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6화 (226/229)
  • 0226 / 0229 ----------------------------------------------

    1부

    “다크 엘프!”

    밀크 초콜릿 같은 진한 갈색 피부색. 인간과는 다른 기나긴 귀. 같은 남자임에도 한순간 눈을 뺏길 정도로 미려한 외모가 눈에 들어오자, 케츠는 놀라움에 겨워 소리쳤다.

    “이종족을 노예로 삼아서 파는 일에 다크 엘프가 협력할 리가 없지. 안 그래?”

    “그렇겠네.”

    다크엘프의 부족은 무슨 연유로 인해 완전히 와해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다크엘프들이 인간의 노예로 팔려나갔다.

    그렇기에 다크엘프는 인간을 증오하고, 이종족이 인간의 노예가 되는 것을 증오한다.

    그 사정을 빤히 알고 있는 케츠는 라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핀스크 왕국 쪽에 있는 부족이라면 귀 하나 없는 고양이 부족이야. 어딘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어느 산에 있었는지는 알고 있어. 대신이라지만, 그 산 앞까지는 직접 안내해줄게. 이 정도로 괜찮아?”

    “어.”

    케츠가 직접 산까지 안내해준다고 하는 것은 제법 고마운 일이다.

    이 시기에는 아직 주인 없는 산맥이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지도도 없다.

    그러니 케츠가 무슨 산인지 대략적으로 알려준다고 해도 라트가 그 산을 제대로 찾아갈 가능성은 꽤 낮았다.

    “떨어진 별. 아까 한 이야기 들었지? 믿을 만한 시종 구해줄 수 있어?”

    “전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고용주님. 암살자라고요.”

    “하지만 암살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유능하잖아.”

    “흐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빠른 시일 내에 한적한 곳에 있는 집과 믿을만한 시종을 구해보죠.”

    “고마워.”

    “돈은 주셔야 합니다.”

    라트는 대답을 대신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안내를 해주고 여기로 돌아올 때쯤이면 떨어진 별이 네가 살 집을 알려줄 거야. 가능하지?”

    “예이, 예이. 가능하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었냐는 듯 턱짓으로 떨어진 별을 가리키자, 케츠는 짧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쉬고 내일……. 아, 맞다. 혹시 그 산에 자메오로스라는 용이 살고 있었나?”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산봉우리에 용님이 살고 있었다고는 들었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오늘은 여기서 지내. 조금 있다가 먹을 거 가져올 테니까.”

    역시, 그런가. 대답을 들은 라트는 케츠를 남겨두고 미련 없이 비밀 수련장에서 나오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째서 예상은 틀리지 않는지.’

    퍼즐 조각이 거의 맞춰졌다. 게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머리가 아파졌다.

    ***

    다음날 새벽에 캐츠와 함께 주인 없는 산맥으로 출발한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본 드래곤, 본디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몬스터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는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진짜 운이 나빴을 때다.

    ‘그런데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때 본 드래곤이 튀어나오려고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얼마나 메인 퀘스트가 꼬이고 꼬였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게임의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던 NPC와는 달리, 현실에서 존재하는 인간이라서 생각이 달라지는 건가.

    ‘그런데 지금 흑마법사들 실력으로는 본 드래곤을 만들 수 없지 않나?’

    체스논의 흑마법 경지는 설정상 8서클이다. 그리고 본 드래곤을 만들려면 최소한 9서클 이상의 흑마법사가 한 명 필요했다.

    ‘머리가 아프네.’

    흑마법사들이 본 드래곤을 만들려고 하는 건 라트의 억측인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옛 핀스크의 영지까지 포탈을 탄 후, 주인 없는 산맥으로 들어가서 말을 몇 시간 동안 탄 후.

    “이 산이야.”

    늦은 오후쯤에야 간신히 묘인족의 부락이 있었던 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내 고마워. 돌아가도 돼.”

    “……알았어.”

    케츠가 사라지자 라트는 입에 파이프를 꼬나물고 산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에 드래곤이 있다고 했었지.’

    흑마법사들이 진짜로 본 드래곤을 만들고 있다면 분명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거다. 흑마법사들이 잠자는 드래곤을 제압했다고 하더라도 되는 존재를 레어 밖으로 꺼낼 수도 없을 테니까.

    “하아, 가볼까.”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이 산 어디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을까다. 자메오로스라는 드래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게임 내에서는 본 적이 없는 드래곤이다.

    애당초 대부분의 드래곤은 게임 내에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구현은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했고, 라트 본인이 드래곤에 관심이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후우.”

    주인 없는 산맥에서 마치 뒷산에 마실 나온 마냥, 검조차 들지 않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일대에 몬스터가 없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흑마법사가 만든 키메라는 100마리가 넘는다.

    한 키메라 당 몬스터가 10마리씩 들어간다고 가정해도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흑마법사들의 손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근처에 몬스터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관찰력 기능으로 인해 사람이 다닌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한참을 걷던 와중에 알림창이 나타나면서 시야에 내비치는 풍경 중 한 곳이 푸른색으로 반짝인다.

    “오호.”

    최근 들어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관찰력 기능이 빛을 발하자 라트는 눈을 빛내면서 푸른색 빛을 향해 걸었다.

    “발자국?”

    지금이 초가을이라고 하지만, 이 산은 워낙 높아서 그런지 바닥에 눈이 쌓여있었고, 덕분에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푸른색 빛은 한곳에 머물러있지 않고, 마치 이정표처럼 어느 곳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

    흑마법사는 숙달된 사냥꾼이 아니기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 미숙하다. 그러니 이 흔적은 흑마법사가 남겼을 흔적이 확실했다.

    판단을 내린 라트는 푸른빛이 안내하는 이정표대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푸른빛이 사라진 곳까지 도착한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산봉우리 부근이기는 하지만, 이 주변에는 수상하게 보이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비밀 문이 있을 법한 절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흔적은 여기서 끝났는데.”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면 갑자기 흔적이 끊긴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일부러 이런 곳에서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그럼. 답은 하나지. 만연하라.”

    이 근처에 아무것도 없음에도 흔적이 끊겼다면 답은 땅 아래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땅 밑이 보이게끔 흙을 들어냈다.

    “발견.”

    그 아래를 바라본 라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의 예상대로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 지하 통로로 발을 들이기 전, 혹시나 함정이 있을까 싶어서 돌멩이 몇 개를 던져봤다.

    “함정은 없나.”

    던진 돌멩이가 힘없이 지하 통로를 타고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곳까지 찾아올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흑마법사들은 오랜 시간 그 모습을 숨기고 지냈다.

    신전 측에서도 핵심 흑마법사들이 핀스크에서 전부 죽었다고 판단하고 남은 잔당을 찾는 걸 주력하고 있을 뿐, 수장이 떡하니 살아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있다.

    “후우.”

    그러니 이곳에 있는 흑마법사를 토벌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겠지.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 있는 흑마법사를 처리해야 왕국 전쟁 시나리오가 끝낼 수 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고 제국 반란 시나리오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흑마법사들을 처리해야 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보실까.”

    호랑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기보다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혹시나 담뱃불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침입자가 나타났음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담배를 인벤토리에 넣어버린 라트는 조심스럽게 지하 통로에 들어섰다.

    빛이 사라지고 시커먼 어둠이 라트를 반긴다.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으로 벽을 더듬으면서 걷기를 몇 분.

    ‘이제 좀 보이네.’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얕은 빛 덕분에 간신히 눈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외길이었기에 빛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라이트 스톤.’

    빛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라트는 천장에 수놓아져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는 아름다운 보석들을 보고 잠시 입을 벌리고 말았다.

    보석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문라이트 스톤은 어디까지나 돌이다.

    ‘보석보다 더 비싼 돌이기는 하지만.’

    한낮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 발광석과 달리 은은한 빛을 내뿜는 문라이트 스톤은 채취량이 미미했기에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자랑했고,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쓰이는 광석 중 하나였다.

    “몇 개 가져갈까.”

    만약 이곳이 진짜 드래곤 레어 근처라면 이건 드래곤의 소유물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으면 건드리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러나 개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몇 개 정도 가져간다고 해도 아무런 티가 나지 않으리라.

    마음 같으면 천장이 아니라, 중앙에 있는 거대한 문라이트 스톤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과유불급이야.’

    라트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며 무색의 연금술을 써서 천장에 붙어있는 문라이트 스톤 몇 개를 챙겨 인벤토리에 넣은 후 길을 재촉했다.

    ‘꽤 긴데.’

    라트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체력이 약한 마법사가 걸어 다니기에 이 길을 상당히 길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가? 그게 아니면 중간에 놓친 게 있는 건가.

    흔적이 쉽게 묻어나는 눈 위와 달리 사방이 바위로 되어있어서 관찰력 기능조차 흔적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나 완성되려는지.”

    “그러게나 말이야.”

    바로 그때 조그마한 말소리가 라트의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펴 숨을 곳을 찾는다. 다행히 라트 한 사람이 숨기에는 충분한 바위가 있었기에 재빨리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자는 드래곤을 발견하고 그걸 본 드래곤으로 만들려고 하는 계획은 좋지만. 하루하루 죽겠다니까. 이 약초가 없었으면 이미 죽었을 거야.”

    “드래곤이 막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우리가 몇 달 동안 마력을 쏟아붓고 있는데 아직도 완성되려면 멀었다니.”

    “그래서 도론님께서 시간을 벌어주시기 위해서 희생하셨잖나.”

    “그랬지, 쯧. 브로뉴 인간들을 전부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어놓은 건 되돌릴 수 없었으니, 희생타가 필요하긴 했지만, 하필 도론님께서 희생하실 줄은.”

    “기쁘게 가셨을 걸세.”

    ‘아직 본 드래곤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라트는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숨을 쓸어내렸다. 본 드래곤이 완성되려면 멀었다.

    그래서 도론이 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흑마법사들이 전멸한 척 위장하려고 일부러 희생했다.

    ‘핀스크 왕국에 저지른 짓이 있으니까 그냥 사라져버리면 대대적인 수색이 일어났겠지.’

    도론이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흑마법사들이 마음 편하게 본 드래곤을 만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안심하고 있어서, 설마 이곳에 사람이 침입할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있다.

    “한가하게 잡담 떨 시간이 있으면 빨리 걸어. 빨리 마력초를 가져다 드려야 할 거 아니냐. 다른 놈들도 죽어가고 있을 거라고.”

    “아. 이럴 때가 아니었지.”

    “그래도 본 드래곤을 완성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도 들어.”

    “그렇지! 그게 완성만 되면 이 대륙은 피의 바다가 만들어질 거야 하하하.”

    ‘미친 새끼들.’

    어떻게 된 놈들이 하나같이 또라이 밖에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흑마법사들이 점점 이쪽으로 걸어오자, 라트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대로 있으면 흑마법사들의 시야에 라트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들키지만 않으면 몰라 따라가서 흑마법사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데 들킬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나.’

    흑마법사들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쪽으로 걸어오자 라트는 눈을 찌푸리면서 바위 뒤편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하루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 하는 능력 중 하나를 발휘했다.

    ‘경화수월.’

    바로 옆에 있더라도 심지어 코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공격하지만 않으면 오러 마스터조차 그 존재를 집어낼 수 없는 암살자의 극의가 펼쳐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