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9화 (21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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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그 뒤로 미르차르드 후작을 도와 신병 양성에 힘쓰고, 짬짬이 케이네의 일을 도와주면서 다시 2주가 흘렀고. 트렌세르노와의 전쟁이 끝난 지 6주 후, 그리고 제국 반란 시나리오가 2달하고도 반 정도 남았을 때쯤.

“여기가 그 유명한 파르스의 연금술사 길드인가.”

“그렇습니다.”

바로 어제 5주에 걸친 강행군으로 사라이의 군단이 파르스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인 오늘 아침 글란츠 백작이 아무런 예고 없이 라트를 찾아왔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출정식이 이뤄지고 셀룬과 사라이는 핀스크와 전쟁을 벌일 예정이다.

그때부터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라트와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글란츠 백작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라트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뻔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알고 있음에도 물어봐 주는 것이 예의였기에 라트는 할 수 없이 운을 띄웠다.

“자네에게 감사하고 싶어서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닙니다.”

“아니. 감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기느투스 후작님이 죽은 후, 딸 아이는 완전히 망가졌을 테니까.”

망가져? 왜?

“자네라는 지지대가 없었더라면 말이야.”

라트가 두 눈동자에 의문이 새겨지자, 글란츠 백작은 그 답을 말해주었다.

“아.”

그제야 케이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게서 느낀 괴리감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게임에서 제스맹 기느투스의 자리를 물려받은 케이네 폰 글란츠는 차갑디차가웠었다.

연금술사였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셀룬의 귀족으로 플레이할 시 정말 어쩌다가 회의 때문에 대화하면 특유의 냉정한 말투가 돋보였었다.

“못난 아비보다 딸 아이를 가족처럼 여겨줘서 고맙네.”

라트의 두 손을 붙잡은 글란츠 백작은 백작이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서 감사를 표한다.

“그저 이 말을 하고 싶었네. 그럼 출정식에서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글란츠 백작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날 오후 성대한 출정식을 마친 셀룬과 사라이의 연합 군단은 핀스크를 향해 진격했다.

***

생각해보면 굳이 사라이의 군단이 셀룬의 영토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양동작전으로 핀스크를 양 끝에서 괴롭혀도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흑마법사 때문이었다. 그 사악한 놈들이 전력이 두 개로 나뉜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제일 가까운 대신전이 있는 도시는.’

머리를 굴려본다. 기억을 끄집어 결과를 도출해냈다.

‘웨이스텔.’

핀스크의 국경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임과 동시에 전방에 있는 성들에 보급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1차 목표는 국경의 성 중 하나를 뚫어야겠고 2차 목표는 웨이스텔로 잡는 게 현명.’

조그마한 성에 있는 조그마한 신전까지는 건드리지 않았겠지만, 대신전 정도라면 분명 흑마법사가 손을 댔을 것이다.

‘그놈들은 신전이 나서면 더 좋아하겠지.’

흑마법사 집단, 통칭 오미너스의 피는 이 대륙이 피로 적셔지는 걸 기뻐한다. 당연히 더 많은 피를 흘릴 수 있게 신전까지 나선다면,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좋아할 미친놈들이었다.

“하아.”

그놈들을 생각하자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나, 엔스리드 백작.”

바로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루아타 공작의 물음에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젓더니, 인벤토리에서 떨어진 별이 가져온 서류를 꺼냈다.

‘회의에 써먹기 전에 전부 읽어봐야지.’

상대의 전력은 전부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변수는 있다. 예를 들어 중요 병력의 배치라던가, 키메라가 나오는 시기. 그리고 흑마법사가 과연 언제 등장할 지다.

‘이 서류에 그런 변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도 있었으니까.’

떨어진 별이 상당히 고마운 일을 해줬다고 생각하면서 서류를 읽던 중 라트의 눈동자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이게 뭐지?’

주인 없는 산맥의 묘인족이 대규모로 정착지를 옮기고 있다는 정보가 적혀있는 종이 때문이었다. 이 정보는 떨어진 별이 숲의 현자를 찾아보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흐음.”

묘인족이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는 흔하다. 겨울이 막 끝나고, 봄이 찾아왔을 때 식량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봄이 아닌 가을이었고 조금 있으면 초겨울이 찾아올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거주지를 옮기는 건 상당히 무리한 일이었다.

‘어째서?’

어쩌면 전혀 쓸모없는 정보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 일이 마음에 걸렸다.

“엔스리드 백작.”

“말씀하십시오.”

“저 성이 보이나.”

루아타 공작이 가리키는 곳에는 조그마한 성채 하나가 있었다. 성채의 위치가 너무나도 독특했다. 거대한 협곡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끝에 마치 통로처럼 성이 서 있다.

게다가 성벽은 어떤가. 마치 현대의 경기장을 보는 것처럼 돔(Dome)의 형태로 만들어져 화살이 내부에 들어올 수 없게 돼 있었다.

‘바이스문.’

외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형태의 성벽이었으나, 동시에 내부에서 화살을 쏘기도 불편한 독특한 형태의 성벽을 지닌 저 성의 이름은 바이스문.

핀스크의 국경에 있는 성 중 하나였다.

“아주 잘 보입니다.”

어제 출정식을 끝내고 군단이 출정했는데 어떻게 벌써 핀스크의 성이 보이는가. 그 이유는 마법사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기습을 위해서 셀룬과 사라이의 수많은 마법사가 마력이 오버되는 것을 각오 포탈을 열었다.

그리고 포탈을 이용해 연합 군단은 순식간에 옛 켈랑, 현 셀룬의 영토의 끝까지 이동했다.

“원래 저 협곡은 핀스크와 켈랑의 무역로 중 하나였다네.”

“그렇습니까.”

모를 리가 있나. 상인으로 플레이해본 적도 수없이 많았기에 도트로 그려진 저 협곡을 수없이 많이 지나다녀봤다.

“원래대로라면 저 협곡을 지나야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죠.”

협곡은 거대하다지만, 그 길목은 좁다. 제아무리 기습이라고 하나 저런 길목으로 이동했다가는 피해를 받기에 십상이다. 좁은 길목에서는 화계를 비롯하여 화살 그리고 마법의 힘이 극대화되니까.

“그럼 나서주게나.”

“알겠습니다.”

슬쩍 협곡을 살펴본 라트는 웃어버렸다. 본래라면 협곡의 절벽은 가파르기 그지없기에 일반 병사들이 올라가는 건 절대로 무리였다.

‘저 정도 높이라면.’

게다가 절벽의 높이 역시 어마어마했다. 바이스문의 성벽의 약 8배 정도는 될까.

애당초 국경을 지키는 성 중 하나인 바이스문이 저렇게 조그마한 성채인 이유는 협곡이라는 자연이 내려준 성벽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였지만.

‘가능하겠어.’

안타깝게도 무색의 연금술은 자연을 연성하는 연금술이었다. 자연이 내려준 성벽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협곡의 길로 들어가지 말고 절벽 쪽으로 가시지요.”

“알았다.”

잠시 후 연합 군단이 절벽의 앞에 서자, 라트는 말에서 내려 가파른 바위 절벽에 손을 대고.

“만연하라.”

무색의 연금술을 펼쳤다. 현재 라트의 마나는 트렌세르노와 싸울 때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다.

신의 명상법 기능이 10레벨이 되는 순간 발현하는 힘은 바로.

마나 회복 속도와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높여주는 지혜 스탯의 50%를 마나량 및 마법의 효율을 결정하는 마력 스탯에 더하는 거였다.

“후우.”

덕분에 마나량이 상당히 늘어나서 아슬아슬하게 마나 포션을 먹지 않고도 전부 연성할 수 있었다. 무색의 연금술이 끝난 순간, 연합 군단의 앞에 펼쳐진 건 오르막길이었다.

“괴, 굉장하다!”

“저……것도 연금술인가?”

“수고했다.”

가파른 절벽은 오를 엄두도 내지 못하겠으나, 오르막길은 아니었다. 평지보다는 힘이 들어도 충분히 오를 수 있어. 그리고 군단이 이 협곡으로 올라간다면.

바이스문의 위에서 공격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된다.

“전군 엔스리드 백작이 만든 길을 따라 협곡으로 오른다!”

루아타 공작의 명령에 따라 연합 군단이 오르막길로 진격한다.

후방의 지원 부대, 그리고 군량을 운송하는 부대를 위해서 라트는 제일 먼저 절벽 위로 올라와 무색의 연금술로 울퉁불퉁한 절벽에 평평한 길을 만들었다.

“내 여식도 자네가 사용하는 연금술을 쓸 수 있나?”

어느 사이에 라트의 옆으로 다가온 글란츠 백작이 이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그렇군.”

케이네가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수 없다면 실망할 줄 알았는데 그의 눈에는 전혀 실망이 보이지 않았다. 실망보다는 놀라움과 호기심, 그리고 존경까지도 엿보인다.

‘역시 사라이 사람이라는 거지.’

사라이는 강자를 숭배하고, 존경한다. 순수하게 무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건 글란츠 백작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이 정도라면 안심하고 내 여식을 맡길 수 있겠어.”

“네, 어……. 네?”

“여식이 자네와 그런 관계라는 걸 말해줬다.”

‘그런 관계라니. 어감이 이상하잖아.’

차라리 그냥 직설적으로 연인 관계라고 말해줬으면 좋았겠으나, 글란츠 백작의 흡족한 미소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흡족한 미소를 지운 글란츠 백작은 분위기를 바꿔 절벽 아래에 있는 성을 내려다본다.

“우리가 기습했다고 하지만, 너무 조용하군.”

조용하다기보다는 평온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조금 있으면 적습이 일어날 걸 알고 있을 텐데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는 건가.”

“일부로 그러는 겁니다.”

“어째서?”

적이 쳐들어옴을 알고 있음에도 방비조차 하지 않다니. 일방적인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흑마법사에게 상식이 통하길 바라면 안 된다.

“흑마법사들의 목적은 이 대륙을 손아귀에 넣는다거나 하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닙니다.”

“그거야, 그 쓰레기들에게 그건 너무 과분한 목적이니, 그렇겠지. 그럼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땅에 피를 적시는 게 그들의 목적입니다.”

“땅에, 피를? 그게 무슨 뜻인가.”

글란츠 백작은 라트의 말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한 듯했다.

“무슨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문자 그대로 그 뜻입니다.”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그저 이 땅이 피로 적셔지는 것을 바랐다.

“악신 중 하나이자 흑마법을 지배하는 오미너스는 피를 사랑합니다.”

“그거랑 땅에 피를 적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

“혹시나 들어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대륙 아래에는 오미너스가 잠들어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노르스 대륙과 카르세이나 대륙의 아래에 악신이 한 명씩 잠들어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

다섯 명의 악신 중 두 명이 봉인되어 있기에 이 세계가 이렇게 평화롭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숨은 사정까지 상세히 알고 있는 라트이기에 진실임을 알고 있는 거고.

“자, 잠깐만! 그럼 고작 그 전설 때문에?”

“네.”

이곳 사람들은 단순한 전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건 흑마법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피를 오미너스에게 받치기 위해서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게 내버려둔 거겠죠.”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으나 사실이었다. 그저 대륙에 피바람을 불러오는 것이 흑마법사의 목적이다.

원래대로라면 정찰병들이 주인 없는 산맥에서 절대로 발견할 수 없었던 광산을 보여준 것 역시 흑마법사의 소행이었다.

“바이스문이 워낙 변방에 있는 성이라서 영주는 세뇌를 당하지 않겠지만, 위에서 아무런 지시도 내려오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거겠죠. 어쩌면 여기는 격전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쯧.”

“엔스리드 백작, 글란츠 백작.”

루아타 공작이 슬며시 절벽 끝으로 다가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일었다.

“여기서 화살과 마법으로 요격하면 좋겠지만, 안 되겠군.”

돔 형태라고는 하지만, 중앙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으니 지금 이곳에서는 성 안의 모습이 속속들이 보인다.

성 안은 평화롭기 그지없어, 일생 생활을 보내는 백성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무고한 백성들이 너무 많아. 저들까지 죽일 수는 없다.”

당연히 그래야지. 무고한 백성도 백성이지만, 흑마법사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소수 정예로 빠르게 성주의 목숨만 받아가도록 하죠.”

소수 정예로 지휘관의 목숨을 끊는다면 남은 이들은 멘탈이 꺾여 알아서 항복할 거다.

“여기에 있으면 병사들은 안전할 테니까 오러 마스터 3명과 대마법사 한 명. 그리고 저. 다섯 명만 성으로 들어가면 될 거 같습니다.”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군. 두 후작을 불러오겠네.”

“아니, 좋은 방법이나 차선책이다.”

라트의 의견에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르차르드 후작과 브로켄 후작을 불러오려고 했지만, 글란츠 백작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 글란츠 백작?”

“엔스리드 백작. 자네의 연금술로 성벽만 부술 수 있나.”

“가능합니다.”

마법이라면 인명 피해 없이 성벽만 부수는 절묘한 컨트롤은 힘들었겠지만, 무색의 연금술이라면 쉽게 가능했다.

“영주가 멍청하지 않다면, 이 정도 병력이 협곡으로 올라와 있는 이상 항복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다면 성벽을 부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 다음 항복을 권고한다.”

굳이 소수 정예로 잠입할 이유도 없다. 영주의 목만 따면 그만이라지만, 그를 죽이기 위해서 다른 병사들을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자네가 말한 방법을 쓴다. 적의 전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자네의 방법을 먼저 사용하는 게 옳지만, 그게 아니면 적에게 우리의 존재가 들킨다고 하더라도 성주의 목 정도는 취할 수 있으니까.”

“과연.”

확실히 글란츠 백작의 말대로 되기만 한다면, 라트가 말한 작전은 차선책이었다.

“루아타 공작님, 설득은 공작님께 맡기겠습니다.”

“알았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바위 주먹을 만들어 성벽 일부를 쥐어뜯자, 성 안에 있던 백성들이 비명을 질렀다.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이 바위 주먹이 생겨난 협곡 위를 올려다보았고.

“바이스문의 성주여!”

루아타 공작이 마법을 이용해 증폭시킨 목소리로 항복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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