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2화 (22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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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만연하라!”

    바위 주먹이 수없이 내리쳐서 주변을 쓸어담고 있음에도 해골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험치도 안 되는 것들이.’

    구울과 스켈레톤이 아무리 급이 낮은 언데드라고 해도 이 정도로 숫자가 많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우.”

    생명의 연금술로 성수를 만들어 스켈레톤의 해골바가지에 뿌리면서 상황을 살핀다. 그나마 망정인 것은 키메라를 염두에 둬서 만들어놨던 병사들의 장비가 빛을 발한다는 것 정도다.

    그렇지만 저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제아무리 경험이 많은 베테랑 병사라고 해도.

    절대 물러나지도 않고, 겁도 먹지 않은 언데드 군단에게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저놈을 노려야 돼.’

    이곳에 있는 언데드의 대다수를 조종하고 있는 건 분명 키메라의 머리 위에 타고 있는 도론일 거다. 저놈만 처리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언데드는 마력이 사라져 바닥에 주저앉겠지.

    ‘그런데 어떻게?’

    대검을 휘둘러 좀비의 머리를 날려버린 라트는 날카로운 눈으로 언데드를 쏘아붙였다.

    ‘너무 많아.’

    “엔스리드 백작!”

    고함과 함께 스켈레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검이 라트를 노렸으나, 그보다 라트가 한 발 더 빨랐다.

    “어딜.”

    가소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뒤틀면서 가볍게 뒤로 물러서 스켈레톤 나이트의 공격을 피한 라트는 대검으로 그 머리를 부수고, 생명의 연금술로 폭발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방향을 바꿔 생명의 연금술로 성수를 만들어 뿌렸다. 병사들 근처에서 생명의 연금술로 폭발을 일으키는 건 자중해야 한다. 일반인이라면 폭발로 튀긴 뼛조각과 살점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성수에 당한 언데드들이 차츰 정화되어 바닥에 몸을 눕히자, 라트의 지근거리에 있던 로오데 추기경이 놀라움에 겨워 말한다.

    “차, 창조입니까? 다, 당신은 도대체.”

    그 물음에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연금술사고 이 힘은 연금술입니다.”

    추기경의 시점에서 보자면 생명의 연금술은 창조의 힘과 일맥상통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성수가 생겨났으니 오죽할까.

    이 소란통에 굳이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조금 그랬지만, 창조는 드래곤 혹은 신에 준하는 존재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능력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도 이해가 되긴 했다.

    “그게 연금술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보다.”

    로오데 추기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까지는 라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루아타 공작님께서 광역 디스펠 마법을 시전하실 겁니다. 그때를 맞춰서, 길을 열어주십시오.”

    광역 디스펠이라면 루아타 공작의 근처에 있는 언데드들은 모두 소멸할 것이고 이 근방에 있는 모든 언데드들은 한순간이나마 움직임을 멈출 거다.

    “길을 열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놈의 멱을 딸 생각입니다.”

    라트가 도론을 가리키자, 로오데 추기경은 신중히 말을 꺼냈다.

    “제가 홀리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고작 두 명 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키메라는 만만찮은 괴물입니다. 혼자서 저 많은 키메라 전부 상대하기는 힘드실 겁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추기경님! 길을 열어주십시오.”

    “롤랑!”

    “이대로 가면 모두 죽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롤랑의 말이 옳았다. 이 정도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으면 체력이 갉아 먹힐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돌파해서 이 사태의 원흉을 죽일 수밖에 없다.

    “아니요. 저는 백작을 말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단지 유의할 점을 알려드리고 괜찮으시냐고 물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조금 의외였다. 신전의 인간들은 대부분 심성이 고우나 흑마법사 혹은 흑사제와 관련된 일에서는 신전 외의 사람을 믿지 않는다.

    “롤랑 당신은 여기서 이곳의 성기사들을 통솔해야 합니다.”

    “하, 하오나 혼자서는!”

    “이분은 라쉐의 축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아, 맞다. 그런 걸 받고 있었지. 라쉐는 신전에서 모시는 신이 아닌 중립을 고수하는 신이었으나, 그래도 악신은 아닌 만큼 신전에서도 어느 정도 대접을 해준다.

    “저희가 왈가왈부할 사람이 아니에요.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저를 지켜주세요.”

    로오데 추기경의 말에 롤랑은 라트를 다시 봤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검을 높게 들었다.

    “추기경께서 기도를 드리신다! 모두 목숨을 걸고 추기경님을 지켜라. 홀리의 이름 아래!”

    “위대하고 거룩한 홀리의 이름으로!”

    “만연하라.”

    성기사와 사제들이 기를 쓰고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막으려고 하는 순간, 대지가 아가리를 벌리더니 일대의 언데드들을 모조리 씹어 삼켰다.

    “무, 무슨?”

    “하아, 하아, 후우.”

    예상치도 못한 현상에 성기사들과 사제는 당황했고, 단번에 마력을 상당히 소모한 라트는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이마에 땀을 훔쳤다.

    ‘토할 거 같아.’

    단 한 번에 이 정도로 마력을 많이 소비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이번 무색의 연금술의 범위는 넓었다. 최소 5천의 언데드는 족히 땅속으로 묻어버렸을 거다.

    “라, 라쉐의 힘입니까?”

    ‘그럴 리가.’

    굳이 대답해줄 이유도 없고, 대답할 힘도 없었던 라트는 숨을 몰아쉬면서 인벤토리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하아.”

    포션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라트는 혀를 차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언데드의 숫자를 꽤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앞을 보니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그 정도로 언데드의 숫자가 많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언데드를 쓰러트려도 도론이 순식간에 부활시키고 있다는 거다.

    “하늘의 아버지, 드높은 당신의 이름 아래 어둠을 몰아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랍니다.”

    그래도 로오데 추기경의 기도는 거의 다 끝났다.

    ‘이제 루아타 공작의 디스펠 마법만 발동된다.’

    바로 그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모든 언데드의 행동이 한순간 멈췄다.

    “로오데 추기경님!”

    “가녀린 자를 빛의 길로 인도하시옵소서.”

    라트의 부름에 로오데 추기경이 기도를 갈무리했고, 그 순간 추기경의 몸에서 일어난 빛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빛을 쬔 언데드들은 더는 재활용을 할 수 없게끔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추기경급이라면 이 정도 신성력은 가지고 있어야지.’

    조금 아쉬운 것은 시간이 부족하여 셀룬의 신전에 있는 이들만 먼저 이곳으로 왔다는 거다.

    노르스 대륙의 신전에 있는 모든 성기사들과 사제가 모였더라면 조금 더 편하게 이길 수 있었겠지.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마치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올곧게 퍼진 빛을 따라 달린다.

    ‘이 정도 신성력이면 어지간한 언데드들을 닿자마자 소멸해.’

    이 빛이 지속되는 한 언데드는 라트를 건드릴 수 없다.

    “도론님.”

    “보고 있다. 위험한 기세로 달려오는구먼. 끅끅끅. 그럼 이쪽도 제대로 해볼까.”

    분명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갑자기 오한이 느껴지자 라트는 땅을 뒹굴었고, 그 덕분에 간신히 자신의 등을 내리치는 창을 피할 수 있었다.

    “이걸, 피, 할 줄이야.”

    창을 휘두른 언데드는 시커먼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었고, 라트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졌다.

    “제, 법.”

    생전의 오러 마스터 급의 강자를 언데드로 만들시 어느 정도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생전의 실력의 80% 정도를 가진 언데드가 탄생하게 된다.

    “데스 나이트.”

    리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강의 언데드.

    데스 나이트, 강령술의 최고봉에 이른 자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떡하니 나타났다.

    “그래 슬슬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어.”

    물론 본 드래곤에는 결코 미칠 수 없지만, 이 세계에서는 본 드래곤을 언데드로 취급하지 않는다.

    “캬, 하, 하, 하!”

    냉기를 내뿜는 해골마에 탑승하여 다 닳아진 창에서 시커먼 오러를 내뿜으며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아, 안 돼!”

    로오데 추기경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빛의 그 위력을 다하고 서서히 사라진다. 현재 라트의 위치는 언데드 무리의 한복판.

    이대로라면 라트는 언데드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 말 것이다.

    “위험하지만, 멍청했다. 겨우 그뿐이었어. 끅끅.”

    도론이 스산하게 웃었고, 마침내 빛이 사라지자 언데드들이 낮게 포효하며 라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죽어, 라. 인간! 너의 생기, 를 다오!”

    데스 나이트도 마찬가지로 라트에게로 다가온다. 절체절명의 순간.

    “왜 웃는, 거지?”

    해골마를 멈추게 한 데스 나이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라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생각대로라서.”

    “뭐, 라?”

    생각대로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언데드 숫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만. 나머지는 전부 상정 이내야.”

    브로뉴의 수도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전부 상정 이내다.

    키메라가 있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예상하였다. 데스 나이트의 출현 역시 가늠하고 있었다.

    “언데드가 가장 싫어하는 물이 뭘까.”

    무슨 의미를 담은 질문인가. 데스 나이트가 대답을 고심하고 있을 때, 라트는 처음부터 답을 말할 생각이었다는 듯, 입을 열어 말한다.

    “답은 성수다.”

    인벤토리를 연다. 그리고 웨이스텔에서 얻어왔던 성수를 모조리 바닥에 쏟아낸다.

    유리병이 대지에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고 그 안에 있던 성수 역시 땅에 스며든다.

    “그런다고, 우리가 못 갈 거, 같, 나?”

    사실 성수는 언데드의 머리에 뿌리지 않는 한 크게 의미가 없다.

    성수를 바닥이 뿌려놓은 부분에 닿는 발은 손상되겠지만, 언데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충분히 라트를 공격할 수 있다.

    “이게 끝일 리가 없잖아.”

    라트의 입가에 머물러있던 미소가 사라지더니, 싸늘하게 주문을 읊는다.

    “만연하라.”

    트렌세르노군과 싸울 때는 물이 근처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 써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 성수도 당연히 물로 취급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로 취급할 수 있다면, 무색의 연금술로도 다룰 수 있어.

    애니그마에게 받은 직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물을 다루는 무색의 연금술이 드디어 빛을 발휘한다.

    “성수로 비를 만들었다? 흐음. 저놈이 체스논님께서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놈인가.”

    “체스논님께서 주의하라고 한 자요?”

    “그래. 분명 주의하라고 하면서 이름을 알려줬었는데. 뭐였더라. 끅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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