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6화 (2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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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오늘 귀족들이 모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외삼촌이 셀룬과 동맹하는 걸 반대하셨으니 귀족파가 나선 거지. 쯧쯧. 얻은 것에 감사한 줄 알아야지. 큰 욕심을 부리다가 모든 걸 잃으시는지 모르신단 말이지.”

    혀를 차면서 불만이 많은 표정을 짓던 살라딘 국왕은 이내, 자조하고 말았다.

    “하긴 그러니 나 같은 망나니를 왕의 자리에 올려놓으셨겠지. 형님이 왕이 되셨다면, 찍소리도 못하셨을 텐데. 이럴 때는 죽은 형님이 그리워.”

    “무함마드 태자 저하께서는 전하와 같이 훌륭한 제왕의 자질이 있으셨습니다.”

    무함마드 태자, 전쟁이 일어나기 대략 6개월 전에 전염병에 걸려 죽는 태자였다.

    태자가 죽었고, 국왕은 노환으로 앓고 있으니 왕자의 난이 벌어질 뻔했지만,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살라딘을 국왕으로 만든 게 바로 슈텐바흐트 공작이었다.

    “형님이 나와 같았다고? 그럴 리가 있나. 나 같은 거보다 백 배는 훌륭하셨지.”

    “그건 관점의 문제이옵니다, 전하.”

    ‘옳은 말이지.’

    살라딘은 아직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개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제왕에 걸맞은 품격과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적어도 루만보다는 훨씬 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다.

    ‘그것보다.’

    “말씀 중에 죄송하오나, 슈텐바흐트 공작님 때문에 동맹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국왕이 이번 동맹에 굉장히 긍정적인데 반해, 그의 외척 세력이자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슈텐바흐트 공작은 부정적이라니. 이래서야 동맹이 성립되는 건 미지수였다.

    “……그렇다면 간단하군요.”

    반대로 말하자면 슈텐바흐트 공작을 설득하면 동맹은 확실시된다고 봐야지. 그리고 그건 굉장히 간단한 일이다.

    “음? 무슨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말해줘. 꼭 들어보고 싶어.”

    “그리하드의 철광산 소유권을 그에게 주시고 타협을 하자고 제안하면 됩니다.”

    “무, 뭐라고!?”

    라트의 말에 살라딘이 펄쩍 뛰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본 왕국의 유일한 철광산의 소유권을 일개 공작에게 주라니! 왕국을 좌지우지할 힘을 주라는 말과 다를 게 뭔가!”

    그리하드의 광산은 사라이의 유일한 철광산이기에 대대로 사라이의 왕가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전까지는 유일한 철광산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전쟁으로 사라이는 린느탐보프의 비옥한 토지를 손에 넣었다. 분명 그중에는 개발된 광산도 있을 것이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광산도 있을 터.

    “슈텐바흐트 공작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타협을 받아들일 겁니다.”

    희소했기에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던 철광산이 이제는 희소하지 않게 되었다.

    “그,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철광산의 가치는 어마어마해.”

    살라딘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그리하드의 철광산이 보통 철광산인가. 무려 300년간 채굴했음에도 아직도 철 적재량이 남아돌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광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왕국의 부를 대부분 독식하고 있는 외삼촌이 철광산까지 손에 넣는다면.”

    자신이 설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눈동자 깊은 내면에 불안함이 깔렸다.

    “전쟁이 끝나고 주인 없는 산맥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다면 철광산의 가치가 떨어지리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선왕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던가요?”

    “아.”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살라딘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뱉어졌다.

    “순수한 철을 비롯해 각종 희귀한 광물이 있다는 광산들 말이지? 분명 듣기는 했지.”

    ‘들었는데 어째서 철광산 하나를 주는 걸 그렇게 불안해한 거지?’

    “그런데 허무맹랑한 소리라 믿지 않았다네. 너무 오래 이어진 평화를 깨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증거를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할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진실. 주인 없는 산맥의 자원은 수없이 쌓여있다.

    “……사실이란 말인가.”

    라트가 아무런 부정하지 않은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살라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실입니다, 전하. 제눈으로 순수한 철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허허, 그래, 그랬단 말이지.”

    보다 못한 글란츠 백작까지 나서자, 살라딘이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 새겨졌던 불안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희망이 살며시 부상했다.

    “글란츠 백작. 우리 쪽에서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누구지?”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에선 저와 전하가 전부입니다.”

    이런 정보를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족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너나나나 주인 없는 산맥 일부를 달라고 항의할 테니까.

    그래서 셀룬에서도 이 정보는 라트와 오케문 국왕과 루아타 공작, 그리고 죽은 제스맹 기느투스만이 알고 있었다.

    ‘이걸로 한 명 추가됐지만, 아니 추가 안 됐을 수도 있겠는데.’

    케이네를 살짝 바라본 라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케이네는 노골적으로 글란츠 백작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 시선을 알아차렸을 글란츠 백작 역시 노골적으로 케이네의 시선을 피하는 중이다.

    “그럼 동맹 전에 엔스리드 백작에게 들어야 할 말이 하나 생겼군.”

    “들어야 할 말이 무엇입니까?”

    “핀스크와의 전쟁이 끝난 후 우리에게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일부 넘길지, 오케만 국왕의 대답을 듣고 싶네.”

    “그건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살라딘 전하.”

    오늘 아침 사라이로 오기 전에 오케만 국왕과 루아타 공작 그리고 라트는 이미 이 이야기를 끝내두었다.

    “오케만 국왕 전하께서는 사라이와의 협조로 핀스크 왕국과의 전쟁이 끝난다면 핀스크 왕국의 영토 1/2과 더불어 주인 없는 산맥의 1/4에 달하는 토지의 소유권을 넘기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이것이 셀룬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전쟁이 길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양보를 하고 공생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혹여나 넘긴 토지에서 광산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셀룬에서 주인 없는 산맥에서 발견한 광산의 1/4를 넘긴다고 하셨습니다. 이 안건은 동맹이 성사되면 계약서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될지 몰라 이런 조항까지 추가해놓았다.

    “반대의 경우에는 셀룬이 사라이가 발견한 광산의 1/4를 가져가는 조항도 있긴 합니다.”

    “그 정도면 좋아. 아주 좋네. 아주 훌륭해!”

    “잠깐! 1/4라고? 적어도 1/3은 되어야!”

    케이네의 시선을 무시하느라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글란츠 백작이 반박에 나서려고 했으나, 살라딘이 손을 들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1/3은 과유불급이다, 글란츠 백작. 지금 사라이는 인력이 부족해. 당장 점령한 나라의 백성을 흡수하는데 치중해야 한다.”

    자신을 망나니라고 지칭했으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현재 사라이의 문제점을 글란츠 백작보다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엔스리드 백작이 말한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외삼촌의 힘을 짓누를 수 있어.”

    “알겠습니다.”

    살라딘의 말에 글란츠 백작은 조금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수긍했다.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어 고맙네, 엔스리드 백작. 눈이 뜨인 기분이야. 일단 오기로 한 귀족들과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터이니 그때까지는 쉬어도 좋아. 사람을 불러주지.”

    당연하지만, 지금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타국 귀족들의 회의에 라트와 케이네가 낄 자리는 없으니까.

    “여봐라! 아무나 들어와도 좋다!”

    왕좌의 팔걸이 위에 올려놨던 왕관을 다시금 머리 위에 쓰자, 그는 살라딘에서 국왕으로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살라딘 국왕의 부름에 곧바로 시종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엔스리드 백작과 글란츠 후작에게 쉴 수 있는 방을 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절대로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엔스리드 백작. 글란츠 후작님도.”

    “예.”

    “……물러나 보겠습니다.”

    끝까지 글란츠 백작에게 시선을 떼지 않던 케이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 뒤로는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겠다는 듯 차갑게 뒤로 돌아섰다.

    “하아.”

    그리고 케이네가 뒤를 돌자마자, 그 뒷모습을 쳐다보는 글란츠 백작을 본 라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

    밤, 따사로운 빛이 사라지고 아련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시각. 라트는 방의 불도 켜지 않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생각에 잠겼다.

    ‘대답은 내일 해줄 생각인가.’

    이 시간까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건 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간에 오늘 당장은 라트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어째 불안한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본다. 그 벽 너머에는 케이네가 있다. 그리고 케이네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곳으로 올 때까지 그랬고, 지금 역시도 그랬다. 심지어 식사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분명 라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을 케이네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며 라트를 쫓아냈다.

    “하아.”

    근심이 가득 담긴 연기를 입으로 내어보지만, 그런데도 마음속의 걱정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지.”

    이게 무언의 시위임은 알고 있다. 케이네가 식사를 하지 않았음은 분명 글란츠 백작의 귀에 들어갔을 거다.

    ‘찾아오라는 거겠지.’

    그러나 과연 글란츠 백작이 케이네를 찾아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답은 옛적부터 알고 있었다. 케이네의 과거는 잘 모르지만, 그 과거에 글란츠 백작이 포함되어 있다면 전부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글란츠 백작은 월드 세리아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지닌 NPC 중 하나였으니까.

    “간다, 가.”

    사실 별로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나선다고 해도 글란츠 백작이나 케이네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혈육의 정은 깊다. 그러나 그 정이 원망과 미움으로 변질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악의로 탈바꿈된다. 그게 지금 케이네가 지닌 마음이었다.

    ‘그리고 글란츠 백작님은.’

    일부러 그 악의를 수용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반목의 골이 깊어지는 선택지임을 모르고, 아니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종종 얼굴을 볼 기회가 있겠지? 그럼 그때마다 이 모양 이 꼴일 거고.’

    그런 생각이 드니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보다 몸이 한발 먼저 앞서 문을 박차고 연다.

    그리고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말한다.

    “글란츠 백작님을 찾아뵙겠다! 안내해라!”

    공작저에 있는 시종장의 교육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게 아니면 귀족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저도 모르게 귀족이라는 신분이 어색하지 않게 됐는지, 라트는 자연스럽게 하대했다.

    “먼저 말씀을 전하고 방문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

    “아니, 지금 당장 간다.”

    라트가 시종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아까부터 옆방에 일부러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고 있지만, 시종은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그저 확고한 의지를 담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시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따라오시라고 말하며 앞장선다.

    잠시 후 글란츠 백작이 머무르는 방에 도착한 시종이 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병사에게 귓속말로 용건을 전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래.”

    병사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를 수십 초나 지났을까. 다시금 방문을 열고 들어온 병사는 열린 방문을 닫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글란츠 백작님께서 들어와도 좋다고 하십니다.”

    병사가 열어준 문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오자, 안경을 쓴 채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글란츠 백작이 손에 쥐고 있던 깃털 펜을 놓았다.

    “어서 오게나. 후우, 마침 잘 왔네. 그렇지 않아도 쉬고 싶었어.”

    그리고는 라트를 맞이해주면서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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