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9화 (20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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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신수로 불리는 그리폰을 처치하셨습니다]

    [노르스 대륙의 모든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칭송합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희귀 아이템 랜덤팩을 획득하셨습니다]

    [신성한 몬스터를 죽였습니다. 칭호 ‘신성을 부정하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활약에 감탄합니다. 이 활약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평생토록 각인될 것입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머리를 지킨 건 좋았지만, 머리를 지켰다는 점 때문에 라트가 공중에 있다는 점을 잊어버렸던 걸까. 그리폰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윽!”

    그리고 그건 라트도 마찬가지였다. 자세를 잡고 지상으로 떨어졌어도 데미지를 받았을 텐데, 그리폰의 머리를 힘껏 내리치고 그대로 떨어졌으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괜찮나, 백작!”

    “괜찮습니다.”

    ‘왼팔이 갔는데.’

    다른 곳은 몰라도 왼팔은 완전히 부러져서 엉망으로 꺾여버렸다.

    “괜찮기는!”

    “크억.”

    쓰러져 있는 라트의 뒤를 기습하려던 기사 한 명을 간단히 베어버린 후작은 라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왼팔이 완전히 꺾였군.”

    “맞출 수 있으십니까?”

    이 상태에서 포션을 사용하면 왼팔이 꺾여있는 상태로 회복될 테니 강제로 왼팔을 원래대로 맞추고 포션을 써야 한다.

    “고통스러울 텐데…….”

    “괜찮습니다.”

    “쩝. 그럼 실례하겠네.”

    “크으으윽!”

    브로켄 후작은 거칠지만 확실하게 뒤틀린 라트의 왼팔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고통에 신음을 간신히 억누른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왼팔에 들이부었다.

    “이제 좀 살겠네요. 감사합니다, 후작님.”

    “여기 있네.”

    브로켄 후작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떨어져 그리폰의 피에 적셔진 담뱃대를 주워 건네자, 라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받았다.

    “엉망이 됐네요.”

    “멀쩡한 게 어딘가.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아니 그 높이에서 떨어졌어도 담뱃대는 무사했을 거다. 무려 미스릴로 코팅해놓은 물건이니까.

    ‘신성 스탯이 또 올랐어?’

    몸이 괜찮아지자, 알림창을 확인한 라트는 신성 스탯이 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신성 스탯은 보는 사람이 많아야 오르는 건가.’

    “이제 빨리 후방을!”

    “아니요, 안 그래도 될 거 같습니다.”

    “루아타 공작님을 내버려두자는 소린가.”

    “아니요, 저길 보세요.”

    브로켄 후작이 셀룬군의 후방을 바라보자 수십의 와이번 무리가 창공으로 날아올라 전장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몬스터 테이머는 공격받지 않았을 텐데.”

    “암살자를 붙여놨었거든요.”

    “과연. 암살자가 몬스터 테이머를 처리했나 보군.”

    후작의 말에 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진 별에게 바로 혹시나 저들에게 틈이 보이면 정보를 빼돌리기보다 크룩스를 처리하라고 일러두었다. 그것이 마지막 명령이었다.

    ‘난색한 표정을 짓더니, 충분히 잘 해줬잖아.’

    [고용한 암살자 떨어진 별이 크룩스 프리시던스를 처리했습니다]

    [다량의 Exp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창이 뜬 것을 보니 비록 전투의 한창일 때까지 시간을 끌기는 했지만, 떨어진 별이 크룩스를 처리한 것은 확실했다.

    ‘아니 오히려 전투가 한창이었으니 크룩스를 처리할 수 있었을 거야.’

    적들 역시 다른 곳을 경계할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후작님은 이대로 미르차르드 후작님께 합류해서 하이데른을 처리해주십시오.”

    “자네는?”

    “처리해야죠.”

    승부수라고 할 수 있었던 그리폰은 처리했고, 몬스터 테이머 역시 떨어진 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기사단은 대부분 브로켄 후작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하이데른 역시 두 오러 마스터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을 거다.

    “흠?”

    주요 전력이 처리된 이상, 제아무리 트렌세르노가 뛰어난 전술가라고 해도 상황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마력과 오러가 없는 지구의 전장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여긴 판타지 세계다. 개인이 대군을 압도적으로 처리할 힘이 있는 세계다.

    승기가 기울어졌다.

    “이 일의 원흉을.”

    담뱃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다시금 불을 붙였다. 그리고 몇 가지 강화 포션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혼자서 말인가?”

    브로켄 후작은 개인이 다수를 처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많은 대군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라트를 말리려고 했지만.

    “가능합니다.”

    라트의 확고한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굳이 저 병력을 전부 뚫고 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

    그제야 라트의 말을 이해한 브로켄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미르차르드 후작 쪽으로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아. 가볼까.”

    이 군대는 트렌세르노를 중점으로 모인 이들이 전부다. 다시 말해 트렌세르노를 죽인다면 알아서 흩어진다.

    ‘너 역시 알고 있겠지.’

    트렌세르노 역시 그 점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폰을 테이밍하는 것까지 준비하면서 시선을 분산시켜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폰을 이용해 오러 마스터 중 한 명을 처리하고, 와이번으로 후방을 교란하고 루아타 공작을 죽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려고 했겠지만.

    ‘내 쪽이 한 수 더 위였을 뿐이야.’

    떨어진 별은 걱정할 것 없다. 크룩스가 적의 본진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러 마스터가 없는 이상 숨어버린 암살자의 기척을 잡을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가볼까.”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 들고, 순간이동을 이용해 적의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그 즉시 생명의 연금술과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적을 쓸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염동력 덕분에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데, 대군과 정면에서 부딪쳐 뚫고 갈 이유가 없다.

    ‘이렇게 뒤를 잡으면 그만이지.’

    간단하게 뒤를 잡을 힘이 있는데도 정면에서 들어가는 건 체력 낭비,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라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마, 막아!”

    “밀지 마, 이 새끼야!”

    마법보다 발동 속도가 빠르며, 자연을 연성하는 무색의 연금술과 담배 연기를 이용해 대가 없는 연성을 펼칠 수 있는 생명의 연금술을 다룬다.

    “사라졌습니다!”

    경지와 상관없이 오로지 기능 레벨로만 힘을 발휘하는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다.

    “상대는 연금술사다! 검으로는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억!”

    “검으로 어찌 못해?”

    검술과 신체 역시 오러 익스퍼드와 맞먹는 수준이다. 더욱이 신성 스탯이 올랐을 때 얻는 버프 덕분에 그의 힘을 나찰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는 인간! 언젠가는 지칩니다. 전군 공격하세요!」

    평정심을 잃은 트렌세르노의 외침에 라트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격전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트렌세르노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병사들을 통솔하면서 라트를 막아섰다.

    확실히 그의 용병술은 뛰어나다. 병사들이 트렌세르노의 명령에 맞춰 착실하게 라트를 막아선다. 순간이동을 해서 자리를 이동해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응해온다.

    “하아, 후우. 그래 나도 인간인데 지치기 마련이지.”

    이렇게 발악을 하니 지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병사를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체력도 마나도 슬슬 고갈이야.

    “그런데 말이야.”

    싸늘한 미소를 유지하며 인벤토리를 열어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꺼내더니, 마셔버렸다.

    “이러면 회복됐네.”

    그래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트의 근본은 연금술사다.

    그 연금술사가 만들 수 있는 포션은 상황이 급변하는 전장에서 빨리 체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지.

    ‘배틀 알케미스트가 전장에서 지쳐서 죽는 경우는 없어.’

    실력에서 압도당해 포션을 마실 시간도 없이 죽는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숨통을 조인다면 포션을 마셔서 회복하면 그만이다.

    물론 포션을 전부 소모 시키는 방법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건 평범한 배틀 알케미스트를 상대로나 가능한 방법일 뿐,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는 라트를 상대로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래서야.’

    조금 전 상대했던 그리폰과 자신이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라트는 저도 모르게 자소해버리고 말았다.

    “태연자악하게 절망을 피로하면서 도착하시는군요.”

    수없이 많은 이를 학살하며 종극에 도착한 적군의 본진에는 낯빛이 거무죽죽하게 변해서 씁쓸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젠장, 혼자서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사 중 한 명이 소리를 쳤다.

    ‘멍청하기는.’

    혼자서 대군과 맞섰다면 올 수 없었겠지.

    언뜻 보면 라트 혼자서 대군과 싸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라트에 의해 트렌세르노군의 진형이 서서히 붕괴했고 셀룬군이 그 틈을 노려 진격했다.

    그리고 종극에는 이 상황이다. 라트의 뒤에는 아직도 수많은 적군이 남아있지만, 그들은 밀려오는 적 때문에 이쪽을 신경 쓰지 못한다.

    ‘전략과 전술은 확실히 중요한 요소이기는 해.’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병사의 숫자가 중요해. 그러나 개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단체가 흔들린다면 전투는 성립되지 않는다.

    무력을 가진 개인을 얼마만큼 붙잡고 있는가, 그것이 지휘관의 역할이다.

    트렌세르노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루아타 공작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리폰을 준비해서 오러 마스터 한 명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그대로 전투가 계속됐다면 나도 힘들었겠지.’

    게다가 라트가 쉽사리 전방으로 오지 못하게 와이번 무리를 이용해 루아타 공작이 있는 곳을 요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루아타 공작이 죽음을 각오한 용기를 발휘한 덕분에 상황이 급변했다.

    ‘그리폰이 오러 마스터급 강자 한 명을 상대할 수는 있지만, 두 명은 무리니까.’

    라트가 전장으로 나옴으로써 그리폰은 순식간에 무력화됐다. 그리고 크룩스가 떨어진 별에게 암살당하면서 전황은 뒤집혔다.

    ‘와이번 무리를 계속 통솔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겠지만.’

    하나하나가 인간 수백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게 바로 와이번이다.

    그런 와이번이 무려 수십 마리나 있었으니 만약 크룩스가 죽지 않았더라면 라트가 트렌세르노의 앞에 도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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