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1화 (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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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찔러 꿰뚫어라.”

    상대가 도망칠 수 없게 대검을 비튼다. 이렇게 하면 이미 대검의 1/3 이상을 파먹은 검을 빼낼 수도 없어.

    상대가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오판하게 방심을 유도했다. 창날이 번뜩이며 데모니아의 몸을 꿰뚫는다. 꿰뚫어야만 했다.

    데모니아가 미련 없이 검에서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필시 그리되었을 터다.

    “쯧쯧.”

    다섯 개의 창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고, 데모니아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뭐야, 너.”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라트는 데모니아를 노려보았다. 대검에 박혀있는 검을 뽑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뭐가?”

    “어째서 검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거냐고!”

    데모니아가 검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 시간에 이 승부를 끝낼 생각으로 짠 작전이었다.

    적의 병력을 쪼개놓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군이 불리해질 것은 당연하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승부를 볼 요량이었는데.

    “내가 죽으면 트렌세르노님의 계획에 누가 되니까. 죽을 바에야 검을 놓는 게 맞지.”

    “그렇다고 이 검을 그렇게 쉽게!”

    이 검이 딱히 이름난 명검인 건 아니다. 전설 혹은 신화에 다다른 희귀한 검도 아니다.

    기사라고 해서 검에 모든 것을 걸어온 자라고 해서 검을 놓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그저 단지.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에게 있어 이 검은 그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검이었기에 절대로 이 검을 놓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적에게 이 검이 넘어가는 꼴은 절대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검을 어떻게!”

    “알고 있었어? 하긴 그건 비밀이랄 것도 아니니. 그보다 내 비기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가 더 궁금한데.”

    “대답해라!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 어떻게 이 검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나. 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지 않나!”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검이자,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유산이 바로 이 검이다.

    그 외에 것은 전부 불타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검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나.

    “하아?”

    라트의 물음과 자신은 연관이 전혀 없다는 듯,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데모니아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의문을 내뱉었다.

    “내가 어째서 그 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데.”

    “뭐라고?”

    “그 검이 우리 가문 대대로 넘어온 검은 맞아. 그렇지만 그 검을 우리 가문에 준 건 차리친의 국왕이라고. 이미 배신한 내가 국왕이 준 검을 소중하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 뒷말을 삼킨 카르나는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자의 손아귀에서 검을 빼앗았다.

    “그게 지금의 너냐?”

    검에 대한 미련은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라트는 자신의 대검에 박혀있는 검을 뽑으며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무슨 뜻이야?”

    생각한다.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 할 때 데모니아는 절대로 자신의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놓지 않았었다고.

    “그게 지금의 너라고 물었다. 기사의 명예를 버리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칭해지는 검조차 버리면서까지 트렌세르노에게 충성하는 너!”

    자신의 검을 아끼는 대사가 많았기에 실제로 그랬기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데모니아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경의를 보내기 위해서 그녀의 시체에서 카르나 가문의 검을 챙기지 않았었다.

    그게 내가 알던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다.

    “그게 지금의 너냐?”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오, 검조차 버려가면서 승리를 취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눈앞의 여자는.

    “너 정말로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가 맞기는 한 거냐?”

    라트가 알던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렇겠지. 국왕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분명 다른 존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근본 정도는 남아있을 거라고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그렇기에 납득할 수 없다. 눈앞의 여자가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라는 걸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에휴, 무슨 소린지 했더니 너도 그 소리야?”

    “너도 그 소리냐니?”

    “멍청한 차리친의 국왕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하고 있어서 말이야.”

    “물어봤으니 친절히 대답은 해줄게. 그래 이게 지금의 나야. 과거 후작이었고, 지금은 충성을 맹세한 국왕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다. 그런데 문제라도 있어?”

    문제는 없지. 그래 문제는 없다.

    “나는 충성의 서약을 저버리고 거대한 이상에 몸을 맡긴 한줄기 바람이고 너는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야.”

    “그 이상이 그리도 좋더냐. 네 모든 근본을 무시할 만큼 좋단 말이냐.”

    “그래.”

    데모니아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뒤틀린 이 세계를 바로 잡는 게 뭐가 나빠? 이상에 모을 맡기는 게 뭐가 나빠! 단순히 내가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대접받는 게 뭐가 나쁘냐고. 이런 세계가 아니었다면 제운은!”

    ‘아아, 그런가.’

    제운이라는 이름에 라트는 어째서 데모니아가 그렇게 쉽게 트렌세르노의 이상에 휩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제운, 데모니아의 유모였던 여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데모니아가 엄마가 아닌 유모를 너무 따른다는 이유로 카르나 가문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아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 여자였다.

    데모니아는 죽는 순간까지 유모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누구나 평등한 세계라는 사탕발림에 그리 쉽게 넘어갔던 거였나.

    “이런 세계가 아니었다면 제운은 유모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야. 그때 겁먹지 못한 일을 하는 게 도대체 뭐가 나쁘냔 말이야!”

    죄책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처절하게 자신의 긍지를 지켰던 자가 바로 라트가 알던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였다.

    그러나 눈앞의 여성은 자신의 긍지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틀렸어.”

    데모니아의 눈썹이 올라간다.

    “뭐가 틀렸다는 거야.”

    “틀린 이상에 틀린 마음을 품고 바람이 되기로 선택한 네년은 틀렸다고.”

    달콤한 사탕발림에 넘어가, 죄책감을 지우려는 선택한 너는 틀렸다.

    순수하게 이상을 맹신한 게 아니라, 죄책감을 지우려는 자기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버렸다는 게 틀렸단 말이다.

    “트렌세르노님의 거대한 이상을 너 따위가 감히 틀렸다고!”

    “닥쳐.”

    나는 분명 네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분노의 초점은 트렌세르노의 이상이 틀렸다고 말하는 거냐?

    그 정도로 타락했나? 그 정도로 긍지를 잃었나.

    자신이 알던 데모니아 이레네 카르나는 이제 없는 걸 완전히 깨달은 라트는 조용한 일갈과 함께 대검은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누가 누구한테 닥치라고 하는 거야! 닥치는 건 너야, 죽는 건 너야! 틀린 건 너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이상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서, 죽여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서 돌진하는 여자의 기세는 맹수와도 같았다.

    순수하게 이상을 믿는 거였다면 감히 데모니아에게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으리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상 아래 자신의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저 추악한 꼴을 보라.

    “다시 말해주지. 틀린 건 너야.”

    이 얼마나 역겨운 모습인가. 이 얼마나 역겨운 기세란 말이냐. 차갑고도 깔끔한 살기라고 평해지던 데모니아는 어디로 갔는가. 지금 내 눈앞의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맹수, 짐승에 불과해.’

    이제 이 싸움은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단순히 인간과 짐승의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이상을 이루겠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잖아.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라고! 죄책감을 지우고 싶어서 그래서 트렌세르노의 이상을 이용한 게 아니냐. 데모니아!”

    담배 연기가 내뿜어지고, 그것이 손에 닿는 순간 구현되는 것은 두 개의 쌍검이었다. 그것을 교차하여 폭주하는 짐승의 검을 막아선다.

    “핑계? 그래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지가 아니라, 그렇잖아!”

    “그래서 뭐! 평생 남아있는 이 죄책감을 지우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쁜데! 이이익! 왜 아까처럼 안 잘리는 거야!”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행동은 나쁘지 않아. 전쟁 중 실수로 민간인을 죽인 이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그 묘소에 가서 며칠이고 기도를 하는 식의 행동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죽은 사람 때문에 생긴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 산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나!”

    너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너는 그 질이 너무 나빠.

    “괴로웠다면 진작 그랬어야지!”

    ‘트렌세르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평생토록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년이!’

    교차했던 검에 힘을 줘 데모니아를 밀어낸다. 그리고 그 검을 데모니아에게 던진 직후 다시금 생명의 연금술로 쌍검을 만들어낸다.

    “괴로움을 안고 죽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진작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 발악했어야지!”

    그리고 달려든다. 달려들어 짐승의 오른팔을 노리는 한 편, 왼쪽에 쥔 검을 막는다. 그래 멍청하게도 달려들었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거리를 벌려야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달려들었다.

    “이래서야 그저 핑계꺼리가 생겨서 어리광을 부리는 겁쟁이 꼬마랑 다를 게 뭐냔 말이야!”

    오른손을 베려는 시도는 무색하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왼손에 쥐어진 데모니아의 검은 간신히 막아냈으나.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꿈속에서 제운이, 엄마가 더 이상 괴롭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걸로 좋다고!”

    라트가 공격을 막아낸 반동으로 자세가 무너진 걸 노려 데모니아의 검이 똬리를 푼 뱀 마냥 뻗어나가 그의 목을 노린다.

    같은 경지에 도달한 오러 유저끼리의 싸움이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그러나 그 경지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죽어!”

    맹수의 울부짖음을 듣는 순간 머리가 차갑게 변한다. 흥분해버리고 말았다, 실수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했어.’

    정면에서 힘으로 짓눌러 부정해주지 않으면 속이 내키지 않을 거 같아서. 어리광에 일어난 짜증이 절대로 가실 것 같지 않아서.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다. 잠시 후면 라트의 목은 분명 데모니아의 검에 베이고 말 거다.

    번뜩이는 칼날이 라트의 목을 베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어?’

    일순, 세계가 정지됐다.

    [축하드립니다,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 레벨이 10을 달성했습니다. 마르쿨의 검술 기능이 강화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마르쿨의 검술의 레벨이 상승했다는 알림창과 다른 알림창이 있었다.

    [마르쿨의 검술 중 첫 번째 비술 다른 평행선을 사용됩니다]

    ‘경험치가 지금 다 찼어? 그것보다 다른 평행선이라니.”

    세계가 멈춘 이유는 이 때문이었나. 비술, 희귀 기능으로 승화된 검술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필살기다.

    그리고 마르쿨의 검술이 10레벨에 도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비술인 다른 평행선은 위기 상황 시 일정 시간동안 사용자의 감각을 극도로 상승시키는 일종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비술이다.

    그래서 이렇게 세계가 느리게 느껴지는 거다. 그러나 몸은 평소와 같기에 지금 와서 몸을 움직인다고 해도 데모니아의 검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래서 뭐.’

    몸을 움직여서는 저 공격을 어찌할 수 없다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평범한 검사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라트는 평범한 검사가 아니다.

    “어?”

    분명 라트의 목을 베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라트의 몸이 사라지자 데모니아의 입에서 의문이 세어나왔다.

    그러나 명색이 오러 마스터, 사라진 기척을 놓칠 자는 아니다.

    “큭, 어느 틈에 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임에도 불구하고 데모니아는 간단히 검을 뒤로 돌려 라트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냈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당황으로 일렁인다.

    라트가 자신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이동했으니 그 당황은 타당했다.

    “재주가 많거든.”

    염동력으로 순간이동을 해서 순식간에 데모니아의 뒤를 잡은 라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러나 등골이 서늘함은 어쩔 수 없었다.

    ‘운이 좋았어.’

    그래 운이 좋았다. 그 순간 마르쿨의 검술 레벨이 10레벨에 도달해서 다른 평행선을 발동되었고, 덕분에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침 마르쿨의 검술의 레벨이 10이 되지 않았더라면 반응도 하지 못하고 데모니아의 칼날에 목이 깔끔하게 떨어졌겠지.

    “이제부터.”

    운이 좋았다는 표현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우연. 그 우연이 쌓아서 만들어낸 운명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 순간.

    “이 손으로 직접!”

    짧은 시간 동안이라는 제한이 있기는 하다만, 데모니아와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눈앞의 여자를 정면에서 깨부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정말이지 적절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최대한 빨리 이 여자와의 싸움을 끝내고 아군을 지원하려고 하던 참이었지.

    “정면에서 네년의 어리광을 부서주마.”

    그러니 정면에서 맞부딪쳐주마. 그리고 다그치게 해주겠다. 네년의 어리광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연금술사. 너는 내 어리광에, 트렌세르노님의 이상에 삼켜질 운명이라고!”

    웃을 수 없는 희극, 울지 못할 비극의 절정. 그 막이 거침없이 오른다. 주인공은 승자일 것이며 패자는 씁쓸히 사라지는 게 분명 말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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