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3화 (20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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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카르나님이 크게 다치셨다! 전군 어서 카르나님을 구하라!”

병사들이 데모니아를 구하기 위해 검과 창을 내뽑고 달려들려고 하자.

“오지 마!”

여검사는 급히 그 행동을 막아서고는 명령을 내린다.

“나는 내버려두고 너희는 어서 이 성을 점령해. 내가 이 남자를 막고 있을 동안에!”

“만연……. 큭!”

성 안으로 병력이 들어왔지만, 아직 전부 들어온 것은 아니다. 이 짧은 시간에 3천이 넘는 병력이 전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시 무색의 연금술로 막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지만.

라트의 행동은 곧바로 막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니가 또 성문을 막게 내버려둘 거 같아? 너희 뭐해, 어서 가서 성을 점령해! 이 성을 점령하면 트렌세르노님의 승리야!”

“예, 예! 알겠습니다. 전군 돌격! 아군을 도와라!”

그래서 웃은 건가. 그래서 웃고 있는 건가. 라트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야 마땅한 데모니아가 웃고 있는 이유를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성을 점령하면 트렌세르노의 승리다. 그리고 트렌세르노의 승리는 다시 말해 데모니아의 승리였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했다. 목숨을 바쳐 트렌세르노에게 승리를 안기려고 한다. 죽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

“그 몸으로 뭘 하겠다고!”

그러나 저런 상처를 입은 몸이다. 다른 평행선의 효과를 받고 있지 않았다면 시간이 좀 끌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다른 평행성의 효과는 끝나지 않았다.

다른 평행선이 있다면 다 죽어가는 오러 마스터를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런데 잠깐만.

‘효과가 몇 초나 남았지?’

다른 평행선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후로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이 지났다.

적어도 10분이 지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다른 평행선의 효과가 종료되었습니다]

다른 평행선의 효과가 끝났다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난 절대 양반은 못 될 거야.”

라트는 자소 어린 한숨과 함께 입술을 씹으며,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누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데모니아를 바라보았다.

거리를 벌릴 수 있을까? 떠오른 의문에 고개를 젓는다.

그녀가 다 죽어가고 있는 몸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평행선이 없는 이상 스탯빨로 힘과 민첩은 비등할지 몰라도 반응 속도의 차이는 겨룰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예상했던 것보다 나뉜 병력이 너무 빨리 들어왔어.’

트렌세르노군이 오늘 내내 합쳐지지 못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적들이 호구도 아니고 성문이 막혔다고 성벽 아래에서 개죽음을 당할 리가 없다.

사다리를 놓아서 성벽으로 올라오면 그만이지 않은가. 지금은 성벽 위에 있는 궁수와 마법사들이 잘 저지해주고 있기에 망정이지만, 조금 있으면 성벽도 점령당할 거다.

“후우.”

그래서 성벽이 뚫리기 전까지 데모니아를 쓰러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라트의 바람과는 달리 데모니아에 의해 성문이 허망하게 열리고 말았다.

“개 같은 년이.”

욕설을 내뱉으며 염동력을 사용해 데모니아의 몸을 묶음과 동시에 담배 연기를 그녀의 곁으로 흘렸다.

“이런 같잖은 힘 따위, 같잖아, 같잖다고, 같잖아아아아악!”

말로는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도 고통에 절규하고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간신히 속박에서 벗어난 데모니아는 자신에게 연기가 향해오는 걸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죽어!”

오러 블레이드에서 방출되는 것은 참격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야. 하나, 다시 하나, 또다시 하나. 모든 오러를 소진하려는 기세로 참격을 날리는 그 모습에 라트는 혀를 찼다.

다수의 참격으로 인해 대기가 찢어지며 강풍이 일어난다. 염동력으로 연기를 조종하려고 해도 강풍 때문에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최후의 발악이냐!”

라트는 결국 연기를 조종하는 걸 포기하고 곧바로 옆으로 도약해서 다가오는 참격을 피했다.

“그래!”

라트가 피한 곳으로 다시금 칼날과 같은 참격이 쏟아진다. 하나하나, 온 전력을 다한 참격에 어찌 반항할 수 있겠는가.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피할 수밖에 없어.

“적어도 너는 데려가겠어!”

“데려가기는 개뿔이.”

일반적으로 오러 마스터의 참격은 양민 학살용에 불과하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빠르다지만, 오러 익스퍼드 정도 수준이라면 참격에 맞는 일이 거의 없다.

애초에 참격이 실전용 기술이었다면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오러 마스터들이 원거리 전에서 약할 리가 없잖아.

‘물론 그렇지 않은 검사가 세 명 정도 있기는 하지만.’

오러 마스터끼리의 대결에서 먹힐 정도의 참격을 사용하는 자들은 라트가 알기로는 정확히 세 명 정도다.

참격이라는 기술은 그저 멀리서 깔짝거리는 궁수 혹은 궁기병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에 불과해.

‘그렇지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참격 하나하나에 무시무시한 오러가 담겨있다. 한 번이라도 맞는다면 치명상이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야. 데모니아는 멈추지 않고 참격을 날리고 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인가.

“큭.”

아슬아슬하게 참격을 피한 라트는 풍압에 짓눌려 신음을 내뱉었다.

다 죽어가는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날 수 있는 건가. 어떻게 저런 힘이 남아있을 수가 있는가.

회강반조라는 문자 그대로 데모니아는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다.

“반드시 맞춘다!”

저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분명 참격은 라트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간단하게 피했던 참격을 풍압이 느껴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하지 않았나.

‘내 움직임을 예측 중인 건가!’

아니 데모니아는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서 라트의 움직임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날리던 참격이 점점 정갈해져, 라트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장소 중 몇 군데에 참격을 날려 퇴로를 억지로 차단한다.

심지어 라트가 순간이동을 할 곳조차 예상하고 참격을 휘갈기고 있다.

“조금 더, 조금 더!”

라트를 공격하기 위해 날린 줄 알았던 참격이 반대로 퇴로를 차단하는 용도로 반전한다.

퇴로를 차단하는 용도로 날렸다고 생각되는 참격이 반대로 라트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뒤집힌다.

‘죽어가는 중에 성장하고 있다고?’

그저 죽기 직전의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과는 달리 데모니아는 저런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라트를 궁지로 몰아간다.

라트를 데려가겠다는 말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살아있음에도 망령과도 같은 집념이었다.

‘빨리 방법을 생각해야 돼.’

순간이동을 너무 많이 사용했는지 라트는 슬슬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이 상태라면 조금 있으면 한계에 도달해.

라트는 염동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분명 저 참격에 의해 몸이 찢어질 것이라 직감하고 상황을 타개할 수를 생각했지만, 아무런 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색의 연금술은 사용할 수 없고.’

무색의 연금술은 손바닥을 자연에 접촉해야 발동하는 힘이다. 정신없이 참격을 피하는 중이니 당연히 사용하는 건 무리다.

‘순간이동으로 뒤를 잡는 건 자살 행위고.’

저 번뜩이는 보라색 눈동자를 보라. 언제라도 라트가 순간이동으로 뒤를 잡는 순간 베어버리겠다는 기세로 번뜩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데모니아는 순간이동이라는 불규칙한 힘조차 예측하는 무아지경의 상태다. 뒤를 잡는 순간 몸뚱이가 베일 거다.

‘생명의 연금술도 무리지.’

참격으로 인해 파생된 강풍 때문에 연기가 손을 닿을 새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런 사태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생명의 연금술에 이런 약점이 있을 줄이야.’

그동안 싸웠던 장소 중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곳은 없었기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입에 손을 대고 있으면 장비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야!’

생명의 연금술로 미스릴 벽을 만든다면 참격을 막을 수 있겠지만, 이 기술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담배 연기가 퍼져있는 곳뿐이다.

연기가 라트의 앞에 있을 새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흩어지고 있기에 미스릴 벽을 만들 수도 없다.

‘잠깐만, 아이템?’

머릿속에서 한줄기 섬광처럼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절체절명, 염동력 사용에 한계가 오기 전에 데모니아가 죽기를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이 위기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계책이 있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운에 맡기고 있는 거보다는 나아.’

급히 담배를 물고 있는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 되돌아오는 자를 한 자루 만들어내고는 그대로 데모니아를 향해 투척했다.

“가소로워”

그러나 애석하게도 밀려오는 참격의 폭풍에 되돌아오는 자는 얼마 가지 못해 형체가 일그러져 바닥에 내리 앉았다.

‘역시.’

참격을 피하면서 투창했으니 힘이 실렸을 리가 없다. 게다가 순간이동을 하면서 창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 작업이다. 기껏 해봐야 한 자루 정도나 움직일 수 있을까.

“꼴 좋, 케엑. 웩.”

데모니아의 입에서 한 움큼 핏물이 튀어나왔다. 그 덕분에 저 꼴이 된 후부터 주야장천 이어지던 참격 세례가 잠시 움츠러들었다.

‘기회는 지금!’

단 한 번, 단 한 번만 데미지를 입는다면 데모니아는 쓰러진다. 그 사실을 직감한 라트는 발동범위와 사정거리가 매우 긴 편인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아직이야! 아직이라고오오!”

왼쪽 눈은 심하게 손상되어 미약한 구멍이 보일 정도다. 오른쪽 눈과 머리카락은 찬란한 보랏빛 색을 잃고 핏빛으로 젖은 지 오래다. 오른쪽 손은 완전히 사라져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여검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직 한쪽 팔이 생생히 남아있기에.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하기에.

“맹세컨대 결단코 죽이고 말겠어, 라트 엔스리드!”

아직 자신의 적이 살아있기에.

움츠러졌다고 생각했던 참격이 다시금 쇄도하기 시작하자 라트는 몸을 피하면서 혀를 찼다.

이겼다고 생각한 전투가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혀를 찬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 맹세하는 거냐.”

전부 버린 주제에 도대체 저렇게 처절하게 발악하면서 누구에게 맹세하고 있는 것인가.

“네가 항상 승리를 맹세하던 국왕은 결과적으로 네 손에 의해 죽었지.”

데모니아가 자발적으로 반란에 가담했으니 결과적으로 차리친의 국왕은 그녀의 손에 죽었다고 봐도 된다.

“명예를 저버린 너의 맹세를 바이올런께서 받아주실 리도 만무해.”

국왕에게 명예를 걸고 충성을 약속했던 데모니아가 명예를 저버리고 반란군에 가담했으니 바이올런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다.

혹시나 데모니아가 정말로 이상을 꿈꾸고 반란에 가담한 것이라면 또 달랐겠지만.

“그게 뭐!”

라트는 참격이 슬슬 몸에 스쳐, 조그마한 상처가 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너를 따르던 병사들을 네 손으로 죽였으면서.”

그 손으로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그녀를 따르던 병사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을까.

“너를 아끼던 사람들을 도륙한 주제에.”

국왕은 물론이오, 국왕을 위시하던 귀족들 역시 데모니아를 아꼈겠지. 그리고 너는 그런 이들을 주저 없이 도륙했을 거다.

“너를 존경하던 사람들을 벤 네가!”

그녀를 존경하던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베었을 거다.

전쟁과 관련 없는 일반인들은 죽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반란이 일어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받은 건 결국 백성들이니까.

“너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던 수많은 이들을 배신한 네 년이 감히, 도대체! 누구에게 맹세하는 거냐! 대답해봐라,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

“트렌세르노님이다.”

그 질문에 데모니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고 이어지는 라트의 반응에 그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킥.”

“지금, 비웃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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