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8화 (20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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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테이밍 된 몬스터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별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들켜서 이미 붙잡혔거나, 그게 아니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가.’

    마지막에 남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상황을 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떨어진 별에 적에게 붙잡힌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기도 했고, 떨어진 별이 사로잡혀 죽었더라면 소식이 들어왔을 테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까.’

    라트는 떨어진 별을 믿고 기다려보자고 결심했다.

    “그게 누구……큭.”

    후작의 질문은 성이 난 그리핀의 난동으로 중지되고 말았다. 분명 마나가 깃든 바위벽인데 그 억센 발톱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바위벽을 부순다.

    독수리의 부리가 사납게 벌어지며 울부짖는 야수의 모습은 절망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그리폰이 아직 바람을 다스리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 기회는 지금이다. 인벤토리에서 파이프를 꺼낸 라트는 재빨리 불을 붙였다.

    폐 속 깊숙이 스며든 연기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한 방 먹여줄게.’

    그리폰에게 일방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아, 죽이는 방법은 머리를 베어버리던가 그게 아니면 회복 능력이 맥을 다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거뿐이다.

    그래서 염동력으로 담배 연기를 흘려보내 머리째로 산산조각 내버리려고 했지만.

    맹수는 울부짖으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피했어?”

    의도적으로 라트의 담배 연기를 피했다. 마치 라트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

    그제야 라트는 크룩스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몬스터 테이머는 단순히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몬스터와 교감하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업이다.

    ‘알려준 거겠지.’

    적은 라트의 힘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리폰에게 자신의 담배 연기를 주의하라고 말해둔 것이 분명하다.

    “엔스리드 백작!”

    그리폰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면 브로켄 후작에게 그리폰을 공격할 수 방법은 참격 뿐이다. 그러나 참격으로는 그리폰에게 상처조차 줄 수 없어.

    지금 그리폰을 공격할 수 있는 건 라트 뿐이다.

    “귀찮을 짓을! 만연하라!”

    대지가 기지개를 켰고 흙과 바위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평상시 라트는 기나긴 가시 모양으로 대지와 나무를 연성하여 적을 꿰뚫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무리 마력이 깃들었다고 해도, 그리폰의 피부를 뚫을 수는 없다.

    ‘좀 더 뭉텅하게.’

    얇고 뾰족하면 날카로움이 생기지만, 반대로 그만큼 잘 부러진다. 부러지지 않게, 그저 타격만 줄 수 있을 정도로.

    ‘마치 주먹처럼!’

    주먹 모양으로 연성된 흙과 바위들이 그리폰을 올려치기 위해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리폰이 이 정도 공격을 맞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만연하라!”

    그렇다면 공격을 맞게 하면 된다. 이번 무색의 연금술로는 왼쪽을 포위한다.

    “만연하라!”

    이번에는 오른쪽.

    “만연하라!”

    마지막으로 그리폰의 위. 순식간에 사방을 포위했으니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후우.”

    뒤이어 라트는 담배 연기를 내뿜어 신화급 아이템인 에클레 프시와 에클레 사조, 두 쌍검을 여러 자루 연성했다.

    도망칠 곳이 사라졌다지만, 저 정도 공격으로는 피해도 별로 입지 않을 존재, 그게 바로 그리핀이라는 몬스터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러니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를 줘서 지상으로 추락시켜야 브로켄 후작과 연계해서 그리핀을 죽일 수 있다.

    “경이롭군.”

    서술은 길었으나, 라트가 생명의 연금술까지 사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3초 남짓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에 주먹 모양의 연성체로 그리폰을 포위했고 척 봐도 예사롭지 않은 쌍검 수십 자루를 만들어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경이롭다고 했네.”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법사만큼 위력적이지는 않다. 검사만큼 빠르지도 않다.

    그러나 마법사보다 빠르게 범위 공격을 넣는다. 검사보다 훨씬 위력적으로 원거리를 요격할 수 있다.

    ‘양측의 장점을 골고루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애매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은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주는 상황이다.

    ‘그것도 겨우 3년 만에.’

    겨우 3년 만에 이 수준. 여기서 더 성장한다면 과연 어떤 괴물이 될까.

    “과찬이십니다.”

    그 말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검들이 그리핀을 향해 날아갔다. 가장 먼저 연성체가 그리핀에게 꽂힌다.

    가늘고 뾰족하지 않기 때문에 큰 데미지는 주지 못한다. 그러나 라트의 예상대로 주먹은 부서지지 않고 그리폰에게 확실히 타격을 주고 있다.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긴 한데.’

    그래도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다. 발톱으로 반항하면서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지만, 날개 부분에도 역시나 데미지를 주고 있으니, 쉽사리 움직이지는 못한다.

    ‘어디를 노려야 할까.’

    어느 사이에 검 수십 자루가 그리폰의 앞까지 도달했다. 쏟아지는 주먹 난타에 그리폰은 정신이 없는 상황.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든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머리는 안 돼.’

    그리폰의 피부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해도 쉽게 베어낼 수 없다. 하물며 머리는 그리폰의 신체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질기다.

    단번에 목숨을 끊을 생각은 버린다. 그렇다면 역시나 노릴 곳은 단 한 곳뿐.

    ‘날개.’

    날개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재생하겠지만, 그리폰의 공중 움직임을 잠시라도 제한해야 한다. 그래야 브로켄 후작과 라트과 협공을 할 수 있으니까.

    ‘펼쳐라.’

    그리폰의 지능을 생각하면, 라트가 날개를 노린다는 것을 알면 분명 막으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까 검을 펼쳐 연성체 뒤에 숨긴다.

    “찢어버려!”

    주먹이 내리 꽂아지는 타이밍에 맞춰, 검 수십 자루가 일제히 날개를 쏘아붙였다.

    몇몇 검은 그리폰의 피부를 감당치 못하고 튕겨 나갔지만, 같은 곳을 계속해서 찌르자 검이 억센 피부를 뚫었다.

    그렇게 하나, 둘, 그리폰이 더는 날갯짓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검을 꽂아 넣었을 때쯤.

    ‘됐어.’

    그리폰이 맹렬한 속도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개에 검이 찔려진 채 추락하고 있음에도 살기는 그대로였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발톱을 든다. 눈에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바람이 일렁인다.

    라트와 브로켄 후작을 노리는 수준의 힘이 아니야. 그리폰은 최대로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발현된다면 이 주변 일대가 처참하게 으스러진다.

    ‘아군 병사는 무시하겠다는 건가?’

    이 주변에는 셀룬군만 있는 게 아니라 트렌세르노군도 있다. 저만한 힘을 사용한다면 필시 트렌세르노군에게도 피해가 간다.

    ‘일단 저걸 막아야겠는데.’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변이 어떻게 되든 라트 자신의 주위만 방어하는 것. 그렇다면 이 목숨은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셀룬군은 막대한 피해를 받게 될 거다.

    두 번째 방법은 약간 도박이기는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어쩔 수 없나.’

    이럴 때는 도박을 할 수밖에.

    “후작님, 그리폰의 뒤로 돌아가주세요.”

    “저건 어찌하려고 그러나.”

    “생각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폰의 머리를 노려주세요.”

    생각은 있지만, 그걸 설명할 시간은 부족했기에 라트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할 수 있을까?’

    머리를 저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운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 한다.

    “후우.”

    날개에 검이 박혀있는 이상 검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리폰의 재생은 더디다. 그러니까 그리폰이 지상에 추락하는 건 확정이다.

    추락하면 그 충격 때문에 저 고밀도 바람이 흩어질 수도 있으니 지상에 닿기 전에 저 힘을 발현할 거다.

    “만연하라.”

    라트는 자신의 앞에 바위벽을 만들어 그리폰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라트가 시야에서 벗어나고, 브로켄 후작이 달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그리폰의 시선은 후작 쪽으로 쏠릴 거다.

    ‘앞으로 3초.’

    마음속으로 그리폰의 권능이 발휘될 시간을 계산한다.

    ‘2초.’

    “만연하라.”

    2초가 남은 시점에서 다시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연성체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그리폰을 바라본다.

    예상대로 그리폰은 브로켄 후작 쪽을 보고 있느라, 이쪽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

    바람이 더더욱 거세져 전장을 집어삼키기 직전, 담배 연기를 가득 들이마신 라트는 망설이지 않고 순간이동을 사용해 그리폰의 바로 앞까지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라트의 출현에 그리폰이 악을 지르며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후우.”

    들이마셨던 담배 연기를 내뿜음과 동시에 염동력으로 연기를 그리폰의 주변에 두른다. 그리고 그리폰의 권능이 발동하기 직전에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미스릴을 연성해서 바람과 그리폰을 완전히 가둬버렸다. 아니 완전히 가둬버린 건 아니지. 바람이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을 뚫어놨으니까.

    그리고 바람의 권능이 발현되자, 미스릴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진다. 그러나 뚫리지는 않는다. 바람의 위력을 계산하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두껍게 만들어놨으니까.

    ‘구멍은 어떻게 됐지.’

    구멍을 통해 한 줄기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라트는 미소를 지었다. 구멍이 향하는 쪽은 트렌세르노군의 궁수진이 있는 곳이었다.

    ‘성공.’

    거대하고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에 의해 적의 궁수들이 와해하는 걸 있는 것을 확인한 라트는 미소를 지었고, 당연하지만 공중에 나타난 미스릴에 의해 그리폰은 가속도를 받아 지상에 떨어졌다.

    ‘시야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

    미스릴로 만들어진 상자에 갇힌 상태이니 당연히 시야가 보일 리가 없다. 시야가 차단된 사이에 브로켄 후작은 바로 앞까지 도착한 상황.

    “끝이다.”

    아직 검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시간, 여기서 생명의 연금술을 강제로 해체 시켜 미스릴 벽만 없앤다면 그리폰의 머리는 무방비 상태일 터고 공중으로 도망칠 수도 없다.

    “브로켄 후작님!”

    “비기!”

    라트가 미스릴 벽을 해체 시키자, 브로켄 후작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나가 그리폰의 머리를 노렸다.

    “절참!”

    그 어떤 것이라도 벨 수 있기를 바란 이상을 담은 검이 번뜩였고 푸른색의 피가 허망하게 대지를 물들인다.

    그러나.

    “이런!”

    브로켄 후작이 당황을 내뱉는다. 분명 시야가 차단당해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있어야 할 그리폰이 꼬리와 날개를 희생하여 머리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예상한 건가!’

    단시간에 그리폰을 죽이기 위해서는 머리를 노릴 수밖에 없다. 그리폰의 약점이 머리이니까. 그 점을 노려 다른 부위를 내주더라도 머리를 지킨 건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건가.

    ‘몬스터 주제에 지능이 높다니까.’

    짜증이 날 정도다. 그렇게 한탄하면서 라트는 염동력을 풀어버렸다. 공중을 부유할 수 있게끔 지탱해주던 염동력이 풀리자, 몸뚱이가 자연스럽게 지상으로 낙하한다.

    “후우.”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 두 손에 쌍검을 만들어 쥐고는 염동력을 사용해 브로켄 후작을 공격하려고 하는 그리폰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니가 지능이 아무리 높아 봐야 새대가리지!”

    자신의 근력 스탯에 공중에서 낙하하는 힘까지 이용해서 그리폰의 머리를 그대로 베어버렸다.

    ============================ 작품 후기 ============================

    평이 좋지 않았던 206화를 갈아 엎느라 연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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