 양고기를 즐긴다. 치즈와 버터도 소비가 늘고 있다. 정착 초기에 집은 목재 가건물 식으로 지었다. 지금은 스페인식 건축양식, 지중해식 건축이 대세다. 초가집은 아예 금지했다. 도시계획을 하면서 집의 구조와 양식, 색채 등을 도시미관에 맞게 상의해서 짓도록 했다. 호주땅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별해서 유럽인의 건축기술을 빌렸다. 건국한지 5년이 지나서야 집들이 제대로 올라갔다. 미국 서부시절 '초원의 집'인가 그 드라마처럼 살던 국민들이 이제야 제대로 집을 지어 올린 것이다. 먹을 것과 집만이 아니다. 옷도 무역회사 시절 직원복을 기준으로 표준복식을 고시했다. 한복이 디자인이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옷감낭비가 심하다. 호주는 더운 곳이 대부분이고 겨울이라고 할 것이 크게 없다. 그래서 봄과 여름용 직원 표준복장을 표준복식으로 고시했다. 조선에서 가져온 옷들. 특히 노비용 면포로 만든 거친 옷들은 죄다 걸레로 쓰게했다. 인도에서 싸게 수입한 면으로 현대의 티셔츠와 바지를 모방하여 만든 직원 표준복장을 제공했다. 단추를 활용해 옷감의 사용을 줄였다. 속옷도 비슷하게 했다. 양말과 신발도 기존 조선의 복제를 혁파했다.
이렇게 의식주를 완전히 바꿨다. 옷은 현대식으로, 밥은 유럽식으로, 집은 호주의 자연환경에 맞게 지중해양식으로 지었다. 특히 표준고시 등을 통해 집을 통일적으로, 도시계획에 따라 짓게 했다.
그런데 이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그저
옷은 입기좋고, 여기에 좋은 옷감을 아껴가면서 편리하게 하고,
밥은 먹기좋고, 고기와 곡물, 채소를 균형있게 먹고,
집은 집 안에서 편히 살기좋게, 이왕이면 넓고 멋진 집을 호주땅과 기후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걸 모두 새롭게 창조하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완전 똑같이 베낀거다. 유럽식으로.
서울항은 너무 멋지다. 영국이었으면 시드니라고 했겠지.
해군사관학교 대회의실에 전군 지휘관이 모였다.
내가 만든 해군교리와 교범을 심의, 의결하는 자리였다. 지휘관에는 무역회사부터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서인지 해군과 회사가 반반 섞인듯,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군대는 군기가 생명이지만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최고사령관이신 국왕전하께 경례"
"충성!"
손을 들어 경례를 하고 손을 들어 경례를 받는다. 허례허식을 배제하고 바로 자리에 앉아 해군교리와 교범의 검토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내가 직접 썼지만 그게 무조건 옳지는 않다. 해군교리와 교범은 전쟁원칙이고 전투세부지침이다.
교리와 교범을 개별전투, 함대전투, 육상전투 등에 실제 적용이 가능한지 수년간 연구개발하고 피나는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달, 해군전투발전단에서 최종적으로 사령부에 보고했다. 나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만족했다.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기분이 좋다.
이제 원양훈련만 제대로 시키면 되겠다. 괜히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해군함대에게 세계일주 원양함대훈련을 시킨게 아니다. 나는 철저히 근해 및 단거리 해군작전에 집중했다.
괴혈병의 원인과 대책을 잘 알기에 무역회사의 배들은 장거리 항해를 절대 시키지 않았다. 우리 배는 아주 빠르기 때문에 단거리를 자주 오가는 것으로 충분한 이득을 봤다. 중간기항지마다 깨끗한 식수는 물론이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공급해서 먹도록 강제했다. 서울항에서 유구국까지 항해도 15~20일 사이로 주파한다. 중간기항지도 2곳이나 있으므로 선원들이 괴혈병 등으로 고통받는 일은 우리 회사나 해군에 절대로 없을거다.
우리 해군이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는 한계선은 인도부터 조선을 포함해 일본까지를 상정하여 기본적인 작전계획을 세워두었다. 예를 들어, 사쓰마번이 유구국을 조공국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복속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무역회사의 유구국 지사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사쓰마번이 유구국을 병탄하여 우리에게 무리한 세금을 요구하거나 심하면 쫓아내려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해군은 유구국에 존재하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사쓰마번에게 참교육을 시전해줘야한다.
우리 해군의 기본적인 작전계획은 사전에 만들어놓고 준비해야한다는 기본 골격을 유지할 것이다. 조선도 기본적인 제승방략같은 전략전술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비도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양대호란을 보면,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대항해시대의 해군교리와 교범은 내가 옳다. 나중엔 더 똑똑한 사람들이 나와서 잘 해낼것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것을 바탕으로 말이다.
전군 지휘관 회의에는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가 사관학교 교수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흐흐흐.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는 육전대의 근접전투 및 전술, 화기교수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무역회사에서부터 계속하던거라 좋으신가보다.
김씨 아저씨는 총과 대포가 가장 중요하지만 근접전투(도검과 활)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돌쇠할아버지는 조총과 게릴라 전투의 달인이다.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는 그냥 놀게 놔두려했었다.
김씨 아저씬 내가 왕이 된다고 하니까 처음엔 암살, 독살을 걱정하셨다. 돌쇠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하니까 그런 걱정이 그리 크지 않았다. 조선도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하면 매번 역모때문에 사람 목치는 일도 줄어들텐데.
나는 걱정 안한다. 오히려 수상이 위험할지도. 난 분명 권위가 있지만, 모든 권력이 수상과 의회, 그 견제와 균형으로 행사된다. 법원이 또 그 둘을 견제하고 있다.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 걱정은 고맙지만 아직 이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대항해시대의 바다는 해적, 해적과 똑같은, 오히려 해적보다 더 무서운 사략선이 판치는 곳이다. 평범한 상선처럼 보이지만, 약간만 방심하면 그냥 털리고 만다. 그래서 상선도 대포를 싣고, 총과 칼을 무장하고 다닌다. 대항해시대의 무역회사와 해군은 무장과 전투능력에서는 다를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똑같다고 봐도 된다.
나는 거기에 딱 하나 차이를 뒀다. 나폴레옹을 벤치마킹해서 군인의 복장을 정말 멋있게 디자인한 옷을 지급했다. 현대 해군의 복장을 거의 그대로 채용한 것에 나폴레옹처럼 모자와 장식을 멋지게 해줬다. 물론 예복이나 정복으로만. 일상 전투복은 편한 옷을 저렴하게, 기능적인 면을 중시했다. 해군복장이 멋있다는 말이 나오니까 사관학교 입학지원률이 껑충 뛰었다. 그게 아니어도 무역회사와 해군의 지원자는 줄을 이었지만 말이다. 옷이 날개인가보다.
사람들은 단순한 면이 있다.
폼생폼사.
내가 나쁜 놈, 나만 나쁜 놈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미안한 것은 사실이군.
"이족들은 마마로 대부분 죽었습니다. 폐병으로도 그에 못지 않게 죽었다 합니다. 특히 동남도의 이족들은 지금 불과 수백에 불과합니다."
호주 원주민 문제는 역시 이렇게 흘러가는 듯 하다. 남아메리카도 스페인의 군사력이 아닌 천연두와 유럽인의 질병으로 대부분 죽었다더니. 여기도 그렇다. 우리가 이주한지 불과 9년만에 이족의 거의 7할이 사망했다. 이주민과의 마찰도 많았다.
내각의 보고로는 천연두, 결핵, 수두, 홍역 등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나는 영토에 대한 권리문제 때문에 그들을 원주민이라 칭하지 못하게 했다. 그냥 이족이다. 원래 살았던, 원주민, 정주민 등 어떤 말도 못쓰게 했다.
최근엔 유럽인이 가져온 매독이 돌아서 이족들이 또 줄었다. 우리도 매독때문에 비상이 걸렸는데 그건 유럽에서 의학을 배워온 의사들에게 대응토록 했다. 하여간 이제 이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처음 이주가 시작될 때에는 이족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족은 소수인종이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들을 호주의 원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나쁜 놈으로, 영원히 제국주의자로 욕을 먹고 역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라도 그럴거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북쪽의 큰 섬에 이주할 수 있도록 돕는게 어떤가?"
오직 나중에 생길 인종갈등과 그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고 이러는 것이다. 지금 내 권위를 무시할 순 없다. 아무도. 이왕 욕먹을거 계속 나가자.
"지금까지 이족들이 전염병으로 많이 죽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친족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이족들에게 충분한 식량, 담배, 옷감을 주고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당분간 계속 지원해 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다. 그대로 시행하라."
호주 땅에 대한 우리 한국민의 영속적인 권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나는 권위를 이용했다. 일부 의원은 나에게 그동안의 언행과 배치되는 비논리적이며 비인도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족의 이주관련 법안 표결에 반대를 했다. 한 의원은 왕께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며 기권했다.
나는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지금 추세로 원주민을 놔두면 우리가 가져온 전염병으로 9할은 죽을것이고, 국민들과의 여러 분쟁으로 나머지가 죽을거다. 소수가 남아서 미국의 인디언보호구역처럼 살겠지. 그러느니 전염병으로 고통받거나 우리 국민들에게 학살당하지 않게 도와주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의회에서는 간신히 절반을 넘겨 법이 통과됐다.
앞으로 10년간, 9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현대에서 파푸아뉴기니라 불리운 섬으로 이주될 것이다. 그리고 법률에 따라 30년간 곡물과 담배 등을 무상으로 지원해 줄 것이다. 그들의 정착지 조성이 시작될 것이란 보고를 받고서 나는 괴로웠다. 현대에서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지은 "총, 균, 쇠"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었다. 이주하기 전에는 이것에 대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주 초기부터 그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봤다. 가장 큰 이유는 분명 전염병이다. 그런데 전염병의 근본적 이유는 우리때문이다. 우리가 아니어도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유럽인들이 전염병을 몰고 왔을 것이다. 그래도 직접 원인은 우리다. 나는 영원히 후손들에게 욕을 먹겠지. 그 대신에 우리 국민들이 원주민을 멸종시켰다는 비난만은 피할 수 있게 해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나쁜 놈이다. 아니 나만 나쁜 놈이다.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다.
1621년의 첫 해가 뜨고 있다.
재작년, 1619년에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결정한 사르후 전투가 있었다. 동북아시아의 명과 조선이 여진족 누르하치에게 대패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전투로 인해 한국의 외교전략과 대외정책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사르후 전투에 대한 평가는 2년 전에 끝냈다.
그 전투로 동아시아의 판도가 바뀌면서 우리 국민이 발원한 고향, 조선이 불안해졌다. 나는 조선이 계속 국가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국민들은 모른다. 조선 입장에서는 명에서 청으로 사대하는 국가가 바뀐 것 뿐이다. 북벌론이고 뭐고 난 그거 쇼맨십으로 생각한다. 진짜건 말건 나와는 상관이 없지. 인조 니가 고생 좀 해라. 하하하.
어쨌든, 우리 한국의 기본적인 외교전략과 대외정책은,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는 유럽의 여러나라와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화친을 하되 그에 상대할 해군력의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걸 통해 우리의 생명인 해상무역로를 지킬 수 있다. 동아시아와 인도 등은 무역을 하는 정도로 간접적인 외교면 충분했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무역으로 족하고, 해군력 투사능력이 없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기본전략은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명의 조공체계(조공을 중심으로 한 명나라의 패권을 인정하는 외교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명의 조공체계에서 우리는 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