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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1화 (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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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무수히 많은 알림창이 나타났지만, 그것보다는 안고 있는 트렌세르노의 시체를 바닥에 눕히는 게 먼저였다.

    “끝났군요.”

    트렌세르노의 시체를 바닥에 눕히자, 떨어진 별이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난처한 표정을 짓길래 크룩스를 암살하는 건 무리일 줄 알았는데. 잘 해줬어.”

    “암살자는 암살 성공률이 100%가 아니라면 당연히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암살 대상이 후방에 있어 망정이었죠.”

    고개를 돌리니 등과 팔에 화살이 꽂혀 피를 흘리고 있는 떨어진 별의 모습이 보였다.

    “다쳤잖아.”

    “꽤 많은 병사의 경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요.”

    “여기.”

    “감사합니다. 고용주님.”

    라트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건네자 떨어진 별은 곧바로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다친 부위에 포션을 뿌렸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목을 베어서 효수하는 방법이 제일 좋기는 합니다만.”

    “시체는 온전히 내버려두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왕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간의 시체를 내버려둔다니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트렌세르노의 목을 베는 건 찝찝해. 편안하다는 듯 눈을 감은 그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승자가 모든 것을 취한다. 그것이 고용주님의 의견 아니었나요.”

    “그렇지.”

    승자는 모든 것을 취하고, 패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전부 취할 수 있으니까. 시체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과연.”

    그러니 라트의 말 역시 옳았다. 승자는 라트이니 트렌세르노의 시체 역시 라트의 마음대로 하면 되는 일이었다.

    “목을 효수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전쟁은 끝났군요.”

    이쪽을 바라보던 병사들이 차례차례 트렌세르노의 죽음을 알린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하이데른 역시 두 후작의 협공으로 인해 숨을 거뒀을 거다.

    “만연하라.”

    트렌세르노의 시체를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오케만 국왕은 그의 시체를 능지처참하려고 할 거다. 그것이 왕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그러니까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트렌세르노의 시체를 땅속 깊숙이 묻었다.

    “편히 잠들기를.”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에 엘리가 죽었더라면, 켈랑과의 전쟁 중에 케이네가 죽었더라면 라트 역시 이렇게 됐을까?

    곱게 미치지 못하고, 썩어빠진 세계를 탓하면서 그 세계를 바꾸려고 발악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트렌세르노에게 측은함을 느끼는 건 진심이었다.

    “의외로 약한 면이 있으셨군요. 저를 협박하고, 돈으로 저를 고용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 지경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자의 최후거든.”

    “예?”

    “아니야.”

    라트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것은 전쟁의 끝을 고했다.

    ***

    트렌세르노가 죽자 전쟁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몇몇 성은 끝까지 항전하겠다며 성문을 닫았으나 셀룬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옛 차리친의 모든 영토에 셀룬의 깃발을 올리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주. 고된 강행군이었지만, 크나큰 전투는 없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처음부터 트렌세르노라는 구심점에 의해 일어난 반란이니 구심점이 죽은 순간 무너져 내리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사이에 사라이와 린느탐보프의 전쟁 역시 사라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린느탐보프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현재 라트는 수소문 끝에 트렌세르노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살았던 집을 찾았다.

    “먼지가 아주.”

    라트가 눈을 찌푸리더니 로브로 입을 막았다. 트렌세르노가 떠난 이후 아무도 이 집을 관리하지 않은 덕분에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는 건 물론이오, 거미줄까지 처져있는 실정이다.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입술을 악물고 참는다.

    ‘이 열쇠만 아니었으면.’

    아이템은 자동으로 획득되며, 어지간한 아이템을 얻지 않는 이상 획득했다는 알림창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알림창이 나오는 경우는 단 두 가지뿐.

    하나는 신화급 아이템을 얻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퀘스트와 관련된 아이템을 얻었을 떄다.

    그리고 트렌세르노를 죽였을 때 열쇠를 획득했다는 알림창이 나타났었다.

    ‘분명 퀘스트 관련이라는 소린데.’

    신화급 아이템 중에서도 열쇠 모양의 무기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 트렌세르노의 열쇠일 리가 없다.

    그러니 이건 분명 퀘스트와 관련된 아이템이다.

    ‘문제는 트렌세르노가 랜덤 NPC라는 건데.’

    랜덤 NPC는 오로지 변수를 위해 나타나는 NPC이니 메인 퀘스트와 관련된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열쇠는 무슨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걸까.

    ‘단순한 랜덤 퀘스트일 수도 있기는 한데.’

    왠지 직감이 그건 아닐 거라고 알려왔기에 라트는 곤욕을 참으면서 열심히 트렌세르노의 집을 뒤졌고, 잠시 후 열쇠가 들어갈 법한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걸까?”

    언뜻 보기에는 여자들이나 사용할 법한 조그마한 보관함이다. 어쩌면 트렌세르노의 여동생이 사용했을 물건일지도 몰랐다.

    “일단 꽂아보자.”

    열쇠가 부드럽게 구멍으로 들어가자 라트는 망설임 없이 열쇠를 돌렸고 보관함이 살며시 안쪽을 드러냈다.

    “이거, 그거잖아.”

    보관함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석판 조각이었다.

    ---

    명칭 : 이름 없는 신의 석판 조각  등급 : ?

    형태 : 석판 특수 효과 : ?

    인챈트 : -  내구도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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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름 없는 신의 석판을 찾으셨습니다. 특수 스탯 신성이 10 상승합니다.]

    진 엔딩으로 가는 두 번째 조건인 ‘이름 없는 신의 석판 조각’도 이로써 두 개째 찾았다.

    “앞으로 남은 조각은 3개인가.”

    다섯 개의 조각을 전부 찾으면 이 아이템이 어째서 진 엔딩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인지 알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트렌세르노는 어쩌다가 이 아이템을 발견하게 된 걸까. 흑마법사들이 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뭐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럼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지.’

    트렌세르노는 죽기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고, 그 목소리 때문에 이상을 세웠다고 말했었다.

    그 목소리가 들린 이유도 이 석판 때문인가? 그러나 라트는 석판을 획득하고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에 이건 단순한 추론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알겠어.’

    트렌세르노가 평민임에도 초월적인 능력을 얻은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석판을 얻어서 신성 스탯이 생긴 거겠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신성 스탯은 인간의 한계보다 더욱 강한 힘을 내게 해주는 스탯이라고 봐야겠지.’

    처음 신성 스탯을 얻었을 때는 몰랐지만, 미르차르드 후작과의 전투와 켈랑의 수도에서 몬스터들을 막았을 때 그리고 2주 전에 트렌세르노군과 싸웠을 때 신성 스탯이 올라가면서 라트는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편린을 알게 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돼.’

    라트의 스탯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오러 마스터와 검을 나누는 것은 무리였다.

    미르차르드 때를 생각하면 엉망진창으로 깨졌었지.

    그에 비해 하이데른과 싸움은 어땠는가. 검을 맞댈 수 있었다. 상처가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미르차르드 후작 때같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았다.

    ‘데모니아 때는 완전히 발라버렸지.’

    상황이 좋았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이겼다. 물론 최후의 발악 덕분에 몸에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트렌세르노가 신성 스탯을 얻었다면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돼.’

    그리고 한 가지 더, 트렌세르로라는 랜덤 NPC가 나타난 이유도 이해가 됐다.

    랜덤 NPC는 게임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다. 그러나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 오로지 라트만이 게임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랜덤 NPC라는 존재가 나오지 않아야 했지만, 석판이라는 변수 때문에 나타났다.

    ‘랜덤 NPC라고 부를 수도 없겠는데.’

    플레이어인 라트의 입장에서는 랜덤 NPC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결국 트렌세르노는 게임 시스템의 보정을 받은 게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낸 NPC라고 봐야 옳겠지.

    “도대체 이 석판의 정체가 뭘까.”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이런 아이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쯧.”

    아무런 단서도 없다. 게다가 이 석판의 조사를 맡긴 에스페에게 새로운 조각을 준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로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은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

    “돌아갈까.”

    열쇠를 획득했다는 알림창이 나타난 이유도 알았으니 이제 이곳에 볼 일은 남지 않았기에 라트는 미련 없이 트렌세르노의 집에서 빠져나갔다.

    ***

    다시금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셀룬과 사라이 양쪽 모두 전쟁의 피로를 풀고 지배한 영토를 안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겨우 일주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기에는 충분했다.

    “자, 라트 차례.”

    오랜만에 평화를 즐길 시간이 왔기에 라트는 엘리와 여유롭게 체스를 두는 중이었다. 물론 머리는 별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핀스크 왕국은 움직이지 않는 중이란 말이지.’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다면 흑마법사들이 움직일 법도 한데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체크.”

    “에에에! 하, 한 수만 물러줘.”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한수 물러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벌써 10번은 넘게 한 수를 물러줬지만, 라트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고 말의 위치를 원위치시켰다.

    “으음!”

    엘리가 어떻게 수를 둬야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고심하기 시작하자, 라트의 생각 역시 깊어졌다.

    ‘아예 한 왕국이 남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전장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흑마법사들이 바라는 일이니까.

    ‘그게 아니면 핀스크 왕국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흑마법사들이 만티코어의 암컷과 새끼를 데려갔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가 있기는 한데.’

    그들이 몬스터를 납치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주 가끔 이기는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아주 작정하고 노르스 대륙의 모든 인간을 죽이려고 할 때가 있다.

    ‘키메라 군대.’

    몬스터를 포함해서 인간까지 끌어다 만들어내는 합성 괴물을 만드는 게 바로 그 경우다.

    이건 플레이어 때문이 아니라, 흑마법사끼리 토론을 함으로써 생기는 변수로 플레이어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키메라 군대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키메라 군대가 나오는 변수가 나왔다면 게임을 리셋하는 게 좋다. 커뮤니티에서 주로 성행했던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어중이떠중이 플레이어들의 의견일 뿐. 라트쯤 된다면 오히려 키메라 군대를 이용해서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방법도 알고 있다.

    ‘우선은 글란츠 백작부터 만나봐야겠는데.’

    사라이의 전쟁 능력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글란츠 백작이다.

    글란츠 백작이 없다면 사라이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 정도로 글란츠 백작의 위상은 높디높았다.

    ‘떡밥을 회수해야지.’

    그에게 핀스크 왕국의 왕가에 흑마법사가 침투했다는 말을 이제 회수할 때다.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핀스크 왕국을 상대하기 위해 셀룬과 사라이가 동맹이 될 수 있겠지.

    ‘동맹이 된다면 전쟁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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