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7화 (21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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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오러 마스터여도 서류 작업은 굉장히 고되니까 말이야. 그때 대접하지 못한 차를 대접해주고 싶은데, 어떤가.”

“좋습니다.”

차를 얻어 마실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지만, 일단 수긍하고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결과가 궁금해서 온 건가? 역시 젊다 보니 성미가 급하군, 그래.”

보온 마법이 걸려있는 주전자 안에 있는 차를 찻잔에 따르면서 글란츠 백작이 낮게 웃었다.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닙니다.”

“음?”

그가 이 게임을 해온 시간은 길다. 교역도 해봤고, 외교도 해봤으며, 협상도 해봤고, 귀족들을 설득하는 일도 수없이 많이 해봤다. 그런 라트이기에 결과가 명확히 보였다.

무려 그리하드의 철광산의 소유권이다. 주인 없는 산맥에 희귀한 자원이 얼마나 많이 매장되어있는지 모르는 슈텐바흐트 공작은 미끼를 덥석 물 수밖에 없었겠지.

“그럼 무슨 일로 이런 야심한 시각에 찾아왔나.”

찻잔 두 개를 손에 들고 자리에 앉은 글란츠 백작이 그중 하나를 라트에게 넘겼다.

본디 차를 받았다면 일단 마시는 것이 예의겠지만, 라트는 그리하지 않고 한 가지 청을 입에 담았다.

“중요한 이야기이니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3시간 정도 자리를 비워달라고 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문제가 생길 요청은 아니었다. 문앞에 경비병은 서류를 운송하고, 혹여나 손님이 찾아왔을 때 알려주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했을 뿐이니까.

어느 누가 오러 마스터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나서겠는가.

잠시 후 글란츠 백작의 명령에 경비병이 물러났다. 문 뒤에서 아직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한 라트는 글란츠 백작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음?”

외마디 의문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얼어붙는다, 분명 빛을 밝히고 있는 랜턴은 번쩍이고 있었지만, 라트와 글란츠 백작의 시간은 틀림없이 얼었다.

“정말 제가 찾아온 이유를 모르십니까?”

찻잔에 담긴 차가 거의 식을 무렵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라트는 찻잔을 집어 차가워진 차로 입술을 적시고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글란츠 백작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모르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회피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전자다.”

“거짓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한 글란츠 백작의 작태에 라트의 표정이 싸늘해졌고,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거짓말이라……. 그런 확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뭐지?”

“처음 만나셨을 때 백작님은 쓸쓸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저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조용하나, 힘있는 목소리에 라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결론을 말하라 이건가?

좋아, 그렇게 바라신다면 해줄 수밖에.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 확인한 라트는 드디어 본론을 입에 담았다.

“정말로 사저와 만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받아 마땅한 모성애를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존재를 부정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자신과 똑같지만, 그 외모는 부인과 닮았기에 부정했다. 이제는 죽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서 부정했다.

그러나.

“만날 이유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글란츠 백작은 케이네를 아꼈다. 부인과 닮았기에 아꼈다. 그래서 부정했다. 아끼지 않았다. 실로 모순됨에도 그리해야 했다.

“분명 처음 만나셨을 때는 이 전쟁이 끝나면, 만나 보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게 아니지.’

그건 핑계에 불과하잖아. 두려운 거잖아. 여식의 살기 한 줌 없는 오롯한 한줄기 분노와 원망이 쏟아질 것 같아서 두려워서,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는 거다.

그래서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했지 않았나.

“겁쟁이.”

라트의 입이 저도 모르게 말을 토했으나, 한 줌의 후회도 없었다. 실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눈앞의 남자는 딸의 악의가 두려워 회피하고 있는 겁쟁이였다. 그 악의를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겁쟁이라.”

처음으로 듣는 단어에 글란츠 백작은 턱을 매만졌다.

오러 마스터에게 겁쟁이라니, 평생 이 이상의 모욕을 듣는 건 어려울 거다. 그러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부정할 수가 없군.”

라트의 말은 모욕이 아닌 단순한 진실이었으니까. 진실을 말했는데 어찌 모욕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눈을 마주하지 않고 살아가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모습이야 가끔이나마 볼 수 있겠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공무 때문에 서로 만날 수도 있다.

“오늘이 지나면 사저는 다시 파르스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 케이네가 돌아간다면 글란츠 백작은 평생 케이네와 시선을 마주할 수 없다. 오늘이 유일한 기회.

오해가 얽히고설켜 거대한 응어리가 되었으나 오늘은 그 뭉친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좋다. 내가 찾아가서 여식과 만난다고 치고.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전부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전부? 지금 전부라고 했나?”

전부라는 말에 글란츠 백작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고 목소리가 점점 떨려온다. 감정이 고조되어가는 증거였다.

“예!”

“그럼!”

확신에 찬 라트의 대답에 고조된 감정이 터진다. 거대한 고함과 함께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고, 글란츠 백작은 분노로 가득 물든 악귀와도 같은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나 분노가 라트에게로 향하고 있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저 분노는 자기 자신에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 찾아가서! 루드렐이 너를 범하려 했던 이유가 네가 엄마를 앗아갔다고 생각해서, 복수하려고 그랬다고 말하면 되는가!”

케이네가 태어난 시기는 루드렐이 고작 4살일 때였다.

루드렐은 출산 과정을 구멍이 뚫린 벽을 통해 직접 보았고, 덕분에 그 어린 나이에 여동생의 탄생과 어머니의 죽음을 동시에 목도했다.

“내가 너를 없는 존재로 취급한 이유는, 혹여라도 내가 너를 계속 챙겼다가는 루드렐이 엄마를 죽인 너를 챙기면 제 손으로 제 목숨을 끊겠다고 말해서!”

그 날 이후로 루드렐은 변했다. 어머니를 앗아간 동생을 망가트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어린아이의 원망은 가볍다. 그러나 날카롭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어른보다도 잔인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원망은 사라지지 않는 한, 점점 무겁게 자라난다.

“그래서! 너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네가 네 오라버니에게 범해질 뻔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방관했고, 그래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케이네를 방관하는 척 했으나, 글란츠 백작은 그 나름대로 케이네를 보호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가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시집을 빨리 보내려고 발악했다는 걸 말하라 이 말인가! 어!?”

시집을 가서 거주지에서 멀어진다면 루드렐이 케이네를 건드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케이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라트가 어느 사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글란츠 백작에게 차갑게 말한다.

“왜 그걸. 말씀하시면 왜 안 됩니까.”

그 독을 게워내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내 여식이라고 어미가 죽으면서까지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다시 한 번 케이네에게 상처를 줘야 했다.

더욱이 글란츠 백작은 케이네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 여식은, 케이네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녀가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할 뿐, 그녀의 어머니는 케이네가 2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어린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진실을 말하라고? 너는 어머니의 생명을 빼앗고 태어났으며, 고작 그런 이유로 오라비라는 놈이 동생을 범하려고 했고…….”

글란츠 백작은 한참 동안 다음에 나올 말을 삼키고, 또 삼키다가.

“……나조차, 나조차.”

토하듯이 뱉어낸다.

“조금의 원망은 있었다는 걸. 그래서 루드렐을 말릴 수 있었으면서도 방관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하느냔 말이다. 그 어린아이를 원망한 내 치태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었으나, 때로는 이성이 그것을 가로막을 때가 있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그러나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여 발전하는 동물인데.

“나는 절대로 여식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을 걸세. 엔스리드 백작. 그렇게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라니. 절대로 그럴 수 없네.”

자신이 말한 거짓을, 자신이 감춘 비밀을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건가.

“루드렐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백작위를 물려주는 대신 절대로 케이네를 건드리지 말라고 바이올런의 이름 아래 맹세했네.”

‘과연.’

“지금이라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당장 심장을 후벼 파내서 여식에게 보여주고 싶다네.”

케이네가 떠난 이후로 글란츠 백작은 후회에 점철된 세월을 보내왔다. 그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외로움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저 말은 거짓말이 아니겠지. 할 수만 있다면 글란츠 백작은 지금 당장에라도 케이네의 앞에서 자신의 심장을 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전쟁을 끝내야 하고, 이 나라도 안정시켜야 한다. 특히나 국왕 전하의 자리를 노리는 불온한 자들을 내버려둘 수 없다.”

“내 할 일을 전부 끝내면. 그때 만날 생각이다. 이 심장을 후벼 파서 보여주고 사죄하겠다. 너무 늦은 사죄이지만, 그렇게 할 생각이다.”

‘잠깐만. 이게 아닌데?’

이건 글란츠 백작의 신뢰도 혹은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이벤트였고, 게임상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글란츠 백작의 신뢰도 때문에 라트 역시 이 이벤트를 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라트가 알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백작 직위를 포기하는 것 정도였는데.

‘혹시 케이네 누나가 후작이 되면서 꼬인 거 아니야?’

원래 왕국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간 제스맹 기느투스는 죽지 않으며, 케이네는 후작 작위를 손에 얻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케이네는 후작 작위를 손에 넣었다. 어린 소녀가 도망치듯 타국으로 흘러가 명예 귀족이기는 하나 후작에 올라섰다.

‘스승님의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면 그나마 애정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죄책감이 조금 사그라들지만, 그 스승님이 돌아가셨으니 죄책감이 커진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무슨 알고 있는 대로 진행되는 꼴을 보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지금은 안 된…….”

‘뭐 예상한 범위 내지만.’

문이 살며시 열리고 아리따운 여성이 기나긴 은빛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케, 케이네.”

이 이벤트는 글란츠 백작이나 케이네가 왕국 전쟁에서 죽지 않는다면 케이네가 후작이 되기 전에 무조건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지금의 케이네는 후작이었기에 약간의 변수가 있으리라 예상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케이네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글란츠 백작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한 거다.

‘도박이기는 했지만.’

케이네가 몰래 따라올지, 아니면 방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사실 도박이었다.

그러나 확률이 높았다. 이 시간까지 글란츠 백작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케이네가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 움직이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단지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지.’

그 계기를 아주 살짝, 찔러 넣어줬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다. 마침내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딸과 모든 비밀을 들켜버린 아버지.

나락 저 너머까지 추락할 것 같은 존재의 슬픔과 어둠 속에서 마침내 빛을 본 당혹이 마침내 마주한다.

‘이걸로 끝.’

진실을 알아버린 케이네는 글란츠 백작이 죽으려고 하는 걸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누나는 착하니까.’

친한 사람들을 놀릴 때를 제외하고는 심성이 너무 고와서, 천사처럼 느껴지는 케이네다.

‘걱정이 되는 건 글란츠 백작 쪽이지만, 그건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

이제는 친숙하지만, 아직도 낯선 이세계에서 절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라트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것이다.

두 사람이 있노라고.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케이네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고,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비밀의 상자는 열려 오해의 매듭이 완전히 풀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래도록 이뤄지지 않았던 부녀상봉이다.

그런 자리에 자신이 끼어있을 자리는 없다.

‘나가자.’

케이네가 글란츠 백작에게 점점 다가가자, 라트는 아무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왔다.

“기다릴까?”

경비병을 무른 탓에 복도에는 누구도 없었다.

혹시나 어떤 이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라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부녀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늦은 시간까지 문앞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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