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5화 (22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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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문제는 그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는 건데.’

    게임, 그러니까 2d 도트라면 주인 없는 산맥의 지리를 모조리 꿰고 있지만, 3d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다고 인간 중에서 주인 없는 산맥의 지리를 꿰고 있는 이는 없다. 주인 없는 산맥 근방에서 사는 야만인들조차 엘프와 수인족이 어디서 사는지는 모르지 않던가.

    “후우.”

    딱 한 명, 묘인족의 거주지를 알고 있을 자가 있기는 하다. 사람은 아니고 그 행방조차 묘연하기는 하지만.

    ‘그년이라면 알고 있겠지.’

    켈랑과의 싸움에서 행방불명된 묘인족, 케츠를 떠올린다. 케츠를 찾을 수 있다면 분명 묘인족의 거주지 위치를 알 수 있을 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미르차르드님.”

    라트는 소란스러운 자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흑마법사가 아직 전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 라트뿐이다.

    핀스크와의 전쟁 역시 사실상 끝이 났으니 더는 사라이와 셀룬이 할 일은 없다. 그리고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곧 완성된다고 했지.’

    무엇이 완성된다는 건가. 무엇을 완성하려고 하기에 체스논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나. 도대체 주인 없는 산맥에서 무엇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설마 하고는 있지만.’

    종파를 막론하고 흑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은 무엇인가?

    수많은 플레이어가 이 문제를 논했고, 단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되었다.

    ‘본 드래곤.’

    강령술을 포함해서 수많은 흑마법 종파들이 모여야 만들어낼 수 있는 본 드래곤은 드래곤의 뼈로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는 드래곤을 속박하고 타락시켜 만든 존재가 바로 본 드래곤이다.

    겉모습은 언데드와 같이 뼈만 남아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존재지.

    그래서 본 드래곤은 살아생전 드래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다.

    “후우.”

    그런데 어째서 뜬금없이 본 드래곤을 생각한 걸까. 그것은 신전에서 마주했던 두 신이 주인 없는 산맥에서 서식하는 드래곤 하나가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잠을 자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흑마법사에 의해 본 드래곤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면.

    ‘만약 세상에 본 드래곤이 나타나면 드래곤들이 나서긴 하겠지만.’

    드래곤들이 나서기 전까지 본 드래곤은 인간들을 도살할 거다. 하루의 기한만 준다고 해도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이 죽겠지.

    만약 셀룬과 사라이가 흑마법사가 완전히 와해하지 않았음을 안다면 신전의 도움을 받아서 주인 없는 산맥을 수색하려고 들 거다.

    ‘병사들과 함께 간다면 나야 편하겠지.’

    직접 움직일 필요 없이 흑마법사의 진지가 발견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까. 그러나 많은 수가 움직인다면 당연히 그 속도를 느리다.

    만약 진짜로 흑마법사들이 본 드래곤을 만드는 중이라면 이미 그 일은 꽤 진척됐을 거다.

    ‘빠르게 처리해야 돼.’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떨어진 별이 혹시나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걸로 연락하면 된다고 하면서 주고 갔던 물건이었다.

    “떨어진 별.”

    그 이름을 부르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무슨 일이십니까, 고용주님.」

    떨어진 별의 응답이 돌아왔다.

    “찾고 싶은 사람, 아니 묘인족이 있다. 보수는 지불하지.”

    「묘인족이요?」

    “그래.”

    「주인 없는 산맥을 뒤져야 하는 일이라면 보수를 주신다고 해도 조금 곤란한데요. 저 혼자서는 무리고, 사람을 동원하자니 인력이 모자라서요.」

    “주인 없는 산맥을 뒤질 필요는 없어.”

    「예?」

    떨어진 별의 의문은 당연한 거였다. 묘인족을 찾아야 하는데 주인 없는 산맥을 뒤질 필요가 없다니? 이종족이 인간과 섞여서 살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찾고자 하는 묘인족의 이름은 케츠. 켈랑이 멸망하지 않았을 때 루만 태자의 밑에서 활약했던 몬스터 테이머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네요. 그런데 주인 없는 산맥을 뒤질 필요가 없다니요?」

    “케츠는 루만 태자와 함께하기 위해서 동족을 배신했다. 무리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 사회에 숨어서 지내고 있을 거다.”

    「아하.」

    무리를 배신한 묘인족이 다시금 무리로 들어갈 경우는 희박하다. 무리로 돌아가면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니까.

    「이해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잘됐다니?”

    「그러잖아도 여기서 뽑은 신입들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참이에요. 기간은요?」

    “최대한 빠르게.”

    「알겠습니다, 곧 찾아뵙도록 하죠.」

    떨어진 별이 연락을 끊자, 라트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날, 형식적으로 노르스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은 형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라트는 아직 적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5일이 지났다. 셀룬과 사라이가 깔끔하게 핀스크와 영토를 양분하고,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각각 가져갔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으니, 남은 건 뒤처리와 내정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귀족이 해야 할 일이지 명예 귀족이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라트는 한가롭게 연금술사 길드에서 기거하는 중이었다.

    아니 사실은 전혀 한가롭지 않았다. 남는 시간 동안 기능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수련을 했으니까.

    그리고 5일째 밤.

    “잡아왔습니다.”

    길드의 뒷마당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을 때, 한쪽 팔에 재갈을 물린 케츠를 낀 채로 떨어진 별이 라트의 앞에 나타났다.

    “제법 잘 숨어있더군요. 덕분에 애 좀 먹었습니다.”

    “으으읍!”

    라트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재갈을 물렸음에도 케츠의 입에서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언성이 터진다.

    “수고했어.”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라트는 케츠를 바라보았다. 오우거를 조종해 케이네를 죽이려고 했던 그 날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잊히지 않았다. 퇴색되지도 않았다. 희석되지도 않았다.

    “오랜만이야.”

    그러나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케츠를 향한 분노는 퇴색되지도, 희석되지도 않았으나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앙상하게 들어간 볼살과 꾀죄죄한 겉모습을 보자니.

    굳이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고통을 느끼는 중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하긴 그렇고. 따라와.”

    라트가 향한 곳은 연금술사 길드의 지하에 있는, 라트 밖에 알지 못하는 장소. 회색의 연금술사가 머물렀던 비밀 수련장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군요.”

    “재갈 풀어.”

    떨어진 별은 잠시 감탄을 하다가, 라트의 명령에 따라 케츠의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풀었다.

    “이 씹어 죽일 새끼가!”

    케츠는 재갈이 풀리자마자, 아가리를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라트를 물어뜯으려고 했으나.

    “어이쿠, 이런.”

    입이 라트에게 닿기도 전에 떨어진 별에 의해서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놔, 놓으라고! 내 당장 저 새끼를!”

    “이거 참, 역시 짐승이라 그런지 도통 말을 안 듣는군요. 다리라도 잘라 놓을까요?”

    “됐어.”

    다리를 자른다는 말에 케츠의 눈에서 공포를 엿본 라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개새끼! 이 씹어 죽일 새끼!”

    “진정 좀 하지. 니가 날 싫어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분노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계속 저렇게 나오면 그 이유가 생기는 꼴이다. 라트가 잠깐 살기를 보이자, 케츠는 입을 다물었다.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케츠는 설정상 루만에게 반해서 무리를 배신하고 켈랑 왕국에게 협력한 묘인족이다. 사랑하는 이를 죽인 이가 바로 코앞에 있으니 당장 죽이고 싶겠지.

    “날 죽이려고 잡아왔어?”

    라트의 말대로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케츠의 목소리가 조금 내려갔다.

    “그럴 거면 진작 죽였지. 여기까지 뭐하러 데려왔겠어.”

    “그럼 나를 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대답해주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게. 아니 네가 인간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지원도 해주지. 어때.”

    “좆까.”

    그동안 꽤 시궁창을 구르고 다녔는지 말투가 굉장히 험악해졌다. 노예상의 눈에 띄지 않고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용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착각하나 본데. 너한테 거부는 없어.”

    만인을 내리까는 눈동자가 케츠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누가 더 위인지, 그것을 확실히 알려주는 싸늘한 눈빛에 케츠는 순간 등골이 얼어붙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니가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면, 대답하고 싶어질 때까지 고문해줄게. 마침 그런 일이 전문인 사람이 바로 옆에 있잖아.”

    “딱히 전문은 아닙니다만.”

    암살자는 상대의 목을 신속하게 따는 직업이지, 고문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빼내는 직업은 아니다.

    “독은 어느 정도 다룰 거 아니야.”

    “그거야 기초적인 부분은 그렇지만, 아무튼 전문은 아닙니다.”

    “알았어, 그럼 전문은 아니고 수준급이라고 치자. 그럼 됐어?”

    “예.”

    이상한 데서 까다롭기는. 라트는 떨어진 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낮게 혀를 차면서도 케츠의 눈에서 분노보다는 공포가 훨씬 깊다는 것을 읽어냈다.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한껏 미소한다.

    “날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게 해줄 거지?”

    “집을 구해주고 생활비와 네 비밀을 절대로 함구해줄 시종을 고용해주지.”

    생활비와 케츠가 수인족이라는 비밀을 지킬 믿음직한 시종이 있다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거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난 갇혀서 사는 타입이 아니야.”

    “몇몇 귀부인처럼 가면을 쓰고 나가면 될 거야.”

    귀부인들이 외출할 때 화려한 가면을 쓰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가면을 쓴 채로 돌아다닌다면 시선은 끌겠지만, 쓰고 있는 가면이 화려하다면 평범한 이들은 말도 걸지도 못할 거고, 설령 말을 건다고 해도 케츠가 묘인족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거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지?”

    “당연하지.”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고 해도 케츠는 항거할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허락될 리가 없으니까.

    “뭘 물어보고 싶은데.”

    “핀스크 왕국에서 가장 가까운 묘인족 부족의 위치.”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설마 내 동족을 노예로 팔려고 하는 거라면!”

    동족을 배신하고 인간 사회로 나왔으면 동족을 걱정하는 꼴이라니 우습다면 우스웠다. 그러나 케츠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이미 한 번 배신했으니, 또 배신할 수도 있다는 정신 상태가 아니라, 두 번 다시 동족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정신인 건가.

    “그런 일은 하지 않아.”

    “그걸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어!”

    묘인족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좁아진다. 케츠의 입장 상 저런 반응은 당연한 거였다. 정당한 복수였다고 하지만, 라트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목숨을 앗아간 자다. 당연히 믿기 힘들겠지.

    “떨어진 별. 네 모습 좀 보여주겠어?”

    잠시 곤란에 빠진 라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떨어진 별에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로브를 벗어주라고 부탁했다.

    “뭐, 어쩔 수 없네요.”

    이대로 간다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음을 깨달은 떨어진 별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로브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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