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 눈빛들 봐라. 어이쿠 조금만 더하면 반란나겠다. 이제 멈춰야한다.
"그만.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이다. 저녁 식전까지 휴식이다."
바닷일은 정말 힘들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대양에서 흔들리는 배를 의지해 항해하고 때론 전투도 한다. 그래서 하루 세끼 밥에 고기가 떨어지지 않게 챙겨주고, 월급도 많이 주려고 한다.
오늘 기본군사훈련과 수영훈련이 끝났다. 자유형과 평영, 해난시 행동요령 등을 몸에 새겨지도록 가르쳤다. 그나마 화기훈련은 돌쇠할아버지가 맡아서 했기에 부담이 적었다. 할아버지는 실전사격이 가장 중요하니 훈련결과를 너무 믿지 말라고 하셨다.
"흘흘, 아무리 명포수라도 사람 쏠 담이 있는 녀석이 많겠누?"
하긴 표적을 쏘는 것과 사람을 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적이 눈 벌겋게 우릴 노리고 있는데 제때 사격해서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문경새재에서처럼 호랑이가 덤벼드는데 30보 앞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가 한번에 명중시키지 못하면 죽는다. 조총을 재장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진득하게 장전하고 기다리다가 30보 앞에서 총을 쏘셨다. 혹시라도 불발이면 그냥 죽는거였다.
기본적인 훈련은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제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를 해야겠지?
"2등 항해사관은 단정으로 갈아타고 경상 행수어르신께 이 서찰을 전해드리고 답신을 받아오게."
경상의 어음을 발행해 주신 것 자체로 그 댓가를 드려야 할 일이었다. 첫번째는 내상의 생사만 구매했지만 매년 1만관이 넘는 명의 생사가 공무역과 사무역을 합해 조선에 들어왔다. 그 생사의 반절은 이문을 붙여 일본으로 팔려나갔다. 일본에 판매할 생사는 명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이 가장 이문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내가 명에서 생사를 구입할 순 없다. 이럴 때는 이문을 나누면 된다.
발각되지 않도록 한밤에 강화도 인근으로 접근했고 선원들을 하선시켰다. 2등 항해사관의 일은 며칠 걸릴테니 의주까지 해도를 확인하고 올 계획이었다. 기본적인 항해능력은 이제 숙달된 편이다. 바다에서 조총사격훈련을 하는 것도 나름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선원들은 점차 뱃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상 행수어른께 생사의 이익금을 지불하고 다음 거래를 위한 물목을 받아왔습니다. 물목은 행수어른 답신 아래에 추가되었습니다."
"음...만상에서도 여기에 끼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경상이 6, 만상이 4입니다. 구매가격은 동일한데 은으로 구매대금을 치르라고 합니다."
"생사만 일만근이군. 다른 조건은?"
"이번 거래를 마치고 논의하자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제안은 확인하시던가?"
"예. 호초(주:후추), 설탕 등을 구매대행 가능한 물목으로 제안서를 올렸습니다. 살펴보시더니 원가연동제와 이익배분제에 대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거래를 마치고 보자고 하셨습니다."
"잘 되었군. 일본어와 대국어 교육은 잘 되어가는가?"
"언어 능통자에게 무역선원으로 우대한다는 말에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일본어는 수준급인 선원이 많고, 대국어는 2명입니다."
내가 무서울 정도로 잘 되고 있다. 정말 두렵다. 내 겉모습이야 키큰 11살짜리 소년이다. 하지만 내 속은 현대 43년, 조선 11년을 산 54살짜리 노회한 늙은이다.
이렇게 몇년만 돈을 끌어모으면 평생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거 같다. 적당한 양반 족보 사들여서 놀고 먹을까? 아니다. 놀면 뭐하나. 이왕 시작한거 제대로 무역회사 차려서 꿀빨면서 살아야한다. 이제 겨우 11살인데 벌써 그런 생각하면 안된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돌쇠할아버지랑 김씨 아저씨는 사제지간이니 이해가 간다. 돈독한 사제지간이라 생각하면 말이다. 김씨 아저씨는 엄마하고 무슨 사인지 말을 해주질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투머치토커 돌쇠할아버지 입을 닥, 아니 닫게 만드는 것은 다른거 없다. 김씨 아저씨와 엄마 관계를 물어보면 된다.
그럼 항상 똑같은 말만 나온다. 김씨 아저씨가 엄마한테 정을 품었다가 차였다는 말 뿐이다. 그 다음엔 대충 얼버무리시다가 '흘흘, 소피 누러 가야겠누! 늙으면 죽어야지.'하고 자리를 뜨신다.
김씨 아저씨한테 돌직구로 물어본 적도 있다. 김씨 아저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네 어미에게 정을 품은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뿐이다.' 그 이후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씨 아저씨와 돌쇠할아버지는 선원들 교육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김씨 아저씨는 도검술, 궁술을 가르치고, 돌쇠할아버지는 조총과 잡다한 지식을 선원들에게 가르쳐준다. 선원들은 돌쇠할아버지를 가장 무서워한다. '흘흘, 내가 소싯적엔...'이 나오면 기본 2시간이니 무서워할만 하다. 그래도 두 분 덕분에 선원들은 정예롭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모든 물목 선적 완료했습니다."
"선원들은?"
"모두 승선했고, 판매물목 및 항해물목을 검수 중입니다."
"검수 완료 후 보고하도록."
"출항한다!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쳐라. 연안을 벗어날때까지 1등 항해사관이 주관하고 3등 항해사관이 보조한다. 이상"
"충!"
이제 1609년이다. 조선과 일본의 임진왜란 전후 통교의 규칙인 기유약조가 곧 체결될 것이다. 조선이 명에서 들여온 생사는 조선의 수요도 있으나 일본의 수요가 더 컸다. 그런 명의 생사를 일본에 팔아먹는 조선의 상인은 명에서 구입한 가격에 이문을 붙여서 대마도로 넘겼고 대마도는 일본 본토에 이문을 더 붙여 넘겼다.
임진왜란 때문에 명-조선-일본을 잇는 중개무역이 표면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래도 나같은 밀무역, 또는 잠상이 전쟁중이건 외교관계가 없건 상관없이 바다를 넘어 이문을 따라 나선다. 사람의 욕심, 사람의 필요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하다. 그 사람의 욕심은 돈의 흐름과 같다.
기유약조가 정식 체결되면 지금까지 내가 독점하다시피한 일본과의 밀무역은 상당부분 대마도에 빼앗길 것이다. 기유약조 자체가 대마도에 공무역을 독점하게 하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공무역과 사무역은 다르다. 그 사이에 사람의 욕심을 따라 밀무역은 항상 있어왔다. 우물이 마르면 새 우물을 파야한다. 현명한 사람은 우물이 마르기 전에 새 우물을 판다. 그리고 우물은 많을 수록 좋다.
나는 지난 1년간 조선, 일본 및 유구국(현재 오키나와 소재)의 무역을 통해 배를 불렸다. 또, '대한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스쿠너 3척을 보유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물론 내 마음 속에서 '대한무역주식회사'이지 조선의 상단이나 일본 등 타국에게는 "무역상단" 짧게 "무상"이라 불린다. 선원들도 "무역상단"이라 부른다.
조선과 일본과의 밀무역에는 스쿠너 한척만 가지고도 무역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니 넘쳤다. 그렇지만 유구국, 명,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까지 무역활동을 확장하기엔 너무 부족했다. 1호선은 조선과 일본, 2호선은 유구국과 명, 3호선은 동남아시아를 전담하고 있다.
1호선은 2등 항해사관을 선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일본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대국어도 잘했다. 양반출신이라 그런 것인지 조선과 일본 무역항로는 문약한 그에게 맞는 노선이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는 해적도 없고, 해적이 있어도 스쿠너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 처음 만들면서 작게 만들었기에 단거리 노선을 빠르게 항해하는 것이 적당했다. 그래서 작고 빠른배에 적당한 고가물품 위주로 운영했다. 가장 작은 배지만 노선이 알짜라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다.
2호선은 1등 항해사관을 선장으로 임명했다. 유구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 사쓰마번주를 비롯해서 명의 해적들이 심심치않게 나타나는 노선이라 호전적이고 싸움에 능한 1등 항해사관이 적임자였다.
유구국과 명의 광동성(현재의 홍콩부터 절강-상하이까지)을 드나들며 명나라의 차, 비단, 설탕 등을 취급한다. 일본 사쓰마번과 유구국이 독점하던 노선이라 일본이 싸게 구매한 물건을 조선은 비싸게 사야했다. 유구국과 명 광동성 노선은 일본 사쓰마번과 명나라 해적이 많아 조심해야 했다. 게다가 명나라의 부패한 관리에게 기름칠을 수시로 해야해서 수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3호선은 아직 내가 대표이사 겸 선장으로 있다.
현재까지 수익은 없다.
사략선
덥다. 더위 뒤지겠다.
이럴때 시원한 콜라 한잔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지난 4일간 필리핀 인근 해역을 돌았다. 필리핀 최초의 스페인 식민지 도시인 세부를 찾아가려고 나섰는데 이 길이 아닌가보다. 나의 정확한 해도는 한반도와 그 주변이고, 필리핀은 좀 부정확하다.
그래서 지금 해도를 업데이트하는 차원에서 필리핀 전역을 한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세부의 대략적인 위치는 짐작이 된다. 어제 필리핀 수빅만(주 필리핀 미국 해군기지로 유명함)을 지났으니 10시간 안쪽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전방 20리 앞에 갈래(갈레온) 1척 정선 중입니다."
"정선? 견시수한테 망원경을 올려라. 전원 전투대기한다."
30분 정도 접근하니 갈레온 한척이 낮게 펴진 모래는 아니고 산호초에 걸린 것 같았다. 너무 뻔한 수법인데?
"모래톱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접근할까요?"
난 대답하지 않고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우리 진행방향에서 갈레온 왼쪽은 섬과 암초가 있어서 갈레온 왼쪽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갈레온 오른쪽은 바닷길이 열려 있는 대신에 환초지대였다. 갈레온 앞에서 반전해서 접근이 불가능한 절묘한 위치다. 이럴 때는 페인트 모션을 취해야 한다.
"조타수 침로를 정북(남쪽으로 항해하던 중이었음-정반대)으로 돌려라. 전원 난간을 잡아라. "
반전해서 5분 정도 지났을 때, 갈레온 왼쪽의 섬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갈레온 한척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산호초에 걸려있던 갈레온도 돛을 펴더니 우리 쪽으로 출발했다. 사략선 아니면 해적선이다.
내 입장에서는 구분이 전혀 필요없다.
환초지대면 몰라도 수심이 충분한 곳에서 산호초만 물위로 떠있는 지대가 내가 알기론 없는데 너무 허술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에 저런 수법에 당한 배가 최소 수백척은 되었을 것이다. 조난당한 배를 구해주는 것은 선원들의 숙명이나 다를 바 없다. 나도 언젠가 조난당할 것인데 그걸 그냥 지나칠 수 있나?
평소라면 스쿠너의 빠른 속도를 이용해 떠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 소득없이 돌아가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선원들에게 쥐어줄 노획품도 필요하니 말이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명령했다.
"침로를 북북동으로 잡아라. 1등 항해사관! 작계 7번이다."
"작계 7번이다. 각자 정위치하라. 갑판장은 수뢰와 기만용 수통 투하 준비해."
"조타수 속도를 절반으로 줄여라. 적함이 따라잡을 수 있게 속도 조절해."
"현재 속도로는 약10분 후에 따라잡힙니다."
갑판에서는 기만용 수통과 수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언뜻 봐도 사략선 두척은 각각 20문 이상의 대포를 장비했다. 그런 사략선과 전통적인 해상전투를 한다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갑판장이 수뢰 준비를 끝냈다. 내가 만든 수뢰는 포도주 넣는 오크통에 화약을 넣고 그 위에 덮개를 얹은 다음에 지연신관의 역할을 하는 심지의 길이를 조정해서 불을 붙이고 물에 던지는 무기다.
오크통을 끈으로 여러개 길게 묶어서 만들었는데 내 배의 바로 뒤를 따라오는 적선이 넓게 던진 수뢰의 연결끈을 지나가면 그 연결끈이 적선을 감싸면서 수뢰가 든 오크통이 적선의 홀수선 아래에 붙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번 빈통으로 실전훈련을 했기에 수뢰가 걸리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수뢰의 폭발로 적선이 침몰하거나 항해불능이 될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침몰하더라도 노획물은 얻어야 하므로 수심이 매우 낮은 곳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이제 수뢰를 던질 시점이다. 이 속도로는 3분 이내에 따라잡힐거다.
수뢰가 실패하면 어떡하냐고? 뭐 그냥 도망가면 된다.
"기만용 수통과 수뢰를 투하하라."
"투하, 투하, 투하!"
수뢰는 2분 정도 후에 폭발하게 심지의 길이가 조정되어 있다. 불을 처음 붙이는 통은 5분이고, 마지막 붙이는 통은 2분이다. 총 10개의 수뢰가 1조다. 비싼 화약이 밥값을 해야하는데...
펑!펑!펑!
어이쿠 아까운 거.
수뢰 3개를 투하했는데 2개는 별 효과를 못보고 1개가 적중했다. 홀수선 아래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뒤의 적선이 기우뚱하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의 적선은 아직 5분 이상 시간거리가 있어서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제 침로를 바꿔서 수뢰에 대해서 정보를 차단하고 각개격파해야한다.
"좌현으로 침로를 돌려서 이탈한다."
두번째 적선, 사략선은 1시간에 걸친 술래잡기 끝에 수뢰에 명중했고 침몰했다.
두번째 적선은 수심이 낮은 곳이긴 하지만 배가 피사의 사탑마냥 35도쯤 기울었기 때문에 노획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독오른 해적들이 반항할테니 고생하라고 좀 놔두고 첫번째 적선 쪽으로 출발했다.
첫번째 사략선은 얕은 바다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배의 갑판 바로 직전까지 수면에 잠겨 있었다. 사략선은 해안에서 200미터쯤 떨어졌는데 우리가 접근할때까지 해안으로 탈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 갑판에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두번째 사략선이 자신들을 구출하러 올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보였다. 사략선은 성공하면 큰 돈을 벌지만 실패하면 죽음 또는 노예가 되었다. 그 반대도 동일하긴 했다. 나도 저 사략선들에 사냥당했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공포탄을 쏴라!"
"선장님! 백기가 올랐습니다."
공포탄을 쏘고 천천히 접근하는데 백기가 올랐다. 죽기 싫으니 노예하다가 몸값을 마련하려는가 보다. 모든 선원에게 전투대기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일단 사략선의 무장해제를 지시해야했다.
"갑판장 일본어와 대국어로 무장해제를 지시하라."
"......."
"Don't shoot!"(앞으로 한글로 표시합니다.)
헐! 영국 사략선인가보다.
긴장 속에서 영국 사략선의 갑판을 점령하고 무장을 해제한 후에 선원들의 구속했다. 배를 만들면서 구속용 밧줄을 함께 만들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선원들에게 사략선을 수색하도록 지시했는데 화약을 빼고 그다지 쓸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항해사관의 보고를 받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돈이 되질 않아서다. 좋은 경험했다고 만족해야할 듯 싶었다. 그런 내 인상이 사략선의 포로들에게는 공포스러워 보인 듯 했다.
영국 사략선의 선장으로 보이는 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위대하고 은혜로운 주의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선장님! 배와 물건을 모두 드리겠으니 가까운 항구에 내려주시오. 우리는 선량한 상인입니다."
"..."
너무 오랜만에 영어를 들어서 순간 말을 못했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대가 상인이라면 이 문서(사략면장-Letter of Marque)를 설명할 수 있나? 그대의 일행을 나포한 후에 함께 심문하겠네."
첫번째 사략선은 배를 대기 적당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적당한 수의 선원을 감시용으로 남겨두고 두번째 사략선을 나포하러 출발했다.
두번째 사략선으로 도착했을 땐, 늦은 오후였다.
피사의 사탑마냥 35도가량 기운 사략선의 갑판에는 사략선의 선원들이 바쁘게 물건을 빼서 단정에 싣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본 그들은 곧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항복했다. 두번째 사략선의 선원들을 모두 나포해서 배에 싣고 첫번째 사략선이 침몰한 곳으로 이동했다.
첫번째 사략선이 침몰한 해안에 상륙하니 한밤중이었다.
포로가 된 해적은 172명. 그들에게 최소한의 음식과 물을 지급했다. 기운을 차리면 난동을 부려 역관광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72명을 모두 싣고 갈 순 없으니 침몰한 사략선을 인양해서 수리해야했다. 간이 펌프(양수기)가 있긴 하지만 잘 될지 자신이 없는데 이건 내일 고민해야지 하고 피곤한 몸을 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