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6화 (20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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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5일째 아침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서로가 전력을 이끌고 프로타 평야에서 대치 중이다.

대기가 살기를 머금어 날카롭다는 착각마저 느껴진다. 누구라도 움직인다면 그 순간 전투이 발발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라트는 초조하다는 듯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왜 아직도 안 오는 거냐.’

모든 부대의 배치는 끝냈다. 회의 중에 짰던 작전들 역시 상기시켜놨다. 차질은 생기지 않아.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려고 하는 참에도 떨어진 별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붙잡힌 건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최고의 도둑이라 할 수 있는 떨어진 별이 붙잡혔다고 믿기가 어려웠다.

‘그게 아니면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

“엔스리드 백작.”

마법을 쓸 수 없기에 전면에 나설 수 없어 후방에서 궁병들을 지휘하기로 한 루아타 공작이 살며시 그를 불렀다.

이제 해는 떠오를 때로 떠올랐다. 지금이야말로 전투를 시작하기에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결국, 적이 얼마나 몬스터를 많이 길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 역시 예상해뒀기에 라트는 손을 들어 올렸다.

“포병, 발사 준비!”

돌격할 필요는 없다. 화력 면에서는 이쪽이 압도적이다. 사정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발사!”

쏘아지는 탄환이 정확히 포물선을 그리며 적의 보병 사이에 파고들어 폭발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겨난다.

‘네가 와라.’

이 거리에서는 화살로 견제조차 하지 못한다. 무력하게 맞기만 할 수는 없으니 분명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배기지는 못하겠지.

물론 돌격한다고 해도, 최후방에 있는 대포를 무슨 수로 건들겠는가. 어떤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대포로 인해 입을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백작님, 뒤쪽에서 흙먼지가 보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기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건가.’

대포를 와해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후방을 기습하는 거다.

최전방에는 보병, 그 뒤 궁병, 그리고 마지막에 포병이 있으니 만약 적이 후방으로 들어오면 전방에 있는 보병을 뒤로 빼서 포병을 구하지 않는 이상 대포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예상하고 있었다.’

방법이 한 가지뿐이니 당연히 예상할 수밖에 없다.

“나팔을 불어라!”

라트의 명령에 병사 중 한 명이 거대한 나팔을 불자, 거대한 나팔 소리가 대기를 뒤흔들었다. 그러자 전혀 다른 방향에서 흙먼지가 나부끼기 시작한다.

‘너만 용병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전쟁 중에 한탕 하려는 용병은 수도 없이 많다. 트렌세르노가 아무리 많은 용병을 고용했다고 해도 남은 용병단이 없을 수가 없어.

그렇기에 트렌세르노가 용병을 고용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쪽에서도 용병을 고용하면 그만이니까.

‘이걸로 후방은 해결.’

두 흙먼지가 부딪치는 것까지 확인한 라트는 당분간 포병이 적에게 당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전방으로 고개를 돌려 적을 주시했다.

‘기사단이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적의 주력 부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 있는가.

「기병 차징 준비!」

바로 그때 트렌세르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대포를 사용하지 못하게끔 하려는 수가 막혔으니, 다음 수는 정면돌파인가.

‘경기병.’

경기병은 말도 사람도 무장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창병에 쉽게 죽을 수도 있고 날아오는 화살에도 취약하지만, 그 단점을 모두 가릴 수 있는 장점이 하나 있다.

‘다음 탄환이 장전되기 전에 도착하겠는데.’

빠르다, 그 어떤 병과보다도 경기병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경기병을 선두로 세운 이유는 대포에 당하지 않고 그대로 돌격해서 전열을 부수겠다는 의지다.

“화살 장전!”

낌새를 느낀 루아타 공작이 궁수들에게 화살을 장전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보병들 돌진하는 기병을 막기 위해 창을 들어 올린다.

「돌격!」

돌진하는 기병은 쏘아지는 총알과도 같이 빨랐으며, 인위적일 정도로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횡대 대형.’

라트는 침착하게 가로로 길고 얇게 펼쳐진 기병의 대열을 바라보았다.

기병의 대열이 삼각형 혹은 쐐기형이라면 돌파력이 늘어난다. 반면 대열을 길게 배치하면 돌파력은 떨어지지만, 창을 이용해 적을 더 많이 찌를 수 있다.

그리고 차징이 저지되었을 때 병력을 빠르게 후퇴시키고 다시 차징을 넣는 것도 수월하다.

‘이 돌격은 미끼다.’

“마법사 부대, 마법을 아낀다!”

순식간에 결론에 도달한 라트는 마법사 부대에 마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화살 발사!”

루아타 공작의 명령에 따라 화살이 날아간다. 화살에 의해 낙마하는 이도 있었지만, 몸이 화살에 박히고도 묵묵히 돌격하는 이도 있다.

결국, 화살로는 기병의 돌격을 완전히 막을 수 없어, 이윽고 아군 창병과 적군 기병이 격돌했다.

‘피해는 거의 없지만.’

역시 창병과 기병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이쪽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덕분에 전열이 상당수 망가졌다.

「선발대 후방으로, 후발대 돌격한다!」

차징 후에 창병과 싸우던 경비병들이 곧바로 후방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흙먼지 사이에서 또 다른 기병대가 튀어나왔다.

“어쩐지 흙먼지를 크게 내더라니, 이런 생각이었나!”

인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흙먼지를 내는 이유는 시야를 가리고 후발대를 돌격시키기 위함이었다.

망가진 전열에 기병이 들어오면 피해는 삽시간에 커진다. 게다가 시야가 가려져 있던 바람에 화살로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도 없었다.

온전한 기병대의 돌격이 들어온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마법사 부대, 마법을 사용해서 적 기병대를 막는다!”

라트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지금까지 준비해놨던 마법을 사용했고, 후발 기병대는 마법에 의해 돌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마법 세례 이후에 이어진 화살 세례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다.

첫 번째 돌격이 미끼인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적의 마법을 막아야 하는 디스펠 마법이 빠졌다.

‘이 정도가 아니겠지.’

“백작!”

분명 트렌세르노는 다음 수까지 생각해놨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자리에서 루아타 공작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발대 뒤로 빠진다. 전 마법사, 적 보병대에 마법을 사용하라.」

기병대가 더 피해를 입기 전에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적의 마법사가 아군의 보병대에 마법을 사용했다.

쏟아지는 불덩이는 죽음을 노래했고, 대지가 뒤흔들리며 공포를 예고한다.

“으아아악!”

“따, 땅이 멋대로 움직여!”

“물, 물을 가져와!”

산 채로 몸이 불타는 이를 위해 물을 찾는다. 대지가 요동쳐서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 넘어지고 비명을 지른다.

마법이란 이렇다. 기나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마력을 소모해야 하지만, 한 번 제대로 발동되면 전장을 아비규환으로 몰아넣는다.

「기사단, 돌격 준비.」

그리고 그 아비규환 속에서 트렌세르노는 종말을 고한다. 적들의 정면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기병은 지금까지 봤던 경기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말도 사람도 은빛 갑주로 무장하고 있으며 차징용 랜서 역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철로 만들어졌는지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다.

‘중기병!’

경기병과 비교하면 속도가 당연히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저만큼 무장을 했기에 화살에도 끄떡없다.

‘기사단이라고?’

일반적으로 중기병은 속도가 느리기에 돌파력 역시 경기병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저들 하나하나가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다. 그 살상력은 일반 중기병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사단을 중기병으로 무장하고 있었을 줄이야.’

한 방 먹었다. 전방을 지키고 있는 보병의 대열이 무너진 상황에서 중무장한 기사단의 돌격을 맞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돌격!」

명령이 내려지자 기사단은 엄숙한 자세를 풀고 고삐 풀린 황소처럼 우직하게 평야를 달린다.

‘더 빨리!’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까. 라트는 전심전력으로 달리면서 초조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더 빨리.’

이번 돌격까지 막는다면 다시 이쪽의 차례다. 그러니까 어서 달려라,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서 달려.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보병대, 어서 창을 들어라! 이대로 돌격에 당하면 후방의 궁수들까지 위험해진다!”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셀룬의 군대가 마법에 당해서 이 무슨 추태냐!”

미르차르드 후작과 브로켄 후작이 병사들의 혼란을 잠재워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두 후작의 지휘 능력이 무능력한 게 아니었다.

트렌세르노가 일부러 병사들의 멘탈을 깎아 먹는 마법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설령 글란츠 백작이 지휘한다고 해도, 마법에 당한 병사들은 당분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돌격!”

기사단의 가장 선두에 있던 이가 랜서를 들고 속도를 높혀간다. 그에 따라 모든 기병대가 속도를 높였다.

아직도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보병대와 중기병 상태인 기사단이 부딪친다면 일반적인 학살이 벌어지리라.

그 참극이 일어나려는 찰나의 순간.

“만연하라.”

보병대 전방에 가시가 박혀있는 벽을 생겨났다.

“크왁!”

“커어억.”

아무리 기사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중기병이라고 하더라도. 마력이 실려 있는 가시 벽에 부딪히고 멀쩡히 살아서 돌아갈 수가 없다.

“도, 돌격 중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기사 몇 명은 짧은 비명과 함께 생을 마감했고, 가장 선두에 있던 이들이 죽자, 다른 기사들은 돌격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격돌이 일어나기 전, 순간이동까지 사용한 결과 간신히 한 발 먼저 도착한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완파될 뻔한 보병대를 구해내고는 옷소매를 들어 흐르는 땀을 훔쳤다.

“라, 라트님!”

“엔스리드 백작?!”

“이 틈에 빨리 전열을 가다듬으세요.”

“백작님, 아, 앞을 보십시오!”

한 병사의 말에 급히 고개를 돌리자, 하늘 위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기병대에 시선이 끌린 사이에 적의 본대가 여기까지 다가온 건가.

“만연하라!”

다시 한 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바위로 만들어진 지붕을 만들어 화살을 막아낸 라트는 급히 피츠로이 백작을 바라보았다.

“피츠로이 백작님! 검병을 넓게 펴서 적 보병대를 맞이할 준비를!”

“예!”

“두 후작님은 전열을 가다듬자마자 돌격하십시오!”

아직은 가시 벽 때문에 보병이 돌격해오지는 못할 거다.

“포병대! 대포를 쏴라!”

그래서 급히 포병대에게 명령을 내린 그 순간, 마력을 머금은 벽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최전방에 서서 가시 벽을 베어버린 자는 바로 젠 지거 하이데른.

그리고 기사단 중에서도 오러 익스퍼드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말에서 내리고 검을 들고 있었다.

「보병 돌격. 궁병, 화살을 쏜다!」

미리 넓게 퍼져있던 검병이 돌격해오는 적을 막아선다. 간신히 전열을 가다듬어진 창병대 역시 검병의 뒤를 따라 적을 막아섰다.

“만연하라.”

라트는 아군의 화살이 가로막힐 수도 있었기에 만들었던 지붕을 치웠다. 그리고 검을 뽑고 적에게 돌격하기보다는 뒤로 물러서서 전황을 살폈다.

그것은 맞는 행동이었다. 전군을 지휘하는 이가 전방에서 싸우다가 전장에 흐름을 읽지 못하면 안 되니까.

이 전투은 트렌세르노와의 머리싸움이니 함부로 전장에 돌입할 수는 없어.

‘아직도 몬스터가 코빼기 하나 비추지 않고 있다고?’

전장 그 어디에도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전장은 막상막하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셀룬의 궁병은 그 수는 적보다 적었지만, 대포를 등에 업고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보병 역시 마찬가지. 적에 비하면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쪽은 오러 마스터가 한 명 더 있다.

“나와 검을 나누고도 최강의 방패라는 이름을 계속 쓸 수 있을까! 미르차르드!”

미르차르드 후작이 하이데른을 상대하고 있을 때, 브로켄 후작은 적의 기사단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궁병, 보병 양측 모두 호각.’

하이데른과 브로켄 후작의 비기는 상성이 좋지 않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둘의 비기는 똑같다.

그러니 승부의 갈림길은 어느 쪽의 비기가 약한 지였고, 결과는 순식간에 나오겠지.

혹여라도 브로켄 후작이 패배하면 전투의 흐름이 열세로 변할 수 있기에 방어적인 비기를 가진 미르차르드가 하이데른을 상대하고 공격적인 비기를 가진 브로켄 후작은 기사단을 상대하는 게 옳았다.

“트렌세르노님을 위해 죽어라!”

“셀룬에 승리를!”

화살이 쏟아지고 피가 난무한다.

라트와 트렌세르노는 계속해서 수싸움을 펼쳤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승패는 정해지지 않고 날이 저물어 양측 모두 다음날을 기약하고 진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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