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2화 (21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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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쟁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고통받는다. 주적인 핀스크 왕국이 사라지고 나서 동맹인 왕국의 뒤통수를 칠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터.

‘주인 없는 산맥이 문제이긴 한데.’

물론 왕국 전쟁이 주인 없는 산맥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어진 전쟁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라이는 주인 없는 산맥보다는 명분을 이용해 비옥한 토지를 얻으려고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전쟁을 이어가기보다 주인 없는 산맥에 관해 협상하려고 하겠지.

오케만 국왕 역시 전쟁을 계속하지 않고 협상으로 답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왕국 전쟁 시나리오는 종료.’

왕국 전쟁이 끝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 보상과 악신의 조각이 모이는 시간을 이용해서 강해져서,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생각대로 된다면.’

만약 일이 라트의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또 다른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인 제국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 있을 때 튜토리얼 기간에 성장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게임을 하면서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보상을 모두 받은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없었다.

‘과연 얼마만큼 강해질까?’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문제는 신전인데.’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한참을 고민하던 엘리가 다음 수를 두자, 라트는 생각을 멈추고 슬며시 체스판을 내려보았다.

“호오.”

엘리의 수는 조금 전 체크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수였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엘리, 넌 항상 나이트를 보지 않는 게 문제야.”

“아!”

라트가 나이트를 이용해서 엘리의 퀸을 잡아먹자,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체스판을 헝클어버렸다.

“너무 쌔!”

엘리 나름의 패배를 시인하는 행동이었기에 라트는 뭐라 제재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공작님은 이제 괜찮으시다고?”

“팔팔해지셨어.”

새초롬한 대답이 돌아온다. 약간 화가 났다는 건가?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체스판을 정리하고 있다.

“다행이네.”

다행스럽게도 루아타 공작은 와이번에 의해서 부상을 입지 않았으며 마력이 뒤틀린 것도 고작 3주 만에 완전히 회복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전쟁 중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서 회복이 더디었지만, 본토로 돌아온 즉시 몸에 좋은 약이란 약은 전부 먹었고 좋은 치료까지 받았으니까.

“그런데 라트 언니는 왜 안 보여?”

“이번 전쟁에서 우리 정예 병사들이 많이 전사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지?”

“응.”

“새로운 정예를 만들기 위한 물자 때문에 셀룬의 재무를 관리하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러 성에 갔어.”

“헤에. 후작이 되시더니 엄청 바빠지셨네.”

“그렇지.”

그냥 후작이라면 또 모를까, 무려 제스맹 기느투스의 후계자다. 셀룬의 모든 연금술사 길드를 도맡아 관리해야 함은 물론이오, 전 세계의 연금술사와도 교류해야 한다.

라트가 돌아왔음에도 얼굴을 본 건 단 한 번뿐. 그 정도로 케이네는 바빴다.

“언니, 오빠!”

“라트님. 아, 공녀님도 계셨군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리오스와 미르차르드였다.

현재 리오스는 미르차르드와 함께 그의 거처에서 생활하면서 검을 배우고 있기에 그 둘이 같이 방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오스!”

리오스의 등장으로 화가 난 게 풀렸는지, 아니면 리오스를 귀여워 해주면서 라트에게 진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지, 엘리는 주책없게 리오스에게 달려가 마치 인형마냥 껴안았다.

“안녕, 리오스. 무슨 일이십니까, 후작님?”

리오스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라트는 미르차르드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가 안부를 묻고자 이곳에 왔을 리가 없다.

“다음 목표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단도직입적인 물음이었다. 미르차르드 후작이 라트에게 이 의견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전쟁의 피로를 풀고 있다지만,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곧 있으면 회의가 시작 될테니, 그 전에 미리 라트의 의견을 알아둬서 편을 들려는 속셈이다.

“핀스크가 되겠죠.”

“그렇군요.”

당연히 다음 목적은 핀스크겠지만, 문제는 신전이다. 만약 신전에서 왕가가 흑마법사에게 세뇌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당연히 이쪽을 지원할 거다.

그렇지만 신관들은 의외로 까다로워서 눈으로 보거나,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나서지 않는다.

즉, 전쟁의 중간까지는 신전의 도움을 받긴 힘들다. 그렇다고 사제와 성기사 없이 키메라와 싸우는 건 힘들지.

‘물론 힘들다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만.’

“언니. 리오스, 아파.”

“아, 미안해. 언니가 너무 세게 껴안았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라트 쪽과 다르게 엘리 쪽의 상황은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성으로 가봐야겠네요.”

이대로 있다가는 그 한가로움에 도취해서 원래 목적을 잊어버릴 것 같았기에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네.”

켈랑과 싸울 때 라트는 귀족이 아니었기에 트렌세르노와 싸울 때는 갑작스러운 선전 포고 때문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이쪽이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왕과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신병 훈련 때문에 성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만, 리오스가…….”

“오늘 하루 정도는 공작저에서 지내도 되죠?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공녀님.”

“고마워.”

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엘리가 리오스를 맡아주겠다고 말하자, 라트는 엘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미르차르드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

“그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나.”

국왕과의 면담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케만 국왕이 전쟁 이후로 눈뜰새 없이 바쁘다고는 하지만, 라트는 현재 셀룬의 전쟁 영웅이었으니 국왕이 라트와의 면담을 미룰 이유는 전혀 없었다.

“회의 전에 차후 전쟁의 판도에 대해서 논의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건 회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이지 않나. 자네와 미르차르드 후작 그리고 나. 세 명이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 건은 국왕 전하 단 한 분만 계신다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 나라의 정상은 국왕 전하시니까요.”

“하하하.”

아부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옳은 말이기도 했다. 루아타 공작의 권력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그는 귀족파가 아닌 국왕파다.

루아타 공작이 계속해서 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그리고 셀룬의 국왕이 계속 권력을 잡고 있는 한 귀족파가 나설 수 있는 자리는 없다.

“이후 어느 왕국과 전쟁을 할 건지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요. 그저 상황을 알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전쟁 영웅이라고 하지만, 고작 백작. 셀룬 왕국의 백작은 10명이 넘고 그 위에 세 명의 후작과 한 명의 공작이 있는데 함부로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상황?”

“예.”

그중 하나가 바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거였다.

핀스크의 왕실이 흑마법사의 세뇌를 당했다고 말하기에는 증거가 없으니까. 아무리 라트의 말이라고 한들 증거가 없으면 오케만 국왕이 그런 황당무계한 소리를 믿어줄 리가 없다.

“셀룬은 현재 켈랑과 트렌세르노군 두 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필연적으로 전력이 약해진 상황입니다.”

“그렇지.”

“사라이 왕국 역시 린느탐보프와의 전쟁으로 전력이 약해졌습니다.”

오케만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트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러나 핀스크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땅이 넓어진다고 해서 국가는 갑자기 강해지지 않는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이야기에 불과해. 점령한 땅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까지는 최소 1년, 최대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현재 핀스크와 셀룬의 전력 차이는 꽤 막심한 편이었다.

‘게다가 핀스크 쪽 귀족들은 지금쯤 대부분 죽거나 세뇌당한 상태.’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이 왕국 전쟁 시나리오가 중반에 들어섰다면 핀스크의 왕실은 물론이오 귀족들 역시 흑마법사들에게 세뇌를 당했을 거다.

세뇌가 듣지 않는 이들은 당연히 살해당했겠지.

“이대로 핀스크와 충돌한다면 질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사라이와 동맹을 맺는 게 어떻습니까.”

“동맹?”

뜬금없다는 말을 들은 듯, 미묘한 표정을 짓던 오케만 국왕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맹은 할 수 있겠군. 사라이야 주인 없는 산맥보다 당장 비옥한 토지가 필요해서 전쟁에 참여한 케이스이니까.”

오케만 국왕 역시 사라이가 전쟁에 참여한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이가 우리와 동맹을 하려고 할까?”

“현재 사라이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귀족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야 당연히 글란츠 백작 아닌가. 오러 마스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전쟁으로 전술도 굉장히 뛰어남을 증명했으니까. 아!”

그제야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오케만 국왕은 탄성을 내질렀고, 미르차르드 후작은 조용히 읊조렸다.

“케이네 후작님의 아버님이 글란츠 백작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거야 후작님께서 떠벌리고 다니시지 않으시니까요.”

케이네는 가족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글란츠 백작의 이름이 상당히 알려졌음에도 그와 케이네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이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타국의 귀족이다. 게다가 글란츠 백작에게 동맹을 성사시킬 발언권이 있을까?”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남을 증명한 남자다. 현재 사라이의 국왕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을 터.

“글란츠 백작이 우리의 말을 들어줄 가능성은?”

“그것 역시 있습니다.”

에스페를 만나기 위해서 잠시 사라이에 들렸을 때를 떠올린다. 상황이 좋아서 글란츠 백작에게 핀스크에 흑마법사가 있음을 알릴 수 있었으니까.

흑마법사가 핀스크를 장악했는데 글란츠 백작이 셀룬과 싸우려고 할 리가 없다.

“자신만만하군. 이거 상황을 설명해준다고 하고 결국 의견을 제시한 꼴이 아닌가.”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결국 라트의 의견은 사라이와 동맹을 맺고 핀스크를 치자는 것이었다.

“사라이와 동맹을 한다면 되면 이후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두고 다툴 수도 있네.”

“그건 제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는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을 고수하던 오케만 국왕은 머리를 굴렸다.

이득과 실을 계산하는 모양새다.

“우리는 이제 막 두 차례 전쟁을 끝낸 상황이네. 여유가 있는 귀족은 없다고 봐야 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묻겠나. 자네를 사신으로 보내면 사라이와의 동맹을 추진할 수 있겠나?”

땅은 넓어졌으나 인재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셀룬은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영토를 관리하는 게 힘든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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