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10화 (2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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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남은 사람들은 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엔스리드 백작님.”

    패배를 인정한 것일까. 트렌세르노는 자신의 앞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살려달라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것인지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트, 트렌세르노님! 아직 저희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자의 목을 베겠습니다!”

    기사 중 한 명이 검을 뽑더니 겁 없이 라트에게 달려들었다.

    “하아.”

    입에서 절로 한숨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잔챙이는 왜 자기가 잔챙이인지 모르는 걸까.’

    라트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기사는 평범한 사람과 비교하자면 강하다. 그러나 이 세계 아니, 셀룬군에 있는 강자들의 기준을 보자면 어떨까.

    당장 오러 익스퍼드의 경지에 오른 귀족이 이십은 넘어간다. 거기다가 오러 마스터도 두 명이나 있고, 대마법사도 한 명 있다.

    그리고 라트는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주제 파악을 해라.”

    연금술을 사용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 라트는 대검을 휘둘러 기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검을 부숴버렸다.

    “히익!”

    압도적인 근력 스탯과 대검의 육중한 무게에 의해 검이 부서지자, 기사의 낯짝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비켜라.”

    굳이 몸이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기사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는지, 라트는 천천히 트렌세르노 쪽으로 걸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 생각이시군요.”

    “네놈의 시답잖은 이상에 물든 피해자잖아.”

    “풉. 그런가요.”

    “전부 비켜. 이 이상의 자비는 없어.”

    기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자신의 검을 뽑았다. 식은땀을 흘리고, 손과 발을 떨고 있음에도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러나세요. 명령입니다.”

    쓸데없는 희생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 트렌세르노가 강경한 목소리로 이들을 물리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를 죽임으로써 제 이상을 부정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을 하지 못하면 이상을 전파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다. 관철하지 못하는 의지는 절대로 이어질 수 없다.

    죽은 자는 의견이 없다. 의견이 없기에 후일 역사서에 악당으로 기록된다.

    “제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제 이상이 틀렸다고 증명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역사가 판단하겠지.”

    “많은 이들이 제 이상에 함께했습니다. 이들이 제 이상을 이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들을 전부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필요 이상의 생명은 죽이지 않는다. 학살은 이쪽에서 사양이라고. 옛 차리친, 현재 트렌세르노군이 점거하고 있는 영토는 전부 셀룬의 것이 될 것이니 학살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몇몇은 네 이상에 물든 게 아니라 강한 쪽에 붙은 거지. 몇몇은 먹고 살기 위해서 동조한 것일 뿐이다. 과연 진실로 네 이상에 동조한 건 몇 명이나 될까?”

    시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개혁은 일어날 수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타난 너무나 거대한 이상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지구의 선진국처럼 시민들이 정규 교육을 받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곳의 백성 대부분은 교육은커녕 글자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네 문제는 단 하나야. 모든 시민이 너처럼 생각이 깨어있다고 믿은 거.”

    지식인이 많아질수록 시민들은 생각을 깨우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이 일어나면 과연 공화국을 세울 수 있을까?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새로운 왕정 국가가 나타날 뿐이 아닐까?

    인간은 욕망과 악의로 뭉친 존재다.

    ‘아무리 모두가 평등하다고 부르짖으면 뭐해. 권력의 맛에 빠져든 인간이 타락하는 건 비일비재한데.’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지구에 있는 북한이다. 말로만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실제로는 3대 세습에 걸친 왕정 국가에 불과했다.

    “그건 추측일 뿐. 제 이상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같은데요.”

    틀렸다라. 트렌세르노가 아까부터 틀렸다는 말에 집착하자, 라트는 그 이유를 깨닫고 뒷통수를 긁적였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면전에 대놓고 틀렸다고 말했었지. 그 말에 트렌세르노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 것이 기억에 남았다.

    “3년하고도 반년 전. 이 무렵 저는 여동생을 잃었습니다.”

    트렌세르노는 천천히 과거를 읊조린다.

    “하나뿐인 가족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고생했지만, 여동생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를 때리고 구박하는 것으로 모자라 팔아치우려고 하던 부모님을 제 손으로 죽였음에도 이해해주고 용서해준 착한 동생이니까요.”

    코앞에서 부모님을 제 손으로 죽였음에도 여동생은 그런 남자를 용서해주었다. 오히려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보듬어주었다.

    그래서 맹세했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동생을 지키겠노라고.

    “그런데 단지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분이라는 제도 때문에! 그 여동생을 강제로 데려가서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의 맹세는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단지 부모를 잘 만나서, 귀족이라는 이유로 평민을 씹다 버리는 껌처럼 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여동생은 그 이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때 제 기분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알 턱이 있나.’

    트렌세르노에게 있어서 여동생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동생이 죽었을 때의 기분을 알 턱이 없다.

    “절망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럼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목소리?’

    무슨 목소리인가? 수만 시간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했지만, 이런 대사는 처음 들어봤다. 그 어떤 랜덤 NPC도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대사는 하지 않았는데.

    “그 날부터 결심했습니다. 이 거지 같은 신분제를 파괴하겠다고.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하나뿐인 여동생조차 구하지 못한 이 가련한 영혼조차 바쳐서라도 불합리를 모조리 부수겠다고!”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동생을 지키겠다는 맹세는 목소리가 들린 날을 기점으로 바뀌고 말았다.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 세계를 부수겠다고.

    “그래서 비겁하게 독으로 암살자를 겁박했냐? 그리고 너를 배신하려고 하니까 전부 죽였고?”

    “그렇습니다. 이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이용하기로 했으니까요!”

    “전황을 뒤집기 위해서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를 사지로 보낸 이유도?”

    “그건 데모니아가 원해서 간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필요한 희생이었죠.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서서히 전력이 갉아 먹혔을 테니까요.”

    “너의 이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옳나?”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트렌세르노는 점점 라트의 앞으로 걸어오면서 냉소를 지었다.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희생이 필요하지 않나요?”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은 불가피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기에 라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 역시 기뻤을 겁니다.”

    라트의 코앞까지 다가온 트렌세르노가 어깨를 잡고 흔들며,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제 여동생처럼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판이지 되지 않았습니까!”

    광기, 집착, 분노, 슬픔, 욕망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남자의 얼굴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그들이 기뻤을 거라고 단언하는 거냐!”

    라트는 저도 모르게 그의 배에 검을 찔러 버리고 말았다.

    “크윽. 쿨럭, 쿨럭.”

    한 움큼 선혈을 토해내면서도 트렌세르노는 쓰러지지 않고 라트의 어깨를 지지대로 삼아서 끝까지 라트와 시선을 마주했다.

    “모두가 네 이상을 옹호해줄 거로 생각하는 미친놈. 거대한 이상에 먹혀버린 거냐.”

    “먹혔…다고요? 그럴 지도 모르죠.”

    트렌세르노는 라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제 승리입니다.”

    아니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듯, 죽어가는 주제에 한껏 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런 결말이군요.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게 틀렸다고요? 그걸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없으시…겠죠, 그러니까 저를 찌르…신 거 아닙…니까.”

    ‘그 도발은 일부러였나.’

    자신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도록 유도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곱게 미친놈은 아니었다.

    “이래…서야 제게서 이…겼다고, 쿨럭.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의 마지막, 트렌세르노는 피를 토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이 전투에서 져도,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설령 자신의 목숨이 끊어져도.

    라트가 이상을 부정하지 못하면, 자신의 승리다. 그것이 트렌세르노의 생각이었다. 그날, 자신의 이상이 틀렸다는 말을 들을 순간부터 그는 어딘가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날 내가 했던 말을 정정하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날은 너무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와 마주해서 막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유가 뭐라고 해도, 그 방식이 과격하다고 해도, 본인이 이상에 먹혀 미쳤다고 한들.

    “너는 틀리지 않았다. 트렌세르노 헤스트.”

    그의 이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옳은 것 역시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원했던 길이 달랐을 뿐이다.”

    “아…….”

    그래 달랐을 뿐이다. 서로가 원하는 길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었겠으나, 두 평행선의 끝 중 하나가 반드시 틀린 결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네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달랐기에 서로가 반목했다. 그리고 충돌의 순간, 승자는 자신의 길을 관철할 뿐이고, 패자는 더 이상 자신의 길을 관철하지 못하게 됐을 뿐이다.

    그래 그 뿐인 이야기다.

    “졌…습니다, 백작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서서히 흘러간다. 응시하고 있던 눈에 빛이 속속들이 사라진다. 이상을 추구했던 자는 실리를 추구했던 자의 앞에 쓰러졌고.

    “편히 쉬어라. 트렌세르노.”

    쓰러지는 그의 몸뚱이를 붙잡은 라트는 여동생이 죽은 그 순간부터, 한순간도 쉬지 못했을 그가 안식을 취하기를 바라며 아직도 뜨여있는 눈을 감겨주었다.

    [차리친 왕국을 무너트린 반란군의 수장 트렌세르노 헤스트를 홀로 처치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노르스 대륙의 모든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할 겁니다]

    [반란군이 당신의 위업 앞에 겁을 먹고 고개를 조아립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고 두 왕국을 무너트리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희귀 기능 Exp가 지급됩니다]

    [축하드립니다, 희귀 기능 신의 명상법의 레벨이 10을 달성했습니다. 신의 명상법 기능이 강화됩니다]

    [트렌세르노의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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