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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7화 (20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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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다음날 역시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피가 난무하고, 비명과 함성이 교차하는 전장 아래, 모두가 승리를 위해 죽이고, 죽는다.

“후우.”

병사 수가 엇비슷하다면 사실상 적의 전력이 조금 더 앞선다. 적의 병사들은 트렌세르노의 지휘 기능에 버프를 받고 있으니까.

그 차이를 오러 마스터 한 명이 더 많다는 거로 메꾸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변수는 세 가지.’

이 전쟁의 변수는 세 가지다. 하나는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은 라트 본인이다.

오러 마스터급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총지휘를 맡고 있기에 전면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

‘루아타 공작님께 지휘를 맡기고 전면에 나서도 되겠지만.’

과연 루아타 공작이 트렌세르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라트가 전면에 나선다고 해도 과연 흐름이 이쪽으로 넘어올까?

셀룬이 가지고 있는 변수가 라트라면 트렌세르노가 가지고 있는 변수는 크룩스다. 그가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테이밍 했는지에 따라 전황이 뒤집힐 수 있다.

라트가 섣부르게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마지막 변수는…….’

그리고 마지막 변수. 이 변수가 과연 셀룬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트렌세르노 쪽에 도움이 될지는 현재로썬 알 길이 없다.

“일단 크룩스가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인가.”

“저, 저게 뭐야!”

“말할 시간 있으면 화살이라도 한 발 더……. 씨발 저게 뭐야!”

“배, 백작님!”

병사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한 병사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급히 라트를 불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지금 시각은 정오. 태양이 대지를 비추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하늘을 뒤덮는 무언가에 의해 태양빛이 가로막혔다.

“하아.”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 그러니 구름이 빛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가.

“와이번 무리라니.”

내리쬐는 따사로운 은총을 가로막은 것은 족히 수십은 돼 보이는 와이번 무리였다. 그래 저런 걸 준비하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

‘못 막을 건 아니야!’

와이번이 궁수 쪽을 공격하면 상당한 피해를 보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막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와이번에 의해 궁수들이 화살을 쏘지 못하게 되면 전황은 열세에 빠진다.

‘내가!’

루아타 공작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와이번은 자신이 막을 수밖에 없다.

라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마리 절망이 서서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면서 천천히 내려온다.

“지랄하네, 진짜!”

절망의 머리와 날개 그리고 앞발은 독수리와 같았고 나머지 몸과 꼬리는 사자의 형태였다.

그 절망의 이름은 그리폰, 몬스터 중에서도 신수급에 해당하는 창공으로부터 강림한다.

“그리폰이라니.”

드래곤과 마족을 제외하면 그리폰과 맞설 수 있는 몬스터는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다.

신체 능력부터가 오러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다. 거기에 신에게 축복을 받은 존재이기에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바람을 다스리는 힘이었다.

‘상성이 안 좋아.’

얼마 전 데모니아와 싸우면서 생명의 연금술이 바람에 취약하다는 걸 알았는데 바람 그 자체를 다루는 몬스터라니.

심지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와이번 무리와 다르게 그리폰은 보병들이 부딪치고 있는 전장 한복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브로켄 후작님이 그리폰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무리다. 방어적인 비기를 가진 오러 마스터라면 모를까, 브로켄 후작은 그리폰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바람 칼날에 의해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궁수의 지원 사격이 없는 상황에서 오러 마스터 한 명이 나가떨어지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라트는 루아타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님께서 마법만 쓸 수 있었더라면.’

그가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와이번 무리는 순식간에 정리됐을 거다.

그러나 지금 상황 함부로 앞으로 갈 수도 없다. 와이번 무리가 이쪽으로 오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루아타 공작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노린 건가?’

트렌세르노에게 있어 제 1 기사단이 전멸한 건 큰 손해라고 여겼는데. 오히려 루아타 공작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유리한 측면이었던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루아타 공작의 안위를 생각하면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전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한다.

“엔스리드 백작.”

라트가 고민에 빠져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을 때, 루아타 공작이 그를 불렀다.

“이 시간부로 자네에게 줬던 지휘권을 회수하겠다.”

‘안 돼.’

“총사령관으로서 명령하겠다, 엔스리드 백작.”

루아타 공작이 하려는 말은 예상이 갔다. 그렇기에 라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지금 루아타 공작이 내리려는 명령이 최선이라는 것을.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자네에게 걱정 받을 정도로 약한 몸이 아니다! 그러니 전면으로 가서 그리폰을 처치하고 승리를 가져와라.”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가. 떨림 하나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며 당당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가 누구인가 한 나라의 공작 산전수전 다 겪어본 자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지만, 명색에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자다. 그런데 어떤 이가 그를 걱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목숨은 그날부터 걸어왔다.

“명을 받듭니다!”

루아타 공작의 뜻을 읽은 라트는 망설임을 버리고 전장의 한복판으로 달렸다. 와이번이 도착했는지 뒤쪽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폰이라니.”

한편, 전면에서는 브로켄 후작과 그리폰이 대치 중이었다.

브로켄 후작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폰 역시 마찬가지다.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며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한다.

“말년에 이런 몬스터와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군.”

그리폰은 신수로 취급받을 정도로 희귀한 몬스터다.

아니 신수 중에서도 굉장히 보기 드문 몬스터지. 페가수스나 유니콘이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정도라면 그리폰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니까.

“먼저 간다.”

선수는 브로켄 후작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그리폰의 날갯죽지를 정확히 베어 갈랐다. 푸른색 피가 대지에 흩뿌려지고 신수의 비명이 창공을 울렸다.

“호오.”

잠시 그 상황을 살펴보던 하이데른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그리폰의 몸은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데도 단번에 그리폰의 날개를 베다니.

‘나와 추구하는 바가 같다.’

그것은 브로켄 후작의 비기 때문이었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단순했다.

검사란 검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베는 존재다. 그렇기에 검사는 자신의 검으로 무엇이라도 벨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이 이상이 되고 오러 마스터에 오르면서 개화되어 비기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무엇이라도 벨 수 있는 검.’

간단한 답이다. 그 검은 정말로 닿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벨 수 있는 검이 된다.

“비기, 극할(極割).”

브로켄 후작의 비기가 불을 뿜었고, 그리폰의 날개가 허망하게도 지상으로 추락했다.

“아니야.”

달려가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훌륭하다는 것에는 부정할 마음이 없다.

정말로 깨끗한 일섬이었다. 단 한 번의 칼질로 그리폰의 날개를 벤 것은 분명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뿐.’

그리폰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리폰의 숨통을 끊지 못했다는 뜻은 다시 말해.

“허어.”

뒤로 물러선 브로켄 후작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푸른색 피가, 분명 베였던 날갯죽지에 모여들더니 서서히 날개 형태로 변해간다.

날개 형태로 변한 피는 순식간에 제 모습을 되찾아간다는 듯, 온전한 하나의 날개로 변했다.

“이런 재생 능력이라니.”

완전히 잘라졌다고 해도 시간과 기력이 충분한다면 곧바로 재생한다. 그것이 신에게 축복받은 그리폰의 재생 능력이다.

‘피콜로 대마왕도 아니고.’

어릴 적에 읽었던 만화의 대표적인 악역이었던 초록색 피부의 외계인을 떠올린 라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들었다.

브로켄 후작이 그리폰의 날갯죽지를 베고 물러선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분명 그리폰의 다음 행동은 반격이었으니까.

살기를 느낀 브로켄 후작은 급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음을 직감했다.

그리폰이 손톱이 허공에 그어지자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브로켄 후작을 덮쳤다.

‘당한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바람을 막을 방법은 없다. 피해야 했지만, 그조차 조금 느렸다.

그렇기에 브로켄 후작이 피해를 각오한 순간.

“만연하라!”

눈앞에 바위벽이 생겨나 바람을 막아섰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셀룬군에서 단 한 명뿐. 브로켄 후작은 보이지 않음에도 누가 이곳에 왔는지 직감하고 그 이름을 불렀다.

“엔스리드 백작!”

“합류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지휘는 어떻게 하고? 그리고 루아타 공작님은!”

“현 시간부로 군의 총지휘자는 루아타 공작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전면에 나서 그리폰을 상대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허어.”

평소의 그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라면 와이번 무리에 당할 수 있음에도 라트에게 전면에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뜻은.

“목숨을 걸었군.”

“목숨은 그날부터 걸었습니다.”

제스맹 기느투스가 죽은 날부터 루아타 공작과 라트는 목숨을 걸었다. 그가 수명을 앞당기면서까지 전장의 발판을 해줬으니 둘 역시 목숨을 걸어야 마땅하니까.

“그렇군.”

라트의 말을 이해한 브로켄 후작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엔스리드 백작, 몬스터 테이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나?”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대충일 리가 없지. 직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이오, 크룩스 프라시던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지만 놀랐다.

‘도대체 몇 주, 아니 몇 달 전부터 준비해왔던 거지.’

아무리 크룩스라고 하더라도 그리폰을 테이밍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그리폰을 발견한 시간까지 합친다면.

‘최소 차리친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준비했다고 봐야지.’

“그럼 이 근방에 몬스터 테이머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알고 있습니다.”

몬스터 테이머는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고, 길들인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 범위 이상 벗어나면 그 효과는 풀리고 만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지. 내가 그리폰을 막고 있을 테니까, 자네는 몬스터 테이머를 찾아서 처리하게. 그럼 이 소란은 대충 정리될 거야.”

후작 혼자서 그리폰을 막는 건 가능하다. 그리고 몬스터 테이머를 찾아서 죽인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언뜻 생각해보면 브로켄 후작의 말은 대단히 합리적이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러나 라트는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왜지?”

“후작님께서 그리핀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군의 피해를 줄이려면 저 역시 가세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몬스터 테이머를 찾는 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고 있는, 사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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