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25)

다행스럽게도 2척 모두 인양했다. 

무려 6일간의 중노동이었다. 범선의 특성상 수리용 선재는 항상 싣고 다녔고, 전투중에도 물이 새는 곳을 수리하는 정도로 숙련된 인력이 많았었다. 원래 물에 빠진 배는 다시 못썼다. 당시 기술로는 펌프(양수기)가 없었기 때문에 구멍난 곳을 수리하더라도 물을 빼낼 수 없었다. 양동이로 물을 빼기엔 너무 힘들지 않은가. 

첫번째 사략선은 오히려 쉬웠다. 썰물의 조수간만차가 가장 클때 2미터정도 수위가 내려갔는데 배의 홀수선과 불과 1.2미터 차이였다. 그때 구멍난 곳을 떼우고 간이 펌프로 물을 뺐다. 그 후에 밀물을 기다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수리 및 인양을 완료했다. 

두번째 사략선은 배의 화물을 모두 꺼내서 옮긴 다음에 수리를 시작했다. 구멍난 곳이 하필 선수 쪽이라 수리용 선재로 수선을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배의 화물이 쏠리는 바람에 기울었던 것이기에 화물을 뺀 후에는 배가 바로 섰다. 수선을 마치고 물을 빼고 난 후에 인양에는 성공했으나 다시 물이 새는 바람에 펌프로 물을 빼면서 첫번째 사략선이 있는 해안으로 이동했다.

사략선을 만나고 8일째.

나는 1등 항해사관의 보고에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두번째 사략선이 피사의 사탑마냥 기울었던 이유가 스페인 포토시 은광(주:스페인 식민지인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포토시에 있었던 역사상 최대의 은광산)에서 마닐라로 오던 은괴 때문이었다. 

우리가 잡은 영국 사략선 2척이 스페인의 마닐라 갈레온을 공격해서 은괴를 약탈했던 것이다. 스페인 마닐라 갈레온은 아마도 태평양 수면 아래에 있을 것이고, 스페인 선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여간 사략선이 수뢰에 충격을 받으면서 선내의 적재물(은괴상자)이 쏠리고, 그래서 배가 기울면서 침수는 물론 전투능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심문(審問)

사략선 포로들을 심문하기 전에 항해일지, 해도 등 글자나 그림이 있는 모든 종이와 가죽을 압수했다. 경찰과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이유가 수사의 물증을 확보하고 조사의 편리를 위해서 아니던가. 나도 사략선의 모든 기록을 입수해서 정보를 미리 확보할 뿐만 아니라 사략선의 선장, 선원들을 심문할 때,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고 알짜 정보를 추려내서 향후 무역의 향방을 결정하고자 했다.

여기서 알짜 정보란, 예를 들어 스페인 마닐라 갈레온이 은괴를 잔뜩 싣고 오는 항로, 운행시간, 무장상태 및 중간 기착지 등이다. 태평양 항로야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몇달인지 모를 시간을 죽치고 앉아 기다리다 허탕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항로는 대충 짐작이 되니까 운행시간이나 중간 기착지 등을 알아야 보다 효율적이다. 

반드시 알짜 정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지금은 별 것 아니라도 나중에 알짜가 될 수 있다. 일본이 명과 조선의 해금령 때문에 조선과의 중개무역에 목을 메고 있다. 그런데 명의 해금령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1567년에 이미 다 풀렸다. 일조편법도 있고 상세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는 것도 있어서 강남에서 서양 갈레온들이 무역을 위해 항시 다니고 있다. 스페인 마닐라 갈레온도 포토시 은광에서 은을 가득 싣고 명나라를 방문한다. 스페인의 은이 명나라에서 비싸게 팔리고, 스페인에 이문을 안겨준다. 스페인은 명나라에서 다시 비단이나 차 등을 구매해서 유럽으로 가서 이문을 붙여 또 팔아먹는다. 은 자체도 부의 창출이지만, 은이 명을 거쳐 유럽으로 다른 물건으로 사고팔고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문이 붙는 것이다. 이런 것은 겨울에 눈사람만드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작은 연탄재(은)를 굴려서(포토시->명->유럽) 눈사람(최종 이익=원금인 은+추가이익)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은 명의 해금령을 우직하게 지키고 있다. 아니 자체적인 해금령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명은 일본에만은 해금령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현재 조선의 교역은 오직 명과 일본이 있을 뿐이고, 명과 일본에 없는 물산은 명과 일본을 통해 들여오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상인이라도 공무역과 사무역, 밀무역을 통해 이문을 추구한다. 단순히 이문만인가? 상인의 이동에 따라 정보도 이동한다. 조선은 눈 감고 귀를 막은 채, 험한 산길을 걷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조선의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지 않은가? 노비인 내가 왜? 조선은 왕과 사대부의 나라다. 노비인 내가 그들을 일깨울 의리는 없다. 다만, 나의 무역을 통해 조선이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다면 그걸 막아서진 않을 것이다. 내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로마는 지중해의 해상 패권을 장악하고 팍스 로마나를 이뤘다.

영국은 대항해시대 동서무역로를 장악하고 팍스 브리태니커를 이뤘다.

미국은 노쇠한 영국을 대신해 항공모함을 필두로 세계 해상로를 장악하여 팍스 아메리카나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나도 여기에 끼어서 크게 한탕 해야겠다. 이 거대한 세계사적 대사건, 대항해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을 제외한다면 나의 장점은 거의 없다. 

정보, 사람, 그리고 그들을 묶을 수 있는 돈.

내가 사업하면서 배운 유일한 교훈은 '사람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 것이다.

사람은 충분한 메리트를 제공하고, 그 메리트를 신뢰할 수 있어야 움직인다.

나는 이제야 세계무역에 한발 내딛을 수 있는 종자돈과 사람을 얻었다.

내가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더욱 사람을 모으고 돈의 물줄기(흐름)를 내 쪽으로 돌려야한다. 

그런데, 이거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보고는 이걸로 끝인가?"

"네!"

1등 항해사관부터 3등 항해사관까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사략선을 나포하고 거의 3일동안 노획품을 정리하고, 사략선을 재정비했다. 노획품은 은은은. 은으로 시작해서 은으로 끝났다. 괜히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사략선을 이유로 전쟁을 일으킨게 아니었다. 

근으로 따지면 은 1만4천근, 1근이 600g이니까 현대식으로 8.4톤이다. 명나라의 은은 1냥에 37.5g이니까 명나라식 계산으로는 명나라 은 22만4천냥이다. 대포와 화약, 조총 등 무기도 쓸만하게 얻었다. 영국의 해도, 육분의 등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체 무역을 얼마나 해야 이 정도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략선이 이해가 된다. 

"그럼 포로들 심문을 하기 전에 사략선, 아니 다시, 4번함과 5번함의 함장을 임명하겠다. 1등 항해사관을 4번함의 함장으로, 2등 항해사관을 5번함의 함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3등 항해사관은 3번함의 1등 항해사관으로 임명한다. 3번-4번-5번함의 인원 배분은 4번함, 5번함의 함장과 1등 항해사관이 상의하여 보고할 것. 이상."

지난 3일간, 영어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필기체는 정말 싫다. 

내가 더 이상 해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때, 심문을 시작했다. 

"항해일지를 보니 4개월 전, 고아에서 출발했군. 출항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략면장에 기재된 이름이 자네인가? 사략면장은 몇부나 발행했는지 아나? 동아시아에는 사략선이 얼마나 있지?"

"..."

"영국과 스페인의 태평양 항로의 중간 기착지는 어딘가?"

"..."

"명나라의 기착지는 주로 어딘가? 명나라에서 거래하는 상단과 물목은?"

"..."

"항해일지에 기재된 항구마다 주로 거래되는 물품이 뭔가? 그 항구마다 주로 기착하는 배의 국적은 어찌 되나?"

"..."

끝이 없을 것 같던 172명의 선원 심문이 모두 끝났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아는 사람이 나 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략선의 운명은 원칙적으로 죽음 아니면 노예인데 나의 부드러운(?) 태도에 뭔가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 했다. 

3개월을 넘겨 동남아시아를 돌았더니 선원들도 슬슬 돌아가자는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압박했다. 그래서 출발준비를 서두르다보니 사략선의 선원들도 곧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2끼를 아주 조금씩이지만 밥 잘주고, 선원들을 때리거나 강제노역을 시키지는 않았다. 심문 중에도 윽박지르거나 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략선의 선장들은 대놓고 석방을 요구했다. 몸값에 대한 이야기도 없이 말이다. 

게다가 사략선을 타고 가도 되겠냐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물론 안될 말이다. 나를 너무 무르게 본 듯하다. 나에게 엄청난 재산을 주신 분들이니 너무 섭섭하게 할 필요는 없다. 중국의 광저우에 내려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중간 지점이니 시간낭비도 덜하다. 선원들이 포르투갈이든 네덜란드든 얻어타고 갈터이니. 

그런데...

"우리를 따라가고 싶다고?"

항상 청개구리 같은 사람은 있는 법이다.

왓슨, 맷슨, 톰슨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3명이 우리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잉글랜드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고 싶지도 않고, 자신들은 명나라에서 고국으로 가려고 사략선을 탔는데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시간만 보냈다고 했다. 

이미 심문 전에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확인해서 이들이 사략선의 선원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성은 캐시디, 콘로이, 오코너 였다. 영국이 싫은 것도 있지만 우리가 사용했던 수뢰와 펌프를 보고 꼭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고민 끝에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역만 해도 밥벌이는 할 것 아닌가.

"언제든 돌아가기를 원하면 명나라로 보내주겠다. 실력을 확인한 후에 어떻게 대우할 지 결정할 것이다."

영국 사략선의 선장부터 선원까지 심문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기존 정보에 약간의 양념을 가미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정보긴 했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의 무역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불과 2년 전에 인도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의 방해로 거의 쫓겨났다. 현재 인도는 포르투갈이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동남아에서는 네덜란드가 다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명나라는 덩치가 너무 크다보니 누구도 독점은 어려웠다. 한마디로 현재의 동아시아는 확실한 무역패권을 가진 세력이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 

이제 점차 명-조선-일본의 밀무역에서 탈피하여 각국의 주요항구에 정식 상관을 개설하는 등 무역회사의 양성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밀무역, 명과 유구국 사이의 밀무역은 사실상 명과 일본의 밀무역일 뿐이었다. 

나는 그 삼각관계에서 콩고물을 주워먹는 수준에 불과한 바람 앞의 촛불같은 존재다. 조선에 있는 상단이 나와 거래를 끊거나 일본의 번주가 마음을 돌릴 위험성이 다분했다.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이유가 있듯, 나도 나의 해상무역네트워크를 확장해야할 시기였다. 하지만 확장을 위한 자금이 부족했는데 영국 사략선을 만나는 커다란 행운으로 나의 무역상단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설레인다. 고아원은 빼고.

나는 사략선의 선원들을 명나라에 떨궈내고 유구국으로 향했다.

담합(談合)

1609년, 재작년에 기유약조(己酉約條)가 정식으로 체결되었다.

12개조에 달하는 기유약조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①왜관의 접대는 3가지 예가 있다. 국왕사(國王使)가 한 예, 대마도주특송(對馬島主特送)이 한 예, 대마도수직인(對馬島受職人)이 한 예이다. 

②국왕 사절이 나올 때는 상선(上船)과 부선(副船)만 허락한다. 

③대마도 세견선 20척 안에 특송선(特送船) 3척이 있다. 

④대마도주의 세사미두는 모두 100석을 지급한다. 

⑤수직인은 1년에 1번 내조(來朝)하며,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다. 임진왜란 이전의 수직인은 죄를 면해 주며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 

⑥배에는 3등급이 있는데, 승선 인원이 25명 이하를 소선(小船), 26~27명을 중선(中船), 28~30명을 대선(大船)이라 한다. 

⑦선부(船夫)는 대선 40명, 중선 30명, 소선 20명을 정수로 한다. 선체의 크기를 재고 선부의 수가 정액(定額)을 넘었는지 점고(點考)하며, 부족할 경우 선부 수에 따라 급료를 지불한다. 

⑧조선에 보내는 배는 모두 대마도주의 문인(文引)을 받아야 한다. 

⑨대마도주에게는 전례에 따라 도서(圖書)를 만들어 지급하고, 종이에 견본을 찍어 예조·교서관·부산포에 보관하여 서계(書契)가 올 때마다 진위를 살피며 격식을 위배한 자는 되돌려 보낸다. 

⑩문인이 없는 자와 부산포 외에 도박(到泊)하는 자는 적으로 논단(論斷)한다. 

⑪과해료(過海料)는 대마도인에게는 5일, 도주특송인(島主特送人)에게는 10일, 일본국왕사에게는 20일분을 지급한다. 

⑫나머지 다른 일은 모두 전례에 따른다. 

기유약조의 내용은 조선과 일본의 무역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었다. 미국의 모 대통령의 연설문에 있었던 말로 기억한다.

'대마도의, 대마도에 의한, 대마도를 위한'

기유약조는 조선과 일본의 통교는 간접적인 통교규정을 설정했을 뿐인 반면, 무역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대마도주의 직접적인 독점을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었다. 

예견된 뒤통수...는 아니다. 

뒤통수는 서로간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나는 첫 항해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균열을 예상했었다. 조선상단과 후쿠오카 번주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뒤통수는 아니지. 아무리 예상을 했어도 맞으면 아픈거다. 

"내상의 행수어른께서 생사 등 모든 물목의 가격을 사전통보도 없이 2배로 올렸습니다. 그 연유를 여쭤보니 찾는 이는 많으나(수요), 들어오는 것(공급)은 적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일본에 생사를 넘기고 생긴 수익금의 분배기준을 우리가 생사를 구매한 가격의 3할에서 일본에 생사를 판매한 가격의 5할로 개정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거래의 물목은?"

"내상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그냥 왔습니다."

"그럼 경상과 만상 쪽에서 추가 구매하도록 하게."

내 지시를 들은 1번함장은 크흠하고 작게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내상 뿐만 아니라 송상, 만상도 같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넌지시 상단끼리 합의한 것인지 물어봤더니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극구 부인했습니다만, 담합(談合)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경상은 생사를 만상에게서 받아왔는데 만상에서 별다른 설명없이 생사를 넘겨주지 않아 아예 구할 수 없었습니다."

"..."

참 슬프게도 내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다. 이런 갑질의 끝판왕, 담합(談合)은 작년부터 슬슬 시작됐었다. 나와 조선상단의 거래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조선상단은 생사 등 판매물목을 선적할때까지 책임진다.

둘째, 대금은 선적과 동시에 지불한다.

셋째, 일본에 판매한 후 수익배분은 조선상단이 판매한 가격의 3할을 가산하여 다음거래 전까지 지급한다.

넷째, 선박의 침몰, 판매물목의 손실 등으로 일본에 판매가 불가능한 경우 수익배분은 하지 않는다.

다섯째, 거래조건의 변경에 대해서는 상호 합의로 한다. 

등등

더 세세한 것들도 있으나 그런 것은 거래관행이니 문서로 남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상인간에 아주 상식적인 것들. 항상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달리 말할 필요없이 거래상에 적용되어온 상식적인 것들이 거래관행이었다.

나는 그동안 저들에게 충분히 이익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주로 만상이 명에서 공, 사무역 및 밀무역으로 생사를 구매한 가격이 근당 은1냥이라면, 나는 조선상단이 제시한 가격에 상관하지 않고 구매했다. 요즘엔 공급이 늘어 가격이 내렸기에 일본에서 최종적으로 은10냥(과거엔 20냥까지 올랐을 때도 있었다)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나는 조선상단에서 생사를 구해서 후쿠오카 번주에게 은5~6냥에 팔아왔다.

첫 거래는 생사1근당 은1냥이었고, 수익배분은 생사1근당 은0.3냥이었다.

생사1근당 가격은 갈수록 올라서 직전거래에서는 생사1근당 은3냥에 구매했었다. 직전거래의 일본판매가격은 생사1근당 은5냥이었고 수익배분을 약속대로 생사1근당 은0.9냥 지급했다. 나도 생사1근당 은1.1냥을 남겼다. 그렇지만 배의 항해를 위한 비용, 선원들 월급, 감가상각 및 기타 판매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고 난 후에는 생사1근당 0.2냥이 남았다. 이제 수익은 커녕 손해를 걱정해야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내상을 비롯한 상단들이 생사의 가격을 1근당 은6냥으로 올렸다. 거기에 수익배분 약정을 3할에서 5할로 올리고 싶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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