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9화 (22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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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그렇게 오래 잤는데 왜 이렇게 몸에 힘이 없지?」

    수면 깊은 곳에서 가라앉았던 의식을 부상시키며 용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면서 발톱으로 몸을 긁는다.

    하는 꼴을 서술만 하자면 귀여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 육중한 몸이 움직이니 무시무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 몸을 움직여 정신을 차린 한 마리의 용은 슬쩍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째서 너 같은 쓰레기가 내 둥지에 있는 거냐.」

    용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리치를 향해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마계의 바람도 이보다 차갑지는 않으리라.

    조금 전까지 보여준 엉성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서 있는 유일하게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피조물, 이 세계의 관리자인 용이었으니.

    “용, 이라고 해, 도! 공격, 을 받지 않으면 당, 하지 않는, 다!”

    그 압도적인 살기를 이겨내고자 체스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접촉 금지(Odi et Amo)의 지속 시간이 남아있었다.

    제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결국 생명체, 접촉 금지를 뚫을 수는 없을 터. 그렇게 생각한 체스논은 다시 한 번 필살의 마법인 둠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앞에서 지껄이지 마라, 언데드.」

    그저 말을 했을 뿐이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한 자세도 없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체스논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으로 모자라, 거대한 얼음에 갇히고 말았다.

    ‘이게.’

    다른 종족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개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니지만, 용은 모두가 제각기 완전히 다른 한 가지 권능을 가지고 있다.

    ‘이게 자메오로스의 권능.’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얼음을 다루는 권능인가. 그렇다면 이런 추운 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됐다.

    얼음에 가둬진 것뿐이니 리치로 변모한 체스논이 죽을 리는 없겠지만, 저래서야 움직일 수조차 없다.

    「흐음. 분명 애니그마님이 날 찾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말이야.」

    “여깁니다.”

    용이 일어섰음에도 여전히 목에 매달려있던 라트가 바닥으로 내려와서 팔을 흔들었다.

    「아! 인간이로구나. 애니그마님의 명령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기특하기도 하지.」

    “애니그마님 뿐만 아니라 바이올런님도 찾으셨습니다.”

    「그래? 으으, 너무 오래 잤나. 몸이 찌뿌둥해.」

    용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자, 동굴이 울렸다. 몸이 찌뿌둥하다고 느끼는 거야, 계속 생기를 빨렸으니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머리에서부터 울리는 이 목소리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울리는데 어떻게 좀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아 참. 잠시만 기다려라.」

    라트의 요청에 기지개를 멈춘 용은 미안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한 후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자.

    “이러면 되겠지?”

    거대한 용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니 사라지고 한 미중년이 눈앞에 나타났고 머리를 울리던 목소리 역시 그쳤다.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한데, 두 분이 나를 부른 정확한 용무가 무엇……잠깐 이게 뭐지?”

    모습이 작아지자, 그제야 사악한 마력을 머금은 쇠기둥을 목도한 자메오로스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고, 얼음에 가둬진 가련한 리치를 쏘아붙였다.

    “불쌍해서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했더니. 설마 이 씹어 죽여도 마땅치 않을 놈이 감히, 감히 이 몸을!”

    섬섬옥수를 내뻗어 주먹을 쥔다. 그러자 거대한 얼음은 형체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졌고 그 안에 있던 체스논의 몸뚱이 역시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오미너스의 피의 수장, 흑마법사 체스논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온 대륙에 당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왕국 전쟁 시나리오를 모두 마쳤습니다. 플레이어의 활약도를 계산합니다]

    체스논이 죽자 왕국 전쟁 시나리오가 끝났다는 알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스논을 죽인 보상을 받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지금 실력으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괘념치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의 활약도 랭크는 A+입니다]

    ‘됐어.’

    평범한 게임이라면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받을 수 있는 활약도 랭크는 아무리 높아 봐야 B-에 그치는 것을 고려하자면 라트가 받은 활약도는 비상식적으로 높았다.

    물론 그만큼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인간, 그대가 나를 구했구나.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라트는 자메오로스가 말에 보상을 받으려고 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용의 보상, 플레이어 중에서도 정말로 운이 좋은 몇 명만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었다. 물론 라트 역시 게임 중에는 용의 보상을 받아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보상을 원하면 정작 제일 중요한 걸 받을 수 없어.’

    그들은 인과가 뒤틀리지 않는 선에서 모든 부탁을 들어준다.

    신화급 장비를 달라고 하면 구해준다. 엘릭서가 필요하다고 하면 몇 병 정도는 흔쾌히 내준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보물을 달라고 하면 일국의 왕이 부러워할 만한 재화를 건네준다.

    그러나 보상을 원하면, 드래곤은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 게임 중에 용의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생각해본다.

    무기, 엘릭서, 보물, 수명, 권력, 명예,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딱 한 가지 선택지가 없었지.’

    용이 무엇을 해주지 않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해진 캐릭터를 키우고 있을 때였던가? 변덕이었을지도 모르나,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없어서 아쉬움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해볼까?’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도박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어차피 드래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라트 스스로 얻을 자신이 있는 것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겨우 그 뿐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한 도박.

    ‘나쁘지 않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트는 슬며시 눈을 올려 자메오로스를 바라보았고.

    “하?”

    당연하게도 자메오로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대 나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그 목소리에 섞인 것은 조금의 분노. 하찮은 인간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줘야 마땅한데 그 미물이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기에 느껴진 박탈감.

    “괜찮다고? 이 몸을 구해줬는데 괜찮다고? 일생, 아니지.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 어떤 인간에게도 찾아오지 않을 이런 기회를 놓치겠다고?”

    강자가 약자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가짐이 있었기에 약자가 강자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행했으니 특별한 것이 필요함이 당연한데.

    어째서 이 이 인간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가.

    “경악했다.”

    라트의 말이 진심인지는 용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탐욕에 이성을 잃고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배려를 가지고 있는 마음에 경악하고 말았다.

    “내 그대의 은혜와 무욕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을 내 이름 자메오르스에 대고 맹세하겠노라.”

    [최초로 용이 맹세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칭호 ‘영원한 용의 맹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대 나의 축복을 받으리라.”

    [최초로 용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기능 레벨 경험치 획득량이 50% 증가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됐어.’

    고위 엘프가 마력과 오러의 경계를 부술 수 있게 해준다면 신의 사랑을 받은 드래곤은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 축복을 내려줄 수 있다.

    그리고 드래곤의 축복을 얻은 대상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장한다. 이것이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던 보상이었다.

    ‘결국, 답은 무욕이었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답이었다. 이러니까 게임에서는 누구도 드래곤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지.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내 축복을 받았으니 자네는 앞으로 더욱 빨리 강해질 걸세.”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트는 진심을 담아 자메오로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기능 레벨 경험치 획득량 상승, 희귀 기능의 레벨이 10이 될 때마다 능력이 추가되고, 일반 기능의 레벨이 200에 도달하면 ‘완벽’에 도달하게 되는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아, 그런데 깜빡하고 두 분이 나를 부른 이유를 듣지 못했군.”

    축복을 내리는 것을 끝낸 자메오로스는 체스논이 저질러놓은 짓 때문에 끊겼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못 들었습니다만, 마족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거 때문이었나.”

    자메오로스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놈 때문에 꿈이 뒤틀렸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드림 해커를 쓰는 중이었나.’

    꿈이 뒤틀렸다는 말에 라트는 자메오로스가 일어나지 않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드림 해커, 꿈의 경계를 넘어서 상대방의 꿈을 염탐하는 마법이었다. 아마도 그 힘으로 마족들을 감시하고 있었나 보다.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드려야겠군. 그 전에 자네부터 이 산에서 내보내 줘야겠군. 따라오게나.”

    “예.”

    자메오로스는 갈림길이 있던 방으로 가더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갈림길이 있던 방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을 썩은 내에 라트는 눈을 찡그렸고 자메오로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길의 끝에는 조그마한 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시체가 아니라 정기를 모조리 흡수당해서 가죽밖에 남지 않은 시체였다.

    지금까지 시체를 많이 보았고, 살아있는 것들을 시체로 만들어왔던 라트조차 순간 구역질이 치밀었다.

    저것이 체스논이 생명을 빨아들였다던 그것들의 정체였다.

    “맙소사, 엘프가 아닌가. 그 씹어 죽일 놈이 내 둥지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가죽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뾰족한 귀 때문에 저것이 엘프임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하이 엘프까지!”

    몇몇 시체는 나뭇가지 형태의 뿔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이 엘프가 분명했다.

    그것을 파악하자마자 라트는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오로지 고위 엘프만이 오러와 마력의 경계를 풀어줄 수 있다. 그 힘은 고위 엘프가 신에게 약속받은 힘으로, 드래곤조차도 오러와 마력의 경계를 풀어주는 건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만약 하이 엘프가 전부 죽었다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가!’

    이미 죽은 체스논을 향해 강한 살심을 느낀 라트는 당장 고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옆에 드래곤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대여.”

    자메오로스가 입을 열어 조용하고 힘이 빠진 목소리가 말한다.

    “이 문으로 나가면서 그대가 원하는 장소를 생각해라. 그럼 그곳으로 나갈 수 있을 거다. 배웅을 해주려고 했지만, 나는 저들을 묻어줘야겠다.”

    “알겠, 습니다.”

    라트가 이미 죽은 이를 향한 분노를 곱씹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자, 자메오로스는 문앞에 있던 시체들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씨발!”

    그가 사라지자 라트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오갈 데 없는 분노를 풀기 위해서 벽을 몇 번이고 걷어찼다. 벽에 금이 새겨질 때까지.

    “하아. 그래 운이 좋다더니. 망캐 인생이 이렇지.”

    어느 정도 분노가 가시자, 라트는 한숨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고 평점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하이 엘프가 전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이 엘프의 시체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하이 엘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태 때문에 주인 없는 산맥 깊숙한 곳에 숨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보상부터.’

    [왕국 전쟁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어의 활약도 랭크에 맞춰 보상을 지급합니다]

    [50 골드, 대량의 경험치, 중량의 일반 기능 경험치, 중량의 희귀 기능 경험치, 50의 스탯 포인트, 그리고 칭호 ‘노르스 대륙의 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드래곤의 축복으로 인해 기능 경험치를 50% 추가로 얻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대활약을 펼치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경지 상승 포션(오러 익스퍼드)’가 지급됩니다]

    “와.”

    첫 번째 보상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에서는 활약도 랭크를 높게 받기는 힘들어서 이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없지만,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부터는 이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두 번째 보상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대활약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지 상승 포션을 하나 지급해줄 줄이야.

    “축복도 한몫 단단히 했고.”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보자, 연금술 기능은 대부분 완벽에 들어서기 직전 상태였고, 검술 기능 레벨도 상당히 올랐다. 그리고 희귀 기능들 역시 1~2레벨 정도 올라있었다.

    “그래, 잘 됐잖아.”

    이번 시나리오에서 오러와 마력의 경계를 깨려고 했던 것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욱 좋은 보상을 얻었으니 잘 됐다면 잘 됐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한 라트는 문의 앞에 서서 파르스의 연금술사 길드에 있는 자신의 방을 상상하며 문을 열었다.

    ***

    라트가 연금술사 길드로 돌아오고 시간이 흘러 제국 반란 시나리오까지 대략 2주 정도가 남았다.

    그동안 셀룬은 사라이와의 동맹을 굳건히 다졌으며 점령한 영토의 민심을 잡기 위해 힘썼고 동시에 주인 없는 산맥의 개발에도 착수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큰 성능을 발휘했던 장비들 덕분인지, 제스맹 기느투스의 바람대로 연금술사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슬슬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가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가고 싶지 않았다. 평화에 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콤했으니까. 매일 같이 엘리 그리고 케이네와 수다를 떨고 리오스의 검술을 봐주는 것은 즐겁게 짝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야 했다. 이 평화를 안주하기 위해서 닥쳐오는 위협을 제거해야 했기에.

    “하이 엘프를 찾아달라고요?”

    “그래.”

    떠나기 전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 끝났으나, 셀룬 왕국에 암살자 길드의 기틀을 잡아야 하는 관계로 아직도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떨어진 별에게 혹시나 주인 없는 산맥에 살아있을 하이 엘프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저희와 엘프들의 사이는 썩 좋지 못합니다.”

    “알고 있어. 그냥 찾아주기만 하면 돼. 그냥 다크 엘프라면 엘프한테 쉽게 들키겠지만 넌 할 수 있잖아.”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당분간은 여기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니까. 제국 반란 시나리오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노르스 대륙과 카르세이나 대륙의 포탈은 닫히게 된다.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떨어진 별은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마지막으로 할 일은 케이네와 엘리에게 당분간 떠나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그러나 라트가 떠나겠다고 하면 그녀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말릴 게 분명했다. 몇 주 전부터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거짓말이 답인가.”

    그런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게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민하던 라트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고 웃어버렸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국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방법을 떠올린 라트는 케이네의 방으로 향했다.

    “왔어? 차줄까?”

    문을 열자 전쟁이 끝나서 한가해진 케이네와 루아타 공작과 가신들이 바쁜 까닭에 정작 여유로워진 엘리가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음?”

    “어딜 가려고?”

    “누나 저번에 경매장에 만났었던 제르카 토먼스라고 기억하지?”

    “응. 기억하지.”

    라트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을 꺼냈고, 기억력이 좋은 케이네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장신구 좀 사 올게.”

    “전쟁도 끝났는데 굳이?”

    케이네는 물론이오, 엘리 역시 제르카 토먼스가 착용자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효과를 지닌 장신구를 만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한 지금 시기에 왜 장신구를 사러 간다는 것인가.

    “응, 굳이.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야지. 또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건너갈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어차피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건너가면 제르카에게 들려서 장신구를 사려고 했었다. 그러니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단지, 2주 정도가 지나면 노르스 대륙과 카르세이나 대륙을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길 뿐이지.

    “그리고 장신구를 사러 가는 김에 제국에서 만나봐야 할 사람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

    한때 이곳 연금술사 길드의 지하에 머물렀었던 회색의 연금술사의 행방 역시 찾아야 했다.

    “얼마나 걸릴 거 같은데.”

    “길어봐야 2주 정도?”

    “잘 다녀와. 선물 사오고.”

    “아, 누나 것도.”

    그 정도면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라트의 외출을 시답잖게 생각한 엘리가 선물을 사오라는 시시한 부탁을 하자, 케이네 역시 마찬가지로 선물을 사 오라는 부탁을 전한다.

    “알았어. 다녀올게.”

    “지금 가려고?”

    “어.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잖아.”

    “그럼 포탈까지는 같이 가. 배웅해줄 테니까.”

    굳이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와 케이네는 포탈 앞까지 라트를 배웅해주고,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그 모습에 라트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더니 포탈 앞까지 걸어갔던 것을 멈추고 돌아와 두 여성을 껴안았다.

    “애, 애가!”

    “사람들이 다 보잖아!”

    고작 장신구를 사러 가는 것치고 그 기색은 비장하기 짝이 없었으나, 엘리와 케이네는 마침내 찾아온 평화에 도취 되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녀올게.”

    작별의 인사까지 마친 라트는 포탈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엔스리드 백작님! 가실 곳은 어디 신지요.”

    “셰크티 제국.”

    목적지를 말한 라트는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그는 노르스 대륙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 작품 후기 ============================

    드디어...1부가 끝났네요....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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