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2화 (2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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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분명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시시한 이야기겠지.

“큭.”

“켁!”

누구의 비명인가. 누구의 신음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양측이 서로의 힘을 버티지 못해 밀려난다. 두 명 모두 입술을 씹는다. 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물러서지 마.’

‘물러날까보냐고!’

그렇다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 밀려난 직후 곧바로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 다시 한 발자국, 다시, 다시.

서로의 공격 범위가 일치한 그 순간까지 걸어 다시금 검을 휘두른다.

한 쪽은 오러 블레이드로 무장한 평범한 검. 한쪽은 검에 오러조차 두르지 못한 신화급 검.

그 날카로움과 예리함은 동등한가? 아니 동등할 리가 없지. 신화급 아이템이라고 해도 오러를 두르지 않는 이상 오러 블레이드를 버텨낼 수는 없다.

아니 애당초 버틸 이유가 있는가.

“어!?”

라트가 별다른 미련 없이 쥐고 있던 쌍검을 놓아버리자 데모니아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어.

“후우.”

물고 있던 담배에 연기를 내뿜어 조그마한 단검을 만들어냈다. 이 거리라면 장검은커녕 장검보다 더 작은 크기의 검이라고 해도 찌르기 버겁다.

그렇지만 짧은 단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단검을 쥔 손을 뻗는다. 이대로 복부를 꿰뚫는다면 승리에 가까워진다. 상대가 틀렸음을 상대의 의견을 부정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비기.”

데모니아의 입에서 차가운 선고가 읊어졌다.

‘어?’

다른 평행선가 발동된 상태라서 세계가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덕분에 라트는 데모니아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비기라고? 이 거리에서?

“디멘션 이그노어(Dimension Ignore).”

디멘션 이그노어, 데모니아의 비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검격을 날릴 수 있는 이능이 그녀의 손에서 발휘돼 거리를 무시하고, 공간을 넘어서 검격이 행해졌다.

“쯧.”

비기를 사용한 데모니아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에 상당히 깊게 베였는지 오른쪽 팔뚝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라트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를 무시하고 이동할 수 있는 힘이야? 진짜 짜증나는 능력이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라트는 피가 흐르고 있는 손목에 급히 포션을 뿌리면서 황당한 표정을 지웠다.

디멘션 이그노어, 비기 중에서도 이질적인 비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저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유용한, 검사의 가장 큰 약점을 지울 수 있는 힘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초 근거리.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검격을 날리는 용도로 사용하다니.’

이런 식으로 비기를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 어째서? 간단하다.

게임에서는,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 할 때는 그저 원거리의 적에게 검격을 날리는 식으로 밖에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염두 해야 했다.

“겁먹었어? 아까처럼 달려와 보지 그래?”

‘데모니아의 비기 쿨타임은 대략 2분.’

일단 사용하면 얼마동안 사용하지 못하는 패널티를 감수하고 비기를 사용한 것을 보면 비기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당했다는 뜻이다.

비기의 쿨타임이 차기 전까지는 안으로 파고들면 속수무책이라는 거겠지.

“그래야지.”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나. 다른 평행선의 지속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다.

그러니 달려라.

발바닥에 온 힘을 실어 도약해 가속한다.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혈관이 터질 정도로 빠르게. 좀 더 빠르게.

“후우.”

달리면서 생명의 연금술로 쌍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뿜어, 데모니아 쪽으로 이동시켰다.

“허튼 짓을!”

연기가 자연적으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데모니아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노린 대로!’

데모니아는 이례적으로 거리를 벌리면 안 되는 검사다.

그러나 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다르다. 검사가 마법사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 연금술사를 상대로 거리를 벌리겠다고?

먹잇감이 되기 십상인 짓이다.

“만연하라.”

대지가 흔들린다. 수없이 많은 바위와 흙이 검의 형태가 되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튀어 나와 여검사를 향해 뻗어나간다.

데모니아가 급히 검을 돌려 공격을 막고 피한다. 무색의 연금술이 레벨 10을 찍지 못했더라면 데모니아가 입고 있는 두터운 갑옷을 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한 물체는 하나하나 마력을 머금고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연하라.”

다시 한 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 바위와 흙으로 연성된 검이 데모니아를 포위하여 공격하게끔 만든 라트는 인벤토리를 열어 마나 포션을 섭취했다.

“후우, 하아.”

벌써 생명의 연금술로 신화급 아이템을 몇 번이나 연성했고 무색의 연금술도 꽤 많이 사용했으니 마력이 고갈 날 만도 했다.

마나 포션 병을 던지고 다시금 달리기 시작한다. 목표는 현재 어느 한 쪽으로 빠질 수가 없어서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된 물체를 받아치고 피하는 여검사.

서로의 눈이 교차한다. 한 쪽은 웃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그 웃음을 보고 눈을 일그러트린다.

“이딴 조잡한 재주로 나를!”

후방에서부터 달려오는 라트를 향해.

자신의 뒤를 노리는 물체를 부수기 위해서.

여검사가 오러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렀고, 허공에 수놓아지는 찬란한 푸른색 물결이 환상처럼 새겨졌다.

그러나 환상과 달리 물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일렁이며 점점 격렬해지더니.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라트를 삼키기 위해 요동치며 질주한다.

“인가.”

미르차르드 후작과 싸웠을 때도 한 번 목도했던 능력이었다. 을 사용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라트는 높게 도약하여 을 피했다.

“오냐, 잘 피했다!”

라트가 허공으로 도망치자 데모니아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를 뒤쫓아 뛰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고, 연금술사! 각오해!”

허공.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도망칠 곳은 없다. 아니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짧은 시간에 공중에서 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기에 여검사는 웃었다. 흥분에 겨워 이번 승부 자신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멍청하게도 말이지.

“잊어버렸냐?”

바로 코앞에 있던 라트가 사라지자 데모니아의 입가에 머무르던 웃음이 사라졌다.

“내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공격을 막고 있던 중 라트의 웃음을 보고 분노에 빠져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익숙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답이겠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나본 적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힘이기에 라트가 공중으로 뛴 순간, 몸이 절로 움직이고 말았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없지.”

자 이제 도망칠 곳이 없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웃어야 하고, 누가 각오를 해야 하는가.

“후.”

새하얀 연기가 내뿜어져 데모니아의 곁으로 향한다. 그 광경 하얀색의 사신이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아.

“오지 마.”

여검사는 생애 최초로 두려움을 느낀 채 읊조렸다.

“오지 마, 다가오지 말라고!”

두려움의 한 곳에 모여 절규를 만들어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신은 여검사의 곁으로 다가가 그 목에 낫을 걸었다.

“이이이익!”

검을 휘둘러 연기를 흩뿌려보려고 하지만, 염동력으로 다시금 연기를 원위치 시킨 라트는 싸늘하게 웃으며.

“터져라.”

죽음을 고했다.

정말 조그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1cm만 벗어나있어도 화상이 생기는 것 정도로 끝날 폭발이었다.

그러나 폭발의 위치는 여검사의 목이었다. 폭발의 여파로 메스꺼운 연기와 함께 피와 살점이 튀어 지상으로 낙하한다.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악!”

그리고 여검사 역시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지상에 착지했다. 아니 고통에 지상을 뒹굴었다.

“뭐야 살아남았어?”

어떻게 살아 남은거지? 분명 폭발의 위치는 정확했는데.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데모니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라트는 역겨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폭발 직전에 목을 감싸고 있는 연기 쪽으로 팔을 들이밀었나. 덕분에 오른팔이 완전히 날아가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간신히 목숨은 구한 셈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살아남았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폭발의 가속도를 받아 튄 뼈와 살점이 데모니아의 목과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장 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보기 민망한, 아니 역겨운 모습이었다.

“치료해줄까?”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둬도 과다출혈로 죽게 될 거다.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다시 검을 잡을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렇기에 적임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동정은 집어 치워!”

그러나 그것을 동정으로 여겼는지 데모니아는 비명을 지르면서 라트의 도움을 전력으로 거부했다.

오히려 고통 때문에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임에도 서서히 일어났다.

“나는, 나는 지지 않아.”

자신의 신념을 맹신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어린 아이의 투정일까.

작금 이런 상황에서도 지지 않는다고 멀쩡한 왼손으로 검을 잡은 여검사의 모습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끝까지 해보시겠다. 그 꼴로?”

“끝은 내가 정해!”

데모니아는 피로 물든 오른쪽 눈을 뜨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거기에 담긴 살기와 분노에 라트는 저도 모르게 조금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완전히 터져버린 왼쪽 눈에 비해 오른쪽 눈은 긁히는 정도에서 끝난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피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거다.

시야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데도 싸우겠다는 건가. 오러 마스터라면 심안이 있기는 하지만, 데모니아의 심안 기능 레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장소라면 모를까, 이런 전쟁터에서는 심안을 사용할 수도 없는데.

그런데도 해보겠다고?

“어리광 좀 작작……!”

“비기.”

마지막 순간에 의존하는 게 그 알량한 비기란 말인가. 분명 가장 먼저 보여준 게 네년의 비기를 파훼하는 방법이었을 텐데!

“만연하라!”

라트의 앞에 바위벽이 세워졌다.

데모니아의 몸이 정상이라면 모를까, 저런 상황에서 비기를 사용한다면 무색의 연금술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디멘션 이그노어(Dimension Ignore).”

데모니아가 분명 비기를 사용했음에도 라트의 앞에 있는 바위벽은 베이지 않고 그대로였다.

‘뭐지?’

다시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바위벽을 치운 라트는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데모니아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쳤음에도 어찌 그렇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미소는 분명 승리를 확신한 미소였다.

“카, 카르나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라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직 발리스타로 성문을 막은 바위벽을 부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평범한 바위벽이 아닌 마력을 머금은 바위벽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트렌세르노군이 성문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인가.

눈을 굴려 성문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말았다.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한 바위벽이 완벽하게 두 쪽으로 쪼개져 쓰러져있었다.

‘나를 노린 게 아니었어.’

비기로 바위벽을 부서서 남은 병력이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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