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25)

호주는 거대한 섬이었다. 

이미 알았던 것이지만, 탐광꾼들에게 들인 엄청난 돈으로, 지도까지 제대로 나왔다. 유럽의 탐광꾼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주고 금광과 은광에 한해서 유럽인들에게도 채굴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넌지시 약속했다. 

대신 금은 세금떼고 국외유출을 금지하며 한국은행에 전량 판매하는 조건이다. 은의 경우는 세금을 내고 국외유출이 자유롭게 하는 조건이다. 우리 국민의 경우는 조금 더 세금을 낮게 해주고, 다른 조건도 완화했다. 

거기에 더해서 사금이 아닌 금광과 은광의 경우는 자본을 투입해서 개발에 성공하면 개발권도 주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엄청난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생겼다.

"채금(採金)사들이 전국 각지를 헤집고 다녀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채금사들 중에 자본이 충분한 자들은 조선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속량시켜 데려와서 금광을 개발한다고 난리법석입니다. 개발만 성공하면 금방석에 앉을거고 세금도 낮습니다. 채금이주민만해도 벌써 2만명이 넘는다 하옵니다. 가만히 놔두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국민들이 열일 제쳐두고 금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채금과 채은행위를 금지해야 합니다."

"유럽에서도 수천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물가가 너무 올랐습니다. 사금(沙金)을 채취하는 곳에서는 빵 한덩이에 금 한냥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밀 가격이 작년에 비해 두배나 올랐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재고가 점차 고갈되고 있습니다. "

"허허. 이미 허락한 것을 어찌 바로 금지하겠소? 대신 범죄행위는 엄히 단속하시오."

"금을 매입하느라 보관된 한국은행 은 보유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보유한 은을 추가로 가져와야 합니다. 올해만 금 매입량이 80만냥입니다."

"그렇다면 금 매입에 대한 은 교환비율을 기존 금1대 은5에서 금1 대 은4.5로 하향조정하게. 한국은행장!"

"네 말씀하십시오."

"새로 주조한 화폐를 언제든 금과 은으로 바꿔줄 수 있겠나?"

"충분합니다. 금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은으로는 여유있습니다. 그냥 은으로만 하셔도 됩니다."

"그건 안된다네. 지금 은이 쏟아져나오고 있어. 현재 명에서 금1냥을 사려면 은6냥이 있어야하네. 스페인과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은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가? 곧 은의 가치가 떨어질거야. 금과 은의 가치를 매달 확인하여 이득을 취하게."

골드러시로 인해 서울을 비롯해 호주 전 국토는 몸살을 앓았다.

불과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인구는 5만명이 늘었다. 

유럽인도 1만명이 넘게 대양을 건너왔다. 

인구의 폭증으로 물가는 생필품을 기준으로 거의 100% 넘게 폭등했고 생필품을 제외한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과 은을 찾아 나섰다. 투자도 활발해졌다. 혼자가 아닌 둘이, 둘보다는 셋이서 자금을 모아 금광을 찾아 나섰다.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조선의 노비출신들이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주식회사를 차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도로를 만들었다. 사금이 채취되는 곳에는 작지만 도시도 생겼다. 

채금사들이 금포(金浦), 금을 실어나르는 항구라고 이름도 지었다. 정부의 투자는 단 한푼도 없었다. 나중에 행정기관 등 관공서를 설치했을 뿐이다. 

호주에 처음 정착촌을 설치하고 정부의 국토종합개발계획을 마련할때만해도 가장 중요한 의식주 및 기본적인 사회인프라, 농업 등에 대한 고려만 있었다. 그렇게 4년이 되도록 도시는 계획도시인 서울, 인천, 신의주 3곳 뿐이었다. 

한국의 시작은 무역회사였기에 무역이 주종목이고 무역업은 계속 호황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정부주도로 낙농업 등 농업과 소규모 상공업 등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무역은 여전히 활황이었으나 이주한 가족들이 조선에서 농사나 짓던 노비출신이라 호주 본토는 정부주도의 낙농업을 위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근대 산업혁명에 가장 중요한 상업과 공업의 기반이 아예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 골드러시는 노비였던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킨 중대한 계기였다. 

우진의 무역회사에서도 메리트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도록 유도했었다. 그러나 새롭게 이주한 국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5년동안 정부주도로 교육을 시키고 땅을 나눠주었고 국민개병제를 통해 군사훈련을 시켰지만 근본적인 사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골드러시는 그런 국민들의 마음에 점점 메리트 시스템이 자리잡게 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골드러시는 지금 시작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불과 1년 반만에 국내경제규모가 3배나 커졌습니다. 3년 후에나 20만이 될 것으로 생각된 인구가 지금 25만입니다. 인구 5천명 이상의 도시가 11개 생겼고, 정착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금이 나왔다는 소문만 나도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솔직히 금을 캐서 부자가 된 사람보다 낙농업이나 상공업에 종사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예전에는 무역이 5할, 농업이 2할, 소규모 상공업이 3할이었습니다. 무역에 너무 편중되어 있어서 국내의 산업기반이 너무나 취약했습니다. 말이 상공업이지 조선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역의 비중이 3할로 떨어질 정도로 상공업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상공업 관련해서 주식회사가 생기고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서 물가도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이제 상공업의 비중이 무려 6할이 넘습니다. 농업도 낙농업과 목축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농업 종사인구는 줄어드는데 농업생산은 늘고 있습니다."

"인구를 더 늘리기 위해 출산장려와 이민장려 계획을 세웠었는데 필요없을거 같습니다. 농업증산계획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국민들의 욕구가 이렇게까지 무섭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정착촌이 어제 생겼다가 오늘 없어집니다. 과도한 투자로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금광과 은광에 개발권을 준다는 자체가 너무 과한게 아닐까요? 전하께선 사실상의 소유권인 개발권을 주고 세금도 아주 낮게 부과하셨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광산주들은 재산이 어마어마합니다. 광산세라던가 명목으로 세금을 부과하는게 옳을거 같습니다."

"저도 전하께 건의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걸 검토하는데는 최소 30년 이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국토부에서는 이번 채금열풍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신도시계획으로 인구1만이상 도시를 10년간 10개 만들겠다고 보고서를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만에 국민들이 알아서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한 것은 도시기본계획으로 관공서의 위치, 주택지구, 상업지구를 나눠놓은 것 뿐입니다."

"전하께서 30년을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30년동안 이런 채금열풍이 계속되는걸까요?"

"그렇게 오래되진 않겠지요. 부자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더 많은데."

"농업은 물론이고 상공업이 커지는 것이 큰 이득이오."

"한국은행에서는 화폐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물가때문에 다소 고생은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난 의문이 있소이다. 전하께서는 이런 채금열풍을 일부러 유도하신거 같소이다. 유럽에서 탐광꾼을 불러오시고 개발권에 세금까지 아귀가 딱 맞아..."

"닥치시오. 감히 전하께 무슨 망발을...?"

"허허. 이 자리에서 그런 막말을 하시면..." 

"그만하시오. 그런 식으로 의심한다면 그 어떤 것도 남탓이고 전하탓을 할 것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에잉~ 나도 미안하게 됐소."

"자자 각자 돌아가서 할 일이 많으니 오늘 회의는 이상 마칩시다."

◆ ◆ ◆

조선 조정은 충격에 빠졌다.

명이 누르하치란 여진족 추장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한 대군이 대패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명의 원군을 지원받았던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파병을 했다.  그런데 전멸에 가까운 충격적인 패배를 한 것이다. 

조선은 알토란같은 정예병 대부분이 전사하여 북방경계선이 불안하게 되었다. 조선의 개국 이후에 여진족에게 이렇게 충격적 패배를 당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도원수로 출정한 강홍립이 투항했다는 전령의 보고까지 들어왔다. 대궐은 침묵에 빠졌다.

권리를 위한 투쟁

노비는 사람도 아니다.

오죽하면 노비를 세는 단위는 사람 인(人)이 아니라 입 구(口)다. 

한국으로 그 많은 노비들이 이민을 왔는데도 조선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식량이 귀해서 보릿고개가 일상이니 입(口)하나 던다고 좋아하는 것일까? 회사 직원들의 혼사때문에 가장 걱정한 것은 딴 거 없다. '직원 가족들이 과연 무사히 조선을 탈출(?)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노비는 재산이라는 것에 착안했고 물건처럼 구매해서 가지고 왔다. 속량시키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노비문서를 사서 물건처럼 가져오는 형식으로 했다는 말이다.

처음엔 엄청나게 떨었다. 해금령을 어기고 떠나려는 노비들이 관에 들키면 죄다 처형당할거 같았거든. 그런 고민을 했었던 내가, 지금은 참 순진했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노비가 재산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노비를 구매했고, 나는 그 구매물품(?)을 가져온 것이다. 그 후에 직원들도 그런 방식으로 가족과 친척, 지인들을 데려온 것이다. 노비는 노비고, 노비는 재산이다. 조선의 그 대단하신 위정자들에게는. 아니 위정자만이 아니라 조선인의 몸에 흐르는 피와 그 뼈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다.

지금 조선의 인구(人口)는 얼마나 될까? 아니 조선의 인은 얼마나 될까? 이제는 인구라는 일상적인 명사도 사람과 노비로 생각된다. 인구(人口)는 과연 그냥 사람 또는 사람숫자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과 노비를 말하는 것일까? 내가 현대인임을 자각했을때, 그저 사람이고 싶었다. 엄마를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나도 사람이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라고.

신대륙, 이어도, 호주, 한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 도착해서도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하려고 하지 않았거나 변하려고 하지 못했다가 맞을거다. 그런 그들이 변하고 있다. 격렬하게.

◆ ◆ ◆

"뭐 이 새끼가?"

"여긴 내가 먼저 자리 맡았어. 넌 저리 꺼지라고."

"지랄하고 있네. 지난 주부터 내가 찍어놓은 자리야. 니가 꺼져."

"며칠동안 자리비운 니가 할말은 아니지."

이렇게 말로 싸우고.

"금포(金浦)에서 가벼운 폭행은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아니 신경쓸 여력이 없습니다. 채굴권을 주장하는 싸움은 일상이고, 심하면 살인사건도 발생합니다. 송사가 폭증해서, 금포에 설치한 순회재판소를 상설재판소로 승격 해야할 정도입니다."

소송, 재판을 통해 법으로 싸우며,

"이거 우리끼리 싸우다가 홍모귀에게 채굴권을 빼앗길 판국이네."

"맞아. 우리가 남인가? 이익이 조금 줄더라도 투자자를 모아서 제대로 해보세나."

유럽의 채금꾼들을 경계하여 이합집산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의회는 우리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고 법 위반이 없으면 국민으로써 의무를 다 했습니다. 헌법과 권리장전에는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의무없는 권리, 권리없는 의무는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습니다. 의무를 다한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을 광산채굴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의회는 뭘하고 있는 겁니까?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입법청원까지 등장했다.

◆ ◆ ◆

'이 사람들이 노비였던 사람들이 맞나?'

개국 이후, 너무도 조용했단 사람들이다. 최소한 다음세대, 아니 다다음세대의 국민교육을 받아야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붉은 악마가 괜히 나온게 아니지. 대회의장에는 격한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지금 헌법과 권리장전에 대한 국민청원이 수십건입니다. 비슷한 청원들을 병합하면 8건으로 줄어듭니다. 그 중에서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에 대한 국민청원이 가장 문제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나는 솔직히 몰라서 물었다.

"크흠...전하께오선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아무리 헌법과 권리장전이 최상위법이라고 하지만 그 모두는 전하께오서 구상하시고 승인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 평등, 권리, 의무는 법에 의해 보장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법을 만든 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입법자이신 전하의 전속적인 허락에 기반한 권리입니다."

"음...헌법과 권리장전은 내게 제안했지만 우리들이 함께 만들었지. 헌법과 권리장전에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 적혀있지 않는가?"

"그 천(天)은 전하이십니다. 그걸 부인하는 자는 역적입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나? 

이거 큰 일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생각난다. 루이16세였지 아마. 

그게 서울에서 생길지도 모른다. 내 대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다음 대에는 어쩔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내가 끼어들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누군가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법무부장의 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우리의 간곡한 청에도 왕이 되시길 거부하셨고 입헌군주제를 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신 후에야 국왕에 등극하셨습니다. 전하께서도 법은 지키셔야하는 것이고 국민의 기본적 권리는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절대적, 불가침의 것이란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것이 헌법과 권리장전에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천은 그대로 하늘입니다. 개국 이전부터 사람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어허. 이것은 역심입니다. 전하, 당장..."

"불가하다. 헌법과 권리장전에 대한 해석 다툼일 뿐이다. 나도 경청하겠다. 계속하게."

"계속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신분제를 혁파하시고 새로운 신분의 창설을 금지하셨습니다.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를 말씀하시며 그것을 위한 주장은 신성불가침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게 권리장전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한국의 새로운 하늘을 여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법무부장의 해석처럼 천부인권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잠시 좌우를 돌아보며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전하와 국민들이 바랐던 신분제,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 등 헌법과 권리장전의 모든 약속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모래위의 성이 될 뿐입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국민들이 헌법과 권리장전을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우리나라, 우리나라. 이 한국은 전하께서 우리 국민들과 새로이 여셨습니다.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 등 천부인권에 따라 전하와 우리 국민들의 약속에 그 바탕을 둔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대회의실에 모인 대부분은 경악했다. 조선에서 저랬다면? 아마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역모로 거열형을 당했을거다. 하지만 추상적 법규정을 저렇게 훌륭하게 해석하는 사람, 저런 천재들은 항상 있다. 

노비출신이건 양반출신이건. 대회의실에 있는 내각과 의회의 주요인사들은 노비출신도 있지만 양반출신도 있다. 물론 양반출신이라고 해서 그냥 양반은 아니었다. 역모 등으로 양반이었다가 노비가 된 사람들이 제일 많고 서얼출신도 많았다. 그들이 내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는 듯 했다. 난 아닌데 말이다.

짝짝짝!!!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이제 좀 멋있게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는데...잠시 고민했고 말을 이었다.

"난 너무 기쁩니다. 내가 노비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도 노비였고. 일천즉천이라는 말을 아실게요. 모르는 분은 없을겁니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법에 의해 보장을 받겠지만 그 기본적인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것입니다. 단언컨데, 저는 하늘이 아닙니다."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대회의실은 바늘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조용했다.

"저는 약속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모아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모두의 약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염원과 그 약속은 우리나라, 한국의 건국이념입니다. 그 건국이념은 헌법과 권리장전에 녹아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청원은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권리는 법원에서 정당한 재판을 통해 확인해 줄 것입니다. 그들의 권리는 의회에서 마땅히 입법을 통해 보장해 줄 것입니다. 그들의 권리는 왕과 내각이 법에 따라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도록 지켜줄 것입니다."

짝짝짝!!!

와아아!!!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몇몇 사람은 눈치를 보며 따라했지만 상관없었다.

권리를 위한 투쟁이 우리나라를 변화시키고 있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알게 뭔가? 내각, 의회, 법원에는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난 그냥 쉬자. 조선왕처럼 만기친람(萬機親覽)인지 뭐하다가, 과로사하는건 사양이다. 사람은 많고, 그 일에 적당한 인재는 어디에나 있다.   

"아니 명과 조선의 연합군이 여진족 추장에게 대패했다니?"

내정에 신경쓰느라, 조선이 너무 멀기도 하고, 사르후 전투가 끝나고야 알았다. 유구국에 본사가 있을때는 며칠거리라서 금방 알았는데 이제는 거리가 멀다보니 정보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사실 내가 역사를 잘 모른다. 세계해양사나 해전사만 주구장창 파고들었다. 

사실 사르후 전투가 언제 일어나는지 알았어도 내가 개입했을거 같진 않다. 그래도 이왕 알게된 거, 조금 알아보고 도움을 줄 일이 있을까? 이런 것은 외교부와 상무부에 지시해야겠다. 대책을 세우도록 말이지. 

똑똑한 사람들에게 일임하는 것. 

그게 국가의 시스템적 운용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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