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25)

"흘흘, 바닷가 한번 가보지 않은 네가 어찌 이리 잘 아누?"

"자맥질이야 강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돌쇠할아버지의 개헤엄이 내 자유형보다는 아니지만 평형보다 빠르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이것도 재능의 영역인가. 돌쇠할아버지는 내가 배를 만들고 능숙하게 선원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항해를 위한 복잡한 준비를 큰 어려움없이 해내는 것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저 '흘흘,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라고 한번 말씀하셨다. 

혹시나해서 아버지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엄마닮아 그럴거라고 말한거라 하셨다. '네 어미가 그리 훌륭한데 아비도 마찬가지 아니겠누?'라고 말이다. 

김씨 아저씨는 정말 단 한마디도,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봐도 말이 없었고, 그 많은 돈을 바닥이 나도록 써도 그저 돈을 내어줄 뿐 말이 없었다. 내가 살펴본 부산의 시세를 따져보면 백미를 기준으로 배를 만드는 데 1천2백석이 들었고, 노비(이젠 선원이 된) 30인 구입에 월급까지 1천1백석이 들었다. 기타 물품과 생사 3천근을 구하는데 7천5백석이 들었는데 모두 합하면 일만석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결국 생사 3천근을 구하고 나서 '이제 돈이 없다.' 두어 마디 말하신 것이 다였다. 김씨 아저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내상 행수의 사랑채.

"행수어른! 배가 오시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물목은?"

"네 이상없이 올렸사옵니다."

"경상의 어음에 수결도 받았으니 손해는 없을 것입니다."

"아암. 그래야지."

내상의 행수는 곧 출발할 우진의 배가 일본 본토와 직접 교역 뚫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십중팔구, 아니 백중 하나 둘도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경상의 행수가 소개장을 보냈지만 그건 별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내상의 손해가 된다면 그것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니까. 

내상은 일본과의 교역이 거의 전부였다. 조선의 산물은 박하다. 일본이 원하는 것은 명의 산물이다. 내상은 그를 중개하면서 이득을 취하면 충분했다. 명의 생사는 한필에 현지 시세로 백미 3석이다. 대마도주에게 그걸 백미 5석에 넘긴다. 명의 생사를 들여오는 것은 명의 밀무역에 종사하는 잠상을 통했다. 이런 거래차액으로 생긴 이문을 잠상과 나누는 것. 그것이 내상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내상의 행수도 명의 생사가 일본 본토에서 한필당 10석의 가격에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마도주는 엄청난 이문을 얻고 있었다. 물론 그 이문을 독차지하진 못할 것이다. 일본 조정인 막부의 실세와 그 이익을 나눌 것이다. 

그 아이가 이런 내밀한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한, 그 막부의 실세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성공하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걸 힘들여 설명해줄 의리가 내상의 행수에겐 없었다. 그저 경상의 행수와 의리가 있었을 뿐이고, 그의 계산에서 의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은 많았다. 

아쉽게도, 내상의 행수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명의 잠상과 일본의 본토가 직접 연결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의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파국이 무엇일지 떠올릴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상의 행수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해왔다. 

해금령! 

조선과 명의 해금령은 지엄한 것이었다. 

지난 수백년간 명과 조선, 조선과 일본의 교역을 지배한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일본이 패하고 다시 교역을 위해 고개를 숙였으니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명과 조선의 국시였으니까. 

끼룩끼룩.

부산포가 저 멀리 보였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바로 명령했다.

"노를 모두 들어올리고 바로 분해해서 선창에 넣어두어라. 노구(노를 걸기 위한 장비들)를 치우고 가포(假砲 : 가짜 화포))를 올린다. 견시수는 대마도를 자세히 살펴라. 조타수 남남서로." 

연안에서만 훈련을 했을 뿐, 대양으로는 처음인 선원들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역력하다. 나도 조금 긴장했지만 막상 부산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엔 편안해졌다.

부산에서 후쿠오카(설명 : 대마도 아래의 이키섬 바로 아래 큐슈섬 북단 항구도시, 시모노세키 해협을 통해 오사카와 도쿄를 갈 수 있음)까지는 약 150해리, 280킬로미터 정도일 것이다. 현재 내 스쿠너의 평균속도를 알 수 없으나 내 항해경험상 최소 10노트는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포르투갈인을 만나면 모래시계를 얻어서 측정할 수 있고, 내가 후쿠오카까지 거리를 대강 아니까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통해 계산할 수도 있다. 방향은 잘 맞을테니 15~17시간 사이면 도착할테지. 

이제 시작이다.

순풍

대항해시대의 항해는 위험하다.

그리고 그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항해술, 둘째 선원에 대한 교육이다.

"잘 보거라. 대마도를 지나 남남서에서 북동 내지는 북북동으로 물길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돛을 전부 접었는데도 배는 물길을 따라 북동으로 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물결문양이 차이가 난다. 이 또한 바다의 모습이다. 만약 우리가 북동에 위치한 곳을 목표로 한다면 다소 돌아간다고 할 지언정 이 물길을 따라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기에 바람의 방향을 살펴라. 출발할 때에는 해안 바다로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풍, 바람을 안고 천천히 출발했다. 해안의 바람은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불고, 밤에는 반대로 분다. 여기에서는 어떤가? 해안지대를 벗어난 때부터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강약은 있으나 계속 서쪽으로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럴 때는 돛을 어찌해야 할까? 항해술 기본교육에서 바람의 방향과 돛의 방향을 각각 계산해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각도를 구해야하고 그 각도에 맞춰 조타하고 돛을 조정해야한다.

모든 선원의 간부화, 모든 선원의 평가는 상시 계속된다. 갑판장의 일은 부갑판장이, 부갑판장의 일은 갑판원이 할 수 있어야한다. 너희는 일반 선원에 만족할 것이냐? 누구든 사관이 될 수 있다. 차후 새로운 배가 만들어질 터. 그때 가장 우수한 사관이 새로운 배의 영광스러운 선장이 될 것이다.

견시수는 계속 사주를 경계하고 1등 항해사관이 키를 맡는다. 보고할 것이 있으면 선장실로 올 것. 이상!"  

처음에 장교, 부사관, 병으로 부를까 하다가 신분제 사회의 잔재인지 몰라도 선비와 관리를 뜻하는 사관이란 말에 선원들은 혹한 듯 했다. 

현재 기준으로 가장 실력이 있는 3명을 사관에 임명하고, 임무를 번갈아 맡겼다. 모든 선원의 간부화가 내 목표고 지금 가르치는 모든 선원이 선장이 될 수 있게 해야한다. 언제까지 내가 모든  일에 가타부타 할 순 없으니까.

"충!"

선장실에 들어서자 내 아랫자리에서 항해일지를 작성하던 2등 항해사관이 구호와 함께 일어나 거수로 군례를 했다. 

처음엔 '필승'으로 하려다가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위계질서를 위한 경례와 구호는 반드시 있어야할 듯 해서 '충'으로 단성 구호와 현대해군식 거수경례를 교육시켰다.

노비신분의 선원들이 상전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손을 올려 경례한다는 것은 기존 사고방식의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라 무척 힘든 과정이었지만 기어이 관철시켰다. 

아직도 고개를 숙이는 선원들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고개를 들고 거수경례를 교육하고 있다. 거기에, 선상에서 업무중일때는 상관이라 할지라도 구호나 경례없이 업무에 열중하도록 했다.

방금 내게 경례한 2등 항해사관은 몰락한 양반출신이다. 

임진왜란으로 부모를 잃고 혼기가 찬 여동생 하나만 남은 자였다. 호구지책을 위해 부산포를 나왔다가 굶어 죽느니 노비라도 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나는 그가 신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노비나 입을 법한 남루한 복장을 갖추고, 상투마저 풀어 머리칼을 잘라 봉두난발로 온 그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교육기간 아홉달의 월급과 성적우수자 성과급을 탈탈털어 혼기가 찬 여동생을 오랜 친우에게 시집보냈다. 

그 후에 자신은 여한이 없으며 아주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래. 언문, 아니 한글로 쓰는 것이 불편하지 않나?"

"언, 한글로 쓰는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게다가 띄어쓰기를 배우고 마침표나 쉼표같은 부호를 쓰니 한글이 더욱 읽고 쓰기 좋습니다."

"후쿠오카 도착예상시간은 언제인가?"

"지금처럼 측풍이 계속된다면 항해평균속도를 감안할 때, 내일 미시... 아니 내일 오전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대략 다섯시진... 아니 11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음...24시간제와 아라비아숫자에 익숙해지도록 더욱 노력하게. 난 잠시 눈을 붙일테니 보고할 일이 있으면 문을 두드리도록. 이만 나가보게."

"충!"

계산대로라면 11시간 후에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 그동안 연습했던 것을 실행해야한다.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잘 해줘야 할텐데. 걱정이다.

김씨 아저씨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크흠. 꼭 이래야 하는 것이냐?"

누가봐도 인상더러운 명나라 해적, 아니 잠상주처럼 보였다. 

명나라 잠상(潛商 : 무허가 상인으로 사실상 해적)은 말이 상인이지 해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누구도 의심치 않으리라.

"네.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고, 눈은 사람 얕잡아보듯 가늘게 뜨시구요. 더더더...네 바로 그거에요. 꼭 누구랑 똑같네."

"누구?"

아저씨한테 그 누구가 '이괄'이라고 이야기하려다 속으로 삼키고 난 후, 할아버지를 살폈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조선상단 행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명과 조선의 잠상주가 일본 막부의 실세와 밀무역(정식 공무역은 지금 이뤄질 일이 없으므로)을 협상하러 가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기유약조(주:1609년 기유년에 이루어진 조선과 일본의 무역과 교린에 대한 약속)라고 조선과 일본은 정식무역을 위해 물밑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은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의 환국과 필요한 물품을 얻고자 했다. 일본은 숙원이던 명과의 교역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은을 매개로 조선과의 중계무역이 필요했다. 거기에 대마도주의 사활을 건 노력이 더해졌다. 

조선과 일본 모두 전쟁을 끝낸 후의 무역과 외교에 대한 필요를 느낀 바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전제조건이 있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에 대한 공식사죄, 조선왕릉 도굴꾼 압송 및 조선인 포로의 송환을 요구했다. 

현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막부의 도장을 위조하고 민간인 잡범을 도굴범으로 위조하여 조선에 보내는 기막힌 술수를 통해 일본 막부와 조선을 속여 결국 기유약조를 얻어내는 것이 본래의 역사였다. 물론 1609년 기유년에 이루어질 기유약조는 1608년의 지금에서는 아직 체결 전이었다. 

다만,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가 막부의 도장을 위조하고 민간인 잡범을 도굴군으로 위조하여 조선에 보낸 것은 이미 2년 전에 있었는데 조선 조정에서도 의심은 될 지언정 입증이 어렵기에 그냥저냥 넘어가려는 추세였다. 

그러나 일본 막부는 대마도주에게 전적으로 속았고 본래 역사에서는 수십년 후에야 대마도주가 국서를 위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일본 후쿠오카 항.

"육지다!"

견시수의 외침에 선상은 분주해졌다. 저 앞의 항구는 후쿠오카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상기(商旗)를 걸고 속도를 줄여라. 단정(段艇 : 작은 보트)을 준비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닻을 내려라."

일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서양선박이 드나든 지 오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배가 항구에 가까워오자 이에 접응하기 이한 세키부네(일본 수군의 소형 군선)가 노를 저어 빠르게 접근했다. 세키부네의 앞에는 일본 수군 장수로 보이는 자가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이 지난 9개월간 촌음을 아껴 익힌 일본어를 써먹을 순간이었다. 

내가 선수를 쳤다.

"안녕하시오. 명과 조선의 상단에서 귀국과의 교역을 위해 찾아온 이모(李某)외다. 번주께 말씀드려주시오. 번주께서 허락하신다면 하선하여 식량과 물을 보급하고 싶소."

"...명에서 왔단 말이오?"

"그렇소. 명 뿐만 아니라 조선 상단에서도 왔소이다."

"명의 상단이 양선을 타고 온 연유가 무엇이오?"

"하하하.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깁니다. 자세한 것은 찾아뵙고 말씀드리리다."

"알겠소. 기다리시오. 하선은 번주께서 허락하셔야 하오."

일본의 세키부네는 석양이 완연한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번주께서 내일 오전에 하선을 하도록 명하셨소. 하선은 상단주를 포함하여 다섯명에 한하고, 바로 번주님을 알현할 것이니 준비하시오."

"식량과 식수를 구하는 것은 어찌하면 되오?"

"번주님을 알현한 후에 결정하신다 하셨소."

"알겠소이다."

다음 날 아침.

미리 생각해둔 하선인원을 준비시켰다.

통역관 및 선장인 나, 명의 상단주 김씨 아저씨, 조선 상단주 돌쇠할아버지, 서기 역할을 할 2등 항해사, 번주에게 진상할 선물을 들고 갈 선원 1명, 총 다섯명이었다.

모두 나름대로 꽃단장을 하고, 각자의 역할을 숙지한 상태로 일본 세키부네에 올랐다. 

나는 세키부네에 올라 잔뜩 긴장한 일본 수군 장수(?)에게 약간의 기름칠을 하고 하하호호하며 육지에 올랐다. 역시 비단인가 보다. 일본이 조선과의 공무역과 사무역을 합해 매년 수만관의 생사 등 비단류를 이와미 은광에서 넘쳐나는 은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이와미 은광의 은은 서양 갈레온, 조선과 명으로 흘러들었다. 

그 은은 다시 비단과 향신료 등으로 교환되어 유럽으로 갔다. 후대에 갈레온 무역이라 칭해진 대항해시대의 세계무역의 흐름은 그 흐름에 순응한 국가와 개인에게 세계의 패권과 부를 독점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그 흐름에서 벗어나 역행했던 국가와 개인은 서세동점이란 세계사적 조류 속에서 결국 국권을 침탈당하고 노예로 전락하는 운명의 올가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협상의 이면

후쿠오카의 번주, 일본말로는 '구로다 나가마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에 있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갈아탄 공으로 후쿠오카가 속한 지쿠젠 국을 영지로 받은 다이묘(번주, 다른 말로 영주)였다. 

나는 부산포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그야말로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자로 판단했다. 현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녀인 에이히메와 결혼한 다이묘인 데다가 배신으로 얻게된 영지를 유지하기 위해 막부의 다양한 관리와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시다가 배신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갈아탄 전적때문에라도 막부에 잘 보이기 위해 충성심을 증명해야 하고, 그를 위해 공을 세워야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 명과 조선의 상단이라 하였나?"

지루한 기다림과 달리 허무할 정도로 짧은 상견례를 마치자 마자 번주인 '구로다 나가마사'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렇사옵니다. 이미 조선과 일본의 조정은 전후 협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사옵니다. 쇼군께서는 작년, 조선에 국서를 보내셨고 조선도 이에 화답할 것이라 들었습니다."

"음...그럼 국교가 이루어진 후에 오는 것이 순서 아닌가?"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명의 해금령이 거두어지지 않았고, 명을 따르는 조선도 마찬가지이옵니다. 내년의 약조는 조선과 일본의 정식 국교가 아닌 간접적인 통교를 대마도주가 관장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 들었사옵니다."

"허어, 일본과 조선 양국의 중대사를 상단주인 자네들이 알고 있다니...믿기 어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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