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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3화 (22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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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땅에 뿌려진 성수가 요동치면서 하늘 위로 올라갔고, 이내 라트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서 쏟아지기 잔잔히 쏟아져 라트의 근방에 있던 언데드가 성수의 비에 의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잡졸 처리로는 제, 격이구나. 그러나 나, 에게는 통하, 지 않는다!”

    가소롭다는 듯, 한 마디 고함이 내질러진다. 성수의 비 때문에 해골마는 무너져내렸지만, 그 주인인 데스 나이트는 성수 정도로는 정화할 수 없는 최상위 언데드.

    “칼슈타인 3세.”

    “오, 호.”

    라트가 이름을 내뱉자, 데스 나이트는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흥미롭다는 듯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를 아, 느냐?”

    “알다마다.”

    당연하지만, 흑마법사가 데스 나이트로 만들 수 있는 시체는 한정돼있다. 그중에서도 창을 다루는 오러 마스터라면 단 한 명밖에 없다.

    칼슈타인 3세, 100년 전 핀스크 왕국의 대공이었으며 동시에 노르스 대륙 최강의 오러 마스터로 이름을 드높였던 남자이며 도론이 등장했을 시 함께 등장하는 중간 보스다.

    “그, 럼. 나와 맞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 지도 알고 있겠구나?”

    불가능한 일이라. 그 말에 라트의 표정이 굳었다. 상대는 100년 전 최강의 오러 마스터. 그 힘은 전성기와 비교하면 약했으나 확실히 힘든 상대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후우.”

    “그런데도!”

    성수의 빗속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내리깐 눈동자로 망자를 주시한다.

    이상하게도 말이야.

    “감, 히! 내 앞에 당당, 하게! 서 있느냐!”

    “시끄러워.”

    내찌르는 창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발자국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시커먼 오러를 머금은 낡은 창이 갑옷을 부수고 배를 꿰뚫었다.

    고통이 전류처럼 온몸에 퍼진다.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실로 고통스러웠다. 한순간이지만 의식이 날아갔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다. 치명상을 입었으나, 죽지는 않았다. 아니 일부러 죽을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정말로 이상하게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까.

    “쿨럭.”

    식도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를 참지 못하고 입으로 뱉어낸다.

    “자포자기했, 나?”

    데스 나이트는 라트가 자포자기하고 일부러 몸을 내던졌다고 멋대로 판단한 채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웃고 있는 것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갑게 웃고 있는 것은 데스 나이트가 아닌, 라트였다.

    “음? 왜 웃, 지?”

    “웃기니까. 웃지. 후우.”

    배가 꿰뚫려서 출혈이 굉장히 심하니 이대로 내버려둬도 알아서 죽을 것인데. 어째서 웃고 있는가. 뭐가 웃긴다는 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데스 나이트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을 때 라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배에 꽂혀 있는 창대를 잡았다.

    “뭐하, 는 거냐.”

    “널 죽이려고 한다.”

    오러 마스터라는 것들은 자신의 무기를 소중하게 여긴다. 데스 나이트라고 해도 생전의 습관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창을 잡았으니 이 자는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상황은 모두 갖춰졌어.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 6번.”

    상대가 움직일 수 없으며, 라트의 체력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됐다. 그야말로 최고의 상황이지 않나.

    “소, 소드 엠프레스 시, 리즈라고!?”

    무사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전설의 무구. 분명 전설의 무구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허공에 생겨나는 검은 한 자루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수가 늘어난다.

    “이, 건!”

    검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칼날은 오히려 지금 데스 나이트가 들고 있는 낡은 창이 무기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 기운만큼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공평함의 검(Sword of Impartial)!”

    “그래. 바로 맞췄다.”

    수십 자루의 검이 라트의 손짓에 따라 공중을 노닌다. 먹잇감은 단 하나, 눈앞의 망자다.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

    새하얀 칼날이 더욱 새하얗게 질려간다. 그리고 아마도 칼슈타인 3세가 살아있었다면 칼날의 색깔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을 것이다.

    “아, 아, 안 돼애애!”

    끔찍한 목소리로 처절히 비명을 지르나, 이미 때는 늦었다. 칼날은 망자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이 그의 몸을 찔렀고.

    “으아, 아, 아, 아, 아!!”

    데스 나이트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창을 손에서 놓지 않은 그 정신은 칭찬해 마땅했기에.

    “돌아가라, 너의 지옥으로.”

    손에 쥐고 있는 대검으로 데스 나이트의 머리를 베어버리고, 사람의 뇌 부분에 위치해있을 코어를 발로 짓밟았다.

    “나는, 나는 아, 직!”

    미련이 뚝뚝 흘러내리는 말과 달리 그의 몸은 점점 형체가 무너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단독으로 데스 나이트(칼슈타인 3세를)를 처치하셨습니다]

    [칭호 ‘이치대로’를 획득하셨습니다]

    [홀리를 섬기는 사제와 성기사들이 당신의 힘에 경외합니다]

    [이 활약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평생토록 각인될 것입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알림창이 승리를 알리는 축포처럼 나타났지만, 라트는 그것을 무시한 채 손을 뻗었다.

    “만연하라.”

    비가 되어 땅이 떨어진 성수를 다시금 무색의 연금술로 조종해서 길을 만든다.

    그 끝에는.

    “끅끅. 이런, 이런. 역시 위험한 놈이었구먼?”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키메라의 머리 위에서 라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도론이 있었다.

    “후우.”

    왜 웃는 건가. 이리도 많은 사람을 죽였음에도 어째서 웃을 수 있는가. 그것은 그가, 그들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집념이 광기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미쳤기에 맹목적이다. 주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말싸움을 할 이유가 없어.

    “어떻게 할까요, 도론님.”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죽여야지. 저놈이라면 좋은 언데드가 될 거야.”

    “예!”

    명령이 떨어지자 흑마법사들이 하나둘 주문을 외운다.

    “커스 오브 아이!

    “녹색의 역병!”

    “소울 블라이트!”

    가지각색의 마법이 쏟아진다. 그중 대부분은 라트의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트리고, 시야를 차단하고, 감각을 둔하게 하는 저주다.

    그들은 라트가 입고 있는 갑옷이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공격 계열 흑마법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이게 전부냐?”

    온갖 저주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배를 꿰뚫은 창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라트는 담담히 물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저주라고 해도 그 즉시 상대방의 목숨을 그 즉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할진대, 그저 몸을 약화하는 저주로 끝일 리가 없다.

    “성수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면, 멀리서 쏴 죽이면 되지. 스켈레톤 아쳐!”

    도론의 외침에 언데드 군대의 뒤편에서 해골 궁수들이 나타나 활을 치들었다.

    “쏴라, 쏴라, 쏴라! 미스릴이라고 해도 강도에 한계가 있는 법! 마구마구 쏴라!”

    망자들은 명령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제히 활시위를 겨누고 놓는다. 날아가는 화살은 수없이 많아, 일순간이나마 하늘을 가렸다.

    온갖 저주 때문에 몸이 굳어지고 시야까지 차단된 라트가 이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다.

    “만연하라.”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저주 같은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말하는 듯이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자신의 앞에 바위벽을 만들었다.

    “어, 어떻게!”

    “이거 놀랍구먼. 끅끅.”

    쏟아지는 화살이 바위벽에 가로막히자, 흑마법사들은 경악했고,도론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이게 전부냐?”

    화살의 비가 멎자, 바위벽을 치운 라트는 도론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묻는다. 질문의 요지는 조금 전과 같다. 이것이 너의 최선이냐는 뜻.

    그런 그의 아래 포션병 하나가 바닥을 구르고 있다. 그 병에는 조금뿐이지만, 틀림없이 흰색 액체 몇 방울이 남아있었다.

    “분명 저희의 저주는 제대로 들어갔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 남자가 대마법사라고 하더라도 그 저주를 풀지 않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상태 이상 면역 포션이다.”

    “아.”

    도론의 말에 흑마법사가 입을 다물었다. 최상위 효과를 지닌 포션 중 하나이자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알베도 학파의 정수.

    “네놈이구먼. 체스논님께서 주의하라고 한 놈이.”

    웃음기를 지운 도론이 싸늘한 시선과 함께 읊조린다. 그의 몸에서 시커멓고 불길한 마력이 용솟음 친다.

    “이제 기억났다. 쯧. 분명 라트 엔스리드였지. 그래, 위험하다고 하신 이유가 있었어.”

    그제야 눈앞의 남자가 라트임을 알아차렸는지 혀를 차면서 오미너스의 피의 수장인 체스논이 라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마냥 말한다.

    “전부냐고 물었다.”

    그러나 거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질문을 내밀 뿐.

    “그럴 리가!”

    여기서 끝일 리가 없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던가, 목표를 위해서, 피를 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죽이고 오미너스님께 쾌락을 안겨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왔던가.

    수없이 길었던 인고의 시간을 보냈는데 이 정도로 전부일 리가 없다.

    “지금 이곳은 오미너스의 손아귀에 지배되나니! 발하여라, 어둠의 무대여. 강림하소서, 오미너스의 눈이여!”

    공중에 높게 떠오른 도론이 한참 전부터 준비했던 마법을 펼쳤고.

    “히, 히익 하늘이, 하늘이 붉어졌어!”

    병사들의 비명처럼 어두웠던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거대한 붉은색 눈동자가 태양마냥 존재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공포를 뒤흔드는 모양새에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포효한다.

    “쯧.”

    그리고 라트는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피와 광기의 하늘, 오미너스의 힘을 직접 빌어 사용하는 8서클 흑마법으로 효과는 간단하기 짝이 없다.

    일대를 오미너스의 공간으로 장악하여 흑마법을 제외한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힘. 정확히는 마력과 오러의 근본이 되는 마나를 속박하는 힘이다.

    ‘최소 8 클래스 마법이나 그에 준하는 신법을 사용하면 깰 수 있기는 한데.’

    동격의 힘으로 하늘 위에 떠 있는 눈을 공격하면 이 마법은 깨진다. 문제는 그 정도 수준의 힘을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원래 이 상황을 타파하는 정석은 일행 중 하나가 이 마법을 깰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아직도 주변을 떠돌고 있는 수십에 달하는 칼날을 잠시 바라본다. 마력을 속박한다고 하지만, 이미 생명의 연금술로 연성해놓은 검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칼날들을 마력을 소모하지 않는 힘인 염동력으로 조종하여 거대한 눈을 찔렀다.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

    그리고 저 보잘것없는 검이 신화급 아이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힘을 개방한다.

    “이럴 수가…….”

    부서진다. 높디높게 자리 잡았던 거대한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 얼음마냥 금이 생기더니 서서히 부서져 간다.

    ‘공평함의 검으로는 생명을 뺏을 수는 없지만. 마법은 생명이 아니니까.’

    핏발을 세우며 갈라지던 눈동자는 종극에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고 붉은색으로 번뜩였던 하늘 역시 본래의 칙칙했던 하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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