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25)

나머지 5할은 인도와 동남아 여러 나라와의 단발성 무역을 하고 있었다. 단발성 무역은 말 그대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거래선이라 당장의 수익은 좋을지언정 조선상단과 후쿠오카번 사이의 고정적인 비단무역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나의 지시로 무역상단의 브레인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랑같지만(실제 자랑이다) 상단의 배는 벌써 8번함까지 늘었고 선원만 500명이 넘었다. 상단 직원에 짐꾼들까지 더하면 700명에 이른다. 

이번 신참교육이 끝나면 700명은 확실히 넘을 것이다. 이런 대식구를 먹여살리려면 새로운 거래처를 뚫어야 했다. 내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미래에서 왔고, 대강이라도 여러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대략적인 흐름만 알지 세부적으로 가면 젬병이다. 그나마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한 경험, 스쿠너를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아니었다면...? 생각할수록 끔찍했다. 어?

"조선(造船)사업부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을 말해 보게." 

현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배를 가장은 아니어도 아주 잘, 아주 많이 만들어 파는 나라다. 바로 조선(造船)의 나라다. 조선이 조선했군. 그래 거북선도 우리가 만든거지. 하여간 갖다 붙이는 데는 선수인 거 같다. 지금 무역상단 대회의실은 바늘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만큼 조용했다.

"단주님. 지금도 배를 잘 만들고 있습니다. 2년동안 5척을 건조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일거리가 떨어져 출항을 못하고 부두에 세워둔 배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배를 더 늘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조선사업부는 신규로 배를 건조할 때마다 임시로 차출하면 충분합니다."

이 반대의 물결. 

내가 바라던 바다. 

지금까지 무역상단에서 나의 권위는 왕?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현재의 무역상단과 선원들이 나름 한 재산씩 챙긴 것은 나의 공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 권위는 내가 규정이나 계급으로 억눌러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심하게 말하면 무역상단 직원들은 나의 말을 거의 반대없이, 똥을 메주라해도(?) 믿을 정도였다. 무역상단이 나의 권위에 기대어 움직이는 조직이 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뻤다. 돌은 모여서 아름답고 커다란 집이되고, 물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 

비유가 맞는지는 따지지 말자. 제발.

"경리부장은 이번 분기의 매출과 순이익을 보고해보게."

"매출은 4만5천냥이고 순이익은 7천1백냥입니다."

"앞선 4번의 분기와 비교하면 어떤가? 변화의 추세도 이야기하게."

"크흠. 죄송합니다. 이번 분기는 전년도에 비해 3할, 직전 분기에 비해 1할의 매출이 줄었습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매출과 순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추세로 간다면, 내년 1분기에 적자전환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웅성웅성.

대회의실은 예상했기에 별 말이 없는 사람, 깜짝 놀란 사람, 이도저도 아닌 사람 등등 다채로웠지만 얼굴색이 밝은 사람은 없었다. 이대로 가면 다같이 죽는 거다. 

명과 일본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명의 해관과 잠상을 접촉해서 계약을 진행중이기에 아주 비관적이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성공해서 조선상단과의 거래보다 매출은 물론 순이익도 몇배 상승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긴장하고 이야기해야한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에서 빛나는 법이다.

이에는 이

"단주님! 기뻐하십시오. 유구국에서 2척을 주문했습니다."

"스페인 필리핀 총독 후안 데 실바(Juan de Silva)가 1척을 신규주문했습니다. 저희 제안대로 마닐라에서 스페인 본국까지 100일만에 도착한다면 100척이라도 주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즐거운 비명이 들려온다. 

우리가 최근에 건조한 8번함은 대항해시대의 거의 마지막을 주름잡은 클리퍼라는 이름의 선박이다. 적재량이 적은 대신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평균속도 15노트, 최고속도 21노트의 빠른 속도다. 

1번함인 스쿠너도 평균 12노트, 최고 17노트로 빠른 배였다.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스페인의 배는 최고 13노트는 될까말까고 평균 9~10노트다. 

클리퍼는 1845년에 등장한 미국의 레인보우 호가 그 효시였다. 

레인보우 호는 757톤급 배로 뉴욕에서 광동성까지 88일만에 주파했다. 

지금 광동성에서 뉴욕은 거의 7개월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클리퍼로 2배는 빨라지는 것이다. 

내가 사략선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른 속도였다. 

원거리 공격수단인 대포는 배의 좌우현에 배치된다. 최소한 전투의지를 가지고 좌우현을 마주치거나, 상대를 추격해서 따라 잡아야 공격을 하든 할 것 아닌가. 내 스쿠너를 속도로 능가하는 배는 스페인에 없었다.

영국 사략선도 나에게 관광을 당했다. 

스페인의 필리핀령 세부를 방문했을때, 총독인 후안 데 실바(Juan de Silva)의 얼굴에는 내 배에 대한 욕망이 그대로 드러났었다. 그땐 배를 만들어 팔 생각을 못했었다. 필리핀에는 좋은 선재가 넘쳐났다. 

나무도 나무지만 선박용 끈을 만들 재료가 잔뜩이라 선재가격이 아주 낮았다. 마닐라 갈레온이라는 말도 마닐라에서 배를 많이 만들어서 그런가? 하여간 필리핀에서는 많은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클리퍼가 적재량이 적다는 것도 19세기 기준에서 적은 것이지, 17세기초인 지금 기준으로는 초대형함이다. 내 배도 8번함을 제외하면 적재량이 100톤에서 왔다갔다 한다. 8번함 클리퍼만 300톤급인데 스페인 필리핀 총독이 가진 가장 큰 배가 320톤이라고 했다. 

속도는 2배 빠르고, 적재량은 비슷하다면? 

일을 2배 넘게 할 수 있다. 그만큼 상품의 회전, 은의 부가가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페인 총독이 눈을 번들거리며 나를 쳐다본 것이다. 

"설계도를 넘긴다면 가격을 2배로 쳐주겠소."

"하하하. 그건 곤란합니다."

머리에 총맞은 것도 아니고 그럴 순 없지. 똑같이 베껴서 만들지 못하도록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베껴서 만들 능력이 50년쯤 지나면 생기긴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대화는 계속되었다.

"시험항해는 언제 가능하오?"

"2개월 후에 진수가 가능합니다. 그 후 의장하고 시험항해까지 총 2개월입니다."

장거리 항해를 하는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은 내 배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빠른 배는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 내 배를 사려고 하는 사람도 심심치않게 있었다. 미국이 무기판매할 때, 복제가 불가능하게는 아니어도 아주 어렵게 하거나 열화판으로 파는 것은 현대의 상식이었다.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자에게 배를 팔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내 배는 빠르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본사인 유구국까지 불과 3~4일이면 도착한다.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정신 못차리고 있을 때, 역관광, 아니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 내가 필리핀에서 유구국으로 가는 항해 중에 드디어 일이 터졌다.

룰루랄라하며 유구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수주한 배만 8척, 스페인이 보유한 조선소에서 값싼 선재를 공급받아 만들고 있다. 필리핀의 조수간만차를 이용해 건선거를 8개 만들어놨고, 필리핀인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우리 상단의 인력충원도 필요없다. 

우리도 무역을 해야하는데 배만 만들 순 없지 않은가. 스페인의 조선소는 건선거 8개를 만들어도 충분히 넓고, 아열대의 거목들이 수두룩했으며, 밧줄을 만들 재료도 마찬가지로 널렸다.

유구국에서 만들었다면 상시근로자 500명을 동원해 척당 건조비용 은3천냥을 들여 2년에 걸쳐 만들었어야 할 8척을, 필리핀에서는 우리측 상시근로자 50명을 동원해 척당 건조비용 은1천냥으로 8개월만에 건조한다. 선박가격은 평균 은6천냥이다. 무려 6배를 남겨먹고 있다. 이제 회의실에 들어가서 웃어도 될 것 같다.

"명의 해상에서 비단 거래 허가를 받았습니다. 잠상도 마찬가집니다." 

"조선상단이 명과 거래하는 가격은 확인했나?"

"객주(주: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하는 등 여러가지 부수기능을 담당한 중간상인)들에게 기름칠 좀 했더니 아주 쉬웠습니다. 공무역으로는 1근당 은1냥에 구입하는데 양이 적습니다. 사무역과 밀무역은 각각 은1.5냥과 은1.7냥입니다. 대부분은 밀무역이옵고, 평균구매가격은 은1.6냥입니다. 이것을 부산포까지 옮기면서 은2냥이 됩니다. 그동안은 저희가 부산포까지 무상으로 운송해 주었는데 거래가 끊기면서 운송비가 늘었습니다."

"그럼 근당 은2냥이 본전이군. 재고는 얼마나 된다던가?"

"경상은 한양의 수요에 대응하기도 바빠 재고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옵고, 만상과 내상이 재고로 각각 5만근이 넘는다 하였습니다."

"대마도주는 얼마나 사들이는가?"

"작년(기유약조1609년, 최초 세견선은 1611년)에 첫 세견선이 출발했습니다. 공무역과 사무역, 밀무역을 합쳐 3천근을 근당 3냥에 사들였다 하옵니다."

"일본의 총수요가 어찌 되나?"

"후쿠오카번의 재고잔량과 에도의 재고잔량 등을 고려해보면 매년 10만근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는 잠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그날 회의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 ◆

"행수 어른. 일본의 생사 가격이 폭락했다고 합니다. 대마도주가 이번 세견선부터 생사를 물목에서 제외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으음. 연유가 무엇이라 하던가?"

"홍모귀들의 상선이 명에서 직접 생사와 비단을 사오고 있다 하옵니다. 1근에 1.5냥에 판매되고 있답니다. 대마도주가 구입한 1만근도 절반 가까이 손해보고 팔았답니다."

내상은 물론이고 만상도 충격에 빠졌다.

"창고에 둔 생사가 얼마나 되는가?"

"6만7천근입니다."

"경상과 객주 중에 생사를 구입할 자들이 있나 빠르게 찾아보게. 금년 말까지 지급해야할 어음이 얼만지 확인하고 오게."

"알겠사옵니다."

사람이 나가고 촛불에 언뜻 드러난 만상 행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크하하핫! 자네는 나의 은인이네. 자 들게 쭈욱 들어."

후쿠오카 번주 '구로다 나가마사'는 파안대소하며 명나라 잠상단주 김씨 아저씨와 나에게 술을 권했다. 불과 한달 전 내 제안을 듣고는 목을 베겠다고 방방 뜨던 사람이 우디르급 태세전환을 했다. 

내 설명을 듣고도 가신들과 회의를 하고, 반신반의하던 '구로다 나가마사'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에도에 기름칠해둔 중신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결과, 명의 다양한 비단이 수입되면서 생사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생사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든 실로, 비단 옷감을 만드는 원재료다. 일본은 원나라는 물론이고 그 뒤를 이은 명나라와도 교역을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지배계층의 비단수요는 꾸준했다. 

그러나 명과의 교역이 금지되어 비단을 구하기 어려웠다. 

조선도 자체수요를 간신히 충족하는 수준이라 수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명과의 조공무역과 사무역, 밀무역이 가능했던 조선은 이를 이용해 일본에 생사를 판매함으로써 이득을 취했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18세기 이후 일본이 청과 직접 무역을 하게 되면서 조선의 무역품에서 생사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도 청에서 직접 생사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에 중개무역의 이익을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단같은 고가품은 경제학적으로도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높은 사치품이다.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요가 가파르게 떨어진다. 물론 명품의 경우는 오히려 베블렌 효과라고 하여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올라가는 현상이 있다. 

그런데 해금령으로 공급이 제한되는데다 지배층의 사치에 필요한 물품으로 자리잡아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유지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조선과 일본의 생사교역은 이런 여러가지 사정이 절묘하게 작용하여 비싼 가격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런 절묘한 균형상태를 깨버린 것은 다름아닌 생사의 상위, 생사보다 고급품인 비단의 등장이었다. 그것도 명의 다양한 비단상품이 우진의 무역선을 통해 대량 공급된 것이다. 

사람은 콜라가 비싸면 콜라를 안마시거나 대체품인 사이다를 찾는 등 다른 선택을 한다. 비단도 마찬가지다. 비단이 비싸서 못쓰겠으면 면직물이나 모직물을 찾을 수 있다. 

생사의 대체재인 다양한 명의 비단이 공급되자 생사의 수요는 눈에 띄게 줄었다. 생사를 수입해서 염색하고 비단옷감을 짜서 옷을 만드는 번거로운 일을 하느니 엄청난 은으로 대량으로 싸게 만들어진 비단옷감을 구입하는 것이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편했다. 

이는 지배층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익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생사산업(염색-직조)은 수요가 줄어들면서 불황에 빠졌다. 그 결과 일본 생사산업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언젠가는 분명 일어날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때문에 일본 생사산업을 날렸다. 

전체적인 소비자 후생은 늘어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본도 나름 한 쇄국정책을 하는 나라이니 그럴 일은 잘 없을 것이다. 불과 몇년? 아니 몇십년 안에 서양과의 무역은 쫑이 난다. 완전히. 기독교인들의 난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다. 하여간 기독교인의 난이 생기면 재빨리 빼면 된다.

나의 복잡한 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거듭 김씨 아저씨와 나에게 술을 권하고 극진한 환대를 하고 있었다. 

이제 수확을 할 시점인데, 어디부터 할까?

참 아름다운 밤이다.

단맛, 쓴맛

생도시절 교양필수과목으로 경제학원론을 배웠다. 

당시 '베블렌 효과'를 배우고 '이런 미친...'을 외치며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베블렌 효과'는 '가격이 높아지면 제품을 고급이거나 특별한 것으로 인식해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그저 생사의 대체품을 풀어 수요를 다변화한 다음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심산에서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미래에 에플의 톰 쿡은 나를 모델삼아 가격을 결정할 것 같다. 아마도 미래 경제학원론에는 '베블렌 효과'가 아닌 '우진효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내가 '구로다 나가마사'에게 한 말은 간단했다. 

생사는 놔두고 명의 최고급비단을 들여왔다. 그걸 에도의 중신들에게 풀었다. 소량만 들여왔기에 많은 사람이 가질 순 없었고, 지배층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기에 수요가 폭발했다. 나는 가격을 10배로 올렸다. 나는 그 중 5배만 먹고, 나머지는 번주와 에도 중신들이 나눠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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