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4화 (21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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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내리시지요.”

    뒤편의 다른 마차를 타고 온 그린 자작이 직접 문을 열어주자 라트는 조금 무안함을 느꼈다.

    “대접이 너무 후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은 시종이나 하는 일이지 일국의 귀족이 할 일은 아니었다.

    “위대한 살라딘 케슈 메르아트 사라이 국왕 전하께서 최선을 다해 대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허투름이 있으면 안 되지요.”

    ‘아니 그냥 시종을 시키면 되잖아.’

    자작을 시종으로 부리는 느낌이라서 뒷맛이 썼다.

    “따라오시지요. 국왕 전하와 기다리십니다.”

    그린 자작을 따라 왕성으로 들어가면서 라트는 생각에 잠겼다.

    ‘너무 환대해주는데.’

    셀룬의 사자가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 수많은 시종이 복도의 양옆으로 나열해서 고개를 숙인다.

    ‘이런 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해.’

    원하는 비옥한 토지를 얻었으니, 사라이의 처지 상 더 전쟁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

    ‘물론 욕심은 더 있겠지.’

    셀룬과 동맹을 하고 전쟁에 나선다면 명분상 핀스크의 영토 중 반을 요구할 수 있다.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 역시 일정 부분은 얻을 수 있겠지.

    ‘사라이는 그 정도면 만족한다.’

    애당초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사라이는 타국과 비교하면 인구수가 적다. 그러니 셀룬보다 합병한 영토의 인구의 민심을 잡아야 하는 게 급하다.

    ‘당장 주인 없는 산맥을 조사할 인원도 부족할 거고.’

    인구가 적으니 주인 없는 산맥을 조사하고 개발한 인력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여러모로 전쟁을 일찍 끝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건 사라이였다.

    사실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가장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라트였지만.

    “엔스리드 백작님.”

    “말씀하시지요, 글란츠 후작님.”

    라트는 글란츠 후작이라는 단어에 그린 자작의 몸이 잠시 움찔 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지만, 굳이 뭐라고 할 이유가 없었기에 케이네에게 집중했다.

    “사막에서는 힘을 추구함을 알고 계시는지요?”

    “……뭐.”

    케이네의 물음에 라트는 잠시 말을 끌었다.

    사라이의 환경은 척박했기에 다른 나라보다 무를 추구했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라이에서 약자는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강자는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게 된다.

    글란츠 백작의 발언권이 상당히 강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전쟁으로 영웅이 되었으니 지금은 사라이의 공작인 슈텐바흐트라고 해도 글란츠 백작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겠지.

    “그럼 엔스리드 백작님처럼 강해 보이시는 분이 오면 호승심을 불태우는 분이 계실 거라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강해 보인다? 케이네의 말에 라트는 살며시 웃었다. 라트가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건 소문이 났겠지만, 제스맹 기느투스의 제자라는 것 역시 소문이 났다.

    ‘연금술사가 강할 리 없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트렌세르노는 정보전을 통해서 라트의 힘을 어느 정도 유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겨우 그 정도에 불과했다.

    최후의 최후까지 라트의 전력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사라이에서 라트의 실력을 알고 있는 자가 있을까?

    “저한테 호승심을 불태우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혹여 무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타국의 사람이 사라이에 방문하거든 조심하라.’

    월드 세리아의 유명한 격언 중 하나였다. 사라이의 귀족들은 호승심이 강하다.

    이름이 드높은 강한 이를 보면 그 힘을 알고 싶어 한다.

    왕국 전쟁 퀘스트가 막 시작해서 사라이에 방문했을 당시 라트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실례한다.”

    “어머나.”

    라트의 말에 몸소 대답을 들려주러 온 것인가. 키가 무려 3m는 되어 보이는 사람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주 대단하신 분이 오셨네요.”

    “자, 잠깐만 기다리시게나, 뤼 헤이웨(芮 黑黦) 자작!”

    ‘환영인사를 해주는 게 너였지.’

    이름을 듣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쉔 헤이웨, 당연하게도 노르스 대륙 출신은 아니었다.

    제작진 중에 동양 빠돌이가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르세이나 대륙 중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동양의 문화를 간직한 두 왕국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온기리드였고. 다른 하나가 루 왕국이다.

    ‘루 왕국 출신, 뤼 헤이웨.’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덩치를 가진 남자.

    실제로 인간이 맞기는 하지만, 조상 중에 거인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NPC였다.

    그리고 사막의 환영식을 거행하는 NPC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글란츠 백작의 제자이기도 했다.

    “이분들은 국왕 전하께서 아주 정중히 모셔오라고 하신 분들이다! 손을 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걱정하지 마라, 그린 자작. 정중히 상대하겠다.”

    눈앞의 남자는 신분 상승이 어려운 노르스 대륙에서 라트와 마찬가지로 평민으로 시작해, 오로지 힘을 증명하여 귀족이 된 케이스로 그 힘은 상당한 편이다.

    ‘거인족의 신체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루와 온기리드의 검사는 상대하는 게 까다롭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지 않나! 이 두 분은 연금술사다. 사막의 환영식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

    케이네는 몰라도 라트는 그 업적이 알려졌음에도 연금술사이니 힘을 증명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겠지만.

    “아가씨께서는 환영식이라니. 내게 그런 자격은 없다. 내가 환영하고 싶은 건 남자 쪽뿐이다. 그에게서 아주 강렬한 기가 느껴진다.”

    ‘역시나.’

    루와 온기리드 왕국의 사람들은 사람의 기를 보고 그의 강함을 판단하기에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강한 기라고?”

    “사막의 환영식을 받아주기 바란다. 녹색 머리 남자.”

    헤이웨의 말에 그린 자작 역시 흥미로운 눈동자 라트를 바라보았고, 헤이웨는 등 뒤에 있는 대검을 뽑으려고 했다.

    ‘예전이었다면 버거웠겠지.’

    뤼 헤이웨는 거인의 피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오러 익스퍼드에 도달한 남자다. 신체 능력만 따지자면 오러 마스터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른 오러 익스퍼드와 비교하자면 월등했다.

    확실히 예전이었다면 꽤 애를 먹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오러 마스터 혹은 그 수준의 강자가 아니라면 지금의 라트에게 대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꿇어.”

    “윽!?”

    염동력을 사용해 순식간에 헤이웨의 움직임을 봉한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서 그의 목에 겨누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목에 검이 겨눠지자, 헤이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걸로 환영식은 충분합니까?”

    “그, 그렇다.”

    본디 사막의 환영식이란 이 자리에서 결정이 되는 게 아니라 적당한 장소에서 승부를 정하는 거였지만, 이런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면 굴복할 수밖에 없다.

    “굉…장하시군요.”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실력은 됩니다.”

    그린 자작은 상당히 재밌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과 의문.

    연금술사인 라트가 순식간에 헤이웨를 제압한 것에 당황하고 라트가 부린 힘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가장 크게 드러난 감정은 역시 놀라움이었겠지.

    ‘역대 최단 시간.’

    상대가 오러 마스터라고 수 분은 버티어냈던 헤이웨가 겨우 몇 초 만에 제압당했다는 사실에 그린 자작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방심은…….’

    물론 헤이웨가 방심하기는 했겠으나, 저렇게 깔끔하게 제압당했다면 방심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럼 계속 가시죠.”

    “예.”

    라트가 대검을 거두고 가기를 재촉하자, 그린 자작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직까지 일어서지 못하는 헤이웨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이런, 사막의 환영식은 거칠기로 유명한데 엔스리드 백작님에게는 산들바람 같았나 봐요.”

    케이네 역시 라트의 강함에 놀라움 역시 느끼고 있었으나, 대견한 마음이 더 컸는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 좋았다니요. 헤이웨가 그렇게 허망하게 지는 건 아버님과 대련할 때 빼고는 본 적이 없는데요.”

    ‘아, 헤이웨가 글란츠 백작의 제자로 들어갔을 무렵에는 아직 가출하기 전이었구나.’

    그제야 케이네와 헤이웨가 구면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라트는 조금 전 헤이웨가 케이네를 아가씨라 호칭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흐음, 일단 그런걸로 해둘까요. 아참! 그린 자작님.”

    “말씀하십시오. 글란츠 후작님.”

    그린 자작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정중하게 케이네의 물음에 답했다.

    “글란츠 백작님은 제르렐 왕성에 계시나요?”

    “……예. 국왕 전하께 인사를 드린 후에 따로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을 끝으로 케이네는 미묘하게 한쪽 입꼬리만 올렸고, 역시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직접 찾아오시겠죠. 저를 보고 싶으셨다면.”

    ‘절대로 안 찾아오실걸.’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글란츠 백작이 제 발로 케이네를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그 때문에 케이네는 글란츠 백작에게 다시 한 번 실망하게 되겠지.

    ‘아, 머리 아파.’

    사정을 모두 아는 라트 입장에선 양측 모두가 답답해 보였다. 그러나 이런 불화는 한쪽이 나선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람은 온존한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나중에 해결해야지.’

    당장은 사라이의 국왕과 대면하는 것이 먼저였다. 보라, 벌써 알현실의 문에 도달해서 그린 백작이 문앞에 서있는 경비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셀룬 왕국의 엔스리드 백작님과 글란츠 백작님이 들어가십니다!

    “부디.”

    경비병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린 백작이 허리를 낮게 숙임과 함께 손을 뻗어 라트와 케이네를 문 안쪽으로 안내했다.

    거대한 문 안을 통과해 왕의 어전으로 들어가, 넓게 뻗어진 양탄자를 걷다가 그 중간쯤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사막의 왕을 뵙습니다.”

    “어서 오라. 엔스리드 백작, 그리고……글란츠 후작.”

    그것이 살라딘 케슈 메르아트 사라이 국왕과의 첫 만남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새벽 또는 오전 중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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