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1화 (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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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네 분 모두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그 대화를 뒤로하고 라트는 다른 귀족들에게 조금 전 세뇌에서 풀리지 않았던 대사제가 흑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걸 말했다.

    “흑마법사들은 저희가 흑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생각 중입니다.”

    “호오. 그럼 신전 측이 나선다는 걸 숨길 수만 있다면 흑마법사들이 나섰을 때 당황하겠군.”

    루아타 공작은 라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흑마법사들이 대사제에게 연락할 수 없게 내일 중으로 웨이스텔을 점령해야겠군.”

    전쟁과 신전은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적이 숨어있을 수가 있어서 도시를 함락하면 신전을 수색하는 건 당연한 일례였다.

    그러니 지금 대사제가 가지고 있는, 흑마법사와 연락할 수 있는 수정구가 부서진다고 해도 없었다. 꼬리를 밟히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부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신전 쪽에 요구해서 저희 쪽 진격로를 따라오라고 해야겠군요.”

    미르차르드 후작의 말도 옳았다. 사제와 성기사들이 사라이와 핀스크의 국경 쪽을 이용하면 오늘 중으로 웨이스텔을 정복한다고 해도 신전이 개입한 게 들통난다.

    “말씀 중에 죄송하오나, 루아타 공작님. 셀룬의 추기경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십니다.”

    대사제가 수정구를 넘기자 루아타 공작은 곧바로 그것을 받아들고 신전 쪽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전 쪽도 사태의 중대함을 알고 있으니 이야기는 잘 풀릴 게 분명했다.

    “대사제여. 질문이 있다네.”

    “질문이요?”

    “그래. 그룬할드 후작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브로켄 후작의 물음에 대사제는 난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룬할드 후작, 핀스크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로 사용하는 무기는 활이었다.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라트는 노인이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죽었겠지.’

    신체가 약한 사제나 마법사는 아무리 경지가 높다고 하더라도 일단 오미너스의 싹을 붙일 수 있으면 세뇌할 수 있지만, 오러 마스터는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하다.

    그러니 흑마법사들은 그룬할드 후작을 죽이기 위해서 함정을 팠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핀스크 왕국에 개입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당했나 보군요.”

    라트의 말에 대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오미너스의 씨앗은 오러 마스터에게는 잘 먹히지 않으니까요”

    “아까운 사람이 갔군.”

    브로켄 후작과 그룬할드 후작은 개인적인 친분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한 번쯤은 맞붙거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겠지.

    “신전 쪽과 이야기가 끝났다. 우리 쪽 요구대로 진격로를 이용해서, 후속 부대와 함께 오겠다는군.”

    “그럼 웨이스텔을 점령해야겠네요.”

    ***

    그리고 다음 날 셀룬과 사라이의 연합군은 손쉽게 웨이스텔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 중 하나는 라트가 어젯밤 탈출 용도로 만든 땅굴로 다시 웨이스텔로 넘어가, 무색의 연금술로 성벽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사기 기술이기는 한데.’

    마법이 발달한 세계답게 성벽에 마법을 방어하는 술식을 새겨놓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방어 마법을 걸어두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켈랑의 이루크 성과 제국의 수도였다.

    ‘그런데 무색의 연금술은 마법이 아니지.’

    마법이 아니기에 방어 술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방어 마법 역시 성벽의 내구도를 높여주는 것일 뿐. 직접 성벽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성벽의 모양을 바꾸는 무색의 연금술에는 큰 의미가 없다.

    “저기. 대사제님.”

    웨이스텔을 점령하고 대사제를 신전까지 안내해준다는 명목으로 그를 따라왔던 라트는 슬며시 용건을 꺼냈다.

    “무슨 일이신가요.”

    “대신전 안에 성수는 얼마나 있습니까?”

    “성수요? 흐음. 200병 정도는 족히 있을 겁니다.”

    ‘200병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전부 사고 싶습니다.”

    “전부요?”

    매우 놀란 듯이 눈을 껌뻑이던 대사제는 이윽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부정의 뜻이 아니었다.

    “흑마법사와 싸우는 데 필요하신 거지요?”

    “예.”

    “그럼 값을 치르실 필요 없습니다. 엔스리드 백작님 덕분에 흑마법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그냥 가져가세요.”

    라트 덕분에 흑마법사의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핀스크가 지금 어떤 형국인지 신전에 알릴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부터 흑마법사와 싸우려고 한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값어치의 일을 해줬는데 성수의 값을 받겠다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그후 인벤토리에 가득 성수를 넣은 라트는 대사제와 작별하고 본대에 귀환했다.

    ***

    그 뒤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 흑마법사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핀스크의 군대 역시 한 곳으로 모이지 않았다.

    전쟁에 돌입하고 고작 한 달 만에 한 왕국의 수도 앞까지 도착했으니, 쾌속진격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상하군요. 그 더러운 것들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니.”

    후방 부대를 통해 이쪽으로 합류한 성기사 중에서도 가장 직책이 높은 롤랑의 말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롤랑.”

    “알고 있습니다, 로오데 추기경님.”

    로오데 추기경의 말에 롤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성벽 위에는 단 한 명의 병사도 보이지 않았다.

    “성벽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흐음.”

    성벽을 전부 돌아본 정찰병의 보고가 들어오자, 루아타 공작은 침음을 삼켰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성벽 위에 병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없다니. 핀스크의 수도 브로뉴의 하늘에는 먹구름까지 끼어 그렇지 않아도 음침한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 있었다.

    “루아타 공작님. 성안 쪽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네 확실히 느껴지는군요.”

    로오데 추기경은 자신의 지팡이를 잡으면서, 브로뉴를 힘껏 노려보았다.

    “흑마법사 때문입니까?”

    그러나 마법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신법도 익히지 못한 브로켄 후작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 흑마법의 기운인 건 확실하지만, 께름칙한 기운입니다.”

    “께름칙한 기운이요?”

    수수께끼와도 같은 말이 돌아오자 브로켄 공작은 잠깐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흑마법사면 흑마법사지 흑마법의 기운이지만, 훨씬 께름칙한 기운이라니.

    “그것도 점점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오, 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전투 준비를!”

    “전군 전투 준비!”

    무엇이 온다는 건가. 흑마법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무엇도 느껴지지 않아, 갑작스러운 명령에 당황했으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망자가 땅속 깊은 곳에서 기어 나온다. 죽은 자의 출현에 그리고 그 괴기스러운 모습에 많은 이들이 얼어붙었다.

    “홀리의 이름으로!”

    로오데 대사제가 신법을 이용해 빛으로 언데드를 정화했음에도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언데드 군단.

    그리고.

    “뭐야, 신전의 개들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냐.”

    그 언데드 군단의 뒤에 거대하고 기괴한 모습을 가진 괴물의 머리 위에 타고 있는 흑마법사 도론이 등장했다.

    “홀리여, 맙소사. 저 무슨 끔찍한 괴물입니까.”

    ‘키메라.’

    키메라, 흑마법으로 여러 괴물을 합성해서 만든 괴물. 한 마리가 아니라 족히 백 마리는 돼 보이는 숫자다.

    “뭐, 상관없나. 전부 죽이면 되니까. 자, 진격하라!”

    도론의 명령에 망자들이 군무를 맞추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라트는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미친놈들.”

    망자들이 입고 있는 옷가지는 꽤 멀쩡한 상태다. 그래서 깨달았다. 저들이 브로뉴에서 살던 백성들을 죽여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그것을 알아차렸으니 어떻게 욕을 내뱉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어렴풋이 예상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소름이 끼쳤다.

    “홀리의 이름 아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전부 정화합시다.”

    “주신 홀리의 거룩한 이름으로!”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건 성기사와 사제들이었다. 뒤를 이어 셀룬과 사라이의 병사들 역시 앞으로 나선다. 망자들이 걸어온다, 그 뒤에 있던 키메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마법사도 백 명 정도는 있어.’

    “마법사 부대는 흑마법사를 견제한다. 루아타 공작님, 광역 디스펠을!”

    홀리의 빛으로는 언데드를 정화할 수 있다면 디스펠 마법으로는 언데드를 조종하고 있는 강령술을 무로 돌릴 수 있다.

    “알았다.”

    “살아남아서 보자고.”

    이런 상황에서 진형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세 오러 마스터들은 검을 뽑아들고 달리기 시작핬고, 라트 역시 인벤토리에서 대검과 담배를 꺼내고 언데드 무리를 향해 달리면서 흑마법사의 모습을 신중히 살폈다.

    ‘왜 체스논이 안 보이지?’

    중간보스라고 할 수 있는 도론이 등장했으나, 오미너스의 피의 수장이자 왕국 전쟁 시나리오의 최종보스라고 할 수 있는 체스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분명 이곳을 최후의 격전지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키메라까지 꺼내 들었을 거다.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한 왕국의 수도에 있던 모든 인간을 죽이고 언데드로 탈바꿈시킬 시간이 필요해서였겠지.

    그런데 어째서 체스논은 나타나지 않은 건가.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만연하라!”

    바위 주먹이 나타나 단 한 번의 주먹질로 족히 50마리가 넘는 스켈레톤을 휩쓸었지만, 순식간에 빈자리를 다른 언데드가 채운다.

    ‘이십만은 되어 보이는데.’

    역겨움이 치솟는다. 브로뉴의 앞이 미어터질 정도로 언데드의 숫자는 끔찍하게 많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걸까.

    그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기뻐했겠지. 오미너스에게 피를 받쳤다고 기뻐했겠지.

    ‘지금 중요한 건.’

    죽은 자와 산 자의 무기가 부딪치고, 망자는 원망을 쏟아내며 인간은 공포를 토해낸다.

    참혹함만이 울부짖는 이곳에서 그 원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놈들은 유유자적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저놈들이다. 저것들을 죽여, 이 역겨움을 게워내는 거다.

    ============================ 작품 후기 ============================

    이번 주 중으로 1부 완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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