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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투가 끝나고 어느 정도 뒷수습을 끝내고 나자 순식간에 날이 저물었다. 그나마도 뒷정리는 대충 끝낸 것일 뿐이다.
‘이겼다.’
승리의 맛은 너무나도 달았다. 특히나 이기기 불가능했던 전투를 이겼으니 그 맛이 오죽할까.
이번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해준 건 역시
“제때 와줘서 감사합니다, 적색 늑대님.”
시간에 맞춰 여기까지 온 야만인들이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빚을 졌으니 당연히 갚아야지.”
적이 로델세나로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적색 늑대에게 받은 팔찌를 떨어진 별에게 주고 야만인들을 이번 전투에 끌어들였다.
이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야만인이면서, 근처의 야만인 몹과 겨울이면 주인 없는 산맥에서 내려오는 괴물들과 싸우는 몸.
하나하나가 베테랑을 넘어서 정예병인 수준이다. 게다가 적색 늑대의 경우는 근력만 따진다면 오러 마스터 이상.
“해주신 게 너무 커서 오히려 제가 빚이 생겼습니다.”
이런 전력이 나타났으니 트렌세르노군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 정리도 대충 끝났으니 우린 돌아가 보겠다.”
“대접도 하지 못했는데, 그냥 가시려고 하십니까?”
“부족에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남아있으니까. 아, 그리고.”
떠나려고 하던 적색 늑대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겨울이 지났음에도 엘프 쪽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예?”
“슬슬 교역을 위해 연락을 해올 시기임에도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겨울 동안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었다.”
적색 늑대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라트의 물음을 부정했다. 엘프의 행선지를 알아야만 하이 엘프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하이 엘프를 만나 마나와 오러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제한을 부수려는 라트에게 있어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일단 내 쪽에서 사람을 보내서 산맥을 뒤져보고는 있다만.”
찾고는 있으나 찾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담은 목소리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혹시나 수인 쪽과 연락이 닿으면 엘프 부족의 소식을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다음에 보도록 하자.”
전투에서 힘이 되어준 적색 늑대가 안 좋은 소식을 남기고 로델세나를 떠났다.
“백작님.”
적색 늑대 특유의 난폭한 분위기 때문에 이제까지 라트에게 접근할 수 없었던 쥬라스 자작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어느 정도 병력이 살아남았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살아남은 자는 약 1500명. 그중 400이 원래 로델세나에 있던 자들이고 남은 병력이 라트의 부대 병력이다.
“반 정도 살아남은 건가. 내 부대에 속한 병사 중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되지?”
“800명 정도입니다.”
쥬라스 백작의 대답에 라트는 씁쓸하게 웃었다.
800명이라, 6천의 병력을 상대하고도 그 정도나 살아남았음에 감사해야 하는가. 그게 아니면 부대의 반 이상이 전투 불능이 됐으니 화를 내야 하는가.
“정리가 끝났으니 내 부대의 군량으로 살아남은 이들을 배불리 먹여라. 성에 대피해있는 백성들도 포함해서.”
“알겠습니다.”
아니, 지금은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승리의 여운에 젖어있을 때였다.
그래서 군량을 아끼지 말고 풀라고 지시했다. 병력의 상당히 수가 줄었으니 그만큼 군량을 줄여놔야 부대의 이동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계산도 있었다.
“운이 좋았어.”
이 전투에서 이렇게 쉽게 이긴 건 운이 좋아서였다.
참격으로 인해서 났던 상처들은 포션으로 전부 치유했지만, 아직 그 아픔은 뇌리에 남아있다.
데모니아는 죽기 직전에 냉정함을 되찾고 라트의 목숨을 압박했었다.
다 죽어가는 상대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으니, 데모니아가 처음부터 냉정하게 싸웠더라면 이 전투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상대가 내가 알고 있는 데모니아였다면 어땠을까.’
“고전했겠지.”
일말의 고민 없이 즉답한다. 미르차르드와 싸웠을 때처럼 심하게 다쳤을 거다.
그래도 승리는 의심치 않아. 최후의 카드인 공평함의 검이 있으니까.
“왜 그렇게 변했는지.”
본래 라트가 알고 있는 데모니아는 얼음장 그 자체였다. 죄책감을 마음속에 가두기 위해 모든 감정을 닫고 오로지 국왕에게 충성했다. 기사의 대명사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함을 느끼는 중이다.
‘그게 본성이었겠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몸은 어른이 됐음에도 정신은 성장하지 못한 철부지. 그것이 데모니아의 본래 인물됨이었다.
기사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존재가 기사임을 포기함으로 본래의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니.
정말이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던 데모니아는 어디에도 없었어.’
데모니아의 시체를 묻어둔 곳을 잠시 흘겨본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면서 좋아하는 NPC를 뽑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외모 때문은 아니다. 도트 게임에서 외모가 뭐가 중요한가. 캐릭터의 성격 때문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훌륭한 기사였으니까.
단지 그녀의 비기가 성능이 굉장히 뛰어났기에 좋아했었다.
‘그렇지만 저쪽이 본성이었다면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어.’
마음은 전혀 성숙하지 못하고,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걸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하던가.
‘피터팬은 어릴 적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당연히 좋아할 수가 없지.
“엔스리드 백작님! 급보입니다!”
사색에 잠겨있던 라트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남작 중 한 명이 급히 달려오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시기에 그러십니까.”
여기까지 통신구를 들고 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굉장히 급한 일이다. 라트는 왠지 이번에도 안 좋은 소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찌푸렸다.
“루아타 공작님께서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통신구를!”
“여기 있습니다.”
「라트님.」
라트가 급히 통신구를 받아들자, 수정구에서 미르차르드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후작님. 루아타 공작님이 부상 당하셨다니 어쩌다가 그렇게 됐습니까.”
「적의 제 1 기사단이 루아타 공작님의 부대를 덮쳤습니다.」
제 1 기사단이라면 젠 지거 하이데른이 이끄는 최정예 부대가 아닌가.
“저희 쪽에서 기동전을 펼치고 있는데 기사단과 어떻게 부딪칠 수 있습니까.”
기사들은 무거운 갑주를 입고 있기에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그래서 상당수가 기사로 이루어진 부대는 절대로 기동전을 펼치고 있는 부대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이런 작전을 펼친 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말씀해보세요.”
미르차르드 후작이 설명을 시작하자, 라트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에서 버티고 있던 라트의 부대가 로델세나로 빠지자 트렌세르노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리 고용해놓은 기병 중심의 용병으로 후방을 약탈하던 미르차르드의 부대를 기습했다.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미르차르드 후작은 병력은 미스트까지 돌려야 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기마 용병 부대로 루아타 공작님의 부대를 먼저 공격해 퇴로를 차단하고 그 이후 기사단이 나타났습니다. 루아타 공작님은 아울러 이쪽을 지원해주기는 이미 늦었으니 같은 전법으로 부대가 차례대로 격파당하는 걸 미연에 막기 위해서 저희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싸우셨습니다.」
어째서 6천이나 되는 병력을 로델세나로 보냈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거였다.
중앙에서 라트의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면 분명 루아타 공작의 부대를 지원하러 갔을 거다.
그래서 라트의 부대를 뒤로 빼내기 위해 그 정도나 되는 병력을 로델세나로 보낸 거다.
‘제 2 기사단이 같이 오지 않았을 때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다만.’
6000이나 되는 병력을 날려버리고 기동전을 차단하다니.
아니 그것보다 전군이 로델세나로 회군하지 않고, 오로지 라트의 부대만 로델세나로 갈 것까지 예상하다니.
미리 용병을 고용해놨던 것도 그렇고 제 2 기사단을 같이 보내지 않은 것도 그렇고.
데모니아는 처음부터 미끼였다는 건가. 오러 마스터를 미끼로 내놓다니. 최악의 한 수라면 최악의 한 수였고, 묘수라면 기가 막힌 묘수였다.
“결과는요?”
제 1 기사단이 출전했다면 분명 하이데른도 있었을 거다. 루아타 공작이라고 해도 목숨을 걸었어야 하는 전투였다.
「루아타 공작님의 부대는 전멸. 공작님은 마지막에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셔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시지만, 마법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마력이 뒤틀리시는 바람에 당분간 마법을 사용하실 수 없으십니다.」
루아타 공작의 부대원은 약 3000명. 이쪽에서 6천을 죽였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판도만 놓고 보자면 이쪽이 이겼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공작이 당분간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상대의 부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젠 지거 하이데른에게는 별다른 상처를 주지 못했으나 제 1 기사단은 전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의외의 결과에 라트는 입을 벌렸다.
전력의 한 중추를 맡고 있던 기사단을 전멸시켰으니 루아타 공작이 당분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현재 판도는 셀룬이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시 대마법사.’
불리한 전투였음에도 적의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만 있는 제 1 기사단을 몰살시켜버릴 줄이야. 새삼 극의에 오른 마법사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쪽은 로델세라 수비에 성공했고 적의 병력 6000명을 전멸시켰습니다. 내일이면 그쪽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무슨 일이 또 있습니까?”
「본국에서 온 첩보에 따르면 글란츠 백작의 활약으로 린느탐보프와 사라이의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미르차르드의 말에 라트는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글란츼 백작의 용병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
“전쟁이 끝나기까지 몇 주 정도나 걸릴 거 같다고 합니까.”
「아마 2주 정도면 모든 게 정리가 될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라트의 예상보다 더 빨리 전쟁을 끝낼 줄은 몰랐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본대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사라이와 린느탐보프의 전쟁이 끝나기 직전이라면 이쪽 역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그래야 사라이에게 영토를 뺏기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희생을 냈는데 사라이 쪽에 땅을 한 조각이라도 주는 건 사양이다.
***
3일 후,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본대로 돌아온 라트는 우선 루아타 공작의 안위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목숨에 지장은 없다. 다만 조금 방심하는 바람에 조금 다쳤을 뿐이다.”
공작에게 몸의 상처는 없다. 다만 마법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마력이 뒤틀려 한 달 정도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을 뿐이다.
“파르스로 돌아가서 요양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마법사는 전투에서 짐이 된다지만, 루아타 공작의 경우에는 지휘 능력이 있으니 딱히 본국으로 후송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혹시나 전쟁 중에 봉변을 당할 경우가 있기에 그의 안위가 걱정되어 그리 물었지만.
“아니. 총사령관인 내가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설 수는 없지.”
공작은 고개를 저으면서 라트의 의견을 거부했다고 라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 전투에서 공작님의 힘을 쓰는 건 불가능해.’
대마법사 한 명이 전투 불능이 됐으니 이쪽의 전력도 상당히 갉아 먹혔다.
그러나 주력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의 반절을 잃어버린 트렌세르노군보다야 손실이 적다.
“다만, 지휘 권한은 여전히 자네에게 위임하도록 하겠네. 이번 전투의 성과를 보아, 자네가 계속 군단을 움직이는 게 좋겠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라이와 린느탐보프의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가 들어왔다네. 알고 있나?”
“미르차르드 후작님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래서 자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군사 회의를 할 수 있겠ㄱ누.”
루아타 공작이 병사를 불러 귀족들을 소집하라고 이르자, 그 사이에 라트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잠시 밖으로 나와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떨어진 별.”
“부르셨나요, 고용주님.”
떨어진 별이 곧바로 나타나자, 라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마 루아타 공작은 다음 전투에 모든 걸 걸 생각이다. 라트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도, 트렌세르노 역시 그럴 생각이겠지. 사라이가 린느탐보프를 점령한 순간, 후방이 위험해지니까.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명령하세요.”
“적지 근처로 가서 몬스터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고 와라.”
이번 전쟁의 최대 변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크룩스 프라시던스가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길들였는지다.
물론 트렌세르노가 고용한 용병도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변수 측에도 끼지 못한다.
“혹시나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도 돼.”
이는 트렌세르노 역시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테이밍한 몬스터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숨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할 거다.
아무리 떨어진 별이라고 해도 위험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아 잠깐만.”
라트가 몇 가지 명령을 더 추가하자, 잠깐 난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충실히 고개를 끄덕인 떨어진 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 이제 들어가야지.”
하나둘씩 귀족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하자, 라트 역시 천막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엔스리드 백작님이 돌아오셨군요.”
“덕분에 드디어 군사 회의를 할 수 있게 되었지.”
“로델세나를 그렇게 쉽게 지킬 줄은 몰랐네.”
귀족 중 그 누구도 라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정도로 불리한 전황이었다. 그렇게 잠시 칭찬의 시간을 가지더니.
“흠흠.”
잠시 후 사람이 모두 보이자 루아타 공작은 몸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기침을 했다.
“로델세나를 지킨 것으로 보아, 우리 중에 가장 용병술에 뛰어난 것 같기에 군 지휘는 엔스리드 백작에게 계속 맡기기로 했다. 불만이 있는 이는 지금 말하라.”
불만이 있는 귀족이 있을 리가 없지. 라트가 군단의 전권을 맡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해서 승리했으니까.
루아타 공작의 부대가 전멸하기는 했지만, 그건 라트가 잠시 지휘에서 손을 뗐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전부 수긍한 거 같군.”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자, 루아타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라트를 바라보았다. 군 지휘자로서 이야기를 하라는 의미다.
“저번에 미르차르드 후작님이 말씀하신 대로 프로타 평야에서 전면전을 치를까 합니다.”
“과연.”
세르먼트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지금은 전쟁을 급하게 끝내야 하는 상황이다. 자칫 시간을 끌다가는 죽 쒀서 개 준 꼴이 될 수도 있다.
“전면전이군요.”
본디 1만하고도 5천에 달하던 셀룬의 군단은 현재 1만으로 줄어들었다.
보병 5천에 궁병 3천. 기병 500, 포병 500, 총병 500, 그리고 나머지는 마법사를 포함한 소수 병력이다.
반면 적의 병력은 용병까지 합쳐 대략 만이천 정도.
“적기라면 적기군.”
피츠로이 백작이 눈을 번뜩인다.
“용병들이야 원래 돈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니 패색이 짙어지면 알아서 도망치겠지.”
“가장 큰 문제는 팔백에 달하는 제 2 기사단과 크룩스가 지금까지 테이밍했을 몬스터입니다.”
용병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문제는 평범한 오크 한 마리라도 일반 병사 3명은 달라붙어야 상대할 수 있다. 대형 몬스터의 경우 병사 500이 나선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전투 중에서 그레이트 웜 무리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몬스터를 보지 못하셨죠?”
그 물음에 부정은 없다. 지금까지 전투 중에서 테이밍된 몬스터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크룩스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몬스터를 길들이고, 아껴놨을 겁니다. 마지막 전투를 위해서요.”
크룩스가 얼마만큼 몬스터를 길들였는지 평소라면 근접한 수치를 예상할 수 있었겠으나, 몬테크리스토라는 플레이어가 가담했으니 과연 어떨지 라트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고용한 암살자에게 적이 길들인 몬스터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아오라고 했습니다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몬테크리스토 역시 라트가 그 정보를 얻으려고 함을 이미 예상 중일 터다. 그래서 명령 하나를 추가로 내리기는 했지만, 결과가 어찌될 지는 장담하지 못해.
“그러니 여러분은 몬스터를 상대할 여력을 남겨두고, 적을 압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비를 해둬야 한다.
“그럴 수 있나?”
의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의심은 라트를 향한 게이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에 향하는 거였다.
“할 수 있게 해야죠.”
이긴다. 그것이 스승의 염원이었으니까.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